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른쪽을 바른쪽이라고도 하는 걸 보면 오른쪽이라는 말이 ‘옳은 쪽’에서 비롯되었을 수도 있겠다. 영어에서도 right를 옳다는 뜻으로도 쓰고 오른쪽이라는 뜻으로도 쓴다. 우연인가, 아니면 그럴 만한 이유가 있는 걸까?
겸손을 구하다가 그것도 참 교만한 기도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누구인지 어떤 존재인지, 내 주제만 제대로 깨닫고 있으면 되는 것을.
‘생각이 든다’는 것은 내가 그렇게 생각했다는 게 아니라 누군가가 그렇게 생각하게 만들었다는 게 아닌가. 그 분이 하나님이셨으면 좋겠다.
평생 월급쟁이로 살았으니 자식에게 물려줄 것이 없다. 그저 그리스도인으로 부끄럽지 않게 죽는 모습을 보여주는 정도가 가능할까. 잘 죽으려면 먼저 잘 살아야할 것이니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 잘 죽는 모습 그러기 위해 잘 사는 모습을 자식에게 보여줄 수 있다면 그보다 더 큰 유산이 있겠나 싶기는 하다.
핸드폰에 투명한 고무 껍데기를 씌워 다녔는데 오늘 보니 때가 타서 가장자리가 검게 되었다. 늘 곁에 두고 쓰면서도 그것이 검게 되었다는 걸 오늘에야 알았다. 어떻게 이렇게 되도록 모르고 있었을까. 서서히 때가 타서 그랬을 텐데, 내 삶에도 이렇게 때가 타지 않았을까. 그런데도 까맣게 모르고 살았을 것이고.
방송에서 중년의 여인이 성인상 발등에 손을 얹고 간절히 기도하고 나서 성호를 긋는 모습을 보면서 마음이 찡했다. 기도하는 가운데 간절히 은혜를 구하고 그 응답으로 평안과 위로를 얻기도 하지만, 눈에 보이는 형상을 붙들고 만지고 눈을 맞춰가며 구하면 내 마음이 더 잘 전해질 것 같고 더 따듯한 위로를 받을 것 같은 마음이 가끔 들기도 한다. 물론 금하시는 것이지만. 그러고 보면 시내산 아래에 있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렇게 선뜻 금송아지 만드는 일에 나선 것도 이런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싶다. 누구라 할 것 없이 간절했을 것이니.
이제는 방송인이 된 여류 정치학자 한 분이 인터뷰에서 나중에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냐는 질문에 “잘 잊혔으면 좋겠다”고 대답했다. 잘 잊힌다는 건 “잊고 지내다 우연히 마주쳐 보니 소박하게 편안하게 잘 살고 있더라” 이런 거라면서 말이다. 미국 정치에 대한 통찰이야 이미 정평이 나 있지만, 그 나이에 벌써 삶에 대한 통찰을 갖고 있다는 것이 놀랍다. 곱씹어볼수록 뜻 깊은 말이다. 나이 들수록 가볍게 살라지 않는가. 지금부터라도 잘 잊히도록 흔적을 남기지 말아야겠다.
올해에는 사람을 사랑하고 내 중심의 삶을 버리기를 위해 기도하고 있다. 사람을 사랑하는 일은 모든 이들이 나와 동등한 인격을 지녔다고 인정하는 것에서부터 출발해서, 그렇기 때문에 어느 누구도 어떤 이유로도 업신여기지 말아야 한다는 다짐과 실천으로 이어져야 하는 일이다. 물론 그것이 전부는 아니지만 이웃 사랑의 최소한이 아닐까 한다. 나라에 따라 다른 대접을 받는 일이 만연한 이곳 사우디에서는 그 최소한의 행동도 충분히 의미 있는 일이라 생각해서 기도한 대로 그렇게 살려고 애쓰고 있다.
오늘 문득 이 기도 제목이 차별금지와 맞닿아 있다는 데 생각이 미쳤다. 차별금지야 말로 기독교 신앙의 핵심인데도 이런저런 이유를 들어 차별금지법을 반대하는 기독교계의 움직임을 보면서도 그동안 그것을 위해 기도하지 않았다. 이제부터라도 이를 위해 기도하고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힘을 보태보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