두해 가까이 한 주일에 두세 번은 운동을 한다. 나이가 있으니 격렬하게 움직이지는 못해도 한 시간 반 정도 운동을 하고 나면 기진맥진 할 정도가 된다. 상대도 없이 그저 정해놓은 순서대로 운동을 하는데, 그러다 보니 때로는 지루하기도 하고 중간에 대충 끝내고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래서 내게는 운동이 육체적인 단련이라기보다는 오히려 포기하고 싶은 마음을 다스리는 정신 수련에 가깝다. 어찌되었거나 잘하는 건 없어도 끈질긴 편이기는 해서 운동하던 도중에 끝낸 기억은 없다.
돌아보니 두 해 가까이 꽤나 열심히 운동을 했는데도 체력은 좀처럼 늘지 않아 괜히 시간만 낭비한 게 아닌가 싶기도 하지만, 수년 동안 변변한 성과도 거두지 못한 채로 이렇게 버텨내는 걸 보면 그 대신 정신 수련은 제대로 한 게 아닌가 싶다.
새벽 출장길에 공항으로 가다가 과속카메라에 찍혔다. 몇 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다. 어떤 경우에도 과속은 하지 않는데 새벽이라 차가 없어 잠깐 긴장을 늦췄던 모양이다. 잘 다니다가 단 한 번 긴장을 늦춘 그때 과속카메라 앞을 지난 모양이 되어서 억울한 감이 없지 않다. 잠시도 긴장을 늦추지 말라는 경고인 모양이다 생각하니 억울한 마음이 조금은 가라앉는다. 그래도 속은 쓰리다. 작은 돈이 아니니 말이다.
장기판의 졸 하나를 옮기는 것도 이유가 있게 마련인데 하물며 당신 자식을 이 먼 땅에 옮기시면서 이유가 없으셨을까. 부임할 때만 해도 그 이유가 곧 손에 잡힐 줄 알았다. 하지만 시간이 이렇게나 흘렀는데도 이유가 선명해지기는커녕 점점 오리무중이 되어가고 있다. 이럴 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고 내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어렸을 때 몹시 가난했다. 아버지는 가난을 피해 어린 나이에 무작정 상경하셨고 어머니는 전쟁 통에 혼자 피난을 내려오셨으니 주변에 도와달라고 할 일가도 친척도 없었다. 그 가난을 오롯이 두 분이 견뎌내셔야 했다는 말이다. 그렇게 살았으니 누군가를 돕는다는 건 꿈조차 꾸어보지 못했다. 살아가면서 누군가를 도울 수 있는 날이 올 수 있을까 생각하기도 했다. 나이가 들어 누군가를 도울 수 있는 상황이 되고나니 그런 자신이 기특하다 못해 신기했고, 그래서 늘 기쁜 마음으로 누군가를 도우려 했다. 그렇기는 해도 누군가를 돕기 위해 주머니를 여는 일은 아직도 쉽지가 않다.
넉넉한 집안에서 자란 아내는 베푸는 것이 천성인 사람이다. 어른노릇 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니라고 말은 하면서도 이웃에게 식사 한 끼 대접하기를 즐겨하고, 돌아가는 길엔 하다못해 식사 때 맛있게 먹던 반찬 한 가지라도 들려 보내야 마음 편해 한다. 가난하게 자라 주머니 여는 일에 인색한 내게는 베풀기를 즐겨하는 아내의 씀씀이가 걱정이 될 법도 한 일이다. 그런데도 내가 하지 못하는 일 대신 해서 고맙다는 생각도 들고, 그 때문에 내 모자란 점 하나를 덮을 수도 있으니 여간 다행한 일이 아니다. 자식이 고비마다 생각지 않은 도움을 많이 받았는데, 대접하기 즐겨하는 아내의 덕이 아니었나 싶다.
지난여름부터 덤벨 무게를 늘렸다. 처음 며칠 힘겨웠지만 곧 익숙해졌다. 나이가 들었는데도 뭔가 나아지는 게 있어 흐뭇했다. 오늘 운동하면서 거울을 보니 팔을 내린 채 덤벨을 드는 것이 아니라 팔을 뒤로 뺀 채 덤벨을 들고 있는 게 아닌가. 자세를 바로 잡으니 처음 무게를 늘렸을 때만큼 힘들었다. 결국 그동안 늘어난 무게에 익숙해졌던 게 아니라 요령을 부렸던 모양이다.
