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Book Review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인식 May 17. 2021

보이지 않는 침입자들의 세계

바이러스, 백신 그리고 면역

신의철

21세기북스

2021년 3월


미증유의 코로나 판데믹을 겪으면서 많은 사람들이 면역이나 백신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예전에야 신문 방송을 통해야만 전문가들의 견해를 들을 수 있었지만 이제는 언제든 어느 곳에서든 면역이나 백신에 대해 손쉽게 전문가의 견해를 들을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정제되지 않은 정보를 너무 많이 접하다 보니 그로 인한 부작용도 만만치 않아졌다. 우선 그가 전문가인지도 알기 어렵고, 전문가라고 해도 그것이 폭넓게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일부의 주장에 지나지 않는 것인지 분별하기도 어렵다. 무엇보다 누구나 쉽게 알아들을 수 있도록 설명하는 경우가 그다지 많지 않다.


저자 신의철 교수는 면역반응을 연구하고 가르치며 KAIST 전염병대비센터장을 맡아 일선에서 바이러스와 싸우고 있는, 국내에서 흔하지 않은 면역 전문가이다. 그리고 친근하고 알아듣기 쉬운 설명으로 이미 온라인에서 이름이 나있는 유명인이기도 하다. 저자는 방송에서 그러하듯 이 책에서도 바이러스와 맞서 싸우는 백신과 그로 인해 면역이 형성되는 과정을 한 번 읽어서 알아들을 수 있을 만큼 쉽게, 그리고 선명하게 설명하고 있다.


그는 방송에서 코로나 때문에 이 책의 출간이 앞당겨지기는 했지만 의도적으로 현안에서는 한 발짝 떨어지려고 했다고 말했는데, 읽으면서 그것이 오히려 현안을 객관적으로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었다. 사실 코로나가 시작된 이후로 발병의 책임에서부터 시작해 방역정책, 백신확보에 이르기까지 매사가 정치적으로 해석되어 논쟁이 일어나고 있어서 어느 쪽 말을 들어야 하는지 혼란스러웠다. 그랬기 때문에 저자가 현안을 중심으로 면역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갔다면 이 또한 그 소용돌이에서 헤어 나오기 어렵지 않았을까, 그래서 의도적으로 한 발짝 떨어진 것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든다.


그동안 정부의 방역정책이나 전문가들의 의견을 지켜보면서 가장 궁금했던 건 백신의 효력이 얼마나 지속되는가 하는 점이었다. 백신이 한참 개발되고 있던 때에 어느 전문가가 백신의 효력이 짧으면 6개월, 길어도 1년을 넘기기 어려울 것이라고 설명하는 것을 들었다. 그렇다면 지금처럼 한 번 맞는데 1년은커녕 2년도 더 걸릴 것 같은 상황에서는 백신 방역망이 작동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말이 아닌가. 하지만 그 이후로는 백신 효력의 지속기간에 대해 어디서도 설명을 들을 수 없었다. 괜찮으니까 말이 없겠지 생각했으면서도 한편으로는 답이 없으니 건들지 않는 게 아닌가 하는 불안한 마음도 들었다.


그에 대해 저자는 방송에 나와 ‘T세포’ 때문에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설명했다. 적이 마음이 놓이기는 했지만 그런가보다 하고 넘어가기에는 너무 중요한 내용이다 싶어 그 질문을 머리에 넣고 이 책을 읽기 시작했다.


