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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인식 Jun 03. 2021

[사우디 이야기 52] 식품

사우디 이야기 (52)

부임하고 나서 이사 오기 전까지 아내 질문에 대답하느라고 슈퍼마켓이며 쇼핑몰을 꽤나 돌아다녔다. 뭐가 있는지, 종류는 어떤 게 있는지. 뭔가 많이 물었던 것 같은데 생각해보니 그저 식품과 생활용품이었다. 아내가 찾던 건 어지간히 있어서 그거 찾아다니는 것도 꾀가 나 나중엔 없는 건 돈 뿐이라고 대답했다.


사우디에 살면서 한국에서처럼 식사할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평소에 김치를 많이 찾는 편은 아니지만, 있는 데 안 먹는 것과 없어서 못 먹는 건 같을 수 없는 일 아닌가. 뜻밖에도 이곳에 무 배추가 모두 나고 아쉬운 대로 양념도 구할 수 있어서 굳이 한국에서 가져오지 않아도 그런대로 김치를 담가먹을 수 있었다. 예전에는 채소를 기르는 교민이 주로 공급하셨고, 요즘은 동남아 사람 몇몇이 채소를 길러 공급한다. 한국인들을 많이 상대하다보니 의사소통할 만큼 우리말을 한다. 한국이나 여기나 채소가격이야 날씨에 따라 워낙 들쭉날쭉하지만 이곳 사람들은 찾지 않는 품종이니 아무래도 한국보다는 ‘조금’ 비싸다. 양념도 이곳에서 구하려면 구할 수는 있겠는데 워낙 맛을 좌우하는 아주 예민한 것이어서 대체로 한국에서 가져다 먹는다.


아랍에서는 손으로 음식을 먹어서 찰기가 없는 쌀(인디카)로 밥을 짓는다. 60년대 초에 쌀이 모자라 동남아시아에서 쌀을 수입한 일이 있었는데, 쌀을 들여온 월남의 옛 이름(安南)을 따서 안남미(安南米) 또는 알랑미라고 불렀다. 밥을 지으면 찰기가 없으니 배가 쉬 꺼진다고 불평이 많아 “알량하게 알랑미 먹고 사는 처지”라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 이 쌀이 바로 인디카종이고, 이곳 사람들은 주로 이 쌀을 먹는다. 그렇기는 해도 우리가 먹는 찰기가 있는 쌀(야포니카)도 쉽게 구할 수 있다. (kg당 9천원. 인디카보다 싸고, 한국보다도 30~40% 정도 싸다.) 그래도 아쉽다 싶으면 찹쌀을 함께 넣어서 밥을 지으면 우리 쌀로 지은 것과 차이가 없다. 예전에는 찹쌀이 야포니카 쌀보다 쌌는데 요즘은 가격이 올라 같거나 조금 비싸다.


이곳에는 식품이나 생활용품의 내수 규모에 비해 내수산업은 그다지 발달하지 않았다. 통계를 확인해보지는 않았지만 소비재 중에 자국에서 생산하는 것보다 수입하는 게 더 많아 보인다. 언뜻 생각나는 걸로는 채소 대부분, 과일 중에는 수박 정도가 자국에서 생산되는 게 아닐까 싶다. 그래도 수입하는 것치고는 값이 비싸지 않다. 이곳에서 잘 찾지 않은 품종이 아니라면 대체로 한국보다 싸다. 더구나 사람들이 많이 찾고 이곳에서 생산되는 건 무척 싸다.


채소나 과일 중에 우리나라 것보다 맛이 좋은 게 몇 개 있다. 그 중에 감자는 알도 굵고 맛도 훌륭한데 놀라울 정도로 싸다. 요즘은 kg당 채 3백원이 안 되고 올라봐야 천원 수준이다. 수박은 우리와 같은 품종과 줄무늬가 없이 허여멀겋고 기다란 두 종류가 있다. 모두 여성이 들기 쉽지 않을 만큼 크다. 족히 7~8kg는 되지 않을까 싶은데, 그게 만원이 넘지 않는다. 경험에 비춰보면 대체로 줄무늬 없는 게 낫다. 당근도 아주 맛있다.


