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인식 Jun 28. 2021

[사우디 이야기 55] 음식점

사우디 이야기 (55)

부임해서 처음 몇 달 뜨내기 생활을 면치 못했다. 당시 머물던 호텔 옆에 한국 음식점이 하나 있었다. 교민이 운영하는 음식점이었는데 정작 음식은 동남아 사람들이 만들다 보니 모양만 우리 음식이었다. 값도 싼 편은 아니었지만, 그나마 1인분씩 나오는 음식은 패스트푸드 말고는 그것이 유일해서 석 달 가까이 그 얄궂은 음식을 먹어야 했다.


한 번은 중국음식점에 저녁 초대를 받았다. 그때만 해도 이삼십 년씩 살던 교민이 꽤 많았는데, 그분들이 자주 다니는 중국음식점에 가면 우리말로 우동이니 탕수육이니 하며 음식을 주문해도 통할 정도였고 맛도 우리 입에 잘 맞았다. 사실 해외에 나가서 한국에서 먹던 중국음식을 찾는 것이 쉽지도 않고 같은 음식을 찾더라도 맛은 천지차이인 경우가 많다. 리야드에도 중국음식점이 손에 꼽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데, 그 집에만 가면 우리에게 익숙한 음식을 먹을 수 있었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음식 맛이 낯설어지고 이제는 영 예전의 맛을 잃어버려 더 이상 찾지 않는다. 요즘엔 중국음식을 먹으려면 올라야 알무사 빌딩에 있는 Golden Dragon이 갈만하다. 뭘 주문해야 할지 잘 모르면 그저 코리언메뉴를 달라고 하면 된다.


워낙 새우를 좋아하다 보니 음식에 새우가 넉넉하게 들어있는 게 아주 만족스럽다. 새우는 석유화학 제품을 빼놓고 수출품을 찾기 어려운 사우디에서 예외적인 효자 수출품에 속한다. 수출하는 양도 엄청나고, 한국에서도 사우디 새우를 상당히 많이 수입한다고 한다. 하지만 리야드에서는 그것 말고 제대로 된 해산물음식을 찾기 어렵다. 동쪽 걸프만 지역이나 서쪽 홍해 지역에는 해산물음식점도 많고 메뉴도 아주 다양한데 리야드는 내륙 깊숙이 들어와 있어서 그런 게 아닌가 한다. 지금은 냉장차로 몇 시간이면 싱싱한 생선을 가져올 수 있지만 낙타 타고 다니던 예전에는 가깝게는 400km 멀게는 1천km를 생선이 상하지 않게 가져오기 쉽지 않았을 것이다. 예전보다 운반이 훨씬 수월해 지기는 했어도 한 번 길들여진 입맛이 바뀌는 게 어디 쉽겠나.


물론 일본음식점에 해산물음식이 있기는 해도 그게 대표 메뉴가 아니다. 음식종류가 한국에서만큼 다양하지도 않고 생선 종류 역시 마찬가지이다. 사시미에 쓰는 생선도 탄력이나 식감이 영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 (더운 지역에서 잡히는 생선이 대체로 그렇다.) 최근 들어 일본음식점이 상당히 많아졌는데 현지화ㆍ현대화된 국적불명의 메뉴가 대부분이어서 일본음식이 지니는 고유의 맛과는 거리가 멀어 개인적으로 무척 아쉽게 생각한다.


파스타도 그렇다. 파스타에도 해산물이 적지 않게 들어가는데 리야드에서 제대로 된 해산물 파스타를 보기도 어렵고 조개를 넣어 만든 봉골레 파스타 파는 곳은 아직도 보지 못했다. 물론 내가 파스타집을 모두 다녀본 건 아니다. 비록 봉골레 파스타는 없지만 올라야 컴퓨터상가에서 대사관단지로 가는 길 왼편에 있는 Serafina가 파스타집으로 추천할 만하다. 알리오올리오가 맛있을 수 있다고 느낀 건 그 집이 처음이었다. 걸프만 주베일 현장에 몇 달 상주하고 있을 때 다니던 음식점은 어디를 가도 해산물요리가 풍성했던 걸 생각하면 이런 내 불만은 단지 리야드에 국한된 것이 아닐까 싶다.



처음 부임해서 어디가 어딘지도 모를 때 직장 동료들에 이끌려 사무실 가까운 곳에 있었던 터키음식점에 자주 다녔다. 한국에서도 터키음식점에 가본 일이 없었으니 모든 게 낯설었고 낯선 음식에 선뜻 손대지 않는 사람이다 보니 그곳에서 음식을 맛있게 먹어본 기억이 없다. 한 아름이나 되는 빵을 후무스에 찍어먹는 것도 그렇고 채소를 다지고 볶아서 내는 것도 좀처럼 익숙해지지 않았다. 이후에 아랍음식점에 다니면서 그것이 터키 고유의 음식이 아니라 지중해-중동 특유의 음식인 것을 알게 되었다.


