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를 위해 기도하려면 먼저 그가 처한 상황을 이해하고 그가 겪는 고통에 공감해야 한다. 아침마다 고통 받는 이웃을 위해 기도는 하는데, 늘 막연했다. 오늘에서야 그동안 그들의 상황을 이해하려 하지도 않았고 그들의 고통이 무엇인지 제대로 들여다보지도 않았다는 걸 깨달았다.
최근 몇 년 사이에 양심적 병역거부와 성소수자 문제에 대해 교회 주류와 다른 생각을 밝히는 일이 부쩍 늘었다. 비록 막연하기는 했지만, 고통 받는 이웃을 위해 기도한데 대한 응답이 아닐까 한다.
한 국회의원이 상임위 질의시간에 동료 의원이 ‘절름발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자 “이는 장애인을 비하하는 표현이니 앞으로 표현에 좀 더 조심해 달라”고 요청한 것에 대해 의견이 분분하다. 지적이 적절치 않았다는 의견이 대다수인 것으로 보인다.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을 과도하게 적용했다는 의견도 있고, 표현을 지나치게 제한한다는 의견도 보인다. 그 장애를 직접 겪고 있는 한 사람은 장애를 겪는 당사자에게 사용하면 비하하는 표현일 수 있지만, 은유적으로 사용하는 건 장애인 비하가 아니라고 격분하기도 한다.
모두 일리가 있는 말이다. 그렇기는 해도 어느 한쪽에서는 “그래, 그동안 우리가 무심했네. 좀 조심하자구” 이런 반응이 나와야 하는 게 아닐까? 그런 글은 눈 씻고 찾아봐도 보이지를 않는다. 그저 내가 못 본 것이겠거니 싶기는 해도 입맛이 씁쓸한 건 어쩔 수 없다.
[사족] “국가인권위원회는 2014년 ‘절름발이’와 같은 표현을 ‘장애인에 대한 고정관념이나 편견을 강화할 수 있는 용어’로 규정하며 사용하지 않기를 권고했다.”
우리 사회는 그동안 수많은 퇴행을 겪었지만 그래도 길게 보면 조금씩 투명해졌고 나아졌다. 지금 또 다시 퇴행을 겪는 모습을 보니 낙심이 된다. 그렇기는 해도 이 또한 뭔가 나아져가는 과정일 것이라 믿는다.
사우디에 사는 아랍인 중 레바논인이 사회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위상이 가장 높다. 레바논계 회사도 많고, 기업의 회계 금융 부문에 상당수가 포진하고 있다. 비록 사우디에 고용된 처지이기는 하지만, 자존감은 오히려 사우디를 앞선다. 부임 당시 마케팅을 담당했던 동료 하나가 레바논인이었다. 아랍인으로는 드문 기독교인이어서 가깝게 지냈다. 토목과 졸업반이었던 그 아들을 우리 본사에 보내 인턴으로 일하도록 주선하기도 했다. 베이루트에 출장 갔을 때 그의 집에 몇 번 들렀다. 부자들이 사는 산 위의 동네에서도 저택이라고 꼽을 만큼 위치며 모양이 빼어났고, 베이루트 시내에 꽤 큰 아파트도 있었다. 그의 소개로 몇몇 회사들과 만나는 동안 유럽 어디쯤 와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이미 오래된 이야기이지만, 베이루트는 고급스러웠고 활기가 넘쳤다.
지난 순례절 휴가 동안에 아내와 ‘가버나움’이라는 레바논 영화를 봤다. 실화를 바탕으로 만든 영화인데, 실제로 그 환경에 사는 사람들을 캐스팅했다고 했다. 영화를 보면서 자식을 팔만큼 가난할 수 있다는 사실에 놀랐고, 그런 비현실적인 고통이 레바논에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그리고 며칠 후 베이루트에 폭발 참사가 일어났다.
