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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인식 Jan 27. 2021

[사우디 이야기 30] 장례

사우디 이야기 (30)

부임하고 나서 왕자들의 사망 기사를 적지 않게 읽으면서 장례 절차가 그들이 소유한 것에 비해 너무도 소박해서 놀랐다. 2011년에 오랫동안 영국에서 치료를 받던 술탄 왕세제가 사망했다는 소식을 듣고 그래도 첫 번째 왕위계승자이니 장례가 조금은 다를 줄 알았지만 마찬가지였다. 2015년 사망한 압둘라 국왕의 장례도 예외가 아니었다. 그것이 이슬람의 규율인지 아니면 사우디 왕가의 관습인지는 모르겠지만, 왕족이 사망하면 다음날 정오 무렵 기도(드루후) 때 장례를 치르고 바로 매장한다. 찾아보니 이슬람 법률인 샤리아법에서는 사망하고 만 하루가 지나기 전에 장례를 치르도록 규정하고 있다. 어딘가에는 위생 때문에 장례를 그렇게 서두른다고 설명하고 있기도 하다. 이슬람 국가가 모두 사우디처럼 더운 것은 아니지만 이슬람의 발상지가 사우디이니 사우디 기후를 고려해 기준을 세웠을 것이다.


<제6대 압둘라 국왕 장례>


장례는 최소한 사흘을 치러야 하는 곳에서 살아온 내게 왕족 뿐 아니라 국왕마저도 사망한 바로 다음날 장례를 치르는, 그리고 소박하기 이를 데 없는 이곳의 장례문화는 놀라움을 넘어 충격이었다. 들것으로 시신을 옮기고, 모스크에서는 시신을 단 위에 올려놓는 것도 아니고 장례에 참석한 사람들 맨 앞줄 발치에 내려놓고, 무덤이라고 해봐야 봉분이 그저 한 자 남짓하고, 묘비마저 세우지 않았다. 그동안 매장하고 난 후의 무덤 겉모습만 보았지 무덤을 어떻게 만드는지는 본 일이 없어 내부가 궁금했다. 그 궁금증은 얼마 전에 있었던 쿠웨이트 국왕의 장례식을 보면서 풀렸다. 생각 밖으로 무덤이 깊어 무덤 안으로 들어간 사람이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한국은 무덤이 깊다 해도 사람 한 길 넘는 걸 본 일이 없는데, 그것보다 훨씬 깊어 보였다.


이슬람 율법 해설집인 ‘파트와’에 따르면 시신은 말이나 마차 또는 자동차를 이용해 운구하는 것을 금하고 반드시 사람이 운구해야 한다. 무덤은 메카 방향(Qibla)을 향하게 해서 남성이 팔을 위로 뻗은 정도 깊이(2.25미터)까지 판다. 그리고 그 바닥에 시신을 안치하는 것이 아니라 중간쯤 되는 높이에 오른쪽 벽을 파고 그 안에 시신을 안치한다. (쿠웨이트 국왕 장례 때 카메라가 무덤 안쪽을 잠깐 비쳤는데 무덤을 파내려간 벽 중간쯤에 옆으로 파놓은 것이 보여 뭔가 했었다.) 이런 무덤은 땅이 굳어야나 가능한데, 땅이 무른 곳에서는 굳이 이런 형식을 지키지 않아도 무방하다. 무덤은 시신이 부패하면서 나는 냄새를 막고 짐승이 훼손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 어느 정도 깊이를 유지해야 하지만, 이곳 무덤이 유난히 깊은 것은 아마 벽 중간을 파고 그곳이 시신을 안치하는 독특한 형식 때문이 아닐까 한다. 굳은 땅이라고 해도 시신을 안치하는 곳이 너무 얕으면 땅이 내려앉을 수도 있을 테니 말이다.


이렇게 시신을 안치하고 나면 그 위로 흙을 덮는데, 조문객들이 흙을 세 줌씩 뿌리는 모습은 우리나 별반 다르지 않다. 다만 봉분은 무덤이라는 걸 구분할 수 있을 정도 이상으로 높이지 못하도록 해서 높이가 대체로 한 뼘(20센티미터)을 넘지 않는다. 거기에 자그마한 나무나 돌 같은 것으로 무덤인 것을 표시할 수 있을 뿐 묘비나 장식은 허용되지 않는다. 우리와 마찬가지로 무덤 위를 밟거나 넘어 다녀서는 안 된다.


