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혹시 믿을만한 구석이 있다면 그건 그렇지 못한 사람을 평생 믿어준 아내 덕분이다.
힘써 일해 얻은 것이 아니면 내 것이 아니라고 여기고 살았다. 힘써 일해 얻은 것은 모두 내 것이라는 말도 되겠다. 내 것이 모두 내 힘으로 얻은 것이라면 그럴 수 있겠으나, 힘써 일할 기회도 내가 만든 것이 아니라 주어진 것이고 혼자 힘으로 이룬 것이 과연 있겠나 싶으니, 결국 내가 거둔 것은 은혜요 선물이었다.
체중을 잘 관리하자면 체중계를 가까이 하고 무시로 체중을 재는 것 만한 방법이 없다. 어른 되는 일도 그렇다. 어른이 되기 위해 거창한 구호나 철학이 필요한 것이 아니다. 무엇인가 결정하고 행동할 때 과연 그것이 어른다운 것인지 스스로에게 물으면 되겠다.
나라가 이렇게 소란스러운 것은 다른 것과 틀린 것을 구분하지 못하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그것을 제대로 구분하지 못하니 나와 다른 것을 틀린 것으로 여기고, 틀린 것으로 여기니 받아들일 수 없고, 받아들이지 못하니 함께 살 수 없는 것이지. 관용이란 본디 나와 다르더라도 받아들이는 것을 뜻하는데, 나와 다른 것을 틀린 것으로 여기니 어디 관용이라는 게 들어설 자리나 있겠나.
정릉 살 때 북악스카이웨이를 거쳐 출근을 하곤 했다. 굽이굽이 산길이 되다 보니 응달진 곳이 많았는데, 겨울이 되면 응달에 빙판이 져서 운전하는데 여간 조심스럽지 않았다. 어느 겨울날 빙판에서 미끄러진 일이 있었다. 빙판에서 차는 도는데 핸들이 전혀 말을 듣지 않았다. 핸들을 잡은 손에 아무 무게가 느껴지지 않았다. 미끄러져 당황스러웠고, 핸들이 말을 듣지 않자 공포가 밀려왔다. 일이 초에 불과한 짧은 순간이었지만 그때 느꼈던 공포는 아직도 생생하다.
내 힘으로 아무 것도 바꿀 수 없는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 처음 그런 상황에 맞닥뜨렸을 때 당황스러웠고 시간이 지나는 동안 스스로 아무 것도 바꿀 수 없어 난감하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공포가 느껴지지는 않았다. 빙판에서 미끄러졌는데도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던 때와 별반 다르지 않은데. 지금 생각해 보니 그것도 감사할 일이다.
백성으로서 나라를 위해 기도해야 했다. 기도했으면 기도한 대로 살아야 했다. 돌아보니 나라를 위해 기도하지도 않았고, 기도하지 않았으니 기도한 대로 살 일도 없었다. 다 늦게 깨닫고 나라를 위해 기도하기 시작했다. 기도는 시작했는데 정작 내가 나라를 위해 뭘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어렸을 때는 일을 하고 싶은 것과 하고 싶지 않은 것으로 나누다가 나이가 들면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으로 나누게 된다. 나이가 들어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을 나누어야 할 때, 어느 것이 내게 이익이 되는지를 기준으로 삼으면 그저 나이만 먹는 것이고 어느 것이 옳은지를 기준으로 삼아야 비로소 어른이라 할 수 있겠다.
나이가 들어 몸이 아픈 것도 가족에게 짐이 되겠지만, 어쩌면 바르게 살지 못해 가족을 부끄럽게 만드는 게 더 큰 짐이 되겠다.
김혜자 선생이 일흔 여섯이던 4년 전 인터뷰에서 “지금이 제일 좋다”면서 그 이유를 ‘끝이 보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십 년 후에 내게도 그런 생각이 들까?
하지 말아야 할 일을 한 것만 죄가 아니고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은 것도 죄라는 생각이 들었다. 꼽아 보니 그것도 다섯 손가락으로 감당이 되지 않는다.
