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남에게 폐 끼치지 않겠다고 혼자 아득바득 애쓰는 걸 보면 사람은 서로 기대고 서로 돕고 그렇게 사는 거라고 이야기하면서, 정작 나는 누구에게도 짐이 되지 않기를 꿈꾼다.
우리는 난관에 처할 때마다 스스로도 놀랄만한 응집력으로 이를 해결한다. 그래서 자랑삼아 국난극복이 취미생활인 백성이라는 우스갯소리도 한다. 하지만 그런 국난극복의 서사는 늘 누군가의 희생을 딛고 선 것이었다. 이번 코로나 사태도 이를 비껴가지 못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의료진이며 관계자들이 얼마나 큰 희생을 치렀나. 오죽하면 사람을 갈아 넣었다고 말할까.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그들의 수고에 모든 국민이 고마워했지만, 늘 그랬던 것처럼 거기까지였다. 그리고 오늘 이번 사태로 병원 적자가 쌓여 의료진이 급여를 자진삭감하기로 했다는 기사를 읽었다.
누군가 이번 사태에 대한 우리나라의 역량을 “걸려도 산다”는 말로 표현했다더라. 한국에서는 이를 당연한 것으로 여기겠지만, 감염병이 피해가기를 속수무책으로 기다릴 수밖에 없는 곳의 사람에게는 그 확신은 복음일 수밖에 없다. 자식이 선진국이라는 독일에 살면서도 한국으로 가족을 피신시킬 생각을 했고, 나 또한 이곳에서 그저 감염되지 않기만 바랄 뿐이다.
이번처럼 우리나라가 자랑스러웠던 일이 없다. 하지만 이런 자부심이 누군가의 희생으로 만들어진 것이라는 걸 깨닫는다면 누군들 자부심을 이야기할 수 있을까. 언제까지 이렇게 누군가를 갈아 넣어 문제를 해결해야 할까. 나라가 이래서는 안 된다. 정부의 적극적인 조치를 기대한다.
다녀간 지도 오래 되었고 비자 얻기도 쉬워져서 여름방학 때 아이들이 오기로 했었다. 오래 전에 닫혔던 국제선이 열리기만 기다리는데, 신규 감염자가 좀 줄어드는가 싶더니 이전보다 오히려 더 늘어나 결국 이번에 오는 걸 그만두기로 했다. 어제 큰아이에게 그 이야기를 하는데 얼마나 마음이 섭섭하던지. 오후에 감염자 숫자 발표할 때쯤엔 마음이 조마조마 하고 보고나선 실망하고 그러던 일 이제 더는 안 해도 되겠구나. 괜히 걱정을 만들고 살았다.
도장을 새기려면 먼저 도장을 꼼짝하지 못하게 틀에 묶어놓은 다음 후벼 파고 깎아내야 한다. 꼼짝도 할 수 없고 삶의 여기저기가 파내어지고 깎이는 걸 보니 도장 되는 게 아직 먼 모양이다.
나이 들었다고 그래도 어른은 되고 싶어서 어떻게 하면 어른이 될지 늘 궁리하고 산다. 말을 줄이고 남을 나보다 낫게 여기면 되겠다 싶어 애쓰고 있는데, 가만 생각해 보니 남을 낫게 여기면 말 수는 자연히 줄겠구나. 내가 낫다고 생각하니 말이 많아지는 것을.
인생에서 가장 아름답고 화려한 때를 화양연화(花樣年華)라고 한단다. 그저 한 때 로망이었던 장만옥이 나오는 영화로만 알았다. 동명의 드라마가 시작되면서 비로소 제목에 담긴 뜻을 알았다. 예전 같으면 어찌 되었건 불륜이니 윈 위치로 돌아가는 결말이었을 텐데. 아무튼 끔찍이 사랑했던 이와 맺어지는 것으로 끝나니 보기는 좋더라. 아내와 마무리를 보면서 오래 전에 돌아가신 사촌 형님, 한동안 같은 부서에서 근무했던 동료 이야기를 했다.
5.16 혁명군이셨던 형님께서 사랑했던 분이 계셨다. 고모님께서 반대하셔서 결국 마음에도 없는 분과 결혼하셨고, 상처를 입고 떠나신 그 분이 원한을 쏟아내 혁명의 공으로 얻은 좋은 직장에서 물러나셨고, 그 후로 어디 마음 붙이지 못하고 평생 떠돌다 돌아가셨다. 형님은 형님대로, 먼저 만났던 분은 그 분대로, 결혼하신 형수께서는 그 분대로 불행한 삶을 사셨다. 고모님이신들 편안하셨을까. 결국 모두를 불행하게 만든 선택이었다.