저자는 코로나 백신이 작동하는 메커니즘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바이러스가 몸에 들어왔다고 바로 감염되는 것은 아니다. 바이러스가 공기가 지나가는 호흡기관이나 음식물이 지나가는 소화기관에 들어왔다 하더라도 세포 안으로 침투하지 못하면 감염되지 않는다. 세포 안으로 침투하는 것도 쉽지 않다. 바이러스 표면의 돌기 단백질이 세포 표면의 특정 단백질과 딱 맞게 결합해야 세포 안으로 침투할 수 있다. 항체는 바이러스에 감염된 사람이 회복되었을 때 몸 안에서 자연스럽게 만들어지며, 백신 접종으로도 만들 수 있다. 항체는 한 번 만들어지기 시작하면 무수히 많이 만들어져 피에 녹아 떠다닌다. 그러다 바이러스가 들어오면 바이러스 표면의 돌기 단백질과 먼저 결합해 바이러스가 세포와 결합하지 못하게 방해한다. 항체 때문에 바이러스가 세포 안으로 자유롭게 침투할 수 없다는 말이다.”
“항체는 세포 밖에 존재하고 세포 안으로는 침투할 수 없다. 그래서 바이러스가 몸에 들어오면 바이러스가 세포 안으로 침입하기 전까지만 막는다. 바이러스가 항체를 피해 세포 안으로 침입하면 그때는 T세포가 작동한다. T세포는 항체와 함께 면역반응의 양대 축이라고 할 만큼 중요한 역할을 한다. 감염된 세포 자체를 제거함으로써 바이러스가 생산되는 공장을 파괴해버리는 것이다. 세포 하나를 희생시킴으로써 바이러스의 감염 자체를 막는다.”


말하자면 백신으로 형성된 면역시스템은 항체와 T세포 이중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먼저 항체가 바이러스가 세포와 결합하지 못하게 막고, 바이러스가 그것을 피해 세포를 감염시킬 때에는 T세포가 감염된 세포 자체를 파괴시켜 바이러스를 파괴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만으로는 백신 효력의 지속기간이 설명되지 않는다. 저자는 방송에서 항체는 6개월 정도 경과하면 효력이 1/5 수준으로 떨어지지만 T세포는 코로나와 비슷한 SARS 바이러스의 경우 17년이 경과하도록 효력이 떨어지지 않은 게 확인되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니 1차 방어선인 항체의 효력이 떨어진다 해도 2차 방어선인 T세포의 효력이 유지되기 때문에 백신의 효력이 떨어질 염려는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인데, 웬일인지 그렇게 중요한 내용이 책에서는 빠져있다.


저자는 면역학 중에서도 특히 T세포를 전문으로 연구하고 있다. 저자에 따르면 면역을 전공하는 이도 생각만큼 많지가 않다는데, 그중에 T세포를 연구하는 경우는 또 얼마나 적겠나. 그렇기 때문에 다른 곳에서 저자처럼 T세포를 언급하는 경우를 듣지 못한 것이 아닐까 싶기는 하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그것이 널리 받아들여진 이론이 아닐 수도 있는 건 아닐까 슬며시 걱정도 된다.


백신 개발로 한동안 마음을 놓았지만 영국과 남아공에서, 최근에는 인도에서 변이 바이러스가 발생하면서 현재 접종하는 백신이 무용지물이 되는 건 아닌가 하는 염려가 일고 있다. 그러나 저자는 이 역시 T세포로 막을 수 있다고 설명한다.


앞서 설명한 대로 바이러스가 세포에 침투하기 위해서는 표면의 돌기 단백질이 세포 표면의 특정 단백질과 딱 맞게 결합해야 하고, 이를 막기 위해서는 항체도 같은 모양을 갖춰야 한다. 그래서 바이러스가 조금만 모양을 바꾸어도 항체는 무용지물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T세포는 바이러스의 전체 모양을 인식하고 있기 때문에 모양이 전체적으로 바뀌지 않는 한 바이러스를 놓치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는 말이다. 이 역시 백신 효력의 지속기간과 마찬가지로 매우 중요한 내용인데도 책에서는 빠져있다. 가급적 현안으로부터 거리를 두려는 저자의 의도 때문이 아닌가 싶기는 하지만, 개정판에서는 이 두 가지 내용이 포함되면 좋겠다.


