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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인식 Feb 05. 2021

[사우디 이야기 32] 음식

사우디 이야기 (32)

사우디에 살면서 가장 아쉬운 게 돼지고기와 술이다. 서민의 팍팍한 삶을 위로하는 ‘삼겹살에 소주 한 잔’이 이곳에서는 어지간해 꿈꾸기 어려운 사치품목이다. 이슬람 금기라서 아예 수입이 금지되어 있기 때문이지만, 세상이 어디 그런가. 금기이니 위험하고, 위험하니 비싸지는 것뿐이지. 오래 전에 몇 달 현장에서 머물 때 4만 원 정도면 막걸리에 삼겹살 먹을 수 있는 곳이 있었다. 물론 불법이고 지금은 없어졌으니 더 이상 묻지 마시라.


이슬람은 그 뿌리가 유대교와 맞닿아있어 구약성경에서 부정(不淨)하다는 이유로 금기로 여기는 것 중에 이곳에서 아직도 지키고 있는 것이 적지 않다. 금기 중에는 종교적 이유로 인한 것도 있지만 사람들을 위험에서 보호하기 위해 금하는 것도 있다. 술은 정신을 흐리게 하기 때문에 부정하고, 돼지고기는 중동 특유의 날씨 때문에 쉽게 상해서 건강을 해칠 수 있어 부정할 뿐 아니라, 그런 이유로 돼지고기에 직접 간접으로 닿은 것을 모두 부정하다고 해서 금기로 여긴다. 이슬람 경전인 쿠란에서는 이와 같이 부정한 것을 금하는데(prohibited), 이것을 ‘하람(Haram)’이라고 한다. 반대로 허용하는 것(permissible)을 ‘할랄(Halal)’이라고 한다. 언젠가 익산에 식품가공단지를 만든다고 해서 난리가 났던 바로 그 ‘할랄’이다.


메카는 도시 전체가 무슬림만 출입이 가능하고, 메디나는 ‘선지자의 모스크’를 둘러싸고 있는 외곽순환도로 안쪽 지역은 무슬림만 출입이 가능하다. 이와 같이 무슬림 아닌 사람들이 들어갈 수 없는 지역을 ‘금기의 지역’이라는 뜻으로 ‘하람’이라고 부른다.


돼지고기 안 먹는 게 뭐 그리 아쉽냐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나도 그렇게 생각했다. 와서 보니 돼지고기를 빼고 나니 음식 종류가 반 이하로 줄더라. 중국음식은 대부분이 돼지고기로 만든 것이고, 하다못해 라면 스프에도 돼지고기가 들어가더라. 이곳에서 파는 ‘할랄’ 라면은 스프에서 돼지고기를 뺀 것이어서 같은 한국 라면인데도 한국에서 사먹는 것과 맛이 다르다. 그것 뿐 아니다. 이곳에서도 한국 초코파이가 인기 있는데, 한국에서처럼 돼지고기에서 추출한 젤라틴을 사용한 것이 아니라 소고기 젤라틴을 사용한 ‘할랄’ 초코파이이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하리보’ 젤리도 마찬가지다.


사우디는 돼지고기 판매를 일체 금지하고 있지만 주변 국가들은 같은 이슬람 국가인데도 기준을 엄격하게 적용할 뿐 판매 자체를 금지하지는 않는다. 한 번은 아부다비에 출장 갔던 길에 순댓국 먹을 생각으로 한국 식당을 찾았다. 분명히 판다는 이야기를 듣고 갔는데 메뉴에 없었다. 다 먹고 나서 돼지고기 판매가 금지된 것도 아닌데 왜 메뉴에 적어놓지 않았냐고 물었다. 이유인즉슨, 돼지고기만 부정한 게 아니라 돼지고기 들어간 음식 만들 때 사용한 요리도구나 그 음식을 담았던 그릇이 다른 음식과 닿으면 그것이 ‘할랄’ 음식이라 해도 마찬가지로 부정해지기 때문에 모든 동선을 철저하게 분리해야 하고, 그 규정을 지키자면 식당을 별도로 차려야한다는 것이었다.


