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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인식 Apr 12. 2021

아무튼, 술

술의 진경에 이르는 길

김혼비

제철소

2019년 5월


술의 진경을 깨닫는 일


방송을 들으면서 저자의 글이 궁금해졌다. 최근에 <전국축제자랑>을 펴냈지만 그보다는 통념에서 다소 벗어난 듯한 <아무튼, 술>과 <우아하고 호쾌한 여자 축구>에 시선이 끌렸다. 오해는 마시라. 소설가 권여선이 말한 대로 ‘순댓국집에서 순댓국에 소주를 시켜 혼자 마시는 여자에게 쏟아지는 다종다기한 시선’으로 하는 말은 아니다. 아직 술의 진경을 거론하기엔 저자가 너무 젊어보였고, 여자 축구도 그리 흔한 일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그저 무엇이 작가로 하여금 통념을 넘어서게 했는지, 어디까지 넘어섰는지 궁금했다.


저자는 술에 대해서 글을 쓰려 하니 술을 주제로 한 책이 이미 너무 많이 나와 있었다고 말한다. 술에 대한 유용한 지식이 빼곡한 책, 술맛이 돌지 않을 때 바로 술맛이 돌 것 같은 맛깔스러운 책, 숙취를 생생히 그려낸 책, 기이한 음주벽이 펼쳐지는 책. 그래서 망설였다는데 정작 그렇게 망설였음에도 왜 그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은 이 책을 썼는지는 말하지 않는다.


소신이 있어 술을 멀리했으면 모를까, 내 또래 사람치고 술에 대해 책 한 권 분량의 기억이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나. 우리 때는 술의 진경에 대한 선현과 선배의 어록 한 토막을 읊어댈 수 있어야 술판에 끼워줬다. 조지훈 선생의 <주도유단 酒道有段> 중 자신이 어느 수준에 올랐는지 설득력 있게 설명해야 했고, 수주 변영로 선생의 <명정 酩酊 사십 년>이나 무애 양주동 선생의 <문주반생기 文酒半生記>에 나오는 에피소드 한 토막을 맛깔나게 엮어내야 비로소 술 마실 자격이 생겼다고 여겼다.


사실 이 책은 궁금하기보다는 “어디 보자” 하는 마음으로 읽기 시작했다. 이런 맛을 깨닫기엔 저자의 나이가 아직 미치지 못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술의 진경을 말하려면 빠뜨리지 말고 꼽아야 할 세 분 선배께서 글을 쓴 나이를 살피다보니 이런 내 생각이 얼마나 어이없는 일인지 알게 되었다. 조지훈 선생이 <주도유단>을 쓴 것은 불혹의 나이에도 미치지 못했을 때이고, 수주 변영로 선생이 <명정 사십 년>을 쓴 것이나 무애 양주동 선생이 <문주반생기>를 쓴 것은 모두 오십 중반의 일이었다. 저자 나이를 모르기는 하지만 아마 그 중간 어디쯤일 것이니 내 생각은 무례하기 짝이 없는 것이었다.


그런데도 왜 그렇게 생각했을까 되짚어보니 세 분 모두 인생말년에 쓴 글이었기 때문인 것 같다. 지조론으로 지식인을 일깨웠던 조지훈 선생은 안타깝게도 쉰을 넘기지 못했고, “술이라 하면 수주(변영로)를 뛰어 넘은 자가 없고 담배라 하면 공초(오상순)를 뛰어넘을 자가 없다”는 변영로 선생은 예순을 겨우 넘겼으며, 자타 공히 국보로 여기던 양주동 선생만 일흔을 넘겼으니, 아직 별이 되기엔 너무도 먼 저자가 술의 진경에 도달하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보는 게 자연스럽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수능백일주


저자는 스스로 술을 요란하게 만났다고 말하지만 실상은 매우 경건하게 만났다. 나는 아직 술을 그렇게 경건하게 맞은 이를 본 일이 없다. 저자는 일주일 전부터 누구와 마실지 어디서 마실지 궁리하고 옷도 어른스럽게 차려입는다. 설레고 떨렸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보이지 않으려고 태연을 가장한다. 불행하게도 기대와는 달리 끔찍한 ‘포스트모던’한 밤을 보내고, 기억이 끊어지고, 숙취로 얼룩진 시간을 경험한다.


수능백일주로 입문한 저자의 첫술은 결코 이르다 할 수 없다. 변영로 선생은 여섯 살 때 술 때문에 하인의 등에 업혀 학교에 가고, 양주동 선생은 열한 살 때 동네 아이들에게 글을 가르치면서 사례로 술 한 병씩을 받았다고 한다. 나도 그리 빠지지 않는다. 장남이어서 음복은 으레 내 차지였고, 국민학교 졸업하기 전부터 명절 때면 어머니가 따로 상을 봐주셨다. (차마 술상이라고는 못 쓰겠다.)


“나는 여섯 살 되는 해 제동학교에 입학하였다. 집이 가회동 막바지여서 집과 학교 사이는 한 두어 바탕쯤이었으나 출석률은 말이 아닐 지경이었다. 물을 것도 없이 술 때문이었다. 집의 하인이 나를 등에 업어다가 학교 교정에 부려놓고 간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 변영로 <출결상반出缺相半>
“을축년 대홍수에 얼마나 술이 취했던지 인력거꾼이 나를 물난리 통에 버리고 도망가 혜화동 돌다리에서 떠내려가다가 간신히 이화동 어디 흙더미 위에 패대기쳐졌다.” - 변영로 <을축년 표류기>
“내가 술을 마시기 시작한 것은 열 살 때부터이다. 11세 숙장塾長 시절에 아이들로부터 속수束脩 대신에 술 한 병씩 받았다. 나의 글재주는 부친의 유전인 것은 두말할 것도 없거니와 나의 기호벽嗜好癖과 경음鲸飮도 모두 전가의 내력이다.” - 양주동 <초음기初飮記>



비록 저자는 첫술이 늦었으나 그 끔찍한 기억이 사라지기도 전에 입가에 맴돌던 술맛, 취기가 흐르기 시작했을 때의 엷은 흥분, 들뜬 분위기를 기억해낸다. 그리고 그 이후로 오늘까지 무수히 많은 술의 날의 보내는데, 그걸 보면 그가 술의 진경을 거론할 최소한의 자격은 갖췄다고 본다.