살아오면서 바른 자세를 잃지 않으려고 애썼다. 그런데 그것을 위해서 특별히 포기한 것도 없었고 그것 때문에 어려움을 겪어본 기억도 없다. 바른 자세에 쉽게 익숙해져 다행이라고 생각했는데, 돌이켜보니 그저 요령으로 그때그때 모면한 것을 자세를 잃지 않은 것으로 착각한 모양이다.
이젠 날씨가 제법 쌀쌀하겠네요. 며칠 전 친구 하나가 페이스북 대문에 낙엽으로 뒤덮인 거리 사진을 올려놓았더군요. 비가 추적추적 내려 낙엽 치우는 분들이 고생스럽겠다 싶으면서도 비 때문에 더욱 선명해진 단풍 색깔에 한동안 정신이 팔렸습니다. 모두가 그립습니다. 단풍 뿐 아니라 을씨년스럽게 내리는 가을비까지도 말이지요.
벌써 7년이 되어갑니다. 떠나오기 전, 유년부 교사할 때 늘 제 곁을 맴돌던 녀석이 하나 있었지요. 초등부로 진급하고 나서 혹시 제가 왔나 싶어 유년부를 찾아왔더라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코끝이 찡해지더군요. 이제는 체격이 저만큼 자랐답니다. 다음 휴가 때는 꼭 찾아봐야 하겠습니다. 그런데 저를 기억이나 할까요? 청년부에서 함께 지내던 친구들이 결혼을 하고, 아이를 얻고, 학부모가 되었습니다. 그들이 얻은 아기가 신기해서 안고 다니기도 하고, 유치부에 다닐 때는 예배 끝나고 일부러 보러 가기도 했습니다. 그러던 아이가 이젠 페이스북 친구 리스트에 올라왔더군요. 여인 티가 물씬 나는 사진을 대문에 걸어놓았길래 그저 이름이 같은 모양이다 했지요. 설마하니 안고 어르던 그 아이라고 생각했겠습니까. 세월이 이만큼 흘렀습니다. 이젠 머리에 서리가 내리고 몸도 이곳저곳 손 볼 일이 많아졌습니다.
광야에 서 본 일이 있습니까? 하룻길 거리가 한 눈에 들어오는 곳, 풀 한 포기 물 한 방울 없어 사람 힘만으로는 살아남을 수 없는 곳, 그곳에 서면 사람이 얼마나 보잘것없는 존재인지 깨닫게 되고 그래서 하늘을 바라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니 제겐 이곳이 은혜의 땅이지요. 어쩌면 예배드리는 것 자체가 불법인 상황이 오히려 믿음에 더욱 의지하게 만드는 지도 모르겠습니다. 테러로 얼룩진 피의 금요일이 계속되던 몇 달 전, 경찰이 불쑥 찾아왔더라는 소식에 교우들이 모두 얼어붙었습니다. 예배시간을 바꾸고, 비상대피계획을 세우고, 급기야는 새벽예배를 중단하기에 이르렀습니다. 하루가 지났을까요, 다시 새벽예배를 시작한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목사님께서 새벽예배가 중단된 교회 빈 마당을 걸으면서 크게 깨달았다고 하셨습니다. 교회에 어려움이 닥치면 기도에 더욱 힘써야지 환란이 무서워 기도를 멈춰서야 되겠나 싶으셨답니다. 이렇게 어려움과 맞닥뜨리면서 깨지고 부딪쳐가며 깨닫고 또 배웁니다.
신앙의 뿌리가 모두 다른 사람들이 모여 예배공동체를 이룬다는 게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니더군요. 교인 모두가 저마다의 하나님을 모시고 삽니다. 때로는 저들이 섬기는 하나님이 내가 섬기는 그 하나님일까 싶기도 합니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들 눈에 제가 그렇게 비췄을지도 모르겠네요. 미운 정도 정이라더니 이젠 그리 불편한지 모르고 삽니다. 그래도 문득문득 서로를 북돋우고 격려하던 옛날이, 그 친구들이 사무치도록 그립기도 합니다.