<채소나 과일 모두 kg당 3천원(10.00리얄)을 넘는 걸 찾아보기 어렵다.>


더운 나라가 되어서 그런지 열대 과일도 무척 다양하다. 평소에 과일을 많이 찾는 편이 아니었던 나도 이곳에 와서 과일을 많이 먹게 되었다. 이곳에서 나는 몇몇 과일을 빼고는 모두 수입하는데도 과일의 품종도 다양하고 값도 싸다. 그 중 망고와 납작복숭아는 아주 먹을 만하다. 아내가 워낙 과일을 좋아해서 장보러 가면 한 바구니씩 사오는 데도 부담을 느끼지 않을 정도이다. 어지간한 과일은 다 있지만 내가 가장 좋아하는 참외는 아예 보지 못했다. 멜론 중에 비슷한 게 있기는 해도 영 참외 맛은 아니다. 배도 그렇다. 간혹 중국 배가 들어오기는 하지만 볼품도 없고 한국 배에 비할 맛은 아니다. 몇 년 전에 식품업을 하는 교민께서 한국 ‘신고 배’를 들여온 일이 있었다. 결코 가격이 싸지 않았는데도 순식간에 팔렸다. 대사관에서 이곳 기관에 선물용으로 구입했다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로 어느 과일과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탁월했다.


말린 과일도 매우 많다. 사우디는 야자대추로 유명한데 품종도 많고 값도 천차만별이다. kg당 3천원짜리도 있고 비싼 것은 4~5만원 하는 것도 있다. 대추 중에 맛이나 느낌이 곶감 같은 게 있는데 만원 정도 한다. 사우디 대추는 꽤 이름이 난 것이어서 한국 갈 때 사갈 수 있는 몇 안 되는 품목 중 하나이다. 말린 무화과나 건포도는 3~4천원 정도하는데, 아내 말로는 무척 싼 거라고 한다. 말린 과일 1kg이 생각보다 양이 훨씬 많다.


편리함으로 따지면 슈퍼마켓이 장보기 편하지만 동네 채소 가게에 가면 흥정하는 재미도 있고 값도 싸다. 채소는 눈으로 보면 대충 알 수 있지만 과일은 맛보기 전에는 알 수 없지 않은가. 놀랍게도 이곳에서는 과일을 먹어보고 산다. 오렌지 까먹고 포도알 따먹는 건 일도 아니고 상자 안에 들어있는 거 꺼내어 맛봐도 누구 하나 뭐라고 하지 않는다. 그래도 슈퍼에 가면 조금 눈치가 보이기는 하는데 동네 가게 가면 오히려 맛보라고 권한다. 물론 말은 잘 안 통한다. 그래도 장보는 데는 아무런 지장이 없다. ‘꼬리’(한국사람)라면 아주 반색을 한다. 물건이 좋으면 엄지손가락 치켜세우고 나쁘면 고개 흔들면 된다. 흥정은 계산기로 찍어서 보이는 것으로 충분하다. 바디랭귀지가 가장 잘 통하는 곳이다.


리야드에는 큰 채소시장이 두 군데 있다. 규모도 크고 값이 상당히 싸서 예전에 자주 찾았다. 요즘은 정부 정책으로 외국인 노동자들을 자꾸 줄여나가는 통에 시장 규모가 예전 같지도 않고 없는 게 많고 값도 별 차이가 없어서 가지 않는다. 외국인을 내쫓았으면 사우디 사람으로 채워야 할 텐데 하겠다는 사람은 없으니 당연한 결과가 아닐 수 없다.


양쪽에 모두 바다를 끼고 있는 나라치고는 생선이 그다지 다양하지 않다. 생선을 찾는 사람도 별로 없어 레바논 식당 말고는 생선요리를 파는 식당도 찾기 어렵다. 생선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상당히 아쉬운 일이다. 리야드에도 생선 시장이 몇 곳 있고 예전엔 자주 찾았다. 하지만 슈퍼마켓에 비해 종류가 다양한 것도 아니고, 더 싱싱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값이 싼 것도 아니어서 요즘은 찾지 않는다. 차라리 슈퍼마켓의 생선 코너가 낫다는 생각도 든다.


사우디는 새우가 유명하다. 한국에서 수입하는 중에 사우디 새우가 가장 많다고도 하고 사우디에서도 한국이 주요 수출국이라는 이야기를 들은 것도 같다. 새우야 크기에 따라 값이 워낙 다르지만, 그저 음식에 넣어 맛이나 모양을 낼 정도 크기는 kg에 만원을 넘지 않는다. 한국의 반 값 정도가 아닐까 싶은데, 이곳에서 키운 것이니 대체로 냉동하지 않은 상태이다. 아시아 식당에 가면 새우 들어간 음식이 많다. 값 때문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한국에서는 음식에 새우가 넉넉하게 들어간 걸 별로 보지 못해서 늘 아쉬웠는데 이곳에서는 음식에 새우가 넉넉하게 들어있어 만족스럽다.


