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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인식 Mar 28. 2021

성공한 사람

시골소설

김종광

교유당

2021년 2월


역경리 이야기


충남 안녕시 육경면 역경리는 안골ㆍ당골ㆍ범골 다 합해 봐야 백 명 남짓 사는 작은 마을이지만, 예전에는 범골만 해도 이백 여 명이 넘게 살아 명절 때면 위뜸ㆍ중뜸ㆍ아래뜸 같은 부락별로 패를 나누어 윷놀이대회를 열어도 남우세스럽지 않던 시절이 있었다. 구십을 바라보는 이장사ㆍ공주댁 내외, 그 이웃에 사는 열 살쯤 아래인 김사또ㆍ오지랖 내외로부터 그만그만한 사람들이 모여 산다. 한우 이백여 두에 오십 마지기 농사를 짓는 동네 제일 부자 큰면장은 이들의 자식뻘인데, 알고 보면 모두 융자를 끌어대 일군 것으로 스스로는 빛 좋은 개살구로 여긴다.


여기에 오래 전에 이곳을 떠나 대학교수가 되었지만 제자를 성추행해 도망 오다시피 낙향한 황동철, 육경다방 레지로 왔다가 삼청교육대에 다녀와서 정신이 반쯤 나간 정지도와 결혼해 주저앉은 다방댁, 어린 나이에 덜컥 애를 가지는 바람에 인간쓰레기 취급을 피해 도망 온 학생댁ㆍ차택배가 흘러들어와 이들과 부딪치고 이들 사이에 녹아들면서 이런저런 사연을 만들어 낸다. 자존심을 건드는 외판원에 넘어가 보일러 사기를 당해 꿍꿍 앓으면서도 그 자존심 때문에 자식에게 끝끝내 사기 당한 게 아니라고 역정을 내기도 하고, 조류독감이 돌았을 때는 가금류를 살처분하라는 명령 때문에 잡은 닭들로 동네 냉장고란 냉장고가 모두 차고 넘친 일도 있다. 마을에서 이장 배출하는 것을 소원으로 여겼던 시절도 있었고 아직도 그것을 감투로 여기고 있지만, 정작 되어야 할 사람은 할 생각이 없고 하고 싶은 사람들은 체면치레하다가 엉뚱하게 젊은 여성 이장이 탄생하기도 한다. 노인회장도 이와 다르지 않아 연말 총회에서 서로 떠넘기기 바쁘다. 한때는 지역민의 자부심이었던 종합병원도 광산이 문을 닫고 인구도 줄어든 통에 코피가 터져 찾아온 환자를 감당하지 못하고 다른 병원으로 보내야할 만큼 쇠락해질 대로 쇠락해졌다. 그런 중에도 동네 이야기를 동영상으로 제작한 학생댁은 21세기 들어 범골에서 다섯 번째로 아이를 낳는다.


시골소설


이 책은 저자 김종광이 2016년부터 이곳저곳에 발표한 열한 편의 단편소설을 묶은 것이지만, 열한 편이 서로 다른 이야기가 아니라 한 마을에서 일어난 열한 개의 사건이다. 저자는 자기 소설을 ‘시골소설’로 정의한다. 그동안 발표된 ‘농촌소설’은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아니라 ‘도시사람이 보고 싶어 하는 농촌’을 그린 것에 지나지 않기 때문에 그것을 반박하기 위해 자신이 소설을 쓰고 것이고 또 쓸 것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역경리에 사는 이웃들의 진솔한 현재 삶을 통해 농촌의 실상을 전하려고 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저자는 소설의 말미에 이렇게 심경을 피력하고 있다.


“텔레비전의 시골은 힐링ㆍ치유ㆍ전원ㆍ고향ㆍ극한ㆍ체험ㆍ먹방ㆍ자연의 농촌이다. 농촌소설이 아닌 시골소설은 도시 사람이 보고 싶어 하는 것을 찍듯이 그린 것이 아니라 시골의 현재를 직시한다. 그래서 대중은 텔레비전의 시골은 질리지도 않게 소비하면서 소설의 시골은 고릿적 취급한다. 나 역시 21세기 농촌의 사관이고 싶었다. 2015년부터 2020년 봄까지 우리 동네 시골을 이야기로 기록하고자 했다.”