신세를 지고 그것을 갚는 것은 고사하고 제대로 감사도 표하지 못한 것, 오랫동안 함께 어려움을 겪어 오면서도 그저 나하나 건사하기도 바빠 동료들을 위로하고 격려하지 못한 것, 교회 공동체의 화해와 화목을 입에 달고 살면서도 정작 그것을 위해 나를 버리지 못한 것, 백성으로 나라를 위해 기도하지도 않고 감당해야 할 의무가 무엇인지 생각조차 하지 않은 것.
올해는 하지 말아야 할 것을 하지 않을 뿐 아니라 해야 할 일도 제대로 하도록 애쓰자.
고통을 당할 때 그것을 하나님의 뜻으로 이해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괴롭히시려는 것은 아니지만 궁극적으로 모든 사람을 선한 길로 인도하시기 위해 때로 고통을 당하게도 하신다는 것이다. 그럴 수 있다. 그러나 되돌아보니 고통은 내 잘못으로 비롯된 것이 대부분이었고, 때로 다른 이의 잘못으로 억울하게 고통을 받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이유 없는 고통은 겪어본 기억도 없고 그런 경우를 당한 사람을 본 일도 그다지 많지 않다.
물론 하나님께서는 이 모든 고통에서 우리를 지켜주실 수 있다. 그러나 C. S. Louis가 말한 것처럼 하나님은 모든 일을 하실 수 있으나 아무 일이나 하시지는 않는다. (God can do all things, but won’t do anything.) 내가 당하는 그 고통을 함께 아파하시기는 하지만, 내가 자초한 고통을 기적처럼 고쳐주시기 보다는 그 잘못을 깨닫고 거기서 돌아서기를 원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본디 모습이라는 것이다. 때로 직접 손을 내밀어 기적처럼 우리를 지켜주시기도 한다. 그러나 모든 일을 그런 방식으로 해결하시지는 않는다. 내 잘못으로 일어난 고통을 매번 기적과 같은 방법으로 해결해주신다면 자유만 누리고 그로 인한 책임은 지지 않는 것인데, 그것이 과연 하나님의 정의에 부합하는 일일까?
하나님은 내가 잘못했거나 누군가 저지른 잘못 때문에 내가 고통당할 때 함께 마음 아파하시고 그 잘못으로부터 스스로 돌아서도록 도우셔서 궁극적으로 그 고통조차 선한 것으로 바꾸시는 분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 고통을 하나님께서 허락하셨다고 말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래서 나는 모든 고통이 우리를 선하게 인도하시기 위해 하나님께서 내리시는 것이라는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다.
역사를 해석하는 것도 이와 다르지 않다. 우리 민족이 오랫동안 겪어온 고통은 주변국가가 탐욕을 선택한 결과였으며 그런 탐욕으로부터 스스로를 지키지 못한 우리 무능의 결과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자초한 그 고통을 외면하지 않으셨고, 우리를 끊임없이 깨우치셔서 그 고통조차 우리를 지금의 번영에 이르는 도구로 사용하신 것이다. 그러니 우리를 지금과 같은 번영에 이르게 하기 위해 하나님께서 고통을 허락하셨다고는 할 수 없는 것이다.
죽음이라는 것은 이 나라에서 저 나라로 거처를 옮기는 것에 불과하지 않을까. 이 나라보다는 저 나라가 더 아름다울 것이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마냥 기쁘기만 하겠나. 초라한 집에 부대끼며 살았다고 해서 아름다운 기억이 없는 것만도 아니니 좋은 집으로 이사한다고 해서 섭섭함이 전혀 없는 건 아닐 터. 다만 섭섭하기만 한 것은 아니라는 것이겠지.
