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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인식 May 16. 2021

분열하는 제국

11개 국가로 이루어진 합중국

클린 우다드

정유진 옮김

글항아리

2017년 7월


미합중국(United States of America)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으로 취임한 이래 내린 수많은 결정으로 인해 세계는 한동안 경악과 혼돈에 빠져들었다. 오로지 미국의 이익을 추구하겠다며 ‘미국 제일주의(America First)’를 외치고 실행하였으며, 이를 위해 적대적으로 여겼던 국가는 물론이고 전통적인 우방과의 관계도 개의치 않았을 뿐 아니라, 그 과정에서 그동안 유지되어왔던 세계의 정치ㆍ경제 질서가 한 순간에 무용지물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그것을 미국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길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그의 정책은 당장은 미국에 이익을 가져올 수는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길게는 미국의 위상이나 이익을 오히려 해칠 수 있을 것으로 염려했다.


미국의 정체성을 감안할 때 그런 위험천만한 정책을 내세운 그가 대통령이 될 가능성은 매우 희박했지만, 그럼에도 그가 대통령이 될 수 있었던 것은 국민 사이에 이런저런 불만이 누적되었고 그 분위기에 휩싸인 국민들이 일시적으로 오판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따라서 같은 오판이 다시 일어날 가능성은 전무에 가까웠고 어쩌면 임기 중에 탄핵될 수도 있겠다고 여겼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는데도 그의 지지는 떨어지지 않았다. 임기 말에는 연임이 거의 확실시되기까지 했다. 선거운동 막판에 코로나 감염으로 가장 중요한 시간에 자리를 지키지 못한 것이 결정타가 되어 다행스런 결과가 나오기는 했지만, 도대체 어떻게 미국의 정체성에 맞지 않는 그가 그토록 높은 지지를 유지할 수 있었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러면서 비로소 그동안 내가 미국에 대해 잘못 알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이 책은 시종일관 내가 알고 있던 ‘하나의 정체성으로 정의할 수 있는’ 그런 미국은 아예 존재하지 않았다고 말한다. 물론 민주주의 국가의 좋은 모델이 되는 측면이 분명히 있지만, 그것은 전체이지도 않고 그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 동시에 존재하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인들은 건국 이래로 단 한 번도 분열되지 않은 적이 없다. 그들은 서로 경쟁했고 때로는 서로를 적으로 여겼다. 그들이 힘을 합쳤던 때는 런던이 그들 모두에게 공통적으로 위협이 되는 결정을 내렸을 때가 유일했다. 그래서 다 같이 힘을 모아 공동정부를 수립했다. 그러나 그들은 결코 하나의 공화국을 세우고 싶어 하지 않았기 때문에 독립전쟁 이후 연방에서 탈퇴하는 방안을 심각하게 고려했고 일부는 탈퇴하기 위해 전쟁을 일으키기도 했다. 그들이 연합체를 구성한 적이 있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동맹관계를 논의하기 위한 것이었다. 결론적으로 미국은 결코 하나의 국가였던 적이 없으며, 여러 개의 미국으로 존재했다.”


저자가 서술한 바와 같이 “미국은 하나의 국가였던 적이 없으며 여러 개의 미국으로 존재했다”는 것은 결국 미국은 연방정부의 통제 아래 있는 여러 주(state)로 이루어진 국가가 아니라 각기 다른 사람들에 의해 다른 성향과 다른 목적으로 수립된 여러 국가(State)로 이루어진 국가연합체라는 말이니, 미합중국(United States of America)이라는 용어야말로 미국의 정체성을 가장 핵심적이고 집약적으로 나타낸 것이 아닐까 한다.


저자는 미국을 공통의 문화와 민족적 기원ㆍ언어ㆍ역사적 경험ㆍ유물과 상징 등을 공유하는 혹은 공유한다고 믿는 11개의 국가(State)로 분류한다.


