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2월

by 박인식

위로 (2019.12.02)


지난 주말 “그들은 혹시 자식을 잊을지라도(彼或忘子) 나는 너를 잊지 않겠다(我不忘爾)” 하신 말씀을 읽으면서 크게 위로가 되었다. 다음날 아침에 기도할 땐 그 말씀을 기억도 하지 못했다. 페친 한 분이 아이 건강에 이상이 있을지 모른다는 말을 듣고 진찰을 기다리면서 몹시 걱정하는 글을 올린 걸 보고 이 기억이 떠올라 이 말씀을 댓글로 남겨놓았다. 그러고 나서 지금까지 이 말씀이 입술을, 머릿속을 떠나지 않고 맴돈다. “나는 너를 잊지 않겠다(我不忘爾).” 그분은 나를 잊지 않겠다고 하셨는데, 나는 아쉬울 때 잠깐 찾을 뿐 늘 잊고 산다. 참 불공평한 일이다.



성향의 차이 (2019.12.05)


페친 중에 나와는 성향이 다른 분이 여럿 있다. 성향이 다르니 그분들이 올리는 글이 불편하기 마련인데, 귀담아 들을만한 말도 많고 귀담아 들을 정도는 아니라 해도 내 주장에 함몰되지 않도록 하는 경계의 효과는 있어 불편해도 꾸역꾸역 읽고 있다. 그러다가 결국 한 분을 페친에서 지웠다. 오늘 신임 법무장관 지명에 대해 유감을 표명하면서 전임 법무장관의 의혹이 해소되는 대로 재기용하는 건 어떨까 하는 글을 올렸더라. 댓글을 보니 그것이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지는 않았지만, 그런 글까지 읽어야 할 필요는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위로 (2019.12.05)


크게 걱정되는 일을 앞두고 있는 이를 위로하는 건 아직도 어렵다. 괜찮을 거라고 말하는 건 너무 무책임하지 않겠나. 솔직한 마음으로야 무슨 일이 일어나든 헤쳐 나갈 방법이 있을 거라고 말하고 싶기는 한데, 그게 오히려 낙심을 부추기는 말이 되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 그렇게 우물쭈물 하다가 결국 아무런 위로의 말도 전하지 못하고 그저 돌아서서 ‘너를 잊지 않겠다(我不忘爾)’ 하신 그 약속을 지켜주시기만 구할 뿐.



식사준비 (2019.12.06)


서울에 돌아가면 하루 한 끼는 내가 준비하기로 했다. 평생 아내가 해주는 밥을 얻어먹었으니 이젠 내가 할 차례지만, 그러다가는 밥 먹는 게 즐거움이 아니라 고역이 될 수도 있으니 하루 한 끼 준비하는 걸로 합의를 봤다. 아내가 없을 때면 곧잘 해먹기는 해도 나름 준비가 필요하겠다 싶어 얼마 전부터 인터넷 도움을 얻어 이것저것 해보고 있다.


음식 만드는 동영상이 수없이 널려있기는 하지만 그 중 압권은 역시 백 선생이 아닐까 한다. 무엇보다 생전 음식 만들어보지 않은 사람도 덤벼들게끔 할 정도로 쉽게 설명하고, 실제로 따라 하기도 쉽고, 게다가 해놓고 나면 스스로 놀랄 정도로 맛있더라. 얼마 전부터 볶음밥 몇 종류를 따라 해보고 어제는 마파두부를 만들었다. 늘 있는 재료로 만들 수 있도록 조리방법을 적절히 변형시켜 놓아서 크게 준비할 것도 요란 떨 것도 없이 잘 끝냈다. 놀랍게도 내가 한 것이라고 믿어지지 않을 만큼 맛이 훌륭했다. 숟갈을 놓고 나서도 한동안 맛의 여운이 남을 정도였다. 용기백배해서 이제 좀 더 자주 도전해봐야겠다. 백 선생, 복 많이 받겠다.



어른 (2019.12.09)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은 어른을 ‘다 자란 사람, 또는 다 자라서 자기 일에 책임을 질 수 있는 사람’이라고 정의하면서도 노인은 단지 ‘나이가 들어 늙은 사람’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결국 나이가 든다고 모두 어른이 된다는 게 아니라는 말이겠다.



노인 투표권 (2019.12.22)


페친 한 분이 ‘58년생 필자’가 어느 보수 신문에 올려놓은 칼럼을 비판하면서 유권자로서 제대로 판단하기 어려운 노령 인구에게 투표권을 주는 게 옳은가 하는 취지의 글을 올렸다. 그 밑에 어느 한 분이 환갑을 기점으로 투표권을 박탈하자는 댓글을 달았다. 지하철 공짜로 타게 되어 좋아했는데, 이젠 폐기처분만 기다려야 하려는 모양이다.



산보 (2019.12.31)


언젠가 이 땅을 떠나 나와 함께 가자고 하시면 산보 나가듯 가벼운 마음으로 따라나설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러려면 부끄러운 일도 덜 하고 후회할 일도 하지 말아야지. 남은 사람들이 기억해주기를 바라는 건 아니지만 없어져서 시원하다는 소리 듣는 건 민망한 일일 테니 말이다.



게으름 (2019.12.31)


열심히 살기는 했어도 남보다 더 열심히 살았다고 할 수는 없고 그저 게으르지 않았다고 할 정도는 된다고 생각했다. 그 정도면 크게 흉잡힐 모습은 아니라고 스스로 위안을 삼았다. 돌이켜보니 게으르지 않은 것도 내가 노력해서 가능했던 게 아니라 일할 기회가 주어졌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게으르고 싶어 게으른 게 아니라 일할 기회가 없어 결과적으로 그렇게 살게 된 이들에게는 그것도 교만하게 보이겠다.



화목 (2019.12.31)


교우들 간에 의견이 나뉘어서 한동안 불편하게 지냈다. 상대 의견에 맞서야 하다 보니 화목은 온데간데없고 내 주장을 내세우기에 급급했다. 혜인이네가 교회의 화목을 아우르는 가정이라는 칭찬을 들었다는 말에 그렇게 기뻐했으면서 부모가 되어서 화목을 아우르기는커녕 불화의 중심에 서게 되었으니 얼마나 부끄러운지. 한해를 이렇게 회한으로 마감하게 되어 가슴이 아프고 시리다. 이제 모든 자리에서 물러났으니 새해에는 오로지 화목을 회복하는 일에 힘쓰리라.



버릴 것 (2019.12.31)


나이에 부끄럽지 않게 살아야겠다고 생각해서 내 중심의 삶을 버릴 수 있기를 구했는데, 생각해 보니 이젠 내 중심의 삶을 버릴 나이가 아니라 나 자신을 버릴 나이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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