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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인식 Jul 23. 2021

[사우디 이야기 56] 기후

사우디 이야기 (56)

사우디에 대해서 아는 거라고는 열사의 사막이라는 것 밖에 없는 상태로 부임했다. 물론 담당해야 할 업무에 대해서 충분히 검토하고 개략적인 사우디 시장 상황에 대한 교육도 받았지만 일상에 대한 것은 아무 것도 듣지 못했다. 일상이야 닥치면서 해결하면 될 일이라고 생각했고, 부임하기 몇 년 전 두바이에 출장을 다녀간 일이 있어서 대충 비슷하지 않을까 싶어 물을 생각도 하지 않았다.


리야드에 첫 발을 내딛은 게 2월이었는데 생각과는 달리 몹시 쌀쌀했다. 며칠 후 비가 꽤 많이 내려서 호텔 입구가 물에 잠겨 출입하는데 어려움을 겪었다. 쌀쌀한 날씨에 비까지 내리니 몹시 추워서 열사의 사막만 생각하고 긴 옷을 가져오지 않은 자신의 경솔함을 탓할 수밖에 없었다. 몇 달 지난 5월 어느 날 비가 꽤 많이 내렸다. 시내에서 손님을 만나고 숙소로 돌아가려는데 도로를 덮은 빗물로 그만 가는 길이 모두 끊어졌다. 익숙하지도 않은 길을 서너 시간 넘게 이리저리 헤매 겨우 숙소에 돌아갔다. 그날 리야드 지하차도에 급작스럽게 물이 밀어닥쳐 두 사람이 교통체증에 갇혀있던 차에서 미처 빠져나오지 못해 사망하는 사고가 일어났다. 그리고 그해 11월에 제다에서 홍수가 나서 수 백 명 사상자가 발생했다. 결국 부임하고 몇 달 사이에 그동안 알아왔던 ‘비는 내리지 않고 뜨거워 견디기 어려운 열사의 사막’이라는 상식이 여지없이 깨진 것이다. 사막 한복판에 비도 내리고 겨울에는 춥기도 하더라는 말이다.


수백 명의 목숨을 앗아간 제다 홍수가 일어난 2009년 11월 25일 24시간동안 내린 강우량은 70mm에 불과했다. 우리나라에서는 흔한 장맛비에 지나지 않는 강우량으로 사우디 제2의 도시가 초토화된 것이다. 비가 내리지 않는 곳이어서 배수시설이 미비했던 것이 가장 큰 이유였고, 거기에 와디(건천, 평소에 물이 흐르지 않다가 비가 올 때 물길이 되는)에 불법으로 지은 건물이 물길을 막아 상황을 악화시켰다. 사태가 수습되고 난 후 압둘라 국왕은 대책회의를 한다고 백 명이 넘는 공무원들을 불러 그대로 투옥하기도 했다. 그해 봄에 있었던 리야드의 물난리는 강우량이 채 20mm에도 미치지 않았다. 미비한 배수시설조차 평소에 제대로 관리를 하지 않아 정작 필요할 때 기능을 발휘하지 못했기 때문에 한 국가의 수도에서 20mm에 불과한 강우량으로 두 사람이나 목숨을 잃은 어이없는 일이 일어난 것이다.


사우디 기후는 크게 세 가지로 나뉜다. 전형적인 사막이 대부분이기는 하지만 홍해를 따라 남북으로 발달해있는 폭 200-300km의 산악지대에 나타나는 스텝지대, 그리고 요르단ㆍ이라크와 접해있는 타북과 예멘과 접해있는 아시르의 고원지대이다. 사막은 글자 그대로 비가 내리지 않아 건조한 지역으로 낮과 밤의 기온차가 매우 크며 식생 조건이 충족되는 지역에서는 대추야자가 잘 자란다. 기후분류에 따르면 연 강우량 250mm 미만을 사막기후로 분류하지만 사우디 대부분의 지역은 100mm를 밑돈다. 스텝지대는 북쪽으로는 타북 고원지대 남쪽으로는 아시르 고원지대로 이어진다. 스텝지대에 비해 고원지대가 기온이 더 낮고 강우량이 많다. 고원지대는 최저기온이 0도에 가까워 눈이 내리기도 한다. 고원지대에는 숲도 있고 개울도 흐르기는 하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숲이나 개울과는 거리가 멀다.