저자는 이런 현상이 현재 농업에 종사한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1%가 될지 말지 한 상황에서 피할 수 없는 일이라고 여긴다. 그래서 비록 이렇게 사는 사람이 소수에 지나지 않지만 그것 또한 사실이니 스스로 사관이 되어 그것을 있는 그대로 기록하려 한다는 것이다.


수긍할 수 있는 지적이고, 그렇기 때문에 그의 노력은 대접받을만한 가치가 있다. 다만 그동안 텔레비전에 나온 시골은 힐링ㆍ치유ㆍ전원의 이야기라는 지적은 재고할 여지가 있겠다. 나 혼자만 그렇게 생각한 것일 수 있지만 혹시 저자의 이런 지적이 오래 전에 방송되었던 ‘전원일기’를 염두에 둔 것은 아닌가 모르겠다.


무려 22년 넘게 국민의 사랑을 받아온 ‘전원일기’는 소재가 고갈되어 종영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사람 사는 곳에는 이야기 거리가 끊임없이 생겨나게 마련이니 그곳에 사람이 사는 한 소재가 고갈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런데도 소재 고갈로 종영했다는 일은 그 소재를 읽을 역량이 없었다는 말일 수 있고, 그것은 도시인의 눈으로 농촌을 바라보았기 때문일 수 있다. 그런 면에서 저자의 이런 시도는 충분히 의미가 있다. 하지만 그 작업은 의도만으로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그만한 역량이 뒷받침 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전원일기는 한 방송사의 장수 프로그램이기에 앞서 모든 국민들의 마음을 따듯하게 해줬고 어른의 의미를 새삼 깨우치게 했다는 점에서 다른 드라마와는 비교할 수 없는 훌륭한 프로그램이었다. 이 드라마가 막을 내리려 한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많은 사람이 그 결정에 반대했고 출연진 역시 상당히 반발한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그 드라마의 중심에 있었던 아버지 역의 최불암 씨가 대담 프로그램에 나와 출연진 대부분이 그 드라마가 종영되기를 원했다는 뜻밖의 사실을 밝힌 일이 있다.


처음에는 우리나라 극작가의 대부라고 할 수 있는 차범석 씨가 (1924년생) 대본을 썼고 (1980~1982) 뒤이어 김정수 씨가 (1949년생) 대본을 썼는데 (1983~1992) 30대 작가에게로 대본이 넘어가면서부터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고 했다. 젊은 작가가 쓰기 시작하면서 극의 중심에 있었던 아버지와 어머니는 자식이 들고나는 것을 챙기고 반기는 역할 정도만 주어져 그저 드라마의 장식품에 불과한 처지까지 전락했던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젊은 작가가 나이든 배우들을 역할을 축소시키려 했던 건 아니었다. 다만 그들이 칠십 노인의 눈으로 본 세상을 풀어낼 능력이 없었던 것이다. 그러니 어른을 중심으로 하는 농촌의 한 가족의 삶을 풀어나가면서 세상사는 지혜를 가르쳤던 그 드라마가 더 이상 생명을 유지할 수 없었던 것이다.


‘전원일기’는 새로 들어서 군사정부가 민심을 달래기 위한 의도로 장려한 프로그램으로 알려졌지만, 그렇다고 내용이 말랑말랑하지는 않았다. 농촌에 문제가 되는 현안을 외면하지 않았고 농촌의 암울한 상황을 미화하거나 외면하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아들이 돌 무렵이었으니 아마 차범석 씨가 대본을 쓸 때였을 것이다. 내용은 선명하게 기억나지 않지만 방송을 보고 등골이 서늘했던 기억이 있다. 군사정부의 서슬이 시퍼렇게 살아있었던 때였는데 그랬다. 이 글을 쓰면서 자료를 찾아보니 양파파동이며 돼지파동, 우루과이 라운드까지 모두 다루었다고 했다.


