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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인식 May 27. 2021

[사우디 이야기 51] 번역기

사우디 이야기 (51)

사우디는 취업자 중 3/4이 외국인이다. 그러다 보니 다행히 만국공용어인 영어가 널리 쓰인다. 물론 영어라고 모두 같은 영어가 아니다. 크게 손꼽아 보자면 아랍 영어가 있고, 인도ㆍ파키스탄 영어가 있고, 필리핀 영어가 있다. 이제는 말만 듣고도 출신지역을 대충은 짐작할 정도가 되었다.


이렇게 외국인이 많다보니 어지간한 간판이나 안내판 모두 아랍어와 영어를 함께 적어놨고, 웬만한 서류도 마찬가지다. 문자도 영어로 오는 경우가 많고 인터넷 사이트도 영어로 되어 있거나 최소한 영어판을 갖추어 놔서 영어만으로 크게 불편하지 않게 살 수 있다. 그렇다고는 해도 이곳의 공식 언어는 아랍어이고 공식 달력도 헤지라력이다. 문자도 정말 중요한 건 아랍어로만 오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고 매번 물어볼 수도 없는 일이다 보니 번역기가 크게 도움이 된다. 써보니 아주 정확한 내용을 파악해야 하는 일이 아니라면 일상생활 하는 데는 별로 불편한 줄 모르겠다.


번역기를 사용한다고 해도 아랍어를 한국어로 번역하는 건 대충의 문맥을 파악하는 것도 어렵다. 구글 번역기로 아랍어를 영어로 번역하는 건 특히 예민한 부분이 아니라면 사용하는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영어를 아랍어로 번역하는 건 그에 영 미치지 못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점점 나아져서 요즘은 아랍 직원에게 번역을 부탁하면 그들도 일단 구글번역기로 초벌번역을 해서 이를 손보는 일이 많아지고 있다.


아랍어-영어 번역


구글 번역기는 모바일 앱, 인터넷 번역기, 인터넷 브라우저 번역기가 있다.


모바일 앱은 텍스트를 입력하는 방식만 있는 게 아니라 카메라를 대면 텍스트를 인식해 번역하기도 하고, 대화를 선택해 마이크에다 대고 말하면 즉시 음성으로 번역하기도 한다. 천천히 또박또박 말하면 일상생활에서 필요한 정도는 무리 없이 소통할 수 있다. 정부에서 오는 안내 문자는 상당수가 아랍어로 되어 있는데, 이럴 때 그저 복사해서 구글 번역기 앱을 열고 붙여 넣으면 해결된다. 그 정도로도 내용을 파악하는 데는 어려움이 없다. 카메라 이미지로 번역하는 기능은 그보다는 못한데, 이것은 번역의 문제라기보다는 이미지를 텍스트로 인식하는 기능의 문제로 보인다. 카메라가 정확하게 텍스트에 고정되지 않으면 번역 내용이 달라지는 걸 보니 그렇다. 음성 번역도 아랍사람들이 잘 알아듣는다. 가히 도깨비방망이라고 과언이 아니다 싶을 정도이다. 아이폰이나 안드로이드폰에서 모두 사용할 수 있다.


인터넷 번역기는 인터넷 브라우저에서 구글 번역기를 열고 아랍어 텍스트를 붙여 넣으면 된다. 이때 텍스트 뿐 아니라 문서 번역도 가능하다. 폴더에서 해당 문서를 클릭하면 된다. 어려울 것이 전혀 없고, 번역 품질도 텍스트 번역과 차이가 없다. 다만 앞서 모바일 앱에서도 문제가 되었듯이 이미지를 텍스트로 변환해 인식하는 기능이 완전하지 않아서 텍스트로 된 문서만 쓸 수 있고 pdf 파일이나 그림 파일은 거의 작동하지 않는다.


인터넷 번역기를 쓸 때 불편하기도 하고 조심해야 하는 것이 하나 있다. 바로 아랍어는 다른 언어와 달리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쓴다는 것이다. 번역기를 사용하자면 먼저 아랍어 텍스트를 복사해야 하는데 복사 범위를 정하는 것부터가 만만치 않다. 아랍어 텍스트 중에 들어있는 영어나 아라비아 숫자는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쓴다. 그러다 보니 아랍어ㆍ영어ㆍ숫자가 섞인 텍스트는 문장 일부만 번역하려할 때 제대로 복사하기가 어렵다. 그럴 때는 그저 문단을 통째로 복사해 필요한 부분을 찾는 게 낫다. 숫자의 경우는 더욱 유의해야 한다. 숫자가 단순하면 모르겠지만 제목에 붙이니 장절 구분은 글 쓰는 방향이 반대이기 때문에 번역에서 뒤바뀌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1.2항은 2.1항으로, 1.2.3항은 3.2.1항으로 바뀌는 경우가 많고, 심지어는 1.2.3항이 3.1.2항으로 바뀌는 경우도 있으니 사용하기 전에 이를 반드시 확인해야 한다.


