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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인식 Jun 21. 2021

[사우디 이야기 54] 전통음식

사우디 이야기 (54)

우리가 추진하는 사업을 타북에서 발주할지도 모른다는 소식을 듣고서 어떻게 줄을 대야할지 고민하는데 누군가 제다 총영사께서 타북시장을 몇 번 만난 일이 있었다고 귀띔 해줘서 염치불구하고 도움을 청했다. 감사하게도 총영사께서 흔쾌히 타북시장 상담을 주선하셨을 뿐 아니라 그 먼 곳까지 와주셔서 수월하게 타북시청의 문턱을 넘을 수 있었다. 상담이 있던 날이 마침 환갑날이었는데, 집을 일찍 나서느라 아침도 먹지 못했다.


설명회 끝나고 시장께서 점심에 초대하셨다. 시장공관으로 자리를 옮기니 식탁 위에 양 한 마리를 통째로 요리한 ‘만디’가 놓여 있었다. 큰 손님 올 때나 내놓는 음식이니 기업인인 우리 때문은 아니었을 것이고, 아마 총영사께서 참석하셨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다. 원님 덕에 나발 분다고 덕분에 환갑상은 거하게 받았지만 정작 먹지는 못했다. 양고기를 먹지 않기 때문이기도 했고, 식탁을 가득 채운 크기에 질리기도 했다. 그래서 그저 처음에 발라서 건네준 고기 몇 점 먹는 둥 마는 둥 하고 채소나 뒤적이고 있었는데, 아무도 그런 나를 아랑곳하지 않고 그저 자기들 먹기에 바빴다. 그들에게도 귀한 음식이어서 그랬을 것이다.


<양 한 마리 통채로 조리한 '만디'>
<타북시장과 악수하고 계신 분이 오낙영 전 제다 총영사>


사우디에 살다보니 이런저런 자리에서 ‘만디’를 대접받는 일이 꽤 생긴다. 마지못해 몇 점 먹는데 그게 즐겁겠나. 그래서 ‘만디’라는 말을 들어도 내 반응은 뜨뜻미지근하다. 언젠가 회사에 귀한 손님이 왔다. 무슨 일인지 파트너가 회의실에 식사자리를 만들었다. 역시나 ‘만디’였다. 그런데 그건 맛이 근본적으로 달랐다. 양고기라면 피하고 보는 나도 상당히 여러 점을 집어 먹었다. 그러고 나서 보니 ‘만디’의 가격이 천차만별이었다. 회사에서 주문했던 ‘만디’는 백만 원이 훌쩍 넘는다고 했다.


나하고는 달리 아내는 양고기를 좋아한다. 이곳 전통음식도 좋아하고. 그래서 가끔 ‘만디’를 사오기도 하는데, 그럴 때마다 ‘만디’와 ‘캅사’를 구분하지 못해 매번 버벅댄다. 두 음식 모두 쌀밥 위에 양고기나 닭고기를 얹는데 모양도 비슷하고 값도 별로 차이나지 않는다. 어차피 일부러 찾아 먹는 음식이 아니니 그동안 그 차이가 뭔지 관심을 두지 않았다.


이 글을 쓰느라 찾아보니 두 음식 모두 고기를 쌀밥과 함께 조리하는 것이고, 양고기ㆍ염소고기ㆍ낙타고기ㆍ닭고기를 쓰는 것도 똑같다. (‘캅사’에서는 생선을 쓰기도 한다.) 다만 ‘만디’는 탄두르(tandoor)라는 화덕에서 굽고 ‘캅사’는 압력솥에 넣고 찐다. ‘캅사’는 누르거나 짜는 것을 뜻하는 말인데, 모든 재료를 한 냄비에 넣어 만들어서 그런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이것 말고도 사용하는 향신료가 달라서 밥 색깔도 조금 다르다. ‘만디’는 샤프란이라는 향신료를 써서 밥이 노랗고 ‘캅사’는 칠리를 써서 짙은 갈색을 띄며 더 맵다. 이제는 두 음식 모두 국경이 없지만 워낙은 ‘만디’는 예멘 음식이고 ‘캅사’는 사우디 음식이라고 한다.


