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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인식 Apr 02. 2021

강방천의 관점

경제를 바라보는 눈

강방천

한국경제신문

2021년 3월     


저물가는 얼마나 더 유지될 수 있을까?     


즐겨듣는 경제방송에 투자전문가가 나와 저물가에 대한 자기생각을 설명하는데 투자는 물론 경제에도 문외한인 내게도 상당히 설득력 있게 들렸다.     


그는 지난 수 년 간 각국 중앙은행에서 돈을 그렇게 많이 풀었는데도 물가가 오르지 않은 건 1) 중국의 저가제품, 2) 전자상거래 확대와 유통망 혁신, 3) 중국 위안화의 낮은 환율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나 1) 급속한 경제성장으로 중국의 저가제품을 받치고 있는 저임금이 더 이상 유지되기 어렵고, 2) 전자상거래 확대나 유통망 혁신이 더 이상 지금과 같은 속도로 이루어지기 어려울 뿐 아니라, 3) 중국의 낮은 환율도 더 이상 유지하기 어렵기 때문에 머지않아 저물가 시대가 저물 것으로 예측했다.     


그는 그 어려운 경제현안을 나 같은 문외한도 알아들을 만큼 쉬운 말로 부연설명이 필요 없을 만큼 명쾌하게 풀어냈다. 어려운 경제현안을 쉽게 풀어 설명하기로 정평이 나있는 ‘손에 잡히는 경제’의 진행자도 같은 마음이었는지 좀 더 출연해서 이야기를 들려주기를 청했다. 경제방송의 정형화된 말투와는 거리가 있는, 조금은 투박스럽기까지 한 그 목소리의 주인공에 호기심이 일었다.     


방송 듣기 얼마 전에 같은 방송 고정출연자 한 분이 소속회사 회장께서 투자 관련 책을 출간했다는 글을 올린 걸 본 일이 있었다. 나야 투자와는 무관한 사람이니 그런가보다 했는데, 그가 바로 이 책 ‘강방천의 관점’을 쓴 에셋플러스 자산운용의 강방천 회장이었다. 책에서 그를 ‘세계의 위대한 투자가 99인’에 선정된 증권가의 살아있는 전설이자 현역 펀드매니저라고 소개하고 있었다.     


투자전문가가 쓴 책이니 내가 읽을 일은 없었지만, 그 책을 소개한 분께 혹시 그 안에 내 관심을 끌었던 그런 내용이 들어있는지 물었다. 그렇다는 답을 얻었고, 그 부분만 골라 읽을 생각으로 책을 읽기 시작했다. 


투자와 투기 사이     


땀 흘려 번 돈이 내 돈이라고 생각하고 평생 살았다. 그래서 복권을 사보지 않았다. 증권도 다르지 않았다. 투자라고는 하는데 눈에 보이고 귀에 들리는 건 모두 투기에 지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 내가 주식을 산 일이 꼭 한 번 있다.     


아마 IMF 경제위기 당시였을 것이다. 주가를 방어해야 한다면서 그룹 차원에서 모기업의 주식을 사라고 독려한 일이 있었다. 하루가 다르게 상황이 악화되는 지경이어서 원금 보전도 어려울 것으로 예상되었지만, 소속원의 의무로 여기고 이에 응했다. 몇 달 후에 주가가 세 배로 뛰었다. 그리고 더 이상 주식을 가지고 있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애초에 회수할 생각을 하지 않았던 것이라 팔아서 마침 등록금을 마련하지 못해 애를 먹던 어느 대학원생의 학비에 보탰다.     


