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4월

by 박인식

일상 지키기 (2020.04.02)


출근을 하지 않은지 두 주가 되었다. 내일이면 모여 예배드리지 못한 게 세 주째이다. 생필품 파는 곳 빼고 어지간한 곳은 모두 문을 닫았다. 게다가 훤한 대낮부터 통행금지가 시작되니 갈 곳도 없고 갈 수도 없다. 잠깐 바람이라도 쐴까 하고 아내와 함께 집을 나섰다 돌아오는 길에 교통사고로 길이 막혀 하마터면 통행금지를 넘길 뻔 했다.


자식이 유학 떠난 후로 십오 년 넘도록 둘이만 살아서 이번에도 잘 지낼 줄 알았는데, 나가지도 못하고 사람도 못 만나고 언제 끝날지도 모르는 시간을 보내는 건 차원이 다른 일이었다. 나름 시간표를 짜고 할 일도 찾아놨지만 하루도 제대로 지키지 못했다. 아무 것도 한 것이 없는데 하루는 어찌 그리 빨리 지나가는지. 이러다 폐인 되는 거 잠깐이겠다.


퇴직 후에 나름 시간 보낼 방법을 잘 마련해놨다고 생각했다. 요 며칠 지내다 보니 어지간한 각오 없이는 일상을 유지하는 게 쉽지 않겠다. 아버님 은퇴하시고 채 몇 년이 되지 않아 두문불출하기 시작하셨는데, 그러면서 건강을 잃으셨고 칠십도 채우지 못하고 돌아가셨다. 그것이 내겐 트라우마가 되었다. 그래서 불과 두어 주 일상을 유지하지 못한 것 때문에 이렇게 조바심내고 있다.



위안 (2020.04.03)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도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지 못해 여러 차례 죄를 지었고 의인의 대명사로 불리던 다윗조차도 씻을 수 없는 죄를 지었다. 그럼에도 그들을 믿음의 조상이요 의인의 대명사로 쓰고 계시다. 그것이 믿음도 온전치 못하고 의인 근처에 가지도 못하는 내가 하나님 은혜와 자비를 구할 수 있는 용기의 원천이 되었다. 오늘따라 그들의 온전치 못함이 큰 위안이 된다.



두 떼나 이루게 하신 하나님 (2020.04.04)


오래 전에 아내의 수술을 앞두고 병실 복도에서 밤새 기도한 일이 있었다. 빨리 발견하기는 했어도 암이라서 얼마나 두려웠던지. 아내가 잘 견디도록 지켜주시기를, 집도하는 의료진의 손길을 붙들어주시기를 간절히 구했다. 두렵고 막막한 마음으로 기도를 시작하는데 뜻밖에도 그동안 베풀어주신 은혜가 떠올라 오히려 감사했고, 가슴을 짓누르던 무게를 한결 덜 수 있었다.


에서가 부하 사백 명을 거느리고 자기에게 온다는 전갈을 들은 야곱은 심히 두렵고 답답해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한다. 그런데 ‘도우심을 구하는’ 그 기도는 뜻밖에도 지팡이 하나만 들고 요단을 건넜던 자기에게 두 떼나 거두도록 은혜를 허락하신 하나님께 ‘감사의 고백’을 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당신의 백성이 도우심을 간절히 구할 때 그동안 베푸셨던 은혜를 생각나게 하시는 것으로 우리를 위로하시는 하나님, 그 하나님이 수천 년 전에 야곱을 만나주셨고 십여 년 전에 내게 찾아와 만나주셨다.