대리 시절 동료가 오랫동안 사랑했던 여인이 있었는데도 집안의 격이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마음에도 없는 결혼을 했다. 신혼 초부터 원만치 않더니 결국 한 해를 넘기지 못하고 갈라섰다. 두 해쯤 있다가 결국 사랑했던 여인과 재회해 평생 해로하고 있다. 결혼했던 여인은 집안 좋고 학벌 좋고 거기에 시원하게 생긴 미인이기까지 했다. 거기에 대면 모든 게 그에 미치지 못했는데도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집들이 음식 내오는 동료가 그렇게 행복해 보였다. 그는 오늘 드라마 대사처럼 “노력하면 살 수 있을 줄 알았다”고 했다. 결국 돌아와 해피엔딩을 맞기는 했는데, 그 와중에 애꿎은 여인 하나가 상처를 입었다.
평생 아내에게 잘한 것은 없어도 그저 서로 의지하며 살아온 것이 고맙고, 같은 모습으로 사는 혜인이네가 그저 고맙다. 가을이면 사십 년. 뭐 하나 준비해야 할 텐데.
부어주시는 은혜에 감사하는 것으로 아침기도를 시작한다. 감사는 곧 “어떻게 하면 그 은혜에 합당한 삶을 살겠는지, 그렇게 살고는 있는지, 뭘 바로잡아야 하는지” 하는 생각으로 이어진다. 모양은 감사인데 감사하는 모습으로 살지 못하는 것만 보이니 마음이 오히려 무겁다. 이런 모습을 기대하고 은혜 베푸신 것은 아닐 텐데. 그래도 오늘은 그저 허락하신 분복을 감사하게 누리는 것으로!
석 달 넘게 교회에 가지 못하는 동안 ‘모여서 예배하는 공간’으로서 ‘교회’에 대한 생각이 많이 바뀌었다. 앞으로 교회의 형태도 의미도 많이 바뀌겠다. 준비 많이 해야겠다.
여권이 일제히 대북 포화를 쏟아내는 걸 보면서 우선순위를 선명하게 정리했다. 남북화해가 중요한 일이기는 하지만 대통령의 존엄을 해치면서까지 감당할 일은 아닌 것으로.
코로나를 겪으면서 마주하고 싶지 않았던 교회의 문제와 한계를 어쩔 수 없이 보게 되었다. 본질이 아닌 일에 너무 많은 힘을 쏟았고, 그러는 가운데 화평이 아니라 오히려 불화를 키웠다. 기왕 속살이 드러났으니 털어낼 것은 모두 털어내고 교회의 본질을 회복하는데 힘을 쏟아야 하겠다. 이제부터는 본질이 무엇인지 고민하고, 어떻게 그 본질을 회복할 것인지를 고민하자. 나머지는 모두 우수마발에 지나지 않을 것이니.
편을 가르는 게 아니라 옳고 그름을 가르는 백성이 되게 하시되, 세상일이라는 것이 옳고 그름으로만 가를 수 있는 게 아닌 것을 아울러 깨닫게 하옵소서.
몸 아픈 사람이 마지막으로 기댈 수 있는 의술이 장기이식이 아닌가 한다. 장기이식하기까지가 힘들지 하고 나면 모든 게 정상으로 돌아가는 줄 알았다. 그런데 장기이식 뿐 아니라 그를 위한 검사며 처치를 위해서 크고 작은 수술이 뒤따라야 하고, 하고 나서도 일부 활동은 포기해야 하는 모양이다.
아내에게 혜원이 또래 손녀를 둔 친구가 있다. 얼마 전에 장기이식을 했는데, 본 수술 말고도 검사를 위해서 또 처치 과정에서 여러 번 수술을 해야 했다. 그 소식을 들을 때마다 그 아이를 위해 기도할 때마다 마음이 저릿저릿하다. 채 두 돌이 안 된 아이가 수술에서 깨어날 때마다 얼마나 아프겠으며 내내 그 고통의 기억을 안고 살아가는 건 또 얼마나 힘들까. 아이가 아파하는 걸 보는 엄마는 얼마나 애가 탈까. 그런 딸을 보는 아내 친구는 얼마나 가슴이 아플까.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시리다. 그저 아이와 그 가족에게 큰 위로와 평강이 함께하시기를 구할 뿐이다.