때가 되어 가자고 부르시면 산보하듯 가벼운 발걸음으로 따라나설 수 있기를 구하고 있다. 그렇기는 해도 그게 마냥 기쁜 일은 아니겠다. 이 나라에 사는 동안 허락하신 분복이 그 얼마인데, 아름다운 나라로 간다고 해서 그것을 모두 허접 쓰레기로 여길 수는 없는 일일 테니 말이다. 그래도 산보하듯 가벼운 발걸음으로 따라 나서기를 원하는 마음은 여전하니, 지금 누리는 분복에 미련을 둘 것이 아니라 그저 감사히 여기고 더 큰 것을 소망하면 되겠다.
자식의 배필을 위해 십삼 년을 기도했다. 기도한 대로 신실하고 심성 고운 아이를 며느리로 맞았다. 지금은 그리스도인으로 부끄럽지 않은 모습으로 이 땅을 떠날 수 있기를 기도하고 있다. 그런 기도를 하기에는 아직 이른 나이라고 할지도 모르겠지만, 자식의 배필을 위해 십삼 년을 기도했으면 내 마지막 모습을 위해서는 그보다 더 기도해야 할 것이니 오히려 늦은 감이 있다.
급여가 호봉제에서 연봉제로 바뀌면서 사업부장이 연봉을 결정하게 되어 몹시 난감했다. 연봉제는 성과를 바탕으로 평가해야 하니 함께 고생한 동료를 줄 세울 수밖에 없어 불편했고, 인상률은 늘 기대에 미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매년 불만을 토로하는 직원들과 실랑이하면서 언제고 한 번은 실랑이 없이 연봉계약을 마칠 수 있었으면 했다.
부서의 경영난을 타개하기 위해 새로운 분야에도 진출하고 힘이 되어줄 분도 모셔오고 해서 어느 해에 목표를 훨씬 뛰어넘는 성과를 거두게 되었다. 기준에 따라 연봉을 책정해 미리 연봉계약서에 써놓고 협상을 시작했다. 먼저 희망하는 연봉을 물었다. 하나같이 책정해 놓은 연봉을 밑돌았다. 두 말 않고 연봉계약서를 내밀었고 그것으로 협상은 끝났다. 그러면서 얼마나 짜릿하던지.
그런 짜릿함을 다시 경험하지는 못했다. 성과가 좋았으니 목표가 높아졌고, 높아진 목표를 달성하는 게 쉽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설령 높아진 목표조차 훌쩍 뛰어넘어 다시 한 번 연봉을 대폭 높였다 해도 직원들이 불만 없이 연봉에 동의하지는 않았지 싶다. 기대가 그만큼 높아졌을 것이니 말이다.
나이가 드니 무엇보다 사람과의 관계가 깨지는 것이 두렵다. 젊었을 때야 혈기가 앞서 관계가 틀어지더라도 그것 말고 신경 써야 할 일도 많았고 새롭게 관계를 맺으면 그만이라는 생각도 들어서 그걸 그다지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이제는 누구를 막론하고 관계가 틀어진 것이 그렇게 불편할 수가 없다. 틀어진 관계를 회복해 삶을 잘 마무리하기도 바쁜 나이에 왜 새롭게 문제를 일으켜 관계를 망가뜨리겠나 싶어서 그렇다. 더구나 아내야말로 함께 삶을 마무리해야할 가장 가까운 벗인데, 살아오면서 입힌 상처를 보듬어도 시원치 않을 판에 어떻게 그 관계를 새로 할퀴는 일을 할 수 있을까.
그러니 아내에 대한 두려움은 어쩌면 관계를 깨지 않으려는 조바심의 다른 모습이 아닐까 싶다.
어느 분이 소소한 행복을 누리는 기쁨을 담담하게 풀어내면서 그마저도 누리지 못하는 사람이 없기를 희망하며 그것을 위해 뭘 해야 하는지 고민해야겠다는 글을 올렸다. 그것이 오늘 아침 기도 제목이 되었다.
복은 삶의 결과로 따라오는 것이지 목표로 삼고 잡으려 애쓴다고 잡히는 게 아니다. 허튼 데 힘 빼지 않고 그저 하루하루를 가치 있게 살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