통행금지 (2020.04.07)


밤이면 으레 통행금지가 있는 줄 알고 살았던 세대이니 저녁나절부터 통행금지가 시작된다고 해도 별 걱정 하지 않았다. 낯설고 때로는 괴기스럽기까지 하지만 통행금지가 훤한 대낮에 시작되는 것까지는 그런대로 견딜 수 있었다. 24시간 통행금지는 차원이 다른 이야기였다. 워낙 혼자 시간 보내는 걸 즐기는 편이라 한동안 버틸 수 있을 줄 알았다. 채 하루가 지나지 않았는데 숨이 막힌다. 당장 힘든 것보다도 도무지 언제 끝날지 짐작조차 하지 못하는 것이 더욱 견디기 어렵다. 아직 감염자가 3천에도 이르지 않았는데 정부에서는 최소 1만 명에서 최대 20만 명까지 감염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한다니, 통행금지가 4월 중에 끝나는 건 어림없어 보이고 5월을 넘기지만 않아도 좋겠다.



세계화 (2020.04.08)


무역 분쟁을 지나는 동안 세계화의 취약점이 드러났다면 이번 감염병 사태를 겪으며 그동안 추구해왔던 세계화가 궁극의 목표가 될 수 없음을 깨닫게 되었다. 그렇다고 각자도생으로 해결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니 국가정책의 목표를 각자도생과 세계화 중간 그 어디쯤으로 수정해야 하지 않을까.



착각 (2020.04.08)


내게 허락하신 복을 내 것이라고 생각한 일도 없고 당연한 것으로 여기지도 않았다. 내 것이 아니니 언제든 거두어 가실 수 있다는 말이다. 그런데도 그 사실을 받아들일 준비가 안 된 걸 보면 지금 내게 허락하신 모든 복을 내가 당연히 누려야 할 것으로 생각하는 모양이다.



생각 (2020.04.10)


시간이 많아지니 별 허접 쓰레기 같은 일에 마음을 빼앗긴다. 생각한 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한다더니, 지금이 꼭 그렇다. 생각해야 할 것을 꼭 붙들고 살자. 그러면 허접 쓰레기 같은 생각이 비집고 들어올 틈이 어디 생기겠나.



전화 (2020.04.13)


꿈에 전화를 잃어버렸다. 하루가 지나도록 잃어버린 줄도 모르고 있었으니 어디서 잃어버렸는지 짐작도 못하고 애만 쓰다 깼다. 찾느라 애를 쓰면서 전화에 너무 많은 걸 의지하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그래도 꿈속에서는 하루 종일 전화 없는 걸 모르고도 살았는데, 꿈에서 깬 지금 다만 몇 시간이라도 전화 없이 살 수 있으려나 모르겠다. 그거 없이는 바보 되는 거 잠깐이니 말이다.



나이 드는 것에 감사 (2020.04.13)


그토록 난해했던 ‘불의한 청지기 비유’의 의미가 점점 선명하게 다가온다. 그게 나이 탓이라면 나이가 든다는 건 참 감사한 일이다.



인신공양 (2020.04.13)


한국이 이번 코로나 사태에 탁월하게 대처한다고 사방에서 칭송이 자자하다. 그것이 의료진을 갈아 넣어서 가능한 것이라면 인신공양으로 소리를 얻은 에밀레종과 무엇이 다를까. 아무리 아름다운 소리라도 인신공양으로 얻는 건 이번 한 번으로 그쳤으면 좋겠다.



오프라인 온라인 (2020.04.13)


평생 보고서 쓰는 일을 해왔다. 보고서를 쓴다면 책상머리에 앉아 일하는 것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대부분의 시간은 자료를 수집하고 평가하고 분석하는 데 쓰고 정작 보고서를 서술하는 일은 마지막 단계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보고서 한 권이 나오기까지 현장에서 발로 뛰며 쏟아야 하는 땀이 얼마인지 모른다는 말이다.


