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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인식 Aug 07. 2021

[사우디 이야기 58] 주재 기관

사우디 이야기 (58)

기업에서 해외에 진출할 때 아무런 연고가 없는 경우도 있기는 하겠지만 대체로 어느 정도 연줄은 있게 마련이다. 그래서 그 연줄을 통해 이런 저런 정보도 얻고 조언도 듣는다. 하지만 이런 경우 상대국에 대한 총체적인 정보보다는 정보를 제공하는 측의 관심사에 치우친 정보이기가 쉽다. 내 경우도 다르지 않았다.


사우디에서 오랫동안 사업을 이어오던 기업의 권유로 합작법인을 설립하기로 하고 나서 그 기업으로부터 가능한 많은 정보를 얻으려고 애썼다. 그 기업에서도 적극적으로 정보를 제공하려고 했고 부임하기 직전에는 사우디 현황에 대한 특강시간까지 마련해줬다. 막상 부임해서 보니 한정된 부분에 대한 한정된 정보에 지나지 않았고, 그래서 상당한 시간을 낭비해야 했다. 한참 시간이 흐른 후 코트라에서 발간한 <국가정보> 책자를 확인하고 나서 이것만 알았어도 시간 낭비를 상당히 줄일 수 있었겠다고 생각했다.


코트라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


코트라는 84개국에 127개 무역관을 운영하고 있다. 중동지역에는 사우디를 비롯해 GCC의 아랍에미리트ㆍ카타르ㆍ쿠웨이트ㆍ오만, 그리고 이란ㆍ이라크ㆍ시리아ㆍ터키ㆍ이스라엘ㆍ요르단ㆍ이집트ㆍ리비아ㆍ알제리ㆍ모로코에 무역관이 설치되어 있다.


코트라는 이름 그대로 무역 진흥을 위해 해외에 진출한 기업에 대한 전 방위적인 지원을 펼치고 있다. 무엇보다 먼저 주재국의 시장조사를 통해 상품 및 발주정보를 입수하고 경제동향을 파악한다. 주재국에서 박람회나 전시회를 통해 우리 기업을 소개하고, 주재국을 찾는 우리 무역사절단을 지원할 뿐 아니라, 주재국 바이어나 발주처를 한국에 초청해 우리 기업과 교류의 폭을 넓히도록 지원한다.


그러다 보니 어느 누구보다 시장이나 발주처에 대한 정보가 풍부하다. 물론 코트라는 지원기관이지 사업을 추진하거나 수행하는 주체는 아니어서 이와 관련한 구체적인 정보까지 제공하기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그렇기는 해도 필요한 정보를 얻기 위해 어느 곳을 공략해야 하는지 정도는 충분히 조언을 받을 수 있다. 말하자면 know-how 까지는 아니더라도 know-where 정도는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정도만 해도 시장 개척 초기에 시행착오는 상당히 줄일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코트라에서 매년 시행하는 프로그램 중에 GGHK(Global Green Hub Korea)라는 행사가 있다. 한국환경산업기술원과 공동으로 환경사업을 수행하는 발주처를 서울로 초청해 세미나를 개최하고, 한국 기업과 상담 기회를 주선하고, 마지막 날에는 환경시설을 돌아보는 기회를 제공한다. 참가자에게는 항공편과 숙식을 제공하는데, 사우디의 경우 대략 인당 3백만 원 정도 비용이 드니 결코 작은 혜택이 아니다. 우리는 2015년부터 이 행사에 적극적으로 발주처 인사들을 참석시키고 있다. (작년과 올해는 비대면으로 진행되어 아무도 참석시키지 못했다.)


<2015 GGHK>
<2016 GGHK>


수주를 위해서는 먼저 발주정보를 파악하고 더 나아가 가능한 우리에게 유리하게 발주될 수 있도록 발주처를 설득할 수 있어야 한다. 그를 위해 관련 인사와 좋은 관계를 맺어야 하는데, 이미 시장에 진출한 경쟁사들을 뚫고 관계를 구축하는 일이 어디 만만한 일이겠는가. 만나기도 어렵고, 식사 자리라도 한 번 만들려면 이런저런 연줄을 동원해야 한다. 그러니 일주일 가까이 온전히 동행할 수 있다는 건 여간 큰 기회가 아닐 수 없다. 그래서 많은 기업에서 발주처 인사들을 자국으로 초청하려 한다.


하지만 이곳에서도 부패방지법이 있어 출장 허가를 얻는 것이 여간 어렵지 않다. 그런 중에도 정부 초청 행사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대체로 업무에 지장만 없다면 출장 허가를 받는 건 큰 문제가 없다. 어느 발주처에서는 지원자가 너무 많아 머리가 아프기도 했다. 물론 인당 3백 만 원이라는 비용도 큰 도움이 되지만 이 보다는 ‘한국 정부 초청행사’라는 명분이 더 큰 도움이 된다. 코트라에서 항공권과 숙식을 제공한다고 해도 사실 기업에서 추가로 부담해야 하는 비용은 그보다 훨씬 크다. 항공권을 승급하고, 일과 후 일정을 챙기고, 행사 끝난 후 관광까지 제공했으니 말이다. 그렇기는 해도 우리 실적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게 만들어주는 것 이상 우리 역량을 더 잘 심어줄 수 있는 방법이 어디 있겠나.