공통분모


저자는 주사가 ‘술 마신 뒤에 버릇으로 하는 못된 언행’인 것은 아니고 다만 그 행위로 인해 타인에게 얼토당토않은 영향을 끼치는 것이라고 말한다. 저자는 만취하면 편의점이나 슈퍼에 들러 자잘하게 뭔가를 꼭 사들고 나온다. 어느 날은 슈퍼에서 ‘약과’ 한 통을 사들고 나와 만류에도 불구하고 이것이 ‘약’이니 ‘약통’에 넣어야 한다고 고집한다. 그리고 다음날 반창고 찾으려고 ‘약통’을 열었다가 ‘약통’을 잔뜩 채우고 있는 ‘약과’에 기함한다. 그리고 그것이 주사인지 아닌지 묻는다. 정말 몰라서 묻는 것일까? 피해를 입히지 않았으니 주사가 아니라고 말하고 싶은 것일까? 그러면 만취해 벌이는 내 모든 행동도 주사는 아니겠다. 생각해보니 정말 그렇다.


저자는 월요일부터 퍼마시기도 한다. 그러나 나는 월요일엔 마시지 않는다. 월요일부터 마시면 도져 누워 더는 마시지 못할 때까지 계속 마셔야 하기 때문이다. 저자는 지평 막걸리를 사랑하고 소주 빠진 평양냉면을 생각할 수 없다고 말한다. 지평 막걸리야 맛있기로 소문난 것이니 당연한 선택이지만 평양냉면에 소주가 웬 말인가? 비록 기호가 조금씩 다르기는 하지만 ‘월요일부터 마시는 것’도 ‘월요일엔 마시지 않는 것’도 모두 술을 사랑하기 때문이요, 평양냉면에 소주가 어울리지 않는다고 타박하는 것도 술에 대한 애정에서 비롯된 것이니, 이런 차이는 저자와 나의 공통분모를 흐트러트릴 만큼 크지 않다.


저자는 평소 좋아하던 술이라도 강요가 섞이는 순간 술은 변질되어 버리며,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귀한 술들이 어떤 사람에게 폭탄이 벌칙이나 고역이 되는 것은 술꾼으로서 가슴 아픈 일이라고 말한다. 저자 주변에는 아직 술을 강요하는 이들이 있는 모양이다. 나는, 그리고 내 술친구들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술’은 나 먹기도 바빠서 남에게 권하지 않는다. 저자는 광장시장에서 빈대떡과 고기완자에 막걸리 두 병을 비우고, 두 번째 시킬 때 아직도 많은 남은 큼직큼직 썬 양파를 툭툭 넣은 간장만으로 막걸리 한 병을 더 비운다. 이 말은 2주 자가격리 때문에 한국 갈 엄두를 내지 못하는 내게는 고문과 다르지 않다.


독창성


나도 술이라면 경험해보지 않은 일이 없다. 그러나 저자의 ‘걷술’을 듣고는 내 경험이 얼마나 일천한 것인지, 저자의 술에 대한 탐구가 얼마나 열정적인지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진실로 ‘걷술’은 듣도 보도 못했다. 그러니 술의 진경은 참으로 멀고 험난하다 하겠다. ‘편의점에서 산 팩 소주를 하나씩 손에 들고 걸으며 가련한 빨대를 타고 소주가 입안으로 들어오는’ 참신한 ‘걷술’ 경험을 언젠가는 꼭 해보리라.


조지훈 선생은 “(주도) 유단의 실력을 얻자면 수업료가 기백만금이 들 것이요, 수행 연한이 또한 기십 년이 필요할 것”이라고 말한다. 저자의 경험은 이십 년을 조금 넘긴 것으로 보이니 ‘명정 사십 년’에 이르거나 ‘문주반생’에 이르기는 아직 멀었다. 그러나 조지훈 선생은 주도 유단에 이르는데 “천재는 그러하지 아니하다”고 말하고 있으니 저자가 이 반열에 오르는 것이 전혀 불가능한 것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천재성은 술을 많이 마신다고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고 ‘걷술’과 같은 전대미문의 주법을 개발하는 능력을 일컫는 것일 터이니, 이런 새로운 주법을 개발하는 일에 혼신의 힘을 기울여주기를 바란다.


나는 이 글 첫머리에서 저자가 이 책 쓰기를 망설였음에도 망설인 이유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은 이 책을 왜 썼는지 말하지 않는다고 했다. 저자가 말하지 않는데 낸들 그 이유를 알 수 있겠나. 다만 조지훈 선생의 말대로 “술 이야기를 써서 생기는 고료는 술 마시기 위한 주전(酒錢)을 삼는 것이 제격”이라니 술값 조달하기 위한 방편이 아니었을까 짐작할 뿐이다.


참고로 ‘명정 酩酊’은 ‘술 취할 명(酩)’에 ‘술 취할 정(酊)’이니 모름지기 술꾼을 자처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든 꼭 알아두어야 할 단어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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