열한 개의 다른 국가


<11개 국가(State)>


1. 양키덤(Yankeedom)


1620년 메이플라워 상륙 이래 영국 청교도들이 종교적 유토피아를 건설하겠다고 뉴잉글랜드 황무지에 정착했다. 그들은 종교가 다른 이들은 모두 추방할 만큼 종교에 관한한 관용을 보이지 않았다. 교육수준과 경제수준이 높은 중산층 가족 단위로 이주를 했기에 안정적이고 응집력이 높았다. 자신들의 삶의 방식을 전파하기 위해 주변을 활발하게 정복했다. 각 도시는 인구 구성도 다양하고 완벽한 자치 공동체를 형성해 마치 하나의 공화국과 같았다. 다른 지역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정부에 대한 신뢰가 깊다. 정부는 그들을 위해 그들에 의해 운영되는 기관이라고 여겼다. 뉴잉글랜드ㆍ뉴욕ㆍ펜실베이니아 북부ㆍ오하이오ㆍ인디애나ㆍ일리노이ㆍ아이오와ㆍ다코타ㆍ미시간ㆍ위스콘신ㆍ미네소타ㆍ캐나다 연해주 일대가 이에 속한다.  주로 민주당 지지.


2. 뉴 네덜란드(New Netherlands)


1600년대 초반 지구상에서 가장 근대적이고 세련된 국가였던 네덜란드에 의해 형성되었기에 이곳은 종교적 관용과 경제적 자유를 누릴 수 있었다. 다만 이들의 관용은 태생적인 것이 아니라 무역과 사업을 위해 참고 견딘 것이라는 한계를 지니고 있다. 오늘날 미국의 정체성을 대표하는 다양성ㆍ관용ㆍ계층 이동ㆍ민간 기업 육성은 바로 이들이 남긴 유산이다. 원래 뉴 암스테르담(New Amsterdam)이었던 뉴욕(New York)은 처음부터 오직 상업적인 목적에만 충실한 도시였고, 온갖 화물의 집산지이자 다양한 인종의 집합소였다.


3. 미들랜드(Midland)


미국인 중 가장 미국인다운 사회로, 영국 퀘이커 교도들이 건설했다. 기근과 종교적 박해와 전쟁을 피해 독일에서 온 농부와 수공업자들이 다수를 이룬다. 인종ㆍ이념적 순혈주의를 배척하며 끊임없이 유입되는 정착민들을 반갑게 끌어안아 다원적 사회로 토양을 다져나갔다. 잘 조직된 서민층이 중서부 내륙의 농촌 문화를 형성했다. 톱다운 방식의 정부를 신뢰하지 않으며 정치에는 무관심하다. 캐스팅보트를 쥔 부동층으로 미국 정치의 흐름을 점치기 위한 풍향계 역할을 한다. 펜실베이니아 동남부ㆍ뉴저지 남부ㆍ델라웨어와 메릴랜드 북부ㆍ오하이오 중부ㆍ인디애나ㆍ일리노이ㆍ미주리 북부ㆍ아이오와 대부분ㆍ사우스다코타 동부 일대ㆍ네브래스카ㆍ캔자스 일대 지역이 이에 속한다.


4. 타이드워터(Tidewater)


영주들이 경제ㆍ사회ㆍ정치를 지배하던 봉건사회를 꿈꾸는 영국 남부 젠트리의 후손이다. 소수의 농장주와 다수의 계약노예로 이루어졌지만, 노동력이 부족해지자 흑인 노예를 사유재산으로 삼기 시작했다. 스스로 ‘왕당파’로 규정한다. 직접선거로 선출한 것이 아니라 의회가 임명하는 상원의원 제도와 선거인단 제도라는 귀족적 요소를 미국 헌법에 반영시켰다. 보수적이고, 권위와 전통에 매우 큰 의미를 부여하며, 일반인의 정치참여를 반기지 않는다. 어쨌든 미국 건국에 중추적인 역할을 했음은 부인하기 어렵다. 17세기 중반 양키덤과 극과 극의 관계였다. 양키덤은 영국 내전에서 청교도가 주축이 된 의회파를, 타이드워터는 왕당파를 지지했다. 이 같은 두 지역의 갈등으로 미국의 패권 다툼의 시작되었다. 버지니아ㆍ메릴랜드ㆍ델라웨어 남부ㆍ노스캐롤라이나 동북부가 이에 속한다. 공화당 표밭.


