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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인식 Jan 31. 2021

[사우디 이야기 31] 스포츠

사우디 이야기 (31)

오늘 신문에 사우디 축구협회에서 여성 심판 63명을 임명했다는 기사가 실렸다. 사우디에 여성축구팀이 생겼다는 기사는 읽었는데 그렇다고 여성심판이 그렇게 많이 필요한가 싶었다. 기사를 읽다보니 작년 11월에 출범한 여성축구연맹에 소속된 팀이 무려 24개에 이르고 이미 1억5천만 원 상금이 걸린 연맹전을 치렀다고 했다. 1990년에 처음 여성축구 국가대표팀이 구성된 우리나라도 여자축구팀이 8개에 불과한데, 몇 년 전까지 여성에게 축구경기 관람하는 것조차 막았고 인구도 우리나라 2/3에 불과한 사우디에서 24팀을 구성할 수 있는 여성 축구선수를 어떻게 확보한다는 것인지 기사를 읽으면서도 이해할 수 없었다.


2009년 부임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알힐랄FC에서 뛰던 이영표 선수의 초대로 킹파드 경기장에서 열린 사우디 프로축구를 관람한 일이 있었다. 살아오면서 경기장이라고는 학교 운동부 응원하러 농구장과 축구장에 몇 번 간 것, 그리고 열렬한 야구팬으로 실업야구 경기를 찾은 게 전부였으니 이곳 경기장 상태가 어떤지 평가할 만큼 아는 게 없었지만,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크고 관람석은 쾌적했다. 하지만 운영이나 부대시설은 부실하기 짝이 없었다. (종류를 막론하고 사우디에 있는 시설 대부분이 이렇다. 겉보기에 번듯하고 본 시설 자체는 어디에도 뒤지지 않지만 운영이나 부대시설은 영 그에 미치지 못한다.) 경기 내내 관람객들이 일어서서 소리소리 지르는 모습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여성 관람객이 하나도 보이지 않아 물어보니 여성은 입장 자체를 금지한다고 했다. 물론 남녀유별이 별난 곳이니 관람석에 남녀가 합석할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지만 여성 입장 자체를 금지했을 것으로는 생각하지 못했다. 언젠가 한국 국가대표팀이 바로 그곳에서 경기한 일이 있었는데, 이곳 관습대로 여성 입장을 금지했다가 한국대사관의 강력한 요청으로 관람석 한쪽을 가족석으로 구분해 여성 교민들을 입장시킨 일도 있었다고 했다.


경기가 끝나고 나오는데 도로는 이미 난장판이었다. 아마 2002년 우리나라의 거리 모습이 이와 흡사했을 것이다. 커다란 국기로 몸을 감싸고 승용차 창문에 걸터앉은 사람, 차 지붕위로 올라간 사람, 다가와서 귀청이 떨어져라 소리 지르는 사람. 주차장을 빠져나오는 데 한 시간도 더 걸렸던 것 같았고, 경기장을 벗어나서도 한참을 그렇게 주춤댔어야 했다. 가만 생각해보니 우리처럼 스크럼을 짜거나 어울려 춤을 추는 모습은 보지 못했다.


사우디 프로축구는 2007년 출범했지만 연맹전은 1968년에 시작해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11개 지역 16개 팀이 연맹전에 참여하고 있는데, 전체 12개 경기장 중 리야드 킹파드 경기장과 제다 킹압둘라 경기장은 6만 석이 넘고 나머지 경기장은 대체로 2만 석 내외이다. 연맹전 전체 46년 역사 중 리야드를 근거지로 삼은 알힐랄FC가 16회 우승을 차지해 독보적인 선두를 이어오고 있으며, 사우디 양대 도시인 리야드와 제다를 근거지로 삼은 팀이 37회 우승을 합작해냈으니 가히 양대 도시만의 리그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아 보인다.


그동안 사우디 리그에 진출한 한국 선수도 적지 않다. 2009년에 진출한 설기현을 필두로 하여 이영표ㆍ이천수ㆍ송종국ㆍ유병수ㆍ곽태휘ㆍ석현준ㆍ조성환ㆍ박주영 선수가 진출했고, 현재는 알힐랄FC에 장현수 선수와 알나스르FC에 김진수 선수가 활동하고 있다. 알힐랄FC와 알나스르FC는 모두 리야드를 근거지로 삼고 있다.


축구는 팀도 많고 관심도 많지만 축구 말고 다른 스포츠에 대해 기사도 보지 못했고 이야기도 들어보지 못했다. 간혹 테니스나 격투기 경기를 유치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그저 일회성 행사일 뿐 사우디에 선수가 있는 것도 아니고 동호인도 찾아보기 어렵다. 축구 이외에 농구ㆍ핸드볼ㆍ크리켓 종목에 국가대표팀이 있다고는 하는데 그에 대한 기사를 읽어보지 못한 걸 보면 저변이랄 것도 없는 정도가 아닐까 짐작한다. 다만 왕국답게 승마 경기는 종종 중계하는 걸 보기도 했다. 사우디는 1972년 뮌헨올림픽부터 출전해오고 있으며, 2000년 시드니 올림픽에서 육상 400미터 허들 은메달과 승마 장애물 개인 동메달, 2012년 런던올림픽에서 승마 장애물 단체 동메달을 획득하였다. 리야드 근교에 왕실에서 운영하는 종마장도 있는 것을 보면 승마는 어느 정도 저변을 갖춘 것으로 보인다. 사우디 전통 스포츠로는 낙타경주가 있다.


