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0월

by 박인식

그리스도인 (2015.10.08)


그리스도인으로 사는 까닭은 그리스도인으로 죽기 위해서이고, 그리스도인으로 죽기 위해서는 그리스도인으로 살아야 한다.



계획 (2015.10.08)


태생이 그런 건지 엔지니어로 살아와서 그런 건지는 알 수 없지만 평생 계획 없이 살지도 않았고 계획 없이 살 수 있다고 생각해 본일 조차 없다. 그런데 실상 계획대로 이루어진 건 다섯 손가락을 꼽기도 어렵다. 지금 와서 돌아보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비 고비 잘 헤쳐 나왔고 그런 대로 의미 있는 삶을 살았다. 늘 모사재인(謀事在人)이요 성사재천(成事在天)이란 말을 입에 달고 살지 않았나. 그런데 왜 계획 너머에서 내 삶을 섭리하시고 또한 도우시는 손길을 깨닫기만 하고 마음으로 받아들이지는 못했을까? 이루지도 못할 계획에 왜 그렇게 집착했을까? 이제 머리로 깨달았을 뿐 아니라 마음으로 받아들였으니 되지도 않을 계획 세울 생각일랑 접으려 한다. 그리고 눈앞에 닥친 상황이 섭리 가운데 내게 허락하신 것으로 믿고 힘을 다해 감당하려 한다.



아버지의 눈물 (2015.10.09)


예전에는 남자가 눈물 흘리는 걸 수치스럽게 여겼지만 그런 중에도 아버지는 유독 눈물을 보이지 않으셨다. 그런 아버지가 단 한 번 눈물을 흘리신 일이 있었다. 할머니 장례를 치르고 산에서 내려오는 길에 할머니께서 거처하시던 빈 방을 둘러보시고는 마치 맹수가 표호 하듯 대성통곡 하셨다. 비록 열다섯 어린 나이였지만 맏아들로서 어머니를 모시지 못한 아버지의 깊은 회한을 가슴으로 느낄 수 있었다.


맏이면서도 맏이 노릇을 못하고 살았다. 게다가 이제는 이역만리에 떨어져 살면서 그저 일 년에 한 번 휴가 때 어머니 뵙는 것이 전부가 되었다. 맏이로서 어머니 배웅을 받으며 집을 떠나는 일은 견디기 어려운 일이다. 세월이 흐른다고 해서 익숙해지는 일도 아니고 마음이며 발걸음이 점점 무거워지기만 한다. 문득 아버지가 흘리신 눈물이 생각났다. 이미 그때 아버지보다 스무 살 더 많은 나이가 되었다. 회한을 덜 기회가 스무 해나 더 있었다는 말이다. 그런데도 어머니를 떠나 집을 나서는 일은 여전히 어렵고 어머니를 모시지 못하는 회한은 날마다 더해만 간다.



고백과 삶 (2015.10.09)


예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고백한다. 그러나 그 고백이 우리 삶으로 드러나지 않는다면 그것이 무슨 의미가 있으며 그 고백이 우리 삶을 변화시키지 못한다면 그것이 어떻게 진리일 수 있나.



계획 (2015.10.12)


살아오면서 그토록 집착했던 ‘계획’이라는 것을 더 이상 고집하지 않기로 한 것은 내 앞에 일어난 현실이 늘 내 예상을 벗어났으며, 애쓴다고 해서 일어날 수 있는 일을 예상하는 게 가능한 것도 아니고, 더욱이 이런 한계가 내게만 해당되는 게 아니라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꿈 (2015.10.14)


프로야구 준플레이오프 MVP인 이현승 선수가 인터뷰에서 여태껏 운동하면서 오늘 같은 꿈을 많이 꿨는데, 오늘 꿈같은 일이 현실로 다가와서 무척 기쁘다고 했다. 오랜 꿈이 이루어졌으니 말이다.


그동안 내가 꾸었던 꿈은 무엇이었을까? 꿈은 기억에도 없고 꿈을 꾼 일이 있는지조차 가물가물하다. 그러면 꿈도 없이 평생을 살아온 건가? 혹시 나이가 들면서 꿈을 잃어버린 건 아닌가? 원 세상에, 꿈도 없이 살았다니. 그리고 꿈 없이 사는지도 모르고 살아왔다니.