이렇게 보면 T세포의 역할은 참으로 중요하다. 하지만 저자는 이 때문에 양보해야 하는 것도 있다며 이렇게 말한다.


“백신의 예방효과에서 항체가 주 역할을 한다면 바이러스에 감염되지 않게 하는 효과가 크겠지만 T세포가 주 역할을 한다면 감염을 막는 것이 아니라 중증으로 진행되지 않고 빨리 회복되게 하는 효과로 만족해야 할지 모른다. T세포는 세포가 바이러스에 감염되는 것을 막는 것이 아니라 바이러스에 감염된 세포를 빨리 제거해 바이러스 증식을 억제하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면 코로나는 사라지지는 않더라도 치명률이 점점 낮아져서 가까운 미래에 가벼운 감기 정도로 인류에게 남게 될 것이다.”


이 설명을 따라가다 보면 결국 코로나의 종식은 우리가 기대하듯 코로나가 없었던 때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가벼운 감기 정도로 약화되는 정도가 아닐까, 그리고 그러기까지는 참으로 지난한 시간을 견뎌야 하는 것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든다. 끝이 보이니 다행스럽기는 한데 그때까지 겪어야 할 불편 때문에 답답한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이다. 바이러스가 면역시스템을 피하는 방법은 ‘변이’ 말고도 ‘잠복’이 있다. 위장하고 마는 게 아니라 숨는다는 것이다.


“바이러스가 몸속 면역시스템으로부터 도망가는 또 하나의 방법은 잠복이다. 단순포진 바이러스인 헤르페스 바이러스가 대표적으로, 과로하거나 피곤할 때 입술 주위에 물집이 생기는 증상을 보인다. 이들은 며칠 지나면 사라진 듯 보이지만 사실 몸에서 완전히 없어진 것이 아니다. 평소 이 바이러스는 신경절이라는 곳에서 조용히 존재한다. 바이러스가 왕성히 증식하면서 활동하는 것이 아니라서 면역시스템이 이 바이러스의 존재를 눈치 채지 못한다. 그러다 면역시스템이 약해졌을 때 활발히 증식하면서 물집으로 나타난다. 이 바이러스는 어릴 적 수두를 앓을 때 들어온 것이 수십 년 잠복해 있다가 나타나는 것이다.”


저자는 헤르페스 바이러스 뿐 아니라 결핵균도 같은 양상을 보인다며, 이런 경우 효과적인 백신을 개발하는 것이 매우 어렵다고 말한다. 그런데 이런 양상이 코로나 바이러스에도 적용되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말이 없다. 해당되지 않는다는 말인지 해법이 없다는 말인지 잘 모르겠다.


저자는 책의 말미에서 “코로나는 백신을 개발하기 그리 어려운 바이러스였다고 할 수는 없지만 개발을 시작한 지 채 1년이 되지 않아 효과 90% 이상인 백신을 개발한 것은 인류 역사상 유례없는 성공”이라고 평가한다. 생각해보니 정말 그렇다. 이 정도 능력에 이 정도 속도라면 앞서 염려한 여러 가지 문제가 실제로 일어난다 하더라도 충분히 대응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마음이 놓인다. 물론 대응할 수 있다고 해도 고통이 따를 것이니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모두가 노력해야 할 것이다. 저자 역시 이러한 바이러스 질환이 생겨난 것은 인간이 야생동물의 영역까지 침범했기 때문이며, 아울러 지구온난화로 아열대지역에 서식하던 모기가 온대지역까지 확산되면서 바이러스를 전파하기도 하고 항생제 남용으로 기존 치료제로는 대응할 수 없는 슈퍼 박테리아가 생기기도 했다고 설명한다. 모두 인간의 무분별한 행동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문제는 원인을 알면 해결이 가능하다. 그런데 이 문제는 모든 사람들이 같은 원인을 지적하는 데도 해결이 가능해보이지 않는다.



매거진의 이전글 분열하는 제국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