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는 짧게는 하루의 삶을 돌아보게 하고 길게는 인생을 돌아보게 한다. 하루의 삶이야 일기를 쓰면서 쉽게 돌아볼 수 있지만 머나먼 길을 돌아온 인생을 어떻게 일일이 기억할 수 있겠나. 그러니 지나온 시간의 과오를 제대로 돌아보자면 써놓은 일기를 끊임없이 읽는 수밖에 없다. 그래서 일기는 읽기인 모양이다.
전문가는 다른 전문가의 의견을 존중한다. 그리고 자기 분야가 아닌 것에 대해서 섣부르게 나서지 않는다. 알지도 못하는 일에 괜히 나서서 감 놔라 배 놔라 하는 사람들이 있다. 장담하는데, 그 사람은 전문가이기는커녕 뭐 하나 제대로 아는 것이 없을 것이다.
교회에서 무엇인가 결정을 내리기에 앞서 먼저 하나님의 뜻을 살펴야한다. 기도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시선이 어디에 머물고 있는지, 하나님께서 펼치시려는 계획이 무엇인지 헤아려야한다는 말이다. 그러나 그렇게 해서 뭔가 깨달았다고 해도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쉽게 확신해서는 안 된다. 자기주장, 자기 욕심이 앞서 하나님의 뜻이 가려지고 왜곡될 수 있기 때문이다. 중요한 결정일수록 다른 교우들의 의견에 더욱 귀를 기울여야 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
오늘 아랍뉴스 1면에 ‘Enough of Islamophobia’라는 제목으로 무슬림들이 도널드 트럼프의 사무실 앞에서 기도하는 사진이 실렸다. 종교가 다르다는 이유로 타종교를 비방하거나 제재를 가하는 것은 잘못된 일이다. 그것도 자유를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미국에서 대통령 후보가 공개적으로 이슬람을 공격했으니 무슬림들이 그렇게 반응하는 것도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다. 그 사진 바로 옆에는 크리스마스를 축하하는 행위를 금지한다는 종교경찰의 발표가 큼지막하게 실렸다. 크리스마스카드를 보내거나 크리스마스트리를 장식하는 것도 안 되고 이런 행위를 보면 즉시 종교경찰에 신고해야 하는데, 이를 위반하는 사항에 대해서는 종교경찰 뿐 아니라 정부 관련 부처와 상공회의소 등 여러 기관이 합동으로 단속하겠단다.
매년 되풀이 되는 일이니 신기할 것도 불편할 것도 없는 일이기는 하다. 하지만 이슬람 혐오주의를 탓하는 기사 바로 옆에 같은 방식으로 기독교를 혐오하는 기사가 난 것을 보니 과연 이들이 이슬람 혐오주의를 탓할 자격이 있는지 의심스럽다.
요 며칠 브레이크가 밀려서 운전할 때 여간 조심스럽지 않았다. 주말이어서 마땅히 손볼 곳이 없기는 했지만 달리 교통편이 없는 곳이니 어쩔 수 없이 운전을 했는데, 다른 것도 아니라 브레이크에 문제가 있으니 운전을 하는 동안 얼마나 긴장했는지 모른다. 수리를 하고 나니 이렇게 편안한 것을. 그런데 나 자신을 통제하는 브레이크는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 건지, 혹시 브레이크가 말을 듣지 않는 데도 그것도 모르고 위험천만한 운전을 계속하고 있지는 않은 건지 모르겠다.
살다보면 화나는 일이 어디 한두 가지일까. 화를 참지 못하고 문제를 일으키는 일이 요즘 들어 빈번해졌는데, 세상 살기가 그만큼 어려워졌기 때문인지 예전만큼 화를 참지 못하는 건지 알 수가 없다. 예전이라고 어려운 일이 없고 화낼 일이 없었겠나마는 그래도 다 참고 살았는데. 요즘은 화를 참지 못하는 게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 분노조절장애라는 병 때문이라고 여기는 모양이다. 스스로 피해자라고 여겨 치료 받아야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는 말이다.
그런데 정말 치료받아야 할 것은 화를 참지 못하고 터뜨리는 게 아니라 화를 너무 참아 속으로 골병이 드는 게 아닐까? 그것도 분노를 제대로 조절하지 못해 일어나는 현상이니 분노조절장애의 하나로 볼 수 있지 않은가 말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