사우디는 앞서 설명한 산악지대와 고원지대를 빼고 나면 대부분 사막이다. 해안지역과 내륙지역에 따라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사막지대는 겨울 최저 기온이 10도 안팎이고 여름에는 45도까지 올라간다. 사막지역 중에서도 내륙지역인 리야드의 경우 최저 10도에서 최고 45도에 이르지만 해안지역인 제다(홍해ㆍ서해)는 최저 온도가 20도를 밑돌고 최고 온도라고 해도 40도를 넘지 않는다. 단순히 기온으로만 보면 제다가 덜 춥고 덜 더워 보인다. 하지만 리야드에 사는 나는 높은 습도 때문에 제다의 40도보다 리야드의 45도가 훨씬 견디기 쉽다. 그래서 리야드 사람들은 제다에 가서는 못 살 것 같다고 말한다. 하지만 제다 사람들은 건조한 날씨 때문에 오히려 리야드에서 어떻게 사느냐고 한다. 나름 이유가 있기는 할 테지만, 여름에 해안지역에 출장 가면 차에서 내릴 때마다 안경에 김이 서리는 바람에 곤욕을 치르는 나로서는 이해하기 쉽지 않은 말이다.


확실한 이유를 찾지는 못했지만 건조한 지역에는 아픈 사람이 적다고 한다. 특히 나이든 사람에게서 그런 현상이 두드러진다. 나는 허리디스크가 있어 운동을 하루라도 게을리 하면 골격을 지탱해주는 근육이 풀어져 다리가 저려서 제대로 걷지를 못한다. 한국에 있을 때는 어쩔 수 없이 운동을 해서 그런대로 견뎠지만, 부임하고 나니 마땅히 운동할 곳도 찾지 못했고 더구나 운동량이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줄어들어 내심 허리디스크 걱정을 했다. 하지만 그런 걱정은 기우에 지나지 않았다. 부임하고 나서부터 지금까지 그것 때문에 활동에 지장을 받은 일이 없다. 그런데 리야드에서만 그랬다. 습도가 높은 겨울에 독일에 갔다가 길에서 몇 번이나 주저앉았는지 모른다. 서울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신기하게도 리야드공항에 내리면 거짓말처럼 그 증상이 없어졌다. 궁금해서 의사들에게 물어보니 건조한 고지대(리야드; 고도 700m)가 도움이 될 거라고 했다.


이곳은 6월부터 8월까지 석 달 동안 정오부터 오후 3시까지 모든 야외작업을 금지한다. 기온이 45도가 넘어가면 시간에 관계없이 야외작업이 금지된다. 하지만 리야드에 십 년 넘게 살면서 공식기록으로 45도를 넘긴 경우를 보지 못했다. 그래서 이곳 기상청 온도계는 최고기온이 45도라고 비꼬곤 한다. 언젠가 무척 더운 날 어느 지사에 출장 온 손님이 함께 돌았는데 더위 때문에 2번 홀에서 쓰러져 실려 나갔다. 나머지 주재원들은 거뜬히 18홀을 다 돌았다. 끝나고 나서 쓰러진 사람이 문젠가 그 더위에 친 사람이 문젠가 하며 쓴웃음을 지은 일이 있었다. 그때 골프장에 걸려 있던 온도계가 52도를 가리키고 있었다.


52도에 골프를 쳤다면 대부분은 믿지 않는다. 하지만 건조한 기후 때문에 실제 체감온도는 이보다 훨씬 낮다. 지붕이 있는 카트를 타고 이동하면 바람 때문에 시원하기까지 하다. 내 느낌으로는 한국의 기온과 15도 정도 차이가 나지 않을까 싶다. 말하자면 리야드의 50도는 한국의 35도 정도. 더울 때 사람이 땀을 흘리는 것은 땀이 증발할 때 기화열을 빼앗아 체온이 내려가면서 체온을 조절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런데 습도가 높으면 땀이 증발하지 않아 그대로 흘러내리기 때문에 체온이 쉽게 내려가지 않고, 따라서 더 덥게 느낀다는 것이다. 리야드는 워낙 건조하기 때문에 땀이 나자마자 증발해 없어진다. 서너 시간 골프장을 돌고 나면 셔츠는 말라있는 채 땀이 증발한 흔적인 하얀 소금 줄만 남는다. 기후학자들 말로는 습도가 극단적으로 낮으면 50도가 넘어도 야외활동이 가능하지만 습도가 높을 경우 32도만 넘어도 치명적인 결과가 일어날 수 있다고 한다. 나는 기후학자들의 그런 주장을 골프장에서 실감한다. 그렇기는 해도 50도는 정말 덥다. 문을 열고 바깥으로 나오면 마치 건식사우나에 들어간 느낌이다.