기도 부탁 (2015.10.24)


교회 선교부에서 네팔 교회 하나를 후원해 오고 있다. 교회건축을 시작했다고 해서 교우들이 특별헌금을 보내기도 했다. 건축하는데 필요한 만큼 후원이 들어오지 않아서였는지 건축 규모가 커져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건축비가 모자라 건축이 중단되었다는 연락이 왔다. 왜 건축비가 모자라는지 얼마가 더 필요한지 설명도 없고 그저 기도를 부탁한다는 연락뿐이었다. 마음이 편치 않았다. 앞뒤 사정 설명도 없이 너무 당연히 요구하는 것 같아 그렇기도 했고, 도와달라는데 왜 반응이 없느냐는 투의 독촉 연락을 받으니 뭐 이런 사람들이 있나 싶기도 했다. 그래서 부탁한대로 교우들과 함께 기도하겠노라 답장을 하는 것으로 마무리했다.


네팔교회 뿐 아니라 교회에 도움을 요청하는 경우 대부분 기도를 부탁한다고 말한다. 기도라는 말을 자기 필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아무 때나 휘둘러 대는 조자룡이 헌 칼처럼 써서야 되겠나.



버려서 얻는 것 (2015.10.24)


합창을 하다 보면 아주 낮은 음을 내야 할 경우가 있는데, 전문적으로 훈련 받은 일이 없으니 애를 써도 생각만큼 소리가 나지를 않는다. 그럴 때 턱을 떨어뜨리고 버리듯이 소리를 내야 낮은 음을 낼 수 있다고 했다. 그런 요령을 배우고 나서도 한동안 버리듯 소리를 내는 게 되지 않아 낮은 음을 내느라 애를 먹곤 했다. 그러다 어느 날 버리듯 소리를 내게 되었고, 그 후로는 합창에 필요할 정도의 낮은 음은 큰 어려움 없이 낼 수 있게 되었다.


살다보면 버릴 때 얻을 수 있는 일이 적지 않다. 하지만 버려야 얻을 수 있다는 걸 깨닫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고, 그걸 깨닫는다 해도 버린다는 게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한 번 버리는 길을 알게 되면 그 다음은 쉽게 버릴 수 있을 것 같기는 한데 말이다. 신념을 넘어선 아집, 열심을 넘어선 집착, 계획을 넘어선 과욕. 이젠 버릴 때도 되지 않았을까. 버리고 나면 삶이 한결 수월해질 텐데.



기사 작성 (2015.10.28)


기사를 쓸 때 형용사와 부사를 사용해 기사에 색깔을 입힐 경우 논쟁으로 비화될 수 있으니 가능한 중립적인 단어를 사용해 주어와 동사만으로 기사를 작성하라고 한다. 주어와 동사만 사용한다면 가치나 주장을 전달하기 어렵다는 전제가 깔려있는 것 같은데, 천만의 말씀이다. 김훈의 ‘칼의 노래’나 ‘남한산성’을 보면 주어와 동사만으로도 형용사나 부사를 남발하는 문장보다 오히려 가치나 주장을 얼마나 더 강하게 전달하고 있는지 모른다.



평화 (2015.10.28)


지불한다는 뜻의 영어 pay는 평화라는 뜻의 라틴어 pax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줄 것을 주고받을 것을 받는 것이 평화라는 말이니, 결국 돈거래가 깨끗하고 분명할수록 평화에 가까워진다는 말이겠다.



믿음 (2015.10.30)


믿음이 있다고 해서 어려운 일을 만나지 않는 것도 아니고 그때마다 두렵지 않은 것도 아니다. 다만 어려운 일을 만나고 그 어려운 일을 헤쳐 나갈 일 때문에 두렵기도 하지만, 그것조차도 내게 필요한 과정이고 결국은 내게 선한 것이라는 확신, 그리고 삶 가운데 그것을 확인시키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통해 그 모든 어려움을 극복할 힘을 얻는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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