그렇지 않아도 주식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갖고 있었던 터에 이 일로 확실하게 주식투자와는 담을 쌓았다. 세 배가 될 수 있다면 1/3이 될 수도 있는데, 나는 그런 위험을 무릅쓸 만큼 주식투자가 가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주식투자를 전혀 생각하지 않았던 건 아니다. 어느 날 ‘인덱스펀드’라는 것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주가지수에 연동되도록 자금을 운용하는 펀드라고 했다. 주가지수야 오르기도 하고 내리기도 하는 것이니 펀드를 구매하고 나서 자기가 목표한 주가지수에 도달할 때까지 기다리면 되는 일이었다. 이전에 1000을 바라보던 주가지수가 당시 300선에서 움직이고 있었으니 붙들고 있으면 언젠가는 1000을 회복할 것이고, 그러면 200% 넘는 수익을 올리게 되니 그것보다 확실한 것이 어디 있겠나 싶었다. 적어도 돈을 잃을 염려는 없었다는 점 때문에 마음이 잠시 흔들렸다.     


그래서 주식에 밝은 친구에게 조언을 구했다. 친구는 내가 ‘인덱스펀드’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이 맞기는 한데, 그래도 하지 말라고 했다. 자기는 이미 발을 담가서 어쩔 수 없지만 나는 지금까지 주가에 무관하게 살았으니 앞으로도 그렇게 편안하게 살라고 했다. 굳이 긴 설명을 하지 않았지만 그의 설명 행간에 든 뜻을 쉽게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래서 지금까지 그래왔고 앞으로도 주식에 투자할 일은 없을 것이다.   

  

판단력ㆍ용기ㆍ설득력     


나는 평생 길을 내고 다리를 놓고 터널을 뚫는 일을, 댐이며 발전소를 짓는 일을 하며 살았다. 하지만 세기가 바뀌면서 더 놓을 길이 줄어들고, 댐을 지을 자리를 찾기 어렵고, 전력도 어지간히 확보되니 먹고 살 일이 그만큼 줄어들었다. 개발도상국에서 선진국으로 나아가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불가피한 변화였다. 당장 일거리를 걱정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적어도 오륙년 안에는 뭔가 돌파구를 만들어야 했다.     


이런저런 궁리를 하면서 세 가지를 기도했다. 시장을 내다보고 새로운 사업을 찾아낼 수 있는 판단력, 새로운 사업에는 필연적으로 실패가 따를 텐데 그런 실패에 좌절하지 않을 불굴의 용기, 그리고 그런 어려움을 헤쳐 나가는데 필요한 도움을 얻어낼 수 있는 설득력. 하지만 그 어느 것 하나도 스스로 해결할 수 없어 고전에 고전을 거듭했다.     


설마 혼자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해 그랬겠는가. 그때는 그저 어디에서도 누구에게서도 조언을 얻기 어려웠다. 조언해줄만한 사람이 없다고 생각했지만 돌이켜보니 그럴 사람이 있는데 내가 몰랐던 것일 수도 있겠다. 아무튼 그때 이런 ‘관점’을 만날 수 있었다면 어땠을까? 고단함을 상당 부분 덜 수 있지 않았을까, 어쩌면 고심 끝에 만들어낸 해법보다 더 나은 해법을 찾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저자는 어느 날 정부 주도 하에 자회사 경영실적까지 투명하게 공개하는 연결회계제도를 도입할 것이라는 보도를 접하고 이것이 주식시장에 영향을 끼칠 것을 예감했다고 한다. 경찰청과 도로교통안전협회에서 진행하는 광고 보면서 이제 곧 음주운전이 줄고 보험회사 수익이 좋아질 거라고 예상하기도 했다. 저자는 투자자라면 제도의 변화야말로 중요하게 살피야 할 사안이며, 광고 하나를 보더라도 그것이 주식시장과 기업에 어떤 영향을 끼칠까 따려보는 습관을 길러야 한다고 말한다. 스스로 말한 대로 저자는 얼마 지나지 않아 자동차보험에 가입하는 운전자가 늘고 손해보험사의 손해율이 하락한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그때부터 보험회사 주식을 사서 짧은 기간에 평균의 2배 이상 수익을 냈다.     