5. 그레이터 애팔래치아(Greater Appalachia)


영국의 국경 분쟁 지대인 잉글랜드ㆍ스코틀랜드ㆍ아일랜드에서 건너온 이주민으로 씨족을 기반으로 한 전사(戰士) 문화를 퍼뜨렸다. 인디언ㆍ멕시코인ㆍ양키들과 싸우면서 남부 산악지대ㆍ오하이오ㆍ인디애나ㆍ일리노이ㆍ아칸소ㆍ미주리 오자크 지역 남쪽으로 퍼져나갔다. 자존심 강하고 독립적이며 또한 폭력적이어서 북미 대륙의 반항아로 남아 있다. ‘레드넥(교육 수준이 낮고 보수적인 시골 사람)’, ‘힐빌리(두메산골 촌뜨기)’, ‘크래커(남부의 가난한 시골 사람)’, ‘하얀 쓰레기(가난한 백인)’라고 조롱받지만 그들 스스로는 양키덤ㆍ타이드워터ㆍ디프사우스의 우월감을 오히려 경멸한다. 거칠고 호전적이며 혈연에 집착하지만 대중문화를 통해 개인의 자유와 주권을 끊임없이 갈구한다. 컨트리 음악ㆍ카레이싱ㆍ기독교 복음주의의 온상이다. 남부 산악지대ㆍ오하이오ㆍ인디애나ㆍ일리노이ㆍ아칸소ㆍ미주리 남부ㆍ오클라호마 동부ㆍ텍사스 힐컨트리 지역이 이에 속한다. 공화당 성향.


6. 디프사우스(Deep South)


17세기 후반 영국의 식민지였던 서인도제도 바베이도스 노예 소유주들이 세운 곳이다. 바베이도스는 영국 식민지 중 가장 부유하면서 가장 잔인한 사회였다. 이들은 서인도 노예국가 제도를 미 대륙에 확장시키고자 했다. 노예제가 극성을 부린 곳은 물론 디프사우스만이 아니었다. 하지만 대다수 다른 지역은 노예가 있는 사회였지 디프사우스처럼 노예사회 그 자체는 아니었다. 북미에서 가장 반민주적인 일당 체제 사회였으며, 이들의 정치적 성향을 결정짓는 첫 번째 변수는 여전히 인종이었다. 애초부터 부와 권력이 철저히 불공평하게 나뉜 사회였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양키와 충돌할 수밖에 없었다. 1861년 남북전쟁의 소용돌이를 일으킨 장본인이기도 하다. 사우스캐롤라이나ㆍ조지아ㆍ앨라배마ㆍ미시시피ㆍ플로리다ㆍ루이지애나ㆍ테네시 서부ㆍ노스캐롤라이나 동남부ㆍ아칸소ㆍ텍사스 대부분이 이에 속한다.


7. 뉴 프랑스(New France)


‘톨레랑스(관용)가 살아있는 유토피아 건설’을 위해 신대륙으로 진출한 프랑스인의 후예다. 인디언을 정복하려는 스페인이나 인디언을 쫓아내려는 영국과 달리 인디언을 포용하려고 했다. 그 결과 이곳에는 프랑스 문화만큼 원주민 문화 흔적이 강하게 남아 있다. 인종적으로도 캐나다 프랑스인과 북미 원주민 사이의 혼혈인 메티스(Metis)가 형성될 정도로 거의 공생관계이다. 다문화를 수용하고 현실을 인정하며 평등ㆍ합의를 중요하게 여긴다. 북미 대륙에서 가장 자유민주주의적 성향을 띤다. 독립 국가를 이룰 가능성이 가장 높다. 민주당 성향.


