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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인식 Aug 01. 2021

[사우디 이야기 57] 대사관ㆍ총영사관

사우디 이야기 (57)

새로 설립할 현지법인에 부임하고서 제일 먼저 찾은 곳이 코트라(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였다. 정보도 부족하고 낯선 곳에서 의지할 것이라고는 우리 기업이나 기관일 텐데, 그 중 가장 쉽게 찾아갈 수 있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관장께서 친절하게 안내해줘서 건설사들의 모임을 찾아갈 수 있었고 그 모임을 통해서 대사관에 건설사 지원을 총괄하는 건교관(건설교통관, 지금은 부처 이름 변경으로 국토관)이 상주하는 걸 알게 되었다.


해외에 살아본 일이 없으니 대사관에 대한 경험이 있을 리 없었다. 매스컴의 속성상 칭찬보다는 지적하고 비판하는 기사가 많을 수밖에 없다고는 해도, 대사관에 대해 긍정적인 기사를 별로 읽어본 일이 없는 사람으로서 대사관을 찾아가는 건 긴장된 일이었다. 건교관께서 뜻밖에도(?) 친절하게 맞아주셔서 오히려 당황스럽기까지 했다.


대사관에는 외교부 소속의 외교관 뿐 아니라 각 부처에서 파견 나온 책임자들이 있어 해당 분야의 양국 협력을 증진하고 또한 그 분야에서 일하고 있는 기업과 교민을 지원한다. 부임 당시 리야드 대사관에는 건교관 외에 산업통상자원부에서 파견된 상무관, 국방부에서 파견된 국방무관, 보건복지부에서 파견된 보사관께서 근무하고 있었다. 기억하기로 보사관은 얼마 지나지 않아 복귀하였고 이후 다시 부임하지 않은 걸 보면 아마 당시 특별히 상주하며 풀어야할 현안이 있었던 게 아닌가 싶다. 다른 대사관의 사례를 보면 건교관과 상무관 외에 필요에 따라 교육관(교육부), 공보관(문화체육관광부), 경무관(경찰청), 농무관(농림축산식품부), 경제참사관(기획재정부), 법무관(법무부) 등을 두기도 한다.


부임 초기에 건교관께 도움을 참 많이 받았다. 엔지니어링 기업이 일반 건설업과는 다소 성격이 다르기는 해도 어차피 건설업에서 파생되는 것이니 발주처의 사업 동향을 파악하는 게 필요했다. 또한 건설설계를 수행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현지의 각종 표준이나 법규에 익숙해야 했다. 하지만 건설사에서야 설계에 따라 시공하면 되는 일이니 이런 자료를 가지고 있을 이유가 없었다. 결국 건교관께서 나서서 사우디 건설표준을 관장하는 기관에 직접 공문을 보내 협조를 요청하고 끝내 한 아름 되는 표준규정과 절차서, 그리고 파일까지 받아주셨다. 이렇게 받은 규정과 절차서는 파일은 파일 대로, 인쇄물은 다시 파일로 만들어 사우디에 주재하는 모든 건설사와 공유하였다. (아직도 파일을 잘 관리하고 있으니 필요한 분은 요청하시라.)


각 부처에서 대사관에 파견 나와 있는 국토관이나 상무관 같은 분들은 대체로 본부 과장급 공무원이다. 정부 직제에 익숙하지 않거나 정부와 일해 본 경험이 없는 이들은 본부 과장급 공무원이라면 대수롭지 않게 생각할 수 있지만, 실제로 그들은 각 분야에서 정부에서 정책을 수립하고 이행하는 실무 책임자들이다. 나는 평생을 정부가 발주하는 국가기간시설 설계를 수행해왔다. 직접 중앙부처 공무원을 상대해야 할 경우는 많지 않았지만 직접 간접으로 그들 결정의 영향권 아래에서 일을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 내가 이곳 대사관에서 그런 이들을 만났을 때 긴장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고, 그래서 뜻밖의 친절에 당황하기까지 했던 것이다.


부임 초기에 만났던 건교관께서는 본부로 복귀해서 지방국토관리청장, 철도관리공단 부이사장을 거쳐 현재 국토부 출연기관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오래 전 서울올림픽이 있던 해에 어느 상수도댐 현장에서 일할 때였다. 발주처인 지방국토관리청의 하천과장이 현장을 방문한다고 해서 현장이 발칵 뒤집어졌다. 현장 정리는 물론 중장비를 동원해 현장 진입도로를 재정비하기까지 했다. 당시 신참 과장이었던 나는 그와 대화를 나누는 건 물론 식사 자리에 함께 하지도 못할 정도로 하천과장은 높은 사람이었다. 건교관께서 그 지방청의 청장으로 부임한다고 해서 모처럼 통화하면서 그 이야기를 하며 한참 웃었던 기억이 있다.