‘만디’나 ‘캅사’ 모두 고기와 함께 쌀밥을 내는데, 대부분 밥은 그대로 남기고 고기만 먹는다. 밥알 한 톨 떨어뜨려도 야단맞고 살아온 나로서는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것만 줄여도 음식물 쓰레기가 상당히 줄겠다는 생각도 들고. 그렇게 남긴 걸 어려운 사람들이 먹는다고 설명을 하더라만, 아무리 없이 살아도 그렇지 먹다 남긴 밥을 누가 먹겠나 싶다. 언젠가 킹사우드대학 현장실습에 동행한 일이 있었다. 교수들과 ‘캅사’를 먹는데 모두들 밥을 하나도 남기지 않았다. 자세히 보니 우리처럼 고기 따로 밥 따로 먹는 게 아니라 밥을 손으로 꼭꼭 쥐어 조그맣게 덩어리를 만들고 난 후 다시 고기와 함께 덩어리를 만들어서 먹는 것이었다. 말하자면 고기 먹는데 밥을 곁들이는 게 아니라 밥을 먹는데 고기를 곁들이는 셈이었다. 그걸 보니 워낙은 그렇게 먹는 것인데 요즘은 배가 불러서 고기만 먹는 게 아닌가 싶었다.


탄두르는 흙바닥에 구덩이를 파고 구덩이 벽을 진흙으로 발라 만든 화덕이다. ‘만디’는 탄두르 안에 고기를 넣고 뚜껑을 덮은 후에 몇 시간 동안 그 위에 장작불을 피워서 조리한다. 오래 전에 요르단 와디럼에 갔을 때 사막 한복판에 있던 캠프촌에서 그렇게 조리한 걸 먹어본 일이 있다. 도시에서도 그렇게 만드는 곳이 있기는 하겠지만, 대부분은 시멘트로 만든 틀 안쪽을 진흙으로 발라서 화덕을 만들고 화덕 안에 가스로 불을 피워 고기를 굽거나 익힌다. 이 화덕은 빵을 굽는데도 사용한다.


<'탄두르'라는 화덕>


이곳은 십 년 전에 부임할 때나 지금이나 빵 값이 같다. 이곳에서 주식으로 먹는 빵은 이스트를 넣어 공갈빵 모양으로 다소 부풀어 오른 유교병(pita)과 이스트를 넣지 않아 납작한 무교병(saj, 교민들은 이를 흔히 걸레빵이라고 부른다) 두 종류가 있는데 값이 무척 싸다. 30센티 정도 되는 둥근 무교병이 1리얄(300원)이고, 20센티 정도 되는 둥근 유교병은 서너 개에 1리얄 한다. 빵 값이 이렇게 싼 것은 정부에서 밀가루를 무상으로 공급하기 때문이라는 이야기는 숱하게 들었는데 사실이 그런지는 확인하지 못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빵 값이 그렇게 쌀 수 없으니 사실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유교병 pita>
<무교병 saj>


언젠가 무교병 만드는 반죽을 사다가 다른 걸 만들어 먹으면 어떨까 싶은 생각이 들어 해보니 호떡으로도 찐빵으로도 아주 그만이었다. 만두피를 만들면 어떨까 생각도 했지만 아내 반대로 해보지는 못했다. 무교병 중에 겉에 설탕을 뿌리거나 깨를 뿌린 것이 있는데, 이건 일반 무교병과 달리 반죽에 기름이 섞인 것이어서 호떡이나 찐빵을 만들기 어렵고 값도 두 배이다. 반죽만 달라면 팔기는 하는데 빵 값보다 덜 받지는 않는다.


이웃에 후무스(hummus)를 그렇게 좋아하시는 분이 계셨다. 빵을 찍어먹으려고 후무스를 먹는 게 아니라 후무스를 먹기 위해 빵을 먹는다고 말씀하실 정도였다. 후무스는 병아리콩을 익혀 갈아 만든 것으로, 올리브유를 조금 섞으면 풍미가 아주 깊어진다. 일종의 애피타이저인 셈인데, 식사에 앞서 가지를 쪄서 으깨어 만든 무탑발(muttabbal), 파슬리ㆍ토마토ㆍ민트ㆍ양파를 빻아 레몬주스나 올리브유를 섞어 만든 탑볼리(tabbouluh)와 함께 묶어서 mezze platter로 내기도 한다. mezze platter는 레바논 음식이어서 아랍사람들이 많이 찾지만, 사우디사람들은 별로 즐겨하는 것 같지 않다. (무엇에 끌렸는지 요즘은 한국에서도 후무스를 찾는 사람이 많아졌다고 한다.)