8. 엘 노르테(El Norte)


아메리카 대륙 중 유럽 문화가 가장 먼저 전파된 지역으로, 이를 전파한 스페인 군인과 선교사들이 오랫동안 17세기 당시의 스페인 전통ㆍ기술ㆍ종교관습을 고스란히 보존했다. 인디언과 사이에서 태어난 메스티소가 많아져 이들을 중심으로 하는 히스패닉이 엘 노르테 인구의 대다수를 차지한다. 그래서 ‘가장 미국인답지 않는 미국인’이라고도 한다. 1848년 미국-멕시코 전쟁으로 캘리포니아 남부ㆍ텍사스 남부ㆍ애리조나 남부ㆍ뉴멕시코 등이 미국에 편입되었지만, 이들은 멕시코 북부 여러 주와 함께 ‘노르테뇨(Norteno)’라고 하는 문화권을 형성하고 있다. 이후 캘리포니아 북부와 콜로라도 일부로 확장되었다. 경제적인 이유로 멕시코에서 미국으로 이주하는 사람이 늘어나면서 히스패닉이 압도적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2050년이 되면 히스패닉이 미국 인구의 30% 정도까지 육박할 것으로 추정한다. 제3국으로 독립하기를 희망한다. 20세기 후반까지 하나의 주 정부도 장악하지 못했지만 이후 뉴멕시코ㆍ텍사스 남부ㆍ애리조나 남부의 정치를 지배하기 시작했고 캘리포니아 남부까지 깊숙이 침투해 들어갔다. 샌안토니오부터 로스앤젤레스에 이르는 주요 도시의 시 정부를 장악했고, 뉴멕시코 주지사와 뉴멕시코ㆍ콜로라도 상원도 배출했다. 미 연방의회에도 진출했다. 민주당 성향.


9. 레프트 코스트(The Left Coast)


기후가 온화하고 자연경관이 빼어나다. 뉴잉글랜드에서 온 상인ㆍ선교사ㆍ벌목꾼ㆍ그레이터 애팔래치아 출신 농부ㆍ채굴업자ㆍ가죽 무역상 등으로 이루어졌다. 정부를 신뢰하고 개인의 성취를 중요하게 여겨 이를 뒷받침해줄 사회개혁을 추구한다. 근대적 환경운동과 글로벌 지식혁명의 산실로 마이크로소프트ㆍ구글ㆍ아마존ㆍ애플ㆍ트위터ㆍ실리콘밸리가 있다. 게이 권리운동 및 1960년 문화혁명의 출발점이기도 하다. 초기 정착민 대부분이 양키여서 양키덤의 가장 큰 아군이다. 이웃인 순종적인 엘 노르테나 자유지상주의 파웨스트에 맞서 끊임없이 대립한다. 태평양과 캐스케이드, 코스트 산맥 사이에 끼어 있다. 샌프란시스코ㆍ포틀랜드ㆍ시애틀ㆍ밴쿠버가 이에 속한다. 민주당의 성지.


10. 파웨스트(The Far West)


미국이 가장 마지막으로 정복한 땅으로 광활한 황야지역이어서 대규모 산업자원을 동원할 수 있는 대도시에 본사를 둔 대기업이나 연방정부 주도로 식민지 개척이 진행될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국민의 이익을 위해 착취되고 수탈당하는 일종의 내부 식민지 취급을 받았다. 이로 인해 이들은 개인의 자유에 극도로 민감한 자유지상주의자가 되었다. 이 지역의 정치인들은 자신을 후원하는 기업의 이익을 적극 옹호하면서 연방 정부를 공격했다. 이 때문에 중앙 정부에 반대하는 자유지상주의 성향을 띤다. 애리조나 북부ㆍ캘리포니아 내륙ㆍ워싱턴ㆍ오리건ㆍ브리티시컬럼비아의 상당 부분ㆍ앨버타ㆍ서스캐처원ㆍ매니토바ㆍ알래스카ㆍ유콘 일부ㆍ노스웨스트ㆍ다코타ㆍ네브래스카ㆍ캔자스 서부ㆍ아이다호ㆍ몬태나ㆍ콜로라도ㆍ오타ㆍ네바다가 이에 속한다. 공화당 성향.