대사관에서는 사우디에서 활동하고 있는 기업인을 대상으로 상반기와 하반기에 각각 경제협의회를 개최한다. 이때 리야드와 동부에 흩어져 활동하고 있는 기업인들이 모여 서로 정보와 애로사항을 나누고 대사관에 도움을 요청하기도 한다. (제다는 총영사관에서 따로 개최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애로사항이라는 게 뭐 하나 만만한 게 없으니 회의에서 도움을 요청한다고 해서 당장 해결될 만한 일이 얼마나 되겠나만, 의논하면서 해결의 실마리를 찾기도 하고 대사께서 정부 관련 인사나 발주처의 장을 만나 지속적으로 설득하는 가운데 적지 않은 성과를 올리기도 한다. 대사관에서 담당하는 임무가 상당히 다양하고 막중하겠지만 그 중 이곳에 진출한 우리 기업을 지원하기 위한 활동 또한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대사께서는 수시로 사우디 정부나 발주처를 방문하는데, 그때마다 방문에 앞서 기업인들이 도움이 필요하거나 애로를 겪는 일이 무엇인지 확인하곤 한다.


이밖에도 대사관에서는 이런저런 이유를 들어 사우디 정부나 발주처 인사를 초청해 우리 기업인들과 함께 만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오고 있다. 사실 기업에 속한 사람으로서 발주처 문턱을 넘는 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더구나 그것이 외국이라면 더 말할 것도 없다. 그런 와중에 주요 인사들을 만나 안면을 트고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는 것은 여간 유익한 기회가 아닐 수 없다. 그 덕분에 나 역시 몇몇 발주처 인사들을 만나 그 어려운 문턱을 수월하게 넘어설 수 있었다.


10월에는 대사관에서 개천절(National Day) 행사를 개최해 외교사절 뿐 아니라 많은 사우디인과 외국인을 초청한다. 물론 모든 교민도 참석 대상이다. 짧은 행사가 끝나면 공연도 하고 참석자들에게 한국 음식을 대접한다. 작년이야 코로나로 아무 행사도 준비하지 못했지만, 이전에는 한국에서 공연단이 오기도 했다. 앞서 언급한 바도 있지만 만찬 때 술도 함께 제공하는데, 이전에는 사우디인은 아무도 술을 마시지 않았지만 몇 년 전부터 술을 서빙하는 줄에 사우디 사람들이 하나둘 늘어나더니 재작년에는 오히려 교민들보다 사우디 젊은이들이 더 많기도 했다.


<Korea National Day>


사우디에 개설된 우리 공관은 리야드에 있는 한국대사관 말고 제다에 총영사관이 있다. 총영사관은 주재국이 넓거나 교민이 많을 경우 영사 업무를 분담하기 위해 개설하는 공관이다. 영사 업무란 외국인에게 비자를 발급하고 교민에게 여권이나 증명서를 발급하는 행정 서비스를 일컫는다. 하지만 총영사관의 역할이 영사업무에만 그치는 것은 아니다. 사우디 중앙정부를 상대하고 정치적인 업무를 담당하는 것은 대사관이지만, 지방정부는 위치에 따라 대사관과 총영사관이 나누어 상대한다. 실제로 대사관은 리야드ㆍ알주프ㆍ하일ㆍ카심ㆍ나즈란ㆍ동부ㆍ북부 등 7개 주, 제다 총영사관은 타북ㆍ메디나ㆍ메카ㆍ알바하ㆍ아시르ㆍ지잔 등 6개 주의 영사업무를 관할하며 해당 지방정부를 상대한다.


몇 년 전에 타북에서 우리가 추진하는 사업을 발주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쪽으로는 도무지 선이 닿지 않아서 애를 태우고 있었는데 누군가 총영사께서 타북시장을 몇 번 만난 일이 있다고 귀띔했다. 염치불구하고 찾아가 상황을 설명하고 도움을 청했다. 총영사께서 흔쾌히 그러마고 했고, 단순히 소개 전화 한 통으로 해결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며 바쁜 중에도 현지까지 내려와 앞장서서 우리를 안내했고, 시청 청사 현관에서 시장의 영접을 받았다. 만나기도 어려운 시장의 영접을 받았다는 말이다. 그 일이 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총영사께서 메디나 방문할 때 일행으로 참여해 시장과 메디나 개발공사 사장을 만날 수 있었고, 그 후로 지금까지 메디나 시청이 우리의 중요한 발주처가 되었다.