그동안 부정부패로 화폐가치가 80%나 떨어질 정도로 경제가 어려워진데다가 최근에는 코로나까지 덮쳐 민심이 흉흉하다는 보도를 거의 매일 대하고 있었던 터라, 이번 참사의 후폭풍이 상당하겠다 싶었다. 어제는 다섯 집 중 하나가 끼니를 잇지 못한다는 보도까지 나왔다.
레바논이 중동의 정치적 소용돌이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었다고 해도 부정부패가 아니었다면 저 정도까지 이르지는 않지 않았을까? 정부와 사회가 바로 서지 못하면 우리도 그러지 말라는 법이 없을 것 같아 걱정스럽기도 하다. 그래도 여러 나라에서 돕겠다고 나서 다행스럽다. 그렇기는 해도 레바논 정부를 믿지 못해 구호물자를 직접 전달하겠고 하니, 그런 소식을 들은 레바논인들은 얼마나 낙심이 될까. 그저 하나님의 자비를 베푸시기를 기도할 뿐이다.
국가의 정책이라는 것이 서로 다른 경우에 있는 모든 국민을 만족시킬 수는 없는 일이고, 그러다 보면 피해를 입는 국민이 나올 수 있지만, 그것은 ‘어쩔 수 없는 비용’이라고 생각했다. 시간이 흐르니 그것이 ‘어쩔 수 없는 비용’인지 더 세밀히 따져봐야 하고, 설령 그렇다 해도 그것을 온전히 피해자에게 돌려서는 안 된다는 데 생각이 미쳤다.
국정 현안과 관련해서 정부에서 수많은 정책을 발표하고 있다. 정책을 세우고 집행하는 과정에서 ‘어쩔 수 없는 비용’을 피해자에게 떠넘기고 있는 건 아닌지, 그게 정말 ‘어쩔 수 없는 비용’인지 제대로 따져보기는 했나 모르겠다.
어쩌다 보니 요 몇 주 사이에 중동 난민과 빈민, 그리고 그 상황을 만들어낸 종교 전쟁을 생각할 일이 많았다. 유럽으로 가기 위해 목숨 걸고 지중해에 뛰어든 난민 이야기 <소금 눈물>을 읽고, 레바논의 지독한 가난을 그린 영화 <가버나움>을 보고, 그러다 베이루트 폭발사고가 터지고, 어제는 레바논 내전의 상처를 그린 영화 <그을린 사랑>을. 종교적 신념이 저토록 잔인한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걸 보여준 <그을린 사랑>은 보는 내내 숨이 막혔다.
전후세대인 내게 전쟁은 그저 개념에 머물렀다. 적을 머리맡에 두고 살았다고는 하지만, 전쟁을 겪어보지 않았으니 그게 당연했겠다. 대낮에 머리 위로 미사일이 날아다니는 곳에서, 전쟁 참화를 직접 간접으로 겪고 있는 사람들과 살다보니 전쟁이라는 것이 얼마나 파괴적인지 조금씩 깨달아간다.
오래 전 인도네시아에서 일어난 쓰나미로 수십만 명이 목숨을 잃었을 때, 수십만 명이 목숨을 잃은 ‘하나의 사건’이 아니라 누구와도 바꿀 수 없는 가족 한 사람이 목숨을 잃은 ‘수십만의 사건’이라고 설교한 목사님이 계셨다. 이제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조금씩 이해가 간다.
그나저나 베이루트에서 고생하고 있을 옛 동료에게 전화를 해야 할 텐데, 차일피일 미루고만 있다. 뭐라고 말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마땅히 도울 수 있는 일도 없고.
몇 년 전부터 소수자에 대해 관심을 가져오던 차에 차별금지법이 논란이 되면서 이에 대한 주장과 근거를 살펴보고 있다. 그 결과를 객관적으로 써보겠다고 애는 쓰는데, 소수자에게 관심을 두고 있으니 아무래도 한쪽으로 치우친 글이 되지 않겠나 싶다.