11. 퍼스트 네이션(First Nation)


원주민들이 점유하는 북방 산림ㆍ툰드라ㆍ북극 빙하 같은 척박한 땅이다. 원주민들은 이러한 환경에서도 오랜 문화적 관습과 지식을 유지하면서 살고 있다. 최근에는 자주권을 보장해달라고 목소리를 내기 시작해 상당한 성과를 거두었다. 자연과 인간의 조화로운 세상을 꿈꾼다. 유콘ㆍ노스웨스트ㆍ래브라도ㆍ누나부트ㆍ온타리오 북부ㆍ매니토바ㆍ서스캐처원ㆍ앨버타ㆍ브리티시컬럼비아 서북쪽ㆍ퀘벡 북부가 이에 속한다.


<11개 국가의 2020 대통령선거 정당지지 성향>



사안에 따른 각 국가의 입장


환경; 1960년대를 지나면 세계적으로 환경에 대한 경각심이 높아졌지만 딕시연합(디프사우스ㆍ타이드워터ㆍ애팔래치아)ㆍ파웨스트ㆍ엘노르테는 천연자원 보호에 회의적이었다. 2009년 연방하원은 탄소배출권 거래법을 뉴 네덜란드ㆍ레프트 코스트ㆍ뉴잉글랜드ㆍ양키덤의 전폭적인 지지로 겨우 통과시켰다. 이에 대해 파웨스트는 결사적으로 반대했고 애팔래치아와 디프사우스는 압도적으로 반대 여론이 높았다.


양성평등; 양성평등 관련 헌법 개정에 대해서도 반대하는 디프사우스와 찬성하는 양키덤ㆍ미들랜드ㆍ레프트 코스트로 극명하게 갈렸다.


동성결혼; 뉴잉글랜드ㆍ양키덤ㆍ레프트 코스트는 동성결혼 허용 법안을 통과시켰으나, 파웨스트ㆍ엘노르테는 동성결혼을 허용한 법원의 결정을 주민투표로 뒤집었으며, 딕시연합은 하나같이 동성결혼을 금지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낙태에 대한 사안도 동일했다.


기업; 딕시연합은 정치권이 자본가 편이었고, 저임금 노동력에 의존하는 식민사회에나 어울릴 것 같은 정책을 발표했다. 노동조합 결성이나 최저임금 인상을 어렵게 만드는 법안을 통과시키면서 이를 노동할 권리고 포장했다. 그리고 낮은 세금ㆍ느슨한 규제ㆍ노조 약화를 장점으로 내세워 기업을 남부로 끌어들였다. 그래서 양키덤과 미들랜드의 자동차산업과 같은 제조업이 크게 잠식당했다. 교육과 이성을 강조했던 양키덤과 레프트 코스트에는 혁신적인 연구가 바탕이 되는 구글ㆍ애플ㆍ마이크로소프트ㆍ아마존 그리고 실리콘밸리가 모여들었다.


전쟁; 딕시연합은 1830년대 이후부터 꾸준히 상대방이 누구든 목적이 무엇이든 무조건 전쟁을 지지해왔다. 미국의 지위를 공고히 하려면 다른 목소리를 내는 세력은 무력으로 눌러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상원에서 제1차 세계대전 반대운동을 이끌었던 주요 인물은 모두 양키덤과 레프트 코스트 출신이었다. 이상주의적이고 지성적이고 개신교도의 공공적 사명을 중시하는 양키덤은 세상을 좀 더 문명화시킬 수 있는 외교정책을 펴고자 했다. 군사적이고 명예를 중시하는 딕시연합은 세상을 지배하는 것이 목표였다. 그래서 전통적으로 양키덤은 연방의회의 외교위원회를, 딕시연합은 군사위원회를 장악해왔다.