매년 새로 맞았던 후배들은 데이터를 분석하고 보기 좋게 꾸미는 일에 아주 뛰어나 만들어 낸 성과물마다 그렇게 화려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성과물의 바탕을 이루는 데이터를 수집하고 평가하는 일에는 그만큼 관심을 쏟지 않았다. 불균질한 자연을 상대하는 일이니 데이터를 충분히 확보한다 해도 그것이 과연 그 구간의 대표 값이라 장담하기 어렵고, 설령 대표 값으로 확인된다 해도 그것으로 전체를 가늠하는 건 더욱 어려운 일이다. 그런데 몇 개 되지 않는 데이터로 거리낌 없이 전체를 가늠하는 그들을 보면서 아연실색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오프라인 산업은 관심 밖으로 밀려나고 온라인 유통업이나 금융과 같은 부대산업이 주류를 차지하고 있다. 이런 요즘 사회를 보면서 데이터를 충실히 확보하는 일에는 관심이 없고 화려하게 꾸미는 데만 치중했던 후배들을 떠올린다면 지나친 걸까? 요즘 법정 드라마에서는 예전과 달리 법정 변론에 쓸 증거를 찾아내고 논리를 개발하기 위해 치열하게 뛰는 모습을 많이 그리고 있던데, 이런 아쉬움 때문인지 그런 드라마가 더욱 실감나게 느껴진다. 이런 치열함 없이 법정에서 멋진 변론이 어디 가당키나 한 일인가. 마치 오프라인 바탕 없는 온라인이 존재할 수 없는 것처럼.



바벨탑 (2020.04.17)


다섯 주째 가정예배를 드리고 있다. 교회에 모이지 못하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그만큼 교회를 새롭게 돌아보게 되었다. 모이는 교회를 흩으실 이유가 있었던 건 아닐까 싶은 생각을 지울 수 없다. 하나님을 예배하려고 교회를 지은 게 아니라 “하늘에 닿게 하여 우리 이름을 내고”자 지은 건 아니었을까? 그래서 여호와께서 사람들이 건설하는 그 성읍과 탑을 보려고 내려오신 건 아닐까? 그렇다면 더 늦기 전에 우리 손으로 바벨탑을 헐어야 할 것이 아니냐. 코로나로 위축된 경제활동 때문에 공기가 맑아지고 시야가 트였다는데, 여호와 하나님께서 세상을 맑게 하시려고 교회를 허무시는 건 아닐까 두렵다.



나잇값 (2020.04.19)


어떻게 하면 나잇값을 하고 살까 가만 생각해보니 예수의 마음을 가지면 되겠다. 우리에게 베푸시고, 귀 기울이시고, 우리를 용납하시고 격려하시는 그 마음을.



바람 뿐 (2020.04.23)


모로코 어느 지방에서는 아무 것도 없다는 걸 ‘바람 뿐’이라고 한단다. 그곳이 지금은 엄청난 풍력발전 단지가 되었다. 어디도 누구도 아무 것도 없고 아무도 아닌 경우는 없다.



친구 (2020.04.27)


고등학교 두 해 동안 짝이었고, 같은 과에서 공부했고, 졸업해서도 같은 분야에서 일하면서 근 오십 년을 함께 지낸 친구가 있다. 모든 면에서 근면 성실했는데 그만 귀찮다고 내시경 검사 건너뛰었다가 암으로 고생하고 있다. 이미 다른 곳으로 전이된 상태여서 꽤 긴 시간 항암치료를 받고 있다는 소식을 얼마 전에서야 들었다. 가까이 있어 들여다 볼 처지가 아니니 그저 전화로 어떤지 물어볼 수밖에. 뭐라 할 말을 찾지 못하고 전화기만 붙들고 있었다.


매일 기억하고 기도하는 것, 그저 병원에 갈 때 메시지 보내는 것.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일 뿐. 마음 같아서는 신앙을 한 번 가져보라고 권하고 싶은데, 그게 오십 년 가까이 입 다물고 있다가 불쑥 전화로 할 말이 아닌 것 같아 말도 꺼내지 못하고 있다. 치료 받을 때 주사를 오십 시간이나 맞는다고 해서 그저 그 시간만이라도 그를 기억하려고 애쓰고 있다.


그러고 보니 그 친구 장가갈 때 함도 내가 지고 갔구나. 차분하고 끈기 있는 사람이니 잘 이겨내겠지. 그분의 자비가 함께 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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