부임 초기에 거주허가를 얻지 못해 두 주 마다 비자 연장을 위해 출입국을 되풀이해야 했다. (당시는 방문비자가 유효기간 6개월에 체류기간이 2주에 불과했다.) 그래서 출장일정을 그에 맞추곤 했지만 출장일정이 맞지 않을 때는 바레인을 다녀왔다. 리야드에서 서너 시간 운전해 걸프해의 킹파드코즈웨이 국경검문소에 차를 세워두고 택시를 타고 바레인으로 가서 하루를 자고 돌아오곤 했다. 어느 날 바레인에서 돌아와 차를 타는데 차 안이 뭔가 이상했다. 살펴보니 더위 때문에 차 안에 두었던 캔 콜라가 터진 것이었다. 일회용 라이터가 차 안에서 폭발해 화재가 났다는 소리도 들어봤고 승용차 본네트에 달걀 프라이한다는 소리는 들어봤어도 캔 콜라가 터질 수 있다는 건 상상도 해보지 않았던 일이었다. 처음에 사무실이 건너다보이는 호텔에서 잠시 묵을 때 동료들이 차를 왜 빌리지 않느냐고 물은 일이 있었다. 여름에는 그 거리도 걷기 쉽지 않을 거라고 한 그들의 말이 충분히 이해가 되었다.


호텔에 머물다 하숙집으로 옮겼을 때 일이다. 찬물을 틀었는데 뜨거운 물이 나오는 게 아닌가. 수도꼭지가 잘못 표시된 모양이라고 생각하고 반대로 틀었는데 여전히 뜨거운 물이 나왔다. 알고 보니 급수탱크 자체가 뜨거워졌기 때문이었다. 호텔에 있을 때 그렇지 않았던 걸 생각하니 이곳에서는 찬물은 부자들이나 쓸 수 있구나 싶었다. 다 그렇지는 않겠지만 아마 일반 가정집이라면 이런 사정은 다르지 않을 것이다. 이곳이야 워낙 냉방이 잘 되어 있으니 한여름에도 더운 줄 모르고 살기는 하는데, 시원한 물로 샤워하는 건 꿈도 꾸지 못한다.


사우디가 늘 이렇게 사람 살 곳이 못되는 건 아니다. 사우디 중에서도 산악지대나 고원지대는 4계절이 있다. 이와 달리 사막지대는 겨울을 뺀 나머지 세 계절은 차이가 없다. 하지만 그 더운 사막도 겨울에는 정말 살만하다. 푸르디푸른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에 선선한 바람은 마치 시원한 밤 바닷가를 걷는 느낌이 들게 한다. 그래서 나는 겨울에 본사에서 손님 오는 걸 굳이 마다한다. 매일 그렇게 좋은 날씨에서 사는 줄 알면 어떻게 하겠나. 그렇게 살기 좋은 한겨울도 이곳 사람들에게는 그저 겨울에 지나지 않는다. 10도 아래로 내려가면 교통경찰은 온통 덧옷에 귀마개에 장갑까지 끼고도 추워서 어쩔 줄 몰라 한다.


<이들에게 눈은 큰 구경거리이다>
<선선한 날씨와 많은 강우량으로 우거진 아브하의 숲>


남쪽 고원지대인 아브하는 한 여름에도 기온이 30도를 넘지 않는다. 리야드 겨울 날씨에 가깝다. 그래서 대학생들 여름 캠프가 그곳에서 많이 열린다. 킹사우드대학 지질학과에서는 매년 여름 아브하에서 한 달 가까이 현장실습을 하는데, 어느 해엔가는 초청을 받아 며칠 참석했던 일도 있었다. 한여름이었지만 이불을 덮지 않고는 잘 수가 없었다. 어느 해엔가는 강우량이 500mm를 넘은 일도 있었다. 참고로 한국 평균 강우량은 1,400mm 정도이다. 북쪽 고원지대인 타북은 겨울에 눈 내리는 곳으로 유명하다. 지난겨울에는 몇 십 년 만에 기온이 영하로 내려갔다고 한국 신문에 대서특필된 일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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