어머니 손맛이라는 것이 솜씨와 무관한 것이기는 해도 딱히 어머니가 해주시던 음식이 그리웠던 적은 없다. 혼자 피난 내려올 때까지 음식을 해본 일도 없으셨고 결혼 후에 시집살이 하신 것도 아니어서 맛도 그렇고 어느 지방 음식인지 구분도 가지 않았다. 그런 중에도 유독 만두는 자주 해주셨다. 아마 그게 고향 음식 중 유일하게 하실 줄 아는 음식이 아니었나 싶다.
80년대만 해도 호남은 음식 천국이었다. 청주 한 병 시키면 커다란 교자상 하나를 가득 채운 안주가 거저 따라 나오는 곳이니 그쪽 출장이 잡히면 술 좋아하고 먹성 좋은 이들이 서로 가겠다고 나섰다. 어느 해인가 서너 달 출장 가야할 일이 있었다. 매일 그렇게 먹을 수는 없는 일이어서 밤참 삼아 만두집을 찾았는데 없다는 게 아닌가. 만두 파는 집이 없는 게 아니라 만두라는 음식 자체가 없다는 것이었다. 세상에 만두가 없는 동네가 있다니.
며칠 전 권여선 선생의 음식산문집 ‘오늘 뭐 먹지’에 나오는 만두 이야기가 올라왔다. “기본적으로 만두는 매우 맛있을 수밖에 없는 음식이다. 만두가 맛없어지기 위해선 굉장히 만두스럽지 않은 일이 벌어져야 한다”는 구절을 읽으며 이분이야말로 만두의 진경을 아는 분이다 싶었다. 좋은 세월에 힘입어 즉시 전자책을 사서 읽어보니 글쎄 “만두가 안주로 아주 그만”이라네. 나름 만두를 아노라 했는데도 안주라는 생각은 못해봤구만. 아! 넓고도 깊은 만두의 세계여!
“난로가 활활 타오르는 어느 겨울날, 한 교인이 무디 선생에게 찾아와서 집에서 혼자 예배드리면 안 되느냐고 물었다. 무디 선생은 아무 말 하지 않고 집게로 난로 속에서 불타고 있던 조개탄 하나를 밖으로 꺼내놓았다. 물끄러미 그 모습을 바라보던 교인이 기세 좋게 타오르던 조개탄이 곧 사그라지자 고개를 끄덕이면서 돌아갔다.”
내가 기억하는 무디 선생 이야기이다. 찾아보니 교인이 청년이었다고도 하고 자매라는 말도 있다. 무디 선생에게 찾아왔다고도 하고, 교회 나오지 않는 이를 무디 선생이 찾아갔다고도 한다. 어떤 글에서는 무디 선생이 사그라지는 조개탄을 보면서 왜 교회에서 예배드리지 않으면 안 되는지 설명했다고도 한다. 그래도 난 무디 선생께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는 저 이야기가 더 좋다.
석 달 넘게 가정예배를 드리면서 그것도 나쁘지 않은 일이라고 생각했다. 얻는 것도 있고 깨닫는 것도 있었다. 예배를 준비해야 하니 긴장도 되었고. 그런 대로 지낼만했다. 이젠 예배에 대한 기대도 또 예배에 집중하는 것도 영 전만 못하다. 교회 없이도 살아지기는 하겠는데, 영혼은 시들어가는 게 눈에 보인다.
사실이 번연히 밝혀졌는데도 선뜻 자기 잘못을 인정하거나 치부를 드러내는 사람을 보기 어렵다. 창피하기도 하고 자존심도 상하는 일이니 그렇기는 하겠지만, 그것보다는 그것이 상대의 입지를 강화하기 때문이 아닐까. 내가 곤란해지는 건 참을 수 있어도 남 잘 되는 꼴은 못 보겠다는.
기업에서는 ‘성과’가 모든 평가의 기준이 된다. 물론 그게 전부는 아니다. 선의와 진정성도 함께 평가하는데, 그것이 학습능력과 성과로 연결될 가능성이 높을 뿐 아니라 성과를 지속적으로 유지시키는 동력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선의와 진정성을 갖추었는데도 성과를 내지 못하거나 성과를 지속적으로 유지하지 못하더라도 어느 정도는 기다려준다. 물론 무한정 기다리는 것은 아니다. 선의와 진정성은 성과로 연결될 때 의미가 있는 것이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