나는 차별금지법이 옳은 법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찬성한다. 그렇다면 양쪽 주장을 살피고 그에 대한 의견을 밝히는 과정도 무엇보다 먼저 옳아야 하지 않을까. 주장과 근거를 내 입맛에 맞게 취사선택하는 건 아닌지 매번 조심하지만, 그래도 더 조심해야겠다. 그렇지 않아서는 잡다한 주장이 난무하는데 쓰레기 하나 더하는 것에 지나지 않을 테니 말이다.
바르게 살 것. 남을 나보다 낫게 여길 것. 가르치려 들지 말고, 가르치려는 대로 살 것.
사람을 살리라는 말씀을 따르는 기독교가 어쩌다 감염의 온상, 혐오의 온상이 되기를 자처하게 되었다는 말인가.
부끄럽게 살면 부끄럽게 죽는다. 부끄럽게 사는 건 바로잡을 기회라도 있지만, 부끄럽게 죽고 나면 부끄러움만 남는다. 그래서 남은 가족까지 부끄럽게 만든다. 재산은 남겨주지 못할망정 부끄러움을 남겨서야 되겠나.
성령충만이라는 것은 내 삶을 온전히 성령께 맡기는 것이다. 내 의지로 그렇게 선택했다면 크게 칭찬 들을 일이다. 설령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무 것도 없어 그렇게 되었다 해도 그것 또한 성령충만한 삶일 것이니, 그렇다면 손발 묶인 것조차 감사할 일이 아닌가.
저서에서 밝힌 학문적 견해가 문제가 되어 벌어진 일련의 소송을 살펴보면서 같은 법이 재판부에 따라 얼마나 달리 적용될 수 있는지 알게 되었다. 결국 재판은 적용이라기보다는 해석이고, 그 해석은 시대상황을 반영하는 것일 수밖에 없다.
며칠 전 있었던 광화문 시위로 소란스럽다. 집회금지 신청을 재판부에서 기각한 것이 사태를 키웠다고 비난하는 글이 부쩍 눈에 뜨인다. 재판부는 집회시간이 비교적 짧고 참석인원이 백여 명에 불과해 사회적 거리두기를 준수할 수 있는 것으로 판단한다고 기각 사유를 밝혔다. 주최 측에서 그렇게 신청했으니 그를 부인할 분명한 이유가 없는 한 금지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기계적인 판단을 하자고 그렇게 고급인력으로 재판부를 구성한 것은 아니지 않을까. 재판은 법의 취지를 해석하여 적용하는 것이 아닌가. 해석은 실종되고 판단만 남았으니 재판부 비난하는 걸 뭐라 하기도 어렵겠다.
일상의 언어로 기도할 것
무설탕 다이어트로 10kg 감량한 이후로 5년 가까이 체중을 잘 유지하고 있었다. 요요현상이 일어나지 않도록 식사도 절제하고, 무엇보다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운동을 계속하고 있다. 통행금지로 집에 묶여있는 동안에도 잘 유지되던 체중이 보름 사이에 훌쩍 늘어 비상이 걸렸다. 이제는 자리가 잡혔다 싶어 단것을 입에 댔는데, 그게 화근이었던 모양이다. 운동하고 나서 달달한 게 당길 때 그저 새끼손가락만한 초코바 한두 개씩 집어먹은 게 전부였건만.
기록을 살펴보니 10kg 감량하는데 꼬박 넉 달. 그것도 두어 달 지나서야 조금씩 감량이 되기 시작했으니, 다시 시작한다 해도 한두 달은 지금처럼 거북한 몸으로 지내게 생겼다. 유혹을 잠깐 이기지 못한 대가를 몇 달 동안 치러야한다는 말이다. 그것 참.