중동음식이 다 거기서 거기 같지만 먹어보니 나라마다 조금씩 특징이 달랐다. 개인적인 취향에 지나지 않겠지만 중동음식 중 레바논 음식을 첫손가락에 꼽을 만하다. 내가 좀처럼 중동음식을 먹으려 하지 않는 걸 본 레바논 동료가 한 번은 굳이 자기 친구가 운영하는 레바논 음식점으로 우리 내외를 초대했다. 우리 내외만을 위해 자리를 만들고 음식을 종류별로 조금씩 담아서 내왔다. 아마 열댓 가지는 족히 넘었던 것 같다. 그 음식 중 적지 않은 것이 후무스ㆍ탑볼리ㆍ무탑발 같은 mezze(아랍식 애피타이저)였다. 식사를 마치고 나니 후식을 또 그 정도 다양하게 내왔다. Arabic sweet가 워낙 이름이 났지만 Lebanese sweet는 그 중 첫 번째라는 걸 입증이나 하듯 다양한 모양에 다양한 맛이 눈길을 끌었다. 내가 레바논 음식을 중동 음식 중 첫 번째로 꼽은 데는 아마 그날 저녁 식사의 영향도 적지 않았을 것이다. 리야드에 있는 여러 레바논 음식점 중에 레바논 사람들이 손꼽는 킹파이잘병원 남쪽에 있는 Burj Al Hamam과 우르바스트리트에 있는 Baalbek을 추천할 만하다.



사우디 토속음식을 그다지 좋아하는 편이 아니기도 하지만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토속음식점에는 가족석이 없고 남성만 이용할 수 있어서 이래저래 찾지 않았다. 요즘은 그런 제한도 없어지고 바닥이 아닌 테이블에 앉아 먹을 수 있는 곳도 많이 늘어났다. 가려고 하면 못갈 것도 없기는 한데, 맛있어서 찾는 게 아니라 색다른 맛에 찾는 것이다 보니 일부러 가게 되지는 않는다. 이곳에도 다양한 음식이 있겠지만 대체로 양고기와 닭고기로 만든 만디나 캅사가 주종을 이룬다.


이곳에 워낙 다양한 사람들이 살다보니 음식점도 정말 다양하다. 인도ㆍ파키스탄ㆍ태국ㆍ필리핀 음식점은 곳곳에 있다. 가끔 쌀국수 생각이 나면 대로 태국음식점에 가는데 베트남 쌀국수와는 거리가 있어서 먹을 때마다 늘 조금씩 아쉽다. 리야드에 베트남음식점이 있다는 이야기는 아직 들어보지 못했다.


이곳에는 이런 각 나라의 독특한 음식점도 많지만 외식 브랜드 프랜차이즈 음식점도 많다. 그래서 독일에 사는 아들 내외가 오면 늘 눈이 휘둥그레지곤 한다. 독일보다 이곳 음식점이 훨씬 다양하다는 것이다. 미국에서 인기를 끈다는 Cheese Cake Factory도 있고, 빵이 맛있는 Paul, 자칭 세계 최고 햄버거라는 Fuddruckers, 거기에 유럽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크리스피크림 도넛도 있다. 그밖에도 스테이크 전문점인 Steakhouse와 파스타 전문점인 Piatto가 여러 곳에 있고, 패스트푸드는 맥도널드, 버거킹, 피자헛, KFC, 서브웨이를 비롯한 어지간한 브랜드는 사방에 널렸다. 물론 Kudu나 Herfy 같은 현지 체인도 그에 못지않게 많다.




앞서 이야기했지만 리야드에는 한국음식점이 하나 있는데, 한국인들이 찾는 맛과는 다소 거리가 있고, 또한 외국인에게 그런 음식을 한국 전통음식이라고 소개하기도 적절하지 않아 보인다. 입맛에 맞는 우리 음식을 먹으려면 차라리 교민들이 운영하는 게스트하우스가 낫다. 식사만 하는 손님은 받지 않는 게스트하우스가 가끔 있기는 하지만 대부분은 식사 손님을 받으니 미리 전화하고 가면 그다지 비싸지 않은 가격에 우리 음식을 먹을 수 있다.


매거진의 이전글 [사우디 이야기 54] 전통음식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