저자는 제도변화나 정보를 알아차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정보를 재해석하는 능력은 더더욱 중요하며, 재해석하는 능력을 기르려면 상식에 비추어 생각을 많이 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것이 어떻게 투자자에게만 적용되는 것일까. 경제활동에 몸담고 있는 사람이라면 (그렇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을까마는) 모두 귀 기울여야 할 일이 아닌가 한다. 이와 같은 혜안을 갖춘 이를 그때 만날 수 있었다면 그저 의지 하나로 고군분투했던 수고를 덜 수 있지 않았을까, 허송했던 시간을 줄일 수 있지 않았을까 싶다. 나 역시 그런 사실을 깨닫기는 했지만 그러기까지 시간이 너무 많이 걸렸고 시행착오도 수없이 겪었다.     


당시 나는 판단력과 용기와 설득력을 허락하시기를 기도하면서 먼저 신문을 샅샅이 살폈다. 그리고 모든 변화를 우리 상황에 대입하려고 노력했다. 그 중에 혹시 우리가 끼어들 자리는 없는지, 우리 힘으로 안 되면 어떤 이와 협력해야 할지, 그것을 위해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할지 끊임없이 생각했다. 예컨대 새 정부가 들어서면 누가 경제관료 하마평에 오르는지, 그가 평소에 어떤 주장을 펼치고 있는지 살폈다. 경제정책은 그의 평소 지론에서 벗어나기 어렵고 그 정책에 따라 사업이 진행되니 매출의 대부분을 정부 발주 사업에 기대고 있는 우리로서는 그것이 자리를 선점할 수 있는 길이었기 때문이었다. 세계의 변화에도 촉각을 곤두세웠다. 각종 규제 역시 관심의 초점이었다. 그렇게 해서 교토의정서의 영향을 따지다 다 접었던 원자력사업을 재개했고, 미군기지 반환 뉴스를 보고 토양오염정화 사업에 뛰어들었다. 모두 경쟁자보다 한 발 앞선 덕에 십 년 넘게 그 수혜를 누렸다. (탈원전은 미처 예상하지 못한 채 본사를 떠나왔기 때문에 여태 후배들이 고전하고 있다.)     


발상의 전환     


나는 우리나라가 당면한 가장 큰 문제는 인구감소라고 생각한다. 이 문제는 모든 경제구조를 흔들어 놓을 만큼 파괴적이어서 정부에서도 오랫동안 엄청난 재정을 쏟아 부었는데도 백약이 무효이다. 그래서 인구는 줄어드는 것이라는 고정관념이 어느새 우리 생각을 지배하고 있다. 그런데 저자는 늘어나는 인구를 고객으로 하는 기업에 주목한다고 말한다. 전체를 보면 줄어드는데 부분을 보면 해당 인구가 늘어나는 산업이 있다는 말이다. 노인인구가 그렇게 모바일 인구가 그렇다.     


저자는 자동차산업을 제조업에서 서비스업으로 재정의해야 한다고 말한다. 자동차라는 하드웨어 판매에서 소프트웨어와 경험을 제공하기 위한 거래로 비중이 옮겨갈 것이며, 소유보다는 활용을 거래하는 구독경제의 울타리 안으로 들어올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나 역시 담당하고 있던 부서의 업무영역을 재정의함으로써 새로운 시장을 창출할 수 있었기 때문에 이 말이 무슨 말인지 이해한다. 머리로 이해하는 게 아니라 지나온 시간 겪었던 모든 경험이 그에 동의한다는 말이다. 부서의 업무영역을 ‘지반평가’에서 ‘지반’ 전체로 범위를 넓히고 나서 토양오염정화부분에 진출할 수 있었다.     


