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많은 전문가들이 올 가을이나 겨울 쯤 코로나19로 인한 판데믹이 재발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고, 우리 방역당국도 그에 대비해 긴장을 늦추지 않고 있다. 이는 1918년에 일어났던 스페인 독감에서 얻은 교훈으로 보인다. 그렇지만 바로 그 이유 때문에 판데믹 재발을 막을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한다. 우리나라가 이번에 세계에 귀감이 될 만한 사례를 만들어낸 것이 2015년 메르스 대응에 실패한 쓰라린 경험 때문이라지 않는가. 다른 나라라고 손 놓고 지켜보기만 하겠나.
워렌 버핏이 90년대 말 IT 주식의 거품이 꺼지며 몰락할 때 투자자들에게 보낸 주주서한에서 “물이 빠지면 누가 발가벗고 헤엄쳤는지 알 수 있다”고 했다. 그가 말한 대로 이번 코로나 사태를 겪으며 수면 아래 잠겨 보이지 않았던 갖은 불합리와 부조리가 드러났다. 사회나 경제 뿐 아니라 신앙생활 또한 예외가 아니었다.
일곱 주째 가정예배를 드리고 있다. 돌이켜보니 교회는 예배드리기 위해 모인 곳이고 또한 삶이 예배가 되기를 연습하는 곳이어야 했는데, 정작 물이 빠지고 나서야 그동안 본질과는 무관한 거품과 같은 일에 마음을 너무 많이 빼앗긴 걸 깨달았다. 그저 마음을 빼앗긴 것으로 모자라 그것이 오히려 반목과 질시의 원인이 되었다. 이런저런 목적으로 기관을 만들고 모임을 가져왔지만 교회의 본질을 추구한 일인지도 모르겠고, 그런데도 그 때문에 소란스러운 건 오히려 크게 질책 받아 마땅한 일이 아닌가 싶다. 이 상황이 정리되어 다시 모여 예배드릴 그 때에는 모든 기관과 모임이 과연 교회의 본질에 합당한 것인지 살펴보고, 아니라면 과감하게 정리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겸손이란 가진 것이 있는데 드러내지 않는 것이니 내게는 해당 없는 말이다. 낮아진다는 말은 이미 낮은 내게 쓰기에 가당치도 않고. 그저 모두를 나보다 낫게 여기고 살면 남은 시간 큰 망신은 면하겠다.
이 땅에서 생업을 이어간다는 건 이 나라에 신세를 지고 있다는 말인데, 이곳 정부 발표를 볼 때마다 짜증스럽게 반응하는 자신이 민망하다. 십 년 넘게 이곳에서 정부를 상대로 일하면서 불합리와 부조리를 겪다 보니 그렇게 되기는 했어도 이 땅의 선의에 기대 사는 사람이 취할 모습은 아니다.
아버님께서 삼십 년 가까지 미군 군속으로 일하셨다. 어느 날엔가 “미국 신세를 지고 사니 친미가 되어야 하는데 시간이 갈수록 반미가 되어가는 것 같다”고 말씀하셨다. 돌이켜 보니 지금 내 마음 같으셨던 모양이다.
어쩌다 보니 삼대가 남의 나라 선의에 기대어 살았고, 지금도 살고 있다. 아버님은 미국에, 나는 사우디에, 아들은 독일에. 신세를 갚지는 못하더라도 선의에 어긋나게 살지는 말아야지. 오늘부터라도 이 나라와 이 나라 지도자들을 위해 기도해야겠다.
시편에는 의인과 악인의 대결이 끊임없이 나타난다. 그런 이유로 예전에는 시편 읽으면서 위로를 받았지만, 이제는 같은 이유로 시편 읽는 게 불편하다. 세월 따라 삶에는 때가 켜켜이 쌓여가고, 스스로를 의인으로 착각하기에는 나이가 너무 들기도 했고.
성서조선을 창간하신 김교신 선생께서 ‘현실생활과 신앙’이라는 글에서 “삼십여 세에도 독립생활을 못할 만한 자이거든 다시 성령을 논치 말고 성서를 의치 말라. 논의치 않는 것이 하나님께 대한 최대의 봉사니라.” 갈파하셨다. 어찌나 공감이 가던지 그 글 전체를 옮겨 적다가 자칫 이 글이 취업을 못해 애태우는 젊은이들 가슴에 비수를 꽂는 일이 되겠다 싶은 생각이 들어 그만두었다.