술도 영향범위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넓기는 마찬가지였다. 음식 조리할 때 술이 꽤 들어가는 줄 여기 와서 알았다. 술 대신 ‘미림’이라는 걸 사용하기도 한다는데, 그것도 알코올 성분이 들어있다고 해서 역시 수입이 안 된다. 그래서 메밀국수 육수도 맛이 영 시원찮다. 그것뿐이 아니다. 사우디에 오래 살다보니 재주껏 생선회도 떠서 먹는데, 반주가 빠지니 회를 떠놨다고 모두 회 맛이 나는 게 아니더라. 생선회가 생선회로서 완성되려면 반주가 필요한 것인 줄 여기 와서 알았다. 이곳에서는 맥주가 워낙 귀해서 어지간한 능력자 아니면 꿈도 못 꾼다. 언젠가 누가 한국에서 가져온 기계로 만들었다면서 맥주를 두어 병 가져 왔더라만, 차라리 무알콜 맥주가 낫더라.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할랄’이라면 그저 돼지고기와 술만 피하면 되고, 그래서 생선이면 모두 문제가 되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었지만, 이슬람 법규인 샤리아를 살펴보니 그것이 그리 간단한 게 아니었다. 또한 ‘할랄’이니 ‘하람’이니 하는 구분이 식품에만 적용되는 것도 아니고, 의약품이나 심지어 화장품과 같은 생활 전반에 적용되는 것이었다.


음식 중에는 돼지고기 뿐 아니라 자연사했거나, 잔인하게 도살되었거나, 야생동물이 먹다 남긴 짐승도 모두 ‘하람’이다. 구약성경에서는 비늘 없는 생선을 부정한 것으로 여겨서 여기서도 그러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사우디에서는 어패류ㆍ갑각류를 포함한 모든 해산물을 ‘할랄’로 분류한다. 이번에 찾아보니 이슬람 전체가 그렇게 여기는 건 아니고 사우디가 속해있는 수니파만 그렇게 여긴다. 이란이 속해있는 시아파에서는 비늘 있는 생선만 ‘할랄’로 여기는데 종파에 따라 새우까지 포함해 ‘할랄’로 여기기도 한다.


한국에서 개최되는 행사에 사우디 발주처 사람들을 몇 번 초청한 일이 있다. 참가국 중에 이슬람 국가가 많아 행사장에서는 식사에 큰 어려움이 없었다. 행사장을 벗어나면 무엇보다 식사가 크게 걱정스러웠다. ‘할랄’ 식당은 아주 드물어서 엄두도 못 내고 그저 갈만한 식당에 연락해 메뉴를 하나하나 챙기는 수밖에 없었다. 음식은 그렇게 해결했지만 막상 식당에 가면 반찬이 문제였다. 반찬이 상에 깔리고 나서야 부랴부랴 주방장을 찾아 혹시 금기 식품이 들어가지나 않았는지 일일이 확인하는 소동을 벌였다. 나중엔 요령이 생겨서 생선요리 전문점이나 채식식당을 찾곤 했다. 생선요리 전문점에서도 반찬은 역시 지뢰밭이었다.


사우디 사람은 모두가 무슬림이니 당연히 기도 시간도 지키고 음식도 ‘할랄’로만 먹는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함께 여행하다 보니 그것도 사람 나름이었다. 공무원들은 비교적 철저히 지키는 편이었지만, 그것도 눈치 볼 다른 사우디 사람이 없으면 조금은 느슨해졌다. 기업인들은 대부분 음식을 고를 때에도 ‘할랄’인지 크게 따지지 않았고, 먼저 술을 찾기도 했다.


우리말로 이야기 나눌 기회가 별로 없는 곳이다 보니 한인 모임은 늘 반갑다. 그 중 특히 대사관 행사가 인기가 있는데, 다름 아닌 음식과 술 때문이다. 다들 돼지고기와 술에 대한 갈증이 있어서 대사관에서는 특히 이 부분에 신경을 많이 쓴다. 오해는 마시라. 외교공관은 치외법권 지역이어서 주재국 법령의 구속을 받지 않는다. 언젠가 대사관에서 열린 한국-사우디 친선협회 만찬에 참석했는데 돼지고기고 술이 보이지 않았다. 사우디 손님을 모셨으니 당연한 일이었는데, 미처 거기까지 생각하지 못하고 기대에 부풀었던 참석자들이 모두 쓴웃음을 짓고 말았다.