영어를 아랍어로 번역하는 것이야 내 소관이 아니니 잘 모르겠고, 아랍어를 영어로 번역하는 것은 상당히 많이 해봤는데 아주 예민한 부분, 예컨대 문구를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지에 따라 결과가 상반될 수 있는 경우가 아니고서는 사용하는데 문제가 없었다. 얼마 전에 확인할 내용이 있어 어느 대학에서 발간한 200쪽 가까운 보고서를 직접 번역한 일이 있었다. 내가 일하고 있는 분야의 내용이니 번역하면서 제대로 된 것인지 판단할 수 있었는데, 그저 서너 쪽에 한두 개 정도 의아했을 뿐이었다. 나중에 아랍 직원이 이를 감수해 영문보고서로 만들었지만 감수하는 과정에 크게 손본 것이 없다고 했다.


인터넷 브라우저 중에서 구글크롬은 브라우저 자체에 자동 번역 기능이 있다. 자기가 사용하는 언에 외에는 모두 특정 언어로 자동 번역되도록 설정할 수 있다. ‘구글 크롬 번역 기능 설정’으로 검색하면 자세한 안내를 받을 수 있다. 나는 윈도우를 설치할 때 기본언어를 한국어로 지정해놓았고, 구글 크롬에서는 기본언어 이외의 모든 언어를 영어로 자동 번역 되도록 설정해놓았기 때문에 아랍어건 독일어건 상관없이 웹 페이지에 보이는 모든 텍스트는 영어로 번역되어 보인다. (기본언어로 설정한 언어가 영어로 번역되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물론 텍스트만 그렇고, 이미지는 번역되지 않는다. 아랍어의 경우 오른쪽 정렬로 되어 있어서 문단모양이 이상하기는 해도 내용은 상관없다. 번역에 걸리는 시간은 의식하지 못할 정도로 짧다. 즉시 번역이라도 해도 무방할 정도이다.


영어-한국어 번역


일상생활에서 영어를 사용하기는 하지만 내게는 영어는 아직도 외국어일 뿐이다. 영어로 말하고 영어로 읽고 쓰는 건 아직도 부담스럽다. 인터넷에서 검색하거나 여러 쪽 넘어가는 자료를 읽는 일은 시간이 많이 걸리는데, 이럴 때 번역기가 도움이 많이 된다. 구글 번역기의 영어-한국어 번역은 아직도 어색한 경우가 많다. 영어-한국어 번역은 네이버의 파파고 번역기가 낫다.


(인터넷 번역기는 인공지능의 산물이어서 그 품질은 결국 학습을 얼마나 많이 했느냐에 따라 결정된다. 아랍어를 사용하는 인구가 3억 명 수준이니 5천만 명 수준의 한국어에 비해 번역 학습량이 차이가 날 수밖에 없고, 아랍어-영어 번역과 한국어-영어 번역의 품질이 그만큼 차이나는 건 당연한 일이다. 앞으로 번역기 사용자가 늘어나서 학습량이 많아지면 번역 품질도 향상되기는 하겠지만, 아직은 요원한 일이다.)


벌서 한 해 가까이 업무 보는데 파파고 번역기를 사용하고 있다. 물론 번역기에 의존한다는 말은 아니다. 그러기엔 부정확한 번역이나 번역 오류가 미칠 영향이 워낙 크기 때문이다. 다만 많은 분량의 자료 중에서 내게 필요한 부분이 어디쯤 있는지 확인할 용도라면 충분히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을 수 있다. 요즘에는 위키피디아에 어지간한 자료는 다 올라와 있고, 검색 한 번으로 감당이 안될 만큼 많은 기사와 논문, 발표 자료를 얻을 수 있다. 그 많은 걸 일일이 확인할 시간도 없고, 그럴 만큼 의미 있는 일도 아니지 않은가.


하지만 아직도 누적 학습량이 충분하지 않다보니 번역의 정밀성은 기대하기 어렵다. 더구나 사람마다 나라마다 스타일이 달라서 같은 영어라 해도 정확한 의미를 파악하는데 애를 먹는 경우도 많다. 내가 경험한 바에 따르면 아랍 영어는 문법을 고려하지 않은 글이 많고, 인도 영어는 쉬운 말도 이리저리 꼬아서 표현하거나 생전 듣도 보도 못한 단어를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문법을 무시하고 쓴 글이나 이리저리 꼬아서 쓴 글은 십중팔구 번역에 오류가 일어난다. 그렇게 이상한 아랍 영어의 대표적인 것이 사우디 국영통신인 SPA(Saudi Press Agency) 기사이다. 그래서 SPA 기사는 번역기를 사용하지 않고 귀찮아도 처음부터 끝까지 꼼꼼히 읽는다.


이렇게 몇 가지만 유의하면 언어 장벽의 상당부분은 해결할 수 있다. 외국어를 모국어 정도로 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몰라도, 그렇지 않다면 외국어를 잘하는 사람조차 번역기는 큰 도움이 되리라 생각한다. 그리고 학습이 누적될수록 번역 품질은 나아질 것이고. 사실 은퇴하고 나서 번역으로 용돈벌이나 할까 생각했는데, 번역기 때문에 그 생각을 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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