물론 우리 공관이 기업지원만 하는 건 아니다. 무엇보다 먼저 교민을 보호하는 일에 힘쓴다. 가끔 교민이 사고를 당하거나 실종되는 일이 일어나는데 그때마다 대사관에는 비상이 걸리고 온 직원이 나서서 이에 대응한다. 가족이 없이 혼자 나와 있는 분이 사망할 경우 가족에게 연락하고, 가족의 입국을 주선하고, 시신을 운구하는 일까지 맡아서 처리한다. 몇 년 전에 이웃에 사는 교민 한 분이 심장마비로 돌아가신 일이 있었다. 돌아가시기 이틀 전까지 만나 교회 일을 함께 의논했는데, 급작스러운 비보에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다. 그러니 가족에게는 얼마나 청천벽력 같은 일이었겠나. 돌아가시고 나니 슬픔도 슬픔이지만 해결해야 할 일이 하나둘이 아니었다. 사망에 따른 각종 신고는 물론이고 한국에 있는 유가족이 오는 일도 큰 난관이었다. 당시만 해도 사우디 방문 비자 얻기가 여간 까다롭지 않아서 장례일정을 늦추는 것으로 준비했지만, 놀랍게도 24시간이 지나기 전에 영사께서 주한 사우디대사관 비자 담당 영사에게 직접 협조를 요청해 비자를 발급받도록 만들었다. 그때 모든 절차를 곁에서 지켜보면서 대사관의 도움이 무척 든든했고, 그래서 참 감사했다.


지난 번 코로나로 급작스럽게 입국금지 결정이 내려졌을 때 일이다. 하필이면 입국금지 결정이 내려진 날 칠순과 팔순이 넘은 교민 두 분이 두바이에서 리야드로 오는 항공편 탑승을 거절당해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야 하게 되었다. 이 소식을 들은 리야드 한국대사관에서는 사우디 항공에 협조를 요청하고 두바이 총영사관에 연락해 영사께서 직접 공항에까지 나와 조치를 취하도록 했고, 그 덕분에 다음날 두 분이 무사히 리야드로 돌아올 수 있었다.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밤새 한국대사관과 두바이 총영사관이 얼마나 수고를 했는지 모른다.


대사관 영사과에서는 외국인에게 한국 방문 비자를 발급하고 교민에게는 각종 서류 증빙ㆍ여권 발급ㆍ출생신고ㆍ혼인신고ㆍ선거관리 업무를 담당한다. 한 번은 서류증빙을 요청했는데 영사과에서 해당 업무가 아니라고 거절하는 통에 몹시 마음이 상했던 일이 있었다. 알고 보니 내가 제대로 알지 못해서 일어난 일이었다. 기업 관련 업무가 아니라 개인적으로도 자주 일어나는 일이니 참고하시기 바란다.


한국에서 발급한 서류를 사우디에 제출하는 경우(예. 기업; 기업활동 관련 증명, 개인; 거주비자 발급을 위한 신상 관련 증명)가 있고, 사우디에서 발급한 서류를 한국에 제출하는 경우(예. 기업: 계약ㆍ실적ㆍ세무 관련 증명, 개인; 재학ㆍ졸업 증명)가 있다. 한국에서 발급한 서류의 진위를 사우디 기관이나 기업에서 판단할 방법이 없고, 사우디에서 발급한 서류의 진위를 한국의 기관이나 기업에서 확인할 방법도 없다. 따라서 주한 사우디대사관에서는 한국에서 발급한 서류가 문제가 없음을 확인하고, 사우디 한국대사관에서는 사우디에서 발급한 서류가 문제가 없음을 확인하는 것이다. (나는 우리 본사에서 발급한 문서를 리야드 한국대사관 영사과에 공증을 요청했고, 영사과에서는 당연히 이를 거부한 것이었다.)


간혹 매스컴에 한국대사관이 교민에게 친절하지 못하다던가, 교민의 요청을 외면한다던가, 교민에게 고압적으로 대한다는 보도가 나기도 하고 나 역시 그런 보도를 여러 번 접했던지라 부임하기 전에는 대사관에 대한 막연한 거부감이 있었다. 하지만 부임해 십 년 넘게 일하면서 직접 간접으로 상당한 도움을 받아왔고 그래서 언젠가 경제협의회에서 그동안 낸 세금이 아깝지 않다는 조금은 엉뚱한 말로 감사를 표한 일도 있었다. 물론 대사관이나 총영사관에서 처리하는 일 중에 미진한 것이 있을 수 있고 그것이 교민에 대한 차별로 비칠 여지가 있다는 점을 부인하지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대사관과 총영사관이 한국 공관으로서 충분히 제 몫을 감당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그래서 늘 고마워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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