분화냐 융합이냐?


미국 대선을 치를 때마다 세계의 관심은 늘 Swing State에 몰린다. 어쩌다 보니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성향이 균형을 이루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미국인들의 성향은 개인적인 것이라기보다는 각 국가의 기원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걸 깨닫게 되었다. 하지만 성향이 서로 다르다고 해도 시간이 흐르면서 왕래가 잦아지고 소통이 늘어나면 벽은 허물어지기 마련이다. 그래서 미국이 비록 11개의 다른 국가로 이루어졌지만 결국에는 명실 공히 한 국가로 수렴하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저자는 이러한 벽은 시간이 가면서 오히려 강화되고 있다고 설명한다.


“교통과 통신의 발달로 기동성은 한층 좋아졌지만 이는 국민 사이의 차이점을 해소하기보다는 오히려 강화시키는 기재로 작동했다. 실제로 선거에서 특정 정당이 20% 이상 압도적으로 앞서는 선거구에 속한 인구가 1976년 26.8%에서 2004년 48.3%로 늘어났다.”


말하자면 자기 가치관과 세계관이 비슷한 국가로 헤쳐모이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시간이 지나면서 정치적ㆍ문화적 성향의 벽은 오히려 공고해진다는 것이니 어느 한 국가의 정치적 선택이 바뀔 가능성은 오히려 줄어든다고 하겠다. 그러니 앞으로 이루어지는 선거의 승패는 Swing State에서 갈릴 가능성이 더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저자는 미국이 지금과 같은 연방 체제를 계속 유지하려면 각 국가가 서로 타협하여야 하지만 불행하게도 딕시연합과 북부동맹으로 대표되는 양쪽의 세력은 서로에게 양보할 의지가 없는 것으로 판단한다. 그래서 미국 전체를 위협하는 큰 위기가 닥쳤을 때 어떤 국가는 이 상황을 크게 반기고 어떤 국가는 반대할 것이 너무도 분명해 보인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비슷한 성향을 가진 국가끼리 뭉치게 되고 결국은 연방 해체로 이어질 것이라고 예상한다. 물론 이는 허무맹랑한 가설로 들릴 수도 있지만 40년 전 소비에트연방이 해체된 역사를 고려한다면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동시에 그런 상황이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고 연방정부의 기능을 축소하고 주정부의 권한을 강화하는 내용으로 헌법을 수정할 수도 있을 것으로 예상한다. 그 경우 미합중국은 존재하겠지만 역할은 국방ㆍ외교ㆍ국제 통상으로 제한될 것인데, 이는 결국 현재의 유럽연합이나 미국 출범 당시의 느슨한 연합체로 돌아가는 모양이 될 것이라고 예상한다.


이러한 저자의 관점과 예측은 트럼프 재임 당시까지는 상당한 설득력을 가질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바이든 취임으로 미국의 정치가 예측 가능한 범주 안으로 들어오면서 그럴 가능성이 낮아진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미국이 전혀 다른 기원과 문화적 배경을 가진 11개 국가의 연합체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꼭 트럼프가 아니더라도 얼마든지 딕시연합의 정서를 대변하는 집단이 다시 정권을 잡을 수 있고, 트럼프 때의 악몽이 다시 재현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연방 해체 가능성이 다시 한 번 대두될 것이고.


저자는 내내 미국의 특징은 미국 전체에 해당되는 사실이 아니라 부분집합으로서 사실일 뿐이라고 강조하며 그렇기 때문에 미국인의 정체성을 찾으려는 것은 무의미한 일이라고 말한다. 읽어보니 정말 그렇다. 그래서 이 책은 한 번 읽고 덮어 둘 책이 아니다. 언제든 미국에서 돌발적인 변수가 생겨날 때마다 사전처럼 꺼내볼만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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