<Mezze>


내가 처음부터 양고기를 먹지 않았던 건 아니다. 언젠가 서울에서 양고기를 먹었는데 누린내가 심하게 나서 다 먹지 못하고 남긴 일이 있었다. 그 기억 때문에 부임하고 나서도 한동안 양고기를 먹지 않았다. 어느 날 지사 모임에서 하도 맛있어 보여 한 점 먹고 진미를 깨닫고 난 후로 양고기 마니아가 되었다. 그래서 집에 손님을 초대하면 늘 양갈비를 대접했다. 지금도 리야드에서는 우리 집 양갈비가 맛있기로 이름이 났다. 특별한 재주가 있어서는 아니고 우연히 들른 푸줏간에서 파는 양갈비가 좋았고, 푸줏간 옆집에서 사온 숯이 또한 좋았기 때문이다. 우리 집에서 양갈비를 먹어본 이웃이 같은 푸줏간에서 양갈비를 사다가 구웠는데도 그 맛이 나지 않는다고 했다. 가서 보니 정말 그랬다. 다른 건 숯뿐이어서 혹시나 하고 바꿔봤더니 그 맛이 살아났다. 결국 양갈비 맛은 고기와 숯이 얼마나 잘 어우러지느냐에 달린 것이었다.


한국에서 먹은 것과 달리 이곳에서 먹은 양갈비는 누린내가 나지 않았다. 이곳에서는 모든 가축을 할랄방식으로 도축하고 도축한 고기는 매달아놓아 피가 빠져나가게 하는데, 그래야 냄새도 나지 않고 육질이 부드러워진다고 한다. 그래서 푸줏간마다 쇼윈도에 도축한 양을 거꾸로 매달아놓는다. 처음에는 흉측한 모습이 괴기스러워 보이더니 이제는 그런가보다 한다.


양갈비로 손님을 치르고 나면 그 냄새가 사나흘은 간다. 어느 날 손님에게 대접할 양갈비를 굽는데 갑자기 냄새가 역해졌다. 그러고 나서 지금까지 양고기를 먹지 못한다. 그래도 굽기는 하니 우리 집에 오실 손님은 걱정을 하지 않으셔도 된다. 못 먹는다고 해서 조금만 들어가도 몸이 반응할 정도는 아니다. 이곳에는 길거리 음식으로 ‘슈왈마’가 아주 유명하다. ‘슈왈마’ 안에도 양고기가 들어가서 일부러 사서 먹지는 않는다. 어쩔 수 없이 먹어야 할 자리에서는 먹기는 한다. 하지만 양갈비는 허물없는 자리에서는 안 먹는다고 말하고 낯선 자리에서는 다른 사람이 불편하지 않도록 눈치껏 먹는 것으로 위장한다. 그러고 보니 기분 탓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이곳에서 자란 아이들의 소울푸드 '슈왈마'>


‘슈알마’는 얇게 저민 양고기나 닭고기를 켜켜이 쌓아올려 센 불에 돌려가며 구운 후 베어내어 채소와 함께 얇은 빵에 둘둘 만 음식이다. ‘슈왈마’라는 이름이 돌린다는 뜻의 터키어에서 유래되었다는 말도 있듯이 ‘케밥’과 차이가 없다. (‘케밥’은 ‘슈왈마’와 같은 형태의 ‘되네르 케밥’과 고기나 생선을 꼬챙이에 끼워 구운 ‘시시 케밥’이 있다.) 이곳에서 자란 아이들에게 ‘슈왈마’는 소울푸드 쯤 되는 모양이다. 그게 먹고 싶다고 해서 한국에 갈 때 ‘슈왈마’를 사다가 얼려서 싸가는 교민들을 많이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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