이러다보니 여행에서 돌아올 때 스팸이나 소시지 몇 개라도 사가지고 온다. 공항 세관에서 짐 검사를 하지만 그 정도까지 잡아내지는 않는다. 그래서 한국에 휴가 다녀오고 나면 하다못해 작은 스팸 하나라도 이웃과 나누어야 눈총을 덜 받는다. 나만 그런 건 아니고, 사우디로 돌아올 때 집집마다 예외 없이 가방 꾸리면서 부부간에 언성이 높아진단다. 부인들은 몇 개라도 더 넣으려 하고 남편들은 빼라 하고.


술이 금기인 나라이지만 술을 구하는 게 생각만큼 어렵지는 않다. 이곳에서 아주 잘 팔리는 포도주스가 있다. 그런데 그 주스를 병으로 사가는 사람은 없고 모두들 박스채로 사간다. 들리는 이야기로는 사우디에 근무하던 사람이 돌아가서 포도주 재료로 쓰기 좋도록 개발한 포도주스라고 한다. 병을 열고 이스트 조금 넣고 두어 주 기다리면 훌륭한 포도주가 된다. 그래서 뚜껑 여닫기도 좋게 만들었다. 앞서 이야기한대로 맥주 만드는 기계를 가져오기도 하고 (가방에 넣어올 정도 크기), 누룩을 가져와 막걸리를 담그기도 한다.


부임한 첫해에 사우디 공군 대령으로 예편한 동료가 있었다. 그때만 해도 술 가지고 있다가 적발되면 추방되는 줄 알 때였는데, 매일같이 술이 깨지 않은 채로 출근하는 그를 신기하게 바라보던 기억이 난다. 하루는 그릇 사러 이케아에 갔다가 와인 잔 하고 디켄터 파는 걸 보고 의아해 하기도 했다. 요즘은 와인셀러도 판단다.


매년 가을 한국대사관에서 열리는 개천절 행사에 사우디 사람들도 많이 온다. 만찬 때 맥주가 제공되는데, 예전에는 사우디 사람이 거기에 줄 서는 것은 보지 못했다. 물론 안 마시는 사람도 있겠지만 아마 보는 눈이 많아서 그렇지 않을까 짐작하고 있었다. 재작년 개천절 행사 때에도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사우디 사람들이 많이 참석했다. 맥주를 받으러 가보니 사우디 사람들이 줄을 서있어서 이번에는 무알콜 맥주를 나눠주는가 보다 생각하고 발길을 돌리는데 누군가 제대로 된 맥주라고 해서 깜짝 놀랐다. 사우디 사람이 다른 사우디 사람을 아랑곳하지 않고 술을 마신다는 게 믿어지지 않았다. 사우디 사람들은 믿을만한 사람과 함께 있을 때가 아니면 절대 술을 마시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그렇게 드러내놓고 술을 마시고 있으니 왜 놀랍지 않았겠는가.


사우디는 석유에 의존해 있는 경제구조를 바꾸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있다. 그래서 산업다각화의 방편으로 요 몇 년 관광산업에 크게 힘 쏟고 있다. 홍해 연안의 유적지 ‘알울라’, 첨단신도시 ‘네옴’, 그리고 홍해개발공사에서 개발하는 대규모 리조트 단지 모두 관광객을 염두에 두고 진행한다. 그런 사업이 진행되는 걸 지켜보면서 많은 이들이 곧 금주령이 풀리지 않을까 기대하는 것도 사실이다. 술이 빠진 리조트나 호텔을 생각할 수 없는 일이니 말이다.


몇 년 전에 왕세자가 관광업 진흥 깃발을 내걸었을 때 몇 가지 예상한 것이 있었다. 우선 비자발급이 쉬워질 것이고, 여성의 아바야 착용 의무가 면제될 것이고, 금주령도 해제되지 않겠나 생각했다. 이제는 온라인에서 즉시 전자비자를 발급받을 수 있고 (지금은 코로나 때문에 잠시 유보), 관광객은 아바야를 입지 않아도 되게 되었다 (이젠 관광객이 아닌데도 아바야를 입지 않은 여성이 점점 늘어난다). 마지막 남은 게 금주령인데, 이런 상황을 보니 그것도 얼마 남지 않은 일이 아닐까 싶다.


술 이야기 쓰자면 끝이 없겠으니 마지막으로 하나만 더. 사우디 국적항공사는 국제선이라고 해도 기내에서 술을 서비스하지 않는다. 외국 항공사들은 사우디 영공을 벗어나야 술을 서비스하기 시작한다. 단, 에어프랑스는 말만 잘하면 비행기 문 닫자마자 서비스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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