이곳에서는 구역에 속한 온가족이 함께 구역예배를 드립니다. 그러고 보니 구역예배라고 드려본 것이 이곳에서 처음이군요. 구역예배를 준비하는 일이 부담스럽기는 하지만 함께 말씀을 나누는 가운데 깨닫는 것도 무척 많습니다. 언젠가 ‘용서’라는 구역공과를 할 때였습니다. 공과에서 요구하는 답은 하나님의 큰 용서를 경험했으니 사람 사이의 작은 용서를 이루지 못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참석한 교우들의 한결 같은 고백은 비록 하나님의 큰 용서를 경험했으나 도무지 용서할 수 없는 사람이 하나씩은 꼭 있더라는 것이지요. 용서를 했어도 말끔히 정리가 되지도 않고, 도저히 해결을 할 수 없어 마음속에서 지우는 것으로 정리를 하기도 했답니다. 결국 구역예배는 사람의 힘으로는 온전한 용서가 불가능하다는 걸 확인하는 자리가 되었고, 그렇기 때문에 온전히 용서할 수 있는 힘을, 용기를 허락해주시기를 구하는 것으로 구역예배를 마쳤습니다. 그리고 그 여운으로 남을 내 잣대로 재단하는 잘못을 얼마큼은 줄일 수 있었습니다.
언젠가는 떠나온 자리로 돌아가겠지요. 저를 찾아 유년부 교실을 기웃거리던 아이에서 이제는 청년만큼 자란 학희도, 안고 어르던 어린아이에서 이미 여인의 향내를 풍길 만큼 자란 소은이도 보고 싶습니다. 다시 아이들과 함께 지내는 시간이 주어지지는 않겠지만 이미 청년이 되어가는 아이들을 보는 것도 큰 기쁨이 되겠지요. 이제는 자식을 키우는 부모로 같이 나이 들어가는 예전의 청년부 친구들과 어울려 지내는 것도 멋진 일일 겁니다. 떠나온 자리로 돌아갈 그날이 기다려집니다.
아직은 뜻이 있어 이곳의 삶을 이어가게 하신 것이라고 믿습니다. 이순의 나이에도 꿈을 잃지 않게 하시고, 그 길을 감당할 건강도 허락하셨습니다. 그래서 돌아갈 그날은 마음 한 곳에 고이 간직해둔 채 함께 지내도록 허락하신 이웃과 화목을 이루는 일에 힘을 쏟으려 합니다. 화목을 이루어 모든 이웃과 이곳에서 하나님 나라를 살아가겠습니다. 그리고 부족한 사람을 도구삼아 이 땅에 당신의 경륜을 펼쳐가고자 하시는 뜻을 힘을 다해 이루려 애쓰겠습니다. 때때로 기억하고 기도해주세요. 저도 함께 기억하고 기도하겠습니다.
이곳에도 가을은 어김없이 찾아옵니다. 아직 한낮에는 30도를 오르내리지만 아침저녁으로는 쌀쌀합니다. 그렇다고 단풍이 지고 눈이 내리기야 하겠습니까. 이곳에 오니 고향을 떠난다는 게 얼마나 많은 걸 포기해야 하는 일인지 절절하게 깨닫습니다. 한 겨울 문밖을 나설 때 코끝을 스치는 쨍하는 느낌, 대남문 올라가는 길가 나무 가지가지에 피었던 눈꽃, 모두 사무치게 그립습니다. 나이 탓일까요?
지난번에 3동 시장 안에서 먹었던 순댓국은 정말 맛있었습니다. 다음에 만나거든 이번에 바빠서 얼굴도 제대로 보지 못하고 온 형님도 모시고 가십시다. 손주 보느라 바쁘시다면 그냥 우리끼리 가지요 뭐. 우리야 아쉬울 것 없지요, 못 본 형님이 아쉬워 할 일이지. 웃자는 이야기이니 죽자고 덤비지 말라고 형님께 전해주세요. 뒤끝대왕, 가가대소라!
살다보면 자신도 의식하지 못한 채 남을 비난하거나 남에게 비판적인 생각을 가질 때가 있다. 대체로 그럴만한 이유가 있기는 하지만, 문제는 그 모습이 그 사람의 전부가 아닌데도 마치 그게 전부인 것처럼 매도한다는 것이다. 누군가를 비난할 수는 있다. 그럴 때 그 모습이 그 사람의 전부가 아니라는 것만 잊지 않아도 더 큰 실수는 막을 수 있지 않을까.
성경 곳곳에 우리를 향한 위로의 말씀이 있음에도 내겐 그 모든 말씀이 참으로 공허하기만 하다. 옳은 일을 위해 무고히 고난을 받는 의인들에게야 더 할 수 없는 위로가 되겠지만, 내 선택 내 부족한 능력의 결과로 겪는 어려움이니 어느 위로의 말씀에도 해당이 되지 않아서 말이다. 요 며칠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시편에 매달려 있다. 하지만 그 어떤 위로의 말씀도 내게 해당이 없다는 사실만 확인할 뿐이다. 하나님은 과연 자초한 고난도 위로하시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