가족이 사망할 경우 여성은 남성에 비해 제약이 더 많다. 남편이 사망할 경우 아내는 130일 동안 애도를 표해야 하고 그 이후에 재혼할 수 있는데, 이는 아내가 사망한 남편의 아이를 가졌는지 확인하기 위한 절차이니 수긍할 만하다. 그렇다고 해도 아내가 사망하고 나서 사흘만 애도를 표하면 재혼할 수 있다는 것은 같은 남자로서도 몹시 민망하다. 하긴 부인을 넷까지 둘 수 있도록 허용하는 이슬람 율법을 감안하면 대수롭지 않은 일일지도 모르겠다.


이슬람에서는 장례 때 지나치게 슬퍼하는 것을 금한다. 화장(火葬) 역시 금하는데, 이는 이슬람이 신체적 부활을 믿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런 중에도 어떤 ‘파트와’에서는 남녀 모두 고인을 추모하기 위해 무덤을 찾는 것을 권하는가 하면, 어떤 ‘파트와’에서는 여성은 가급적 무덤을 자주 찾지 않도록 권하고 있다. 두 ‘파트와’ 모두 ‘알라의 사자’가 처음에는 여성이 무덤을 찾는 것을 금지했다가 나중에는 허용했다는 코란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말하자면 처음에는 금지했으니 금지하는 것이 옳다는 해석도 있고, 나중에는 허용했으니 허용하는 게 맞는다는 해석도 있는 것이다.


한 번은 사우디 파트너가 모친상을 당해 조문을 간 일이 있었다. 사실 한국에서도 조문 가서 뭐라고 위로를 해야 하는 건지 적절한 말을 찾기가 어려운데 외국에서 그것도 영어로 조문을 하는 일이 어디 쉬웠겠나. 함께 일하던 미국인 동료는 그때 이미 이십 년 넘게 사우디에서 일하던 사람이어서 이곳 풍습도 알겠다 싶어서 조언을 구했다. 오래 전일이기는 해도 그때 뭐라고 했는지 아무 기억도 나지 않는 걸 보면 특별한 형식이 있었던 건 아니었지 싶다. 장례는 이미 마친 상태여서 그저 빈소에 들어가 몇 마디 조문하고 멀뚱히 앉아서 차 한 잔 마시고 돌아왔다. 그게 유일한 경험이라 그게 풍습에 맞는 행동이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누구든 죽을 때가 되면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어 하지만 그게 어디 마음대로 되는 일인가. 가까이 지내던 분들 중에 이곳에서 돌아가신 분이 두 분이 계셨는데, 모두 시신을 한국으로 모셔갔다. 이곳을 정리하고 떠나는 절차도 쉽지 않은데 시신으로 돌아가는 길은 또 얼마나 어렵겠나. 차이를 간단히 설명하자면, 완전히 귀국하는 절차이기는 하지만 본인이 아니기 때문에 모든 절차에 가족 확인이 필요하고, 시신의 사인이 온전히 규명되어야 하고, 시신 운송허가를 얻고 운구할 항공편을 얻어야 한다.


몇 년 전에 이웃에 사시던 장로님께서 갑자기 돌아가셨다. 앞에 이야기한 절차 중에 어느 하나가 만만한 게 없었다. 급작스럽게 돌아가셨으니 먼저 가족이 입국을 해야 하는데, 다행히 그것은 한국대사관에 긴급 처리 절차가 있어 당일에 방문비자 초청장을 보내고 다음날 주한 사우디 대사관에서 비자를 발급받았다. (당시는 지금과 달리 비자 발급 받는데 최소한 일주일 걸렸다. 당시 이곳 한국대사관 영사가 주한 사우디대사관 영사에게 직접 연락해 조치를 요청했는데, 개인적으로 선처를 부탁한 게 아니라 그것이 양국 대사관 사이의 공식절차인 것 같았다.) 가족이 오고, 고인과 관련된 모든 등록을 말소하고, 예금을 인출하고, 재산을 정리하는 데까지만 일주일을 훌쩍 넘겼다. 그 사이에 사망진단서를 발급받았지만 시신 운구 승인 얻는데 또 일주일이 걸렸고, 그러고 나서도 항공편이 없어 또 일주일을 기다렸다. (항공편마다 시신을 운구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한 달까지는 아니었고 총 이십 일 정도 걸린 것 같았는데, 그보다 앞서 돌아가신 분은 한 달이 넘게 걸렸다.


교민 중에 간혹 이곳에 매장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가족이 이곳에 모두 있어 한국에 무덤을 만들고 돌보기 어려우면 달리 방법이 없지 않겠나. 그렇지 않아도 타국에 묻힌 것이 서러울 텐데 이곳 무덤이라는 것이 우리 눈에는 풀 한 포기 없이 맨땅 같으니 보기에도 을씨년스럽고 가족은 얼마나 더 가슴 아플까 싶은 생각이 든다. 그런 경우 매장에 특별한 제약이 있는 것은 아니고 출신국가 대사관의 확인만 추가로 필요하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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