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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인식 Jun 16. 2021

[사우디 이야기 53] 생활용품

사우디 이야기 (53)

이웃에 LG전자 직원들이 꽤 많이 살았던 적이 있었다. 70호 남짓한 단지에 우리 포함해서 아홉 가정이나 살았으니 교민이라야 천여 명에도 이르지 못한 리야드에서 손꼽히는 한인촌이었던 셈이다. 덕분에 이방인으로 사는 고단한 삶 가운데 크게 의지가 되었다. LG전자는 사우디 Shaker 그룹과 합작법인을 설립하고 2006년부터 에어컨을 생산하기 시작했는데 2010년대 초반까지 매출이 가파르게 올랐지만 몇 년 전부터는 증가세가 주춤한 것으로 보인다. 주춤대는 게 아쉽기는 하지만 사실 이미 오래 전부터 포화상태였을 에어컨 시장에서 그 정도 신장세를 보였다는 게 오히려 놀라운 일이 아닐까 싶다.


사우디에는 돼지고기와 술 빼고는 없는 게 없다. 생활용품은 물론 식품ㆍ의류에서부터 통신ㆍ전자제품ㆍ각종 명품에 이르기까지 세계 유명 브랜드 제품이 가는 곳마다 즐비하다. 제품이나 브랜드만 다양한 게 아니라 얼마 전까지는 값도 쌌다. 부임 초기에 아들 내외가 다니러 와서 특히 의류가 자기네 사는 독일보다 훨씬 다양하고 싼 것을 보고 나서는 우리가 독일 갈 때마다 이것저것 사다달라고 주문하는 게 꽤 많다. 요즘이야 부가세가 15% 적용되면서 이런 이점은 더 이상 기대하기 어렵게 되기는 했지만. 그런데 그 모두가 하나같이 수입품이다. 사우디에서 생산하는 건 에어컨ㆍ세탁기ㆍ냉장고 정도가 아닐까 한다. 그것도 전 생산공정이 있는 게 아니라 주요 부품을 모듈형식으로 들여와 이곳에서 단순 조립하는 정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십여 년 전만 해도 브랜드를 가진 자국이 아닌 해외 공장에서 위탁 생산한 제품일 경우 품질이 눈에 띄게 떨어져 살 때마다 생산지를 확인하곤 했다. 이제는 해외 공장에서 위탁 생산하는 제품이 워낙 많다보니 이런 구분이 더 이상 의미가 없어지기도 했고 품질도 전반적으로 크게 향상되었다. 이전에는 중국에서 생산한 제품은 일단 거르고 봤지만 이제는 다른 제품에 비해 품질이 거의 뒤지지 않을 정도여서 <Made in China>의 부정적인 이미지를 이미 상당히 씻어냈다. 게다가 가격도 아직 낮게 유지하고 있어서 당분간 중국제품의 아성을 깨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얼마 전에 와플 만들어 먹는 바람이 불어서 중국 제품을 하나 샀다. 기능을 최소화한 단순한 것이라고는 하지만 가격이 9천 원(30리얄)에 불과해 매우 놀랐다. 중국에서 만들어 사우디까지 가지고 와서 파는 가격이 그 정도라면 도대체 생산원가는 얼마라는 말인지 궁금해졌다. 와플 하나 사먹어도 그 돈을 들 텐데 말이다.


이곳은 생활용품ㆍ가전제품ㆍ통신기기ㆍ컴퓨터를 취급하는 상권이 소매점보다는 쇼핑몰을 중심으로 형성되어 있고 소매점도 우리처럼 곳곳에 흩어져있기 보다는 특정한 지역에 집중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소비자들이 주로 이용하는 대형 슈퍼는 리야드에서는 까르푸와 루루가 양축을 이루고 타미미ㆍ판다ㆍ알사단이 그 뒤를 잇고 있다. 지점이 따로 없는 알자지라는 시내 중심에 있다는 이점 때문에 이용객이 꽤 많다. 십여 년 전만 해도 이런 대형 슈퍼에서는 주로 식품과 생활용품을 취급했고 일부 가전제품을 추가로 취급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품목이 점점 늘어나서 이제는 가전제품ㆍ전자제품ㆍ통신기기까지 갖춰 굳이 다른 곳을 찾을 필요가 없을 정도가 되었다. 게다가 대형 슈퍼는 쇼핑몰에 입점해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보니 함께 있는 옷가게ㆍ음식점ㆍ놀이기구ㆍ극장까지 연계 이용할 수가 있어서 고객이 전문점을 찾아야 할 이유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