이 땅의 백성들이 왕실의 자비에 기대어 사는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주어진 의무와 책임을 다하고 자신이 누려야할 차별 없는 정당한 권리 위에서 살아가게 하옵소서.
생명은 하나님으로부터 비롯된 것이니 우리에게는 이를 결정할 권한이 없다. 그렇다고 해도 살아있는 것 자체가 고통이고 그 고통을 덜 길이 없는 이에게 그것을 감당하라고 요구하는 건 너무 잔인한 일 아닌가. 인생이 고통에 처하는 게 하나님의 본심이 아니라고 말씀하시지 않았나. 그러니 그에게 고통을 스스로 덜 수 있는 길을 열어주는 게 오히려 하나님 뜻에 부합하는 게 아닐까.
한 개인이 불의와 맞서는 일은 계란으로 바위치기 같은 일인지도 모른다. 계란으로 바위치기 같은 그 일을 왜 하는지 묻는 질문에 “내 노력으로 세상의 불의를 없앨 수는 없지만, 적어도 내 자신이 그 불의에 휩쓸려 들어가지 않게 지킬 수는 있다”고 대답한 인터뷰 기사를 본 일이 있다. 누구 인터뷰였는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그 기사를 읽고 잠시 얼어붙었던 기억은 아직까지 생생하다.
이웃과 공동체와 나라를 위해 기도하면서 간혹 그게 의미 있는 일인지 회의가 들 때가 있다. 나 하나쯤 기도하지 않아도 하나님의 역사는 선하게 이루어져갈 것이니 말이다. 그럴 때 자기가 불의에 휩쓸리지 않기 위해서라도 불의와 맞선다던 그 인터뷰를 떠올리고 다시 마음을 고쳐 잡는다. 그것으로 기도는 이미 상달되었을 것이니.
‘어진 사람’에게 적이 없다는 ‘인자무적(仁者無敵)’은 사람들이 그를 적으로 여기지 않는다는 말일 뿐 아니라 그 역시 남을 적으로 여기지 않는다는 말이다. 나야 워낙 어진 것과 거리가 먼 사람이지만 스스로 어질다 하는 사람들도 자기와 생각이 다른 사람을 적으로 여기는 일이 얼마나 많은지.
모든 이슈는 각자 자기 필요한 대로 소비하게 마련이다. 그 필요는 자기 확신에 바탕을 둔 것일 수 있고, 진영논리일 수 있으며, 때로는 편견일 수도 있다. 문제는 그 바탕 어느 하나도 바꾸기 쉽지 않다는 것이다. 그러니 어떤 이슈 때문에 소란스러울 때 어떻게 합리적인 결과가 나오기를 기대할 수 있겠나. 해결책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그럴 때 사실과 해석을 나누어 따지는 건 어떨까? 예컨대, 누가 문제가 될 만한 행위를 했다면 그 행위를 한 사실과 그 행위를 하게 된 배경을 나누어 따지자는 것이다. 하긴 모든 소란은 대부분 행위 자체를 부정해서 일어나는 것이니 이런 제안이 뭐 쓸데 있겠나마는.
나라를 위한 기도는 언제나 두루뭉술했다. 싸움 좀 덜 하고 모두의 삶이 나아지기를 기도했는데, 생각해보니 그게 가능한 게 아니더라. 생각이란 게 사람 머릿수만큼이나 다양하고, 그러다 보니 서로 부딪치게 마련 아닌가. 사는 형편이야 언제든 부족하다고 느끼는 것이고. 기도를 바꿔야하겠다. 서로 다른 생각을 존중하고 가진 것에 감사하는 백성이 되도록 인도해 주십사.
나름 애써서 살아왔는데 지나고 난 자리에 아무 흔적도 남지 않는 건 너무 허망한 일 아닌가. 굳이 이름이 남을 필요는 없겠지만, 그래도 나로 인해 세상이 조금 나아지는 구석이 있다면 좋겠다. 아주 조금만이라도. 혹시 알겠나, 선을 베풀다 부지중에 하나님 대접한 사람도 있다니.
오래 전 이 땅에 발을 딛었을 때 내가 이루어야 할 소명이 있다고 생각했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 힘썼고, 그럼에도 아무 것도 이루지 못하고 오늘에 이르렀다. 어느 날 소명으로 여겼던 것이 내 욕심에 지나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아 몹시 허탈했다. 오늘 다시 돌아보니 그 생각 때문에 하루하루를 낭비하지 않고 살 수 있었다. 결국 그것도 큰 은혜였더라.