자식을 하나 두었다. 그 자식이 자라서 꿈꾸던 일을 생업으로 얻어 잘 감당하고, 신실한 배필을 얻어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아이들과 아름다운 가정을 일구어 가고, 교회의 화목을 아우르는 가정이라는 칭찬을 받고 산다. 자식을 잘 키울 수 있어 감사했다. 돌이켜 보니 잘 키운 것이 아니라 잘 자란 것이었고, 잘 자라게 하신 분은 자식을 위해 우리 내외가 올린 기도에 응답하신 하나님이셨다.
법정에서는 한 죄를 묻고 역사에서는 하지 않은 죄를 묻는다고 한다. 이미 역사를 생각할 만큼 살았다. 그렇다면 미쳐 돌아가는 세상에서 무엇을 하지 말 것인지가 아니라 무엇을 할 것인지 생각하고 그대로 살아야할 나이가 아닌가.
삶이 예배가 되어야 하는데, 내가 예배드리겠다고 남의 삶 망가뜨리는 걸 개의치 않는다. 그리고도 미안하기는커녕 그게 신앙인줄 안다. 도무지 어디서부터 바로잡아야 하는 건지 막막하다.
아침에 일어나면 제일 먼저 확진자 숫자부터 확인한다. 어제는 가히 폭발세라 할 정도여서 마음이 무거웠는데, 오늘은 그나마 줄어들어 다행스럽다. 그러면서도 이것 때문에 필요한 조치를 늦추는 건 아닐까 싶어 마음 놓고 좋아하지도 못하겠다.
대응 수위를 높일 때 시민들이 겪을 어려움 때문에 망설이는 걸 이해 못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버텨서 해결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 의료체계가 붕괴될 수도 있는 상황이라면 이건 선택의 문제가 아니지 않은가. 당국의 과감한 조치를 기대한다.
혐오와 욕망의 말이 사방에 난무하는데 그것이 잘못된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해서 무슨 소용이 있을까 마는, 그래도 나 하나는 지킬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하나가 둘 되고 둘이 셋 되면 되는 것이지. 남 탓 할 거 없다.
나는 사회에서 일어나는 여러 문제에 대체로 비관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금씩 맑아지고 나아질 것이라고 기대할 만큼 터무니없이 낙관적이기도 하다. 세상이 시간을 이길 수 없다고 믿기 때문이다.
모든 사람이 바르게 살기를 기대하는 게 욕심이라면, 최소한 바르게 살지 못한 게 부끄러운 일인 줄은 알게 하옵소서.
교회가 이미 고쳐 쓸 수 없을 만큼 깊이 망가졌다면, 차라리 헐고 다시 짓는 것이 하나님 뜻에 더 부합하는 게 아닐까?
광화문 집회에 참석한 사실을 부인해 여러 사람에게 감염피해를 입힌 사람에게 시청이 피해액 3억 원에 대한 구상권 소송을 제기했다. 우리 모두의 안위를 지키자는 일을 방해했으니 제재를 받는 것이 당연한 일이다. 그렇기는 해도 3억 원이라는 금액에 숨이 막힌다. 그 대상이 편의점에서 일하는 40대 여성이라지 않은가.
오래 전, 파업 조합원들에게 회사가 거액의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한 것을 당연하게 여긴 일이 있었다. 그리고 몇 년이 지나서 소송을 당한 조합원들에 대한 역학조사 결과가 발표되었는데, 일반인에 비해서 우울증은 11배 자살충동은 17배 높았고, 조사대상의 3%가 실제로 자살을 시도했으며, 그 중 한 사람은 그렇게 세상을 등졌다고 했다. 이 일로 그간 내가 갖고 있었던 정의(正義)에 대한 정의(定義)가 송두리째 뒤집혔다.
구상권 청구를 잘못되었다고 할 수는 없다. 그렇기는 해도 편의점에서 일하는 사람이라니 형편이 넉넉지 않을 텐데, 어쩌면 그 금액이 그와 그 가정을 파멸로 몰아넣지도 모르겠다 싶어 마음이 몹시 무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