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9월

by 박인식

반성 (2019.09.02)


모든 일을 내게 유익한지 아닌지 살펴서 판단하면 안 되고 그것이 옳은지 그른지 살펴서 판단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지금껏 그렇게 살아왔다고 생각했다. 오늘 아침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렇게 살지 못한 날이 더 많았다. 심지어는 옳고 그름을 살필 생각조차 잊었던 적도 허다했다. 나나 잘하자.



질문 (2019.09.04)


교회 이사하고 수리하고 정리하는 일이 막바지에 이르렀다. 오늘도 많은 교우들이 나와 마지막 정리하는 데 힘을 보탰다. 누구라 할 것 없이 모두 애썼지만 그 중 신앙을 가진지 얼마 되지 않아 보이는 젊은 형제 하나가 특히 많이 애썼다. 오늘 잠시 쉬는 짬에 그에게 이렇게 물었다.


“교회란 곳이 참 이상하지 않아요? 그렇게 움켜쥐려고 애쓰는 돈을 더 내지 못해 안달하고, 금싸라기 같은 시간을 더 바치지 못해 안타까워하고, 몸이 부서져라 헌신하고도 못내 아쉬워하는 게 이상해 보이지 않아요? 도대체 뭐가 그들을 이렇게 만드는지 궁금하지 않아요?”


답을 듣겠다고 물은 건 아니었다. 자기 잇속 차리기 바쁜 사람들을 그렇게 만든 그 무엇인가, 그 누구인가에 대해서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어서 물은 것이었다. 다행히 앞으로 깊이 생각해 보겠다고 했다. 성령께서 그에게 은혜를 허락하시기를.



입바른 말 (2019.09.05)


법무장관 파동을 지켜보면서 삶이 따르지 않는 옳은 말이 얼마나 공허한지 깨달았다. 그러니 옳은 말 한대로 살도록 애써야겠다는 쪽으로 이야기가 흘러야하는데, 그보다는 입바른 소리를 말자는 쪽으로 이야기가 모아지는 것 같다. 이러다가 아무도 옳은 이야기를 안 하려 들지도 모르겠다. 그건 더 큰 일 아닌가.



직면 (2019.09.12)


피하고 싶은 전화가 올 때 받기가 망설여지는 건 인지상정이다. 소나기는 피하랬다고 피하는 게 나을 때도 있기는 하다. 하지만 일이 더 복잡해지거나 상황을 악화시키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왜 안 그렇겠나. 전화하는 사람이라고 듣기 싫은 이야기하는 게 편안하기만 하겠나.


문제를 더 키우지 않으려면 싫어도 받는 게, 기왕 받을 거라면 즉시 받는 게 낫다. 받기를 망설이는 동안 전화 건 사람이 쓸데없는 상상을 하게 만들어 부아를 돋울 수 있으니 말이다. 즉시 받으면 최소한 상황이 더 나빠지지는 않고,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찾는 경우도 종종 있다. 드물기는 하지만 그로서 문제가 해결되기도 한다.


그렇기는 해도 피하고 싶은 전화를 선뜻 받는 건 아직도 쉽지 않은 일이다.



안부 (2019.09.16)


출근해서 본사 시스템에 접속하니 득달같이 문자가 날아들었다. 무사한지 걱정이 된다는 것이다. 폭격을 맞아 정유공장이 벌겋게 타오르는 뉴스를 봤을 테니 그럴 만도 했겠다. 괜찮다고 하니 선뜻 믿지 않는 것 같아 북한에서 미사일 쐈다고 서울이 난리 나더냐고 물으니 쉽게 이해가 간다고 했다.



조국 (2019.09.19)


그는 영화배우를 했어야 했다. 인물도 되고, 연기력은 아카데미 주연상을 받고도 남지 않는가.


그렇게 제 발등 찍어대는 트위터를 꿋꿋이 열어놓는 걸 보며 이런 말이 떠올랐다. “내가 돈이 없지, 가오가 없냐” 요즘 펀드 투자와 관련해 쏟아지는 기사를 보며 그 말을 이렇게 바꿔야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돈이 없냐, 가오가 없냐”



고백 (2019.09.25)


나는 하나님께 불만이 없습니다. 다만 고통을 아뢸 뿐입니다. 고통을 거두어 주시던가, 고통을 이길 힘을 주시던가, 아니면 이 자리를 거두어 주시기를 구하는 것이지요.



산수 (2019.09.28)


예술의 전당에서 서초역 검찰청 언덕까지 거리가 1.6킬로미터. 반포대로가 8차로이니 차로 폭 2.75~ 3.5미터 중 최대 폭 3.5미터로 잡고 양쪽 보도까지 포함하면 폭 35미터. 이 경우 면적은 5만6천 평방미터. 여기에 200만 명이 모였다면 1평방미터 당 36명. 가로 세로 각 1미터인 공간에 36명이 들어섰다는 것이니, 사람이 참 많이 모이기는 한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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