저자와 내가 산 시대가 다르니 ‘전원일기’에 대한 기억이 다를 수 있고, 또한 ‘전원일기’가 유일하게 농촌을 그린 것도 아니니 저자가 지적한 대로 다른 드라마에서는 도시인의 눈으로 농촌의 삶을 미화해서 표현했을 수도 있겠다.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농촌이 되었든 시골이 되었든 어느 특정한 사회를 제대로 그려낼 수 있느냐 아니냐 하는 것은 사회의 흐름에 달려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오히려 작가의 역량에 달린 것이 아닐까 싶다. 그런 의미에서 저자가 ‘농촌소설’과 다른 ‘시골소설’을 표방하고 나선 것은 주목할 만하다. 저자의 결심을 환영하고 그것이 깊이 있는 ‘시골소설’을 발표하는 것으로 이어지기를 기대한다.


김종광의 소설


소설은 이야기이니 재미있어야 한다. 문장이 아름다우면 감동을 받는다. 거기에 메시지가 들어 있으면 두고두고 음미할 만하다. 소설의 3요소는 ‘주제ㆍ구성ㆍ문체’라고 하는데, 나는 그 중에 구성 즉 이야기로서 재미를 줄 수 있어야 한다는 게 가장 우선되어야 할 요소라고 생각한다. 이야기가 재미없는데 문장이 아름답다고 소설을 읽을까? 재미도 없는데다가 주제까지 과잉되었다면 과연 독자의 눈길을 끌 수 있을까?


일전에 팟캐스트 방송 ‘책걸상’에서 소개한 소설을 읽고 이젠 소설을 읽을 나이가 지났다고 생각했는데 이 책을 ‘성석제 류’라고 소개하는 말에 혹해 마음을 돌이켜 다시 소설 읽기에 도전했다. 우선 서가에 꽂혀있는 성석제의 소설을 다시 훑어보았다. 소설책이 그리 많지 않은 중에 그의 소설이 다섯 권이나 있었다. 그리고 이 소설을 읽었다.


‘성석제 류’라는 소개는 적절했다. 서로 다른 소설 열한 편을 한 바구니에 담았는데도 통일성을 잃지 않은 솜씨도 그렇고, 구구절절이 설명하려 들지 않고 문장이 간결해 속도감이 있었다. 문체가 딱히 아름답다고 할 만한 것은 찾지 못했지만, 그저 스케치하듯 역경리를 렌즈로 훑는 중에 언뜻 자기 생각을 드러내 보인 것도 인상적이었다.


저자는 여섯 번째 글인 ‘학생댁 유씨씨’에서 학생댁을 내세워 카메라로 역경리 구석구석을, 그들의 삶을 훑어나간다. 그렇게 네 편이나 유씨씨(User Created Content)를 제작해놓고도 학생댁은 반수집 노인의 수집품을 기록한 <농촌사 박물관>만 공개하고 나머지 세 편은 공개하지 않는다. 왜 공개하지 않느냐는 물음에 학생댁은 이렇게 대답한다.


“꼭 누구한데 보여줘야 하나요? 그냥 일기 같은 것일 수도 있잖아요? 내가 만들고 나만 보는, 나중에 내 딸한테나 보여주지요.”


아마 저자가 ‘시골소설’을 대하는 마음이 저렇지 않을까 싶다. 굳이 누구에게 보여줄 생각으로 글을 쓰는 것이 아니라 일기를 쓰는 마음으로, 나중에라도 내가 보고 즐거워할 수 있고, 그러다가 자식에게 보여줄 마음으로 글을 쓸 수 있다는 말이다. 누구에겐가 보여주려다 보니 그들의 시선을 의식하게 되고, 실제 시골이 아닌 그들이 생각하는 시골을 그려낼 수밖에 없었다는 불편한 사실을 에둘러 말하려는 것이 아니었을까 말이다.


저자가 그런 마음으로 평생 농촌을 깊이 조망하는 글을 쓰고, 학생댁처럼 네 편 중 한 편은 우리에게 보여주면 고맙겠다. 그래서 그의 소설을 통해서 누군가의 삶이 있는 그대로 기록으로 남게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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