“장애인이 비장애인과 같은 편의를 누리게 하기 위해 비용을 더 쓰는 것이 불평등한 것이 아니라 장애인이 비장애인과 같은 편의를 누리지 못하는 것이 불평등한 것이다.”
지금까지는 동의하는 데서 그쳤으나 이제는 공감하기에 이르렀다. 곧 실천에 옮길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한다.
가정 예배를 드린 지 세 달이 다 되어 간다. 평소보다 말씀을 읽고 묵상하는 시간이 늘어났는데도 교회에서 드릴 때처럼 예배를 준비하게 되지 않는다. 교회가 없는 곳에 산다면 예배를 잊을 수도 있겠다.
어떤 운동이던 목표가 있을 것이고, 목표가 이루어지면 그 운동은 접는 것이 당연하다. 그런데 조직이라는 건 유지하고자 하는 관성을 가지게 마련이어서, 목표를 이루고 나서도 무슨 이유를 붙여서라도 조직을 유지하려 들게 마련이다. 한시적인 기구가 쉽게 해산되지 않는 예는 주변에 숱하게 널리지 않았나. 다른 이유를 붙여서 조직을 유지하는 것까지야 뭐라 할 일은 아니지만, 그러다 보면 조직을 유지하기 위해 목표 달성을 오히려 늦추거나 어렵게 만들고 싶은 유혹도 생기지 않을까? 그 조직에 자기 모두를 건 사람이 많으면 많을수록 그런 유혹은 더 커질 것이고.
체중을 관리하려면 저울을 가까이 해야 하고, 맵시를 관리하려면 거울을 가까이 해야 하고, 삶을 관리하려면 기도를 가까이 해야 한다. 관리하려면 상태를 알아야 하고, 상태를 알기 위해서는 상태를 측정하는 도구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누군가의 슬픔에 ‘공감’한다는 것은 상당한 에너지가 소모되는 일이다. 슬픔에 ‘동의’하고 그 슬픔을 ‘이해’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지만, 야박하게 이야기하자면 그건 그저 고개 한 번 끄덕이면 될 일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공감’이라는 것은 그가 겪는 슬픔을 함께 느끼는 것이다. 고통스러운 일로 오열해본 일이 있는가? 오열하고 나면 육체적으로도 탈진한 경험이 있지 않은가? 공감한다는 것은 정신 뿐 아니라 육체도 탈진하게 만드는 것이니, 공감은 ‘능력’이라기보다는 공감하겠다는 ‘결정’이요 그것을 감당하기 위한 ‘노력’일지 모른다.
슬픔 당하는 사람을 어쩌다 보는 게 아니라 그것이 일상인 사람이라면 공감을 기대하기는 더욱 어렵겠다. 매번 그렇게 탈진할 수는 없는 일이니 말이다. 오래 전에 의사가 높은 대우를 받는 게 당연하겠다는 생각을 한 일이 있다. 오랫동안 편찮으셨던 어머니 때문에 형제 모두가 힘들어할 때 평생 그런 환자를 보고 살아야 하는 의사들은 얼마나 힘들까 하는데 생각이 미쳤기 때문이었다. 이런 이유 때문에 의사에게 공감을 기대하기는 더욱 어려운 일이 아닐까 싶다.
한동안 즐겨보던 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이 끝났다. 어쩌면 밋밋하다시피 한 그 드라마를 끝까지 지켜본 것은 슬픔에 대한, 고통에 대한 공감을 훌륭하게 소화해낸 산부인과 양석형 교수역의 김대명 때문이었다. 매번 공감을 잘 표현해냈지만 마지막 회에서 태아의 죽음을 확인한 순간 산모를 대하던 그의 모습에 큰 감동을 받았다. 모니터에서 태아의 죽음을 확인한 순간 그의 얼굴에 비치던 공포, 그 사실을 산모에게 전하는 모습, 그리고 산모가 고통 할 수 있도록 놔두는 것으로 슬픔에 공감하던 모습, 그러나 이로 인해 기다리는 산모들이 동요하지 않도록 진료가 지체되는 이유를 둘러대겠다는 의견을 단호하게 거절하는 모습. 나는 그가 그 이유를 단호하게 거절한 것은 그것이 산모의 슬픔을 부인하는 것으로 여겼기 때문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공감의 극한이라고 할까. 그 모습에 아내가 곁에 있는데도 눈물을 감출 수가 없었다.
배우와 배우가 연기하는 등장인물을 혼동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그러나 적어도 여기서만큼은 김대명은 양석형이 아닐까 싶다. 그의 건투를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