상권이 이와 같이 쇼핑몰을 중심으로 형성된 것은 자가용이나 택시 말고는 대중교통이 전무했기 때문이다 싶기는 하다. 그래서 지하철과 버스의 연계수송이 이루어지는 내년 말 정도부터는 쇼핑몰을 중심으로 모여 있던 상권이 흩어진 전문점 형태로 점차 바뀌어 가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전망해본다. 사우디는 인구구조로 볼 때 매우 젊은 나라이고, 젊은이들은 아무래도 기성세대보다 각자의 취향을 드러내려는 경향이 더 크지 않을까 싶기 때문이다. 물론 상권이라는 것이 이런 이유만으로 결정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생활용품을 다루는 종합매장으로 SACO가 있다. 리야드만 해도 열 곳 가까이 되고 어느 도시를 가도 쉽게 찾을 수 있다. 이곳에서는 그릇부터 시작해 주방ㆍ욕실ㆍ전기ㆍ조명ㆍ공구ㆍ페인트에 이르기까지 생활에 필요한 각종 물건이 다 있다. 쉽게 말해 골조와 벽면만 만들어 놓은 집에 들어가 꾸미거나 채우는데 필요한 모든 물건이 다 있다고 보면 된다. 거기에 정원을 꾸미고 밖에서 생활하기를 즐겨하는 이곳 특유의 문화에 어울리게 정원을 꾸미는데 필요한 각종 도구나 제품, 그리고 야외용 의자ㆍ탁자ㆍ캠핑ㆍ바비큐 용품까지 없는 게 없다. 여느 아저씨처럼 나 역시 쓸 것도 아니면서 공구만 보면 자리를 떠나지 못하는데, 특히 이곳의 공구 코너에 가면 아내가 가자고 채근할 때까지 넋 놓고 쳐다본다.


<SACO>


이만은 못하지만 이케아(IKEA)도 이런 생활용품을 꽤 많이 갖춰놓고 있다. 리야드 뿐 아니라 제다나 다란(동부)에서도 이케아를 이용한 일이 있어서 사우디 어지간한 도시에는 다 있는 것으로 생각했는데, 이 글을 쓰면서 확인해보니 그게 전부였다. 알려진 대로 이케아는 가구를 전문으로 파는 곳이고 생활용품도 독특한 모양이 꽤 많아서 부임 초기에 자주 다녔다. 다른 곳에 비해 침구ㆍ주방ㆍ욕실 용품과 조명기구가 다양하다. 가전제품을 주로 취급하는 곳으로는 eXtra를 꼽을 만하다. 이곳에서는 주로 TVㆍ냉장고ㆍ세탁기ㆍ에어컨을 취급하며 이밖에 컴퓨터나 모바일도 취급하는데 제품이 다양하지 않다.


모바일과 컴퓨터는 서점인 Jarir Bookstore에서도 살 수 있다. Jarir Bookstore는 서점이기는 하지만 책을 사러 간 적은 없고 부임 초기에 지도 사러 몇 번 갔고 이후에는 주로 문구를 사러 갔다. 문구만 놓고 보면 아마 이곳이 문구를 가장 다양하지 않을까 한다. 이곳에서도 컴퓨터나 모바일을 취급하는데 이 역시 제품이 다양하지 않다.


컴퓨터는 아무래도 올라야 거리에 있는 컴퓨터 상가만한 곳이 없다. 올라야 남쪽 끝에 있는 큰 건물 두 곳과 주변 건물에 컴퓨터와 주변기기를 취급하는 상점이 많다. (구글맵에서 Computer Market으로 검색) 컴퓨터와 주변기기를 판매하는 상점은 주로 1층에 있고 2층 위로는 수리점이 모여 있다. 주로 인도ㆍ방글라데시 기술자들인데 기술도 꽤 좋아서 어지간한 고장은 어려움 없이 수리할 수 있다. 정품 부품을 사용하지만 비싸거나 구하는데 시간이 걸릴 경우 굳이 정품을 고집할 필요가 없다. 그들이 권하는 비품이나 중고 부품이라도 사용하는데 문제는 없었다. 어지간한 브랜드는 다 있는데 유독 LG노트북은 부품이 없어서 어쩔 수 없이 한국 다녀오는 분에게 부탁해 고쳐온 일이 있었다. 삼성노트북이야 워낙 많이 풀렸으니 곳곳에 서비스센터도 있고 부품도 구하기 쉽지만 LG컴퓨터는 아예 부품을 구할 수 없다. 사용하던 LG노트북이 다시 고장 났는데 서울로 다시 보낼 엄두가 나지 않아 삼성노트북으로 바꿨다. 그래서 이곳에 근무하는 LG전자 직원도 자사 제품을 사용하지 못한다고 들었다.


<Computer Market>


모바일은 비롯한 통신기기를 취급하는 상점은 킹압둘라로드(King Abdullah Road)에 있는 하이야트몰 길 건너 무살라트에 모여 있다. (구글맵에서 Mursalat Mobile Market으로 검색) 어림잡아 50여 곳이 넘는 것으로 보인다. 나는 첫 스마트폰을 이곳에서 샀는데 조금이라도 싸게 산다고 이곳저곳을 다녔지만 상점 간의 가격 차이는 만 원도 나지 않았다. 전문점이 모여 있다고 다른 곳보다 싼 것도 아니었다. 나중에 보니 브랜드 매장이나 Jarir Bookstore나 다른 곳이 있는 매장과 가격이 거의 차이 나지 않았다. 모바일이야 어차피 물건을 보고 고르는 것이 아니어서 일단 고르고 나서 아무 곳이나 편한 데 가서 사기를 권한다. 대형 슈퍼는 라마단이나 하지 때 정기 세일을 하는데, 그때 모바일도 함께 세일을 실시하니 그런 시기를 이용할 만하다.


<Mursalat Mobile Market>


이밖에 조명기구ㆍ전기용품ㆍ욕실용품은 타카스시 스트리트 남쪽 끝과 킹압둘라 공원(King Abdullah Park) 남쪽 건너편에, 악기와 운동기구는 올라야에 있는 아카리아-2 몰 지하에 상점들이 모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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