처음 부임했을 때 1미터쯤 되는 갈치가 5천원 쯤 했고 맛도 한국에서 먹던 것이나 별로 차이가 없었다. 그것 말고도 게ㆍ오징어ㆍ문어ㆍ낙지도 흔하고 가끔 고등어도 나온다. 한국에서는 회로나 먹는 돔도 있는데 값이 한국의 몇 분의 일도 안 된다. 다른 생선들도 한국과 비슷하거나 오히려 싼 경우도 많다. 몇 년 전에 주베일 현장에 몇 달 머문 일이 있었다. 한 번은 아내와 주베일 수산시장엘 가니 우리를 보고 반색을 하며 “낙지 있어요” 하고 외쳐서 한참 웃었다. 얼마나 찾았으면 그랬을까 싶었다.


<연어ㆍ하모르ㆍ돔>


다 좋은데 결정적으로 횟감으로 쓸 만한 생선이 별로 없다. 회를 워낙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아쉽기 짝이 없는 일이다. 눈치 빠르면 절간에 가서도 새우젓 꽁댕이 얻어먹는다는 말이 있듯이 그런 중에도 횟감을 찾아서 가끔 회를 즐기기도 한다. 물론 더운 나라에서 나는 생선이 대부분 단단하지 않아서 같은 종류라고 해도 한국에서처럼 입안에서 탱글탱글한 느낌은 나지 않는다. 그저 솜을 씹는 기분이라고 할까. 종류도 종류지만 어시장이나 슈퍼마켓에서 파는 생선이 회를 뜰 수 있을 정도인지 알 수가 없어 처음 한동안은 어물전에서 째려만 보다가 왔다. 나중에 어지간한 생선은 회를 떠도 될 정도라는 말을 듣고서야 비로소 회를 먹기 시작했다. 직접 회를 뜰 필요는 없고 생선 살 때 필렛(fillet)으로 다듬어달라고 해서 가져와 썰기만 하면 된다. 언젠가는 그렇게 떠온 회로 물회를 만들어 먹기도 했다.


그렇다고 회로 먹을 만한 생선이 많은 건 아니다. 지금까지 먹어본 건 하모르(hammour)와 연어뿐이다. 누군가 하모르를 다금바리라고 하던데, 다른 생선보다 비싸기는 하지만 값이 다금바리에 비교할 바는 아니고 맛은 근처에도 못 간다. 그저 회를 먹을 수 있다는 이상은 아니다. 살도 야물지 못 하고 퍽퍽하다. 그에 비하면 연어는 맛이나 가격이 아주 만족스럽다. 한국에서는 음식점이나 가야 먹었는데 이곳에서는 어른 팔뚝만한 거 한 마리에 5~6만원에 불과해서 겁 없이 마리째 사다 먹기도 했다. 회에는 매운탕을 곁들여야 하는데, 이곳에서는 필렛만 남기고 나머지는 모두 버리기 때문에 다듬을 때 미리 수프 끓인다고 달라고 이야기해야 한다. 간혹 하모르나 연어를 아예 필렛으로 다듬어 팔기도 한다. 값은 생선으로 살 때 두 배 쯤 한다. 생선을 다듬어 필렛을 만들면 양이 반 정도만 남으니까 그 값이 그 값이다. 그렇기는 해도 미덥지 않아서 나는 늘 생선을 고르고 필렛으로 떠달라고 부탁한다.


요즘이야 물가가 예전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올랐지만, 예전에는 생활물가가 한국보다 훨씬 쌌다. 생활비만 따지면 50~60만원 이면 둘이 부족하지 않게 살았다. 요즘은 그것보다 50%는 올랐지 싶다. 오르지 않은 게 없는 것을 생각하면 그래도 아직은 물가가 견딜 만하다. 혹시 어떻게 내가 이렇게 세세한 것까지 아는지 궁금할지도 모르겠다. 대중교통 하나 없는 사우디에 한 번 살아보시라. 이곳 모든 남자들은 운전으로 가사를 돕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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