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2월

by 박인식

떠나다 (2020.02.05)


사도 바울은 디모데후서에서 유언처럼 “떠날 시각이 가까웠으며 선한 싸움을 싸우고 달려갈 길을 마쳤다”고 고백하고 있다. 여기서 ‘떠나다’의 원어 ‘아날로세우스’는 병사들이 전쟁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막사를 걷을 때 쓰는 말이라고 한다. 이 세상을 떠나는 일이 전쟁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막사를 걷는 병사의 마음 같은 일이라는 말이다.


전쟁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병사의 마음이 어떨까? 사랑하는 가족을 만날 수 있으니 그것만으로도 기쁘지 않겠나. 게다가 돌아가서 상 받을 일을 생각하면 떠나는 것이 오히려 벅찬 기쁨이 되지 않을까? 언제든 가자고 부르시면 그저 홀가분하게 산보 나서는 마음으로 따라 나서기를 구하고 있는데, 떠나는 일은 그저 홀가분한 일이 아니라 오히려 기대하고 기다릴 일이라는 게 아닌가. 생각보다 훨씬 멋진 일이겠다.



나라를 위한 기도 (2020.02.06)


누구라 할 것 없이 부끄러움을 아는 백성이 되게 하옵소서.


백성이 나라와 맞선 일은 있어도 백성이 나뉘어 반목하며 서로를 저주하기까지 이른 일은 없었습니다. 우리 모두를 하나님께서 동등한 인격으로 지으셨으니 서로를 귀한 인격으로 존중하게 하옵소서. 서로 존중한다면 상대의 주장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 마땅합니다. 내 주장을 내세우기에 앞서 상대의 주장에 먼저 귀 기울이게 하옵소서.


전화위복의 은혜를 허락하셔서 전염병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나뉜 백성들이 하나가 되고 모든 나라가 협력을 회복할 수 있도록 도와주옵소서.


정파의 수장이 아니라 국민의 대표로서 소임을 깨닫고 잘 감당할 수 있도록 인도하셔서 이번 재난을 슬기롭게 극복할 수 있도록 도와주옵소서.



기도 응답 (2020.02.09)


기도했던 일이 이루어져 기쁜 것은 내가 구하는 것을 얻었기 때문이 아니라 내가 구한 것이 잘못된 게 아니라는 걸 확인했기 때문이다.



화목제 (2020.02.12)


성경 레위기에서 감사함으로 드리는 화목제물의 고기는 드리는 그날에 다 먹을 것이요 조금이라도 이튿날까지 두지 말 것이며, 이를 지키지 않을 경우 제사는 무효가 되고 오히려 죄가 될 것을 말씀하고 있다. 화목제물인 소 한 마리 고기를 그날 다 먹어 없애기 위해서는 이웃과 나눌 수밖에 없다. 그러기 위해서는 미워하는 이웃조차 그 나눔에 참여해야 비로소 그 제사가 받아들여진다는 것이니, 여기에 화목제의 본뜻이 들어있는 것이다.


전염병이 비행기 속도로 확산되는 걸 지켜보면서 좁아진 세상에서 국가와 인종을 뛰어넘어 서로 협력하지 않으면 이런 재난에서 어느 누구도 어떤 국가도 자유로울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 대상이 설령 물리쳐야할 적일지라도 협력을 끈을 놓아서는 안 되며, 혐오는 결과적으로 모두를 멸망으로 몰아넣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 또한 새삼 깨닫는다. 결국 미운 이웃조차 초대해서 함께 고기를 나누어 먹어야 하는 화목제의 정신은 오늘 우리 스스로를 안전하게 지키기 위한 매우 실질적인 방편이 아닐까 한다.



겸손 (2020.02.17)


내가 누리는 은혜는 감사할 일이지만 누릴 수 없는 것을 누리고 있으니 한 편으로 두려운 일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매일 두려운 마음으로 살 수도 없고 그것을 바라고 은혜를 허락하신 것은 아닐 테니 감사함과 두려움 그 중간 어디쯤 서있어야 하지 않을까.



어른이 되는 길 (2020.02.17)


말씀을 읽고 묵상하며 깨달은 것이 내 본성이 되도록 애쓰겠습니다.



글쓰기 (2020.02.25)


글은 쓸수록 는다. 글은 생각을 담는 것이니 글이 는다는 건 생각이 는다는 것이므로 글을 쓸 충분한 이유가 된다. 앞으로 좀 더 많이, 자주 글을 써야겠다.



재택근무 (2020.02.27)


의도한 바는 아니었지만 이번 코로나19 사태를 겪으면서 근무형태의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동안 근무형태에 변화를 주기는 했어도 복장이 좀 더 자유로워지고 공간배치가 달라지는 정도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근무 시간대를 옮겨보기도 하고 유연근무제라고 해서 근무 시간을 개인의 선택에 맡겨 보기도 하고 집중근무제라고 해서 일정 시간동안 회의나 협의를 금지해보기도 했지만, 불과 한두 해를 넘기지 못하고 본래 모습으로 돌아가 버렸다.


재택근무 역시 중요한 변화 중 하나인데, 여러 기업에서 시도는 했지만 아직 정착된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핵가족과 맞벌이로 공동육아가 불가피하다는 측면에서도 재택근무는 시급히 해결되어야 할 현안이다. 이를 추진하기 위해서는 기업이나 근무하는 당사자 모두 적지 않은 시행착오가 따를 것이니 필요성은 수긍하면서도 선뜻 시도하기가 쉽지 않다. 재택근무의 경우 원격협업과 성과측정이 난제일 텐데, 요즘은 통신환경 발달로 원격협업의 어려움도 어지간히 해소되었고 그동안 성과측정 방식도 상당 부분 검증되지 않았나. 비록 상황에 떠밀려 선택한 것이기는 해도 이참에 이를 본격적으로 추진한다면 무난히 안착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물론 재택근무가 가능한 업종이 한정되기는 하겠지만, 재택근무가 일반화된다면 그 영향이 근무 여건 뿐 아니라 삶의 전반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겠나. 그렇지 않아도 여러 가지로 고단한 젊은이들의 부담을 덜어줄 수도 있고. 사회는 어려움을 겪으며 성장하고 성숙해가는 것이니 이러한 변화가 고비를 넘은 우리에게 작은 선물이요 위안이 될 수 있으면 좋겠다.



걸려도 산다 (2020.02.28)


“걸려도 산다.”


이번 코로나19 사태와 관련해 온라인에 무수한 말이 올라왔지만 그 중 압권은 단연 이 말이 아닌가 한다. 안심이 되고 자랑스럽고 감동적이기까지 하다. 더구나 의료 환경이 한국과 비교할 바 없는 이곳에서는 더욱 그렇다.


교회에서는 한국 다녀온 교우들에게 2주간 자가격리하고 예배 출석을 자제해줄 것을 권면하기로 했다. 주중에 몇 분이 한국에서 돌아왔는데 모두 흔쾌히 그러마고 했다. 한국이라도 다를 것이 없겠지만 “현지 병원에 몸을 맡겨서는 안 된다”는 말이 우스갯소리가 아니라 매우 현실적인 조언인 이곳에서 자칫 감염될 경우 제대로 된 처치를 기대할 수 없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게다가 한인사회에서 감염이 시작된다면 채 천 명이 되지 않는 한인들이 처할 어려움이 너무도 선명하게 보이기 때문이기도 하겠다. 오늘 예정되어 있던 한인회 행사도 취소되었다. 시의적절한 조치가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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