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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인식 Jun 25. 2021

청소년을 위한 법학 에세이

사람과 법

곽한영

해냄출판사

2020년 7월


트롤리의 딜레마


아침 방송에서 삼성생명이 내년 하반기부터 자율주행차 관련 보험을 출시할 것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공상소설에나 나옴직 했던 자율주행차가 현실로 다가온 것이다. 보험은 책임이 전제되어야 하는 것인데 아직 체계적인 논의가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이니 과연 어떤 기준으로 만들겠다는 것인지 궁금하다. 이와 아울러 최근 독일 상원에서 자율주행차 관련 도로교통법이 통과되었다는 사실도 언급되었다. 구체적인 내용을 규정한 것은 아니고 인공지능을 만들 때 피해를 최소화하고, 생명을 최우선으로 여기고, 판단의 대상이 되는 개인의 특성을 절대 고려해서는 안 된다는 (차별금지) 윤리강령 정도의 원칙을 천명하는 수준이라고 했다.


자율주행차 상용화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위기상황에서 이루어지는 윤리적인 판단과 사고에 대한 책임소재를 규명하는 일이 아닐까 한다. 저자는 이 책에서 자율주행차가 풀어야 할 가장 큰 숙제인 ‘트롤리의 딜레마’*를 언급하면서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추구하는 공리주의의 문제점을 제기한다. 공리주의가 “대를 위해 소를 희생하라”는 과거 우리사회의 윤리적 기준과 동일한 것이라면 (그런지는 잘 모르겠다) 개인의 인권과 존엄이 강조되는 지금 이 시점에 저자의 “다수의 행복이 언제나 옳은 것인가?” 하는 질문은 지극히 타당하다. 물론 그에 대해 선명한 답이 있을 수는 없지만, 저자는 이 질문을 통해 그 질문은 “질문 자체로 충분한 의미를 가지고 있으며 법은 그런 고민을 반영하면서 개선되고 발전된다”는 점을 말하려고 했던 것이 아닌가 한다.


트롤리의 딜레마; 브레이크가 고장 난 트롤리가 선로를 따라 달리고 있고 선로 중간에 인부 다섯 명이 작업을 하고 있다. 그리고 당신 손에 트롤리의 선로를 바꿀 수 있는 전환기가 있다. 전환기를 당겨 선로를 바꾸면 다섯 사람을 구할 수 있지만, 불행하게도 다른 선로에 인부 한 명이 작업을 하고 있다. 이때 다섯 명을 살리기 위해 한 명을 희생시키는 행위가 도덕적으로 허용될 수 있는가?


권력남용을 막기 위한 대가


저자는 권력분립이란 일을 더 잘하도록 만드는 제도가 아니라 계속 제동을 걸어서 권력남용을 막는 제도라고 말한다. 말하자면 견제와 균형 때문에 일어나는 ‘비효율’을 권력남용을 막는 ‘대가’로 지불하는 시스템이라는 것이다. 저자는 또한 중범죄자라고 해서 절차를 어겨가며 긴급체포하는 게 용납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면서 적법절차를 지켜 형벌권 남용을 막아야 한다고 말한다. 이는 “적법절차는 권력남용을 막기 위한 장치이기 때문에 그를 위해 (다소 정의롭지 않게 보이는 부분이 있더라도) 대가를 치르는 게 불가피하다”는 말로 들리고, 그래서 권력분립이나 적법절차에 대한 그의 신념이 다르지 않은 것으로 여겨진다.


그러면서 다른 한 편으로는 “죄형법정주의와 법률불소급의 원칙을 곧이곧대로 적용한다면 국가적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범죄는 원칙적으로 처벌이 불가능한데, 이는 나쁜 국가가 나쁜 법을 바탕으로 범죄를 저지르는 것은 언제나 합법으로 인정받을 것이기 때문”이라고 언급하며 따라서 “일제강점기 일본인들이 우리 국민을 수탈하고 탄압한 수많은 범죄행위들을 당시 법으로 보자면 합법이라면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강변하는 건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말한다.


나는 일제강점기에 일본인들에 의해 저질러진 범죄에 대해 저자와 생각이 같다. 그렇기는 한데 내 눈에는 저자의 이런 견해가 권력분립과 적법절차에 대한 저자의 신념과 모순된 것으로 보인다. 물론 저자가 감정적으로 반응한 것은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저자가 가지고 있는 ‘권력분립과 적법절차에 대한 신념’과 ‘일본인 범죄에 대한 견해’가 양립할 수 있는 어떤 이유나 논리가 있었을 텐데, 그게 무엇일지 궁금하다.


강요에 의한 불법행위


독일 전범 아이히만의 재판에서 담당검사는 잘못된 저항하지 않고 따른 것 또한 범죄라며 그의 죄를 물었다. 아이히만은 그것이 ‘강요에 의한 불법행위’이기 때문에 자기에게 책임을 묻는 것은 옳지 않다고 항변한다. 저자는 이에 대해 과연 아이히만이 군인으로서 전쟁 중이라는 특수한 상황에 명령의 잘잘못을 따져가며 저항하고 심지어 명령을 거부하는 일이 가능했을지 의문을 표한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아이히만은 사형에 처해졌다.


물론 아이히만은 ‘강요에 의한 불법행위’의 극단적인 예에 지나지 않는다. 따라서 그에 대한 처분을 ‘강요에 의한 불법행위’ 전체로 확대 적용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리고 그것이 온전히 강요에 의한 것인지, 이를 회피할 여지가 전혀 없었던 것인지, 누구도 명시적으로 강요하지 않았지만 도저히 거절할 수 없는 상황이었는지 하는 것처럼 경우가 다 다를 수 있으니 이에 대한 일괄적인 기준을 제시하는 것도 가능하지 않을 것이다.


사실 ‘강요에 의한 불법행위’는 특별한 상황에 있는 사람들만 겪는 일이 아니다. 상황과 정도만 다를 뿐 우리 사회 어느 곳에서나 일어날 수 있고 실제로 수없이 일어난다. 그리고 그에 대한 처벌은 대체로 ‘불법을 강요한 사람’이 아닌 ‘불법을 강요당한 사람’에게 돌아온다. 물론 나도 그런 피해자였던 경우가 있기는 하지만 내가 가해자였던 경우도 적지 않았을 것이다. 이런 경우에 대해 법원은 어떤 판단을 내리는지 관심을 가질 만하겠다.


법에 대한 관심


나는 평생 자연을 대상으로 하는 이과 글쓰기를 하고 살았다. 관심을 두었던 일에 대한 판결문을 찾아 읽다가 판결문이 이과 글쓰기와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러다가 판결의 근거가 되는 법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법에 대한 해석의 결정판인 대법원 판례에 흥미를 느꼈다. 대법원 판례 중 같은 법률이 적용된 같은 사건에 대해 상반된 판결이 부지기수임을 알고 나니 오히려 법이 더 흥미로워졌다. 그러면서 법을 지배하는 헌법, 그리고 법 정신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렇게 법을 알아가는 과정에서 이 책을 읽게 되었다. 저자의 필력은 익히 알고 있던 터이어서 읽기 전부터 기대가 컸다. 아마 그래서 ‘청소년을 위한 법학 에세이’라는 기본적인 정보를 의미 있게 받아들이지 않았던 모양이다. 저자는 다양한 주제를 혼선 없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마치 앞에 앉은 사람에게 조근 조근 설명하듯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있다. 친절하고 좋은 개론서이다. 다만 깊이 있는 각론을 상상했던 내 기대와는 다소 결이 달랐다. 물론 그것은 책 제목에 들어 있는 정보를 간과한 내 책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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