한국인이 처음 중동에 진출하기 시작했을 때 우리 정부에서 정책적으로 상당한 인원의 태권도 사범을 보냈다. 그게 우리 정부의 정책이었는지 정부가 태권도협회를 적극적으로 지원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때 사우디에 진출한 태권도 사범 중에 이미 고령에 접어들었음에도 아직도 활동하는 분이 몇몇 계시다. 80년대까지만 해도 한국 태권도 사범들이 사우디 군이나 경찰, 정부 간부들을 도맡아 훈련시켰고 그 중에 왕족도 상당수 있어서 상당히 대접 받기도 했고 그런 모습이 한국인의 인상을 긍정적으로 만드는 데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그래서 그때 쌓아올린 인맥을 사업으로 연결시켜보려 한 경우가 종종 있었다고도 하고 나도 직접 경험한 일이 있었지만, 그 인맥을 사업에 제대로 연결시킨 경우는 거의 없는 것 같다. 인맥은 인맥이고 사업은 사업이라는 것인데, 하긴 ‘아랍상인’이라는 이름이 괜히 나왔겠나.


남성 스포츠도 축구 말고는 이렇다 할 종목이 없는데 놀랍게도 2020년에 제다 근교 킹압둘라경제도시(KAEC)의 로열그린골프클럽에서 레이디스 유러피언투어(LET)가 열렸다. 당초 3월에 열리기로 계획했던 것이 코로나 사태로 인해 11월로 연기된 것이다. 물론 2019년부터 유러피언투어 사우디 인터내셔널이 열리기는 했지만, 남성대회는 대회로 끝난데 반해 여성대회는 사우디 전역에 여성 골프 붐을 일으키는 촉매가 되었다. 레이디스 유러피언투어가 열리기 직전에 사우디 정부에서는 여성 골프를 장려하기 위해 여성 1천 명에게 선착순으로 골프 레슨ㆍ연습장 사용ㆍ3회 라운딩으로 이루어진 쿠폰을 무료 제공한 것이다.


                                <아바야 입은 레이디스 유러피언투어 여성 진행요원>


리야드에는 골프장이 두 곳 있다. 내가 자주 가던 곳은 그린과 페어웨이는 제대로 갖춰져 있는데 러프지역은 돌멩이가 깔린 맨땅이어서 공이 그리로 나가면 잃어버리기 십상이었다. 지금은 남아있는 게 거의 없지만, 몇 년 전만 해도 코스 옆에 옛날에 사용하던 사막 골프장 흔적이 남아있었다. 말하자면 풀 없는 골프장이었는데, 모래에 콜타르를 입혀 그린을 만들고 나머지는 맨땅이어서 공 떨어진 곳에 자그마한 매트를 펴놓고 그 위에서 플레이를 했다고 한다. 지금도 동부지역 주베일ㆍ담맘ㆍ아브카이크에 사막골프장이 서너 곳 운영 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



유러피언투어가 열린 KAEC의 로열그린골프클럽은 사우디 정부가 문호개방을 위해 작심하고 만든 골프장으로 시설이 가장 훌륭하지 않을까 한다. 일반인이 이용할 수 있는 골프장다운 골프장은 이 골프장 외에 리야드에 디랍 골프리조트ㆍ리야드 골프코스ㆍ노파 골프리조트가 있다. 동부 다란에 있는 롤링힐 골프클럽은 27홀을 갖추고 있는데 이는 아람코 직원을 위한 시설이어서, 홍해 KAEC에 있는 9홀 규격 사파 골프클럽은 킹압둘라과학기술대학(KAUST) 직원을 위한 시설이어서, 리야드 아리조나 컴파운드에 있는 9홀 규격 골프클럽은 단지 주민들을 위한 시설이어서 일반인 이용이 쉽지 않다. 이밖에 리야드 인터콘티넨탈호텔에 9홀 규격 골프장이 있는데, 이는 일반인이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다.


이미 십 년도 넘은 일이지만 부임 당시 리야드 골프코스 그린피는 주말에 4~5만원 정도였고 1년 회원권이 75만원 정도여서 부담 없이 칠 수 있었다. 지금은 그린피가 2배 이상, 1년 회원권도 500만원 정도까지 인상되어서 선뜻 이용하게 되지 않는다. 오래 전에 자주 찾을 때 골프를 치는 건 대부분 한국교민들과 서구 사람들이었고 간혹 필리핀ㆍ인도ㆍ파키스탄 사람들이 보였다. 아랍이나 사우디 사람들은 본 기억이 없다. 요즘도 자주 찾는 이웃의 이야기를 들으니 아랍이나 사우디 사람들이 연습장을 찾는 경우는 늘었는데 아직 라운딩을 하는 사람은 얼마 되지 않는다고 한다.


KAEC 로열그린골프클럽에서 유러피언투어가 열릴 때 매번 선수들이 참가 한다 만다 소란스러웠다. 사우디 정부가 인권문제를 덮기 위해 벌이는 이벤트에 꼭두각시 노릇을 하는 게 옳지 않다, 이건 스포츠 이벤트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런 이벤트에도 적극 참여하다 보면 결국 문호가 개방되고 결국 인권도 신장될 수 있다는 등의 여러 의견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다 보니 출전선수 중에 이름난 선수들은 거의 보지 못했다. 십 년 넘게 이곳에 있으면서 인권문제가 많은 걸 볼 수밖에 없었는데, 그런 관점에서 볼 때 외국 선수들이 적극 참여하고 국제적인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게 오히려 사우디 정부에 압력으로 작용해 궁극적으로 인권신장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렇다고 참가를 거부하는 선수들이 옳지 않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그런 결정 또한 사우디 정부의 운신의 폭을 좁히는 긍정적인 요인으로 작동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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