양재천에 자전거도로가 깔리면 자전거 회사 매출이 올라간다. 하지만 저자는 생각이 거기에 멈춰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지속성과 확장성도 따져봐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 강남구와 송파구에 자전거도로가 깔렸는데 앞으로 남한강 낙동강까지 이어질지 질문해야 하고, 이를 위해서 가격을 따져봐야 하고, 기술이 발달해 가격이 낮아질 수 있는지 미래가격도 따져봐야 하고, 그렇지 않더라도 소득이 높아지면 구매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점도 감안해야 한다는 것이다. 아울러 이것 때문에 위협받는 건 없는 지도 살펴야 한다. 뭔가 새로운 것이 나오면 기존산업이 위험해지는데, 이동통신이 들어와 유선전화가 몰락했고 스마트폰이 개발되면서 피처폰이 사라졌다. 새로운 혁신산업은 기존산업을 송두리째 사라지게 할 만큼 위협적인데, 넷플릭스는 비디오방을 없앴고 이제는 극장의 존재마저 위협하고 있다는 것이다.     


경제를 바라보는 눈


일찍 사업을 시작한 친구가 있다. 스스로 택한 것은 아니었고 상황에 떠밀려 사업을 하게 되었는데, 그가 사업을 만들어내는 것을 보면서 나는 월급쟁이로 남는 게 낫겠다는 판단을 할 만큼 나와는 생각하는 방법이 달랐다. 한 번은 누군가의 도움으로 큰 이익을 남기는 사업을 수주했다. 이익금이 상당히 컸는데, 그 친구는 그 이익금을 하나도 남기지 않고 도움을 준 이에게 돌려줬다. 몇 분의 일만 줘도 큰돈이었는데. 그것으로 친구는 온전히 사업의 기틀을 세울 수 있었다. 물론 수십 년 전에나 가능한 일이었지만.     


저자는 대로변에 있는 앞쪽 땅과 그 뒤쪽 땅이 있다면 비싸더라도 앞쪽 땅을 사야한다고 말한다. 앞쪽 땅과 뒤쪽 땅의 가치가 바뀌는 일은 주식시장의 일등기업과 이등기업이 뒤바뀔 가능성보다 훨씬 적거나 거의 없다고 하는 게 맞는다는 것이다. 앞쪽 땅의 가격이 100억 원이고 뒤쪽 땅의 가격이 50억 원일 때 두 곳에 200억 원씩 들여 똑같은 건물을 짓는다고 하면 앞쪽은 300억 원이 들고 뒤쪽은 250억 원이 든다. 땅값은 두 배이지만 전체로는 20% 밖에 원가가 차이나지 않는다. 하지만 앞쪽에 있는 건물과 뒤쪽에 있는 건물의 가치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그래서 저자는 원가를 따질 때 부분이 아니라 전체를 보라고 말한다.     

나는 투자할 여력도 많지 않고 투자할 마음도 없지만 투자에 대한 저자의 탁견은 두고두고 음미할 만하다. 투자가 아니라도 경제활동의 울타리 안에 머물러있는 한 언젠가는 도움이 될 것 같아 다음 조언을 기억하고자 한다.     


“제조업은 시간이 지나도 끊임없이 투자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가 없으니 이익의 일정부분은 주주 몫이 아니라 투자비용으로 나간다. 말하자면 투자비용도 비용이니 그것을 빼고 이익을 따져야 한다는 말이다. 삼성전자는 현금흐름의 50%를 재투자하고 하이닉스는 70% 이상을 재투자한다. 일반제조업은 업종마다 다른데 자동차의 경우 보통 30% 정도를 재투자한다. 반면 플랫폼 기업이나 소프트웨어 회사들은 상대적으로 재투자가 매우 적다. 네이버나 카카오는 30% 게임회사는 10% 정도만 투자한다. 플랫폼 업체들은 서비스 확장가능성이 높고 고정비가 낮기 때문에 사업이 확장될수록 더 많은 이익을 얻을 수 있다. 그러나 월마트나 이마트와 같은 기존의 생산요소를 활용하는 기업은 매출을 늘리기 위해 매장을 확장하고 직원을 더 고용해야 한다. 매출이 늘어나더라도 이익은 상대적으로 낮다. 즉, 매출과 이익, 회계적 이익과 주주가 실제로 가져갈 수 있는 이익은 다르다. 따라서 재무제표를 보더라도 투자자의 관점에서 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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