이 행사 말고도 발주처 인사를 한국으로 초청하는 프로그램이 더 있다. 신청조건이 그리 까다롭지도 않고 매년 할당된 인원을 다 채우는 경우도 많지 않으니 기업에서 적극적으로 활용할 만하다.


이와 별도로 코트라 본부에서 무역사절단이나 시장개척단을 꾸려 사우디를 방문하는 경우도 많다. 참가 기업에 관심이 있는 현지기업을 연결시켜 상담을 진행하는 것이 중심이 되지만 때로는 전시관을 운영해 참가 기업의 홍보를 돕기도 한다. 이런 행사에 참가하는 기업은 대체로 사우디가 초행이기 때문에 비자 발급이나 현지 방문 같은 것도 지원한다.


이런 기회를 통해서 사우디 시장에 진출하기로 결정하더라도 지사를 설립할지를 결정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이럴 때 코트라의 ‘지사화 사업’이 아주 유용하다. 말하자면 코트라에서 지사 역할을 담당해주는 것이다. 1년간 지원받을 수 있고 비용은 250만 원이다. 수출기업의 경우 품목별 수요ㆍ가격ㆍ신제품 동향ㆍ경쟁상품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고, 관심 있는 바이어를 찾거나 바이어 신용상태도 조사를 요청할 수 있다. 현지 출장에 필요한 안내와 지원도 받을 수 있다.


수출입은행ㆍ무역보험공사


현재 사우디 중앙정부 차원에서 추진하는 개발사업의 규모는 수백 조 원에 이른다. 국가 재정수입의 대부분이 석유 수출로 충당되는 국가에서 저유가에 수요마저 줄어들어 재정이 예전 같을 수가 없는데, 거기에 전대미문의 규모로 국가적인 사업을 벌이고 있으니 국가 재정 압박이 날로 심화되지 않을까 싶다. 이런 현상은 이미 오래 전부터 조짐이 보였고, 그러다 보니 사우디 정부나 공기업에서 추진하는 사업 상당수가 투자사업 형태로 발주된다.


사실 우리에겐 사우디만한 시장이 없다. 해야 할 일이 많은 개발도상국은 돈이 없고, 돈이 많은 선진국은 이미 필요한 시설이 충분히 세워져 할 일이 없다. 결국 개발도상국에서는 선진국 자금으로 사업을 발주하게 되고, 그러다 보니 수주는 온전히 선진국의 몫이 되어버린다. 우리 같이 돈 없는 나라에서는 그저 일도 많고 돈도 많은 곳을 겨냥할 수밖에 없는데, 그것이 바로 사우디인 것이다. 하지만 사우디도 계속되는 재정악화로 인해 이제는 돈을 가지고 와야 일을 얻을 수 있는 시장으로 변했다.


최근 사우디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사업은 민관협력사업(PPP, Public-Private Partnership)이나 민자발전사업(IPP, Independent Power Plant)과 같은 투자사업으로 진행되고 있다. 건설사가 공사를 마치고 발주처에서 공사비를 받는 게 아니라 건설사가 금융을 조달해 공사를 마치고 시설을 운영해 올린 수입으로 공사비를 환수하는 것이다. (투자사업을 이렇게 단순화시켜 설명할 수는 없는 일이지만 기본적인 개념은 그렇다. 이렇게 사업을 바탕으로 제공하는 대출을 project financing이라고 한다.) 그러다 보니 사업에 뛰어들려는 기업으로서는 금융조달이 필수 조건이 되었고, 이를 지원하기 위해 2012년 12월에 한국수출입은행이, 2016년 8월에 무역보험공사가 리야드에 사무소를 개설하였다.


한국수출입은행은 ‘대출’과 ‘보증’을 제공하고, 무역보험공사는 ‘보증’과 ‘보험’을 제공한다. 은행이 기업에 자금을 빌려줄 경우 직접 자금을 제공하거나 은행의 여신한도가 충분하지 않을 경우 대출 보증을 제공해 그 기업이 다른 은행에서 쉽게 대출을 받을 수 있게 한다. 은행에서 자금을 빌려줬는데 사업이 제대로 추진되지 않아 상환이 불가능해질 경우 그 손해를 은행이 그대로 안아야 한다. 은행은 이런 피해를 만회하기 위해 보험을 든다. 정리하자면, 한국수출입은행은 자금을 직접 제공하거나 다른 은행에서 자금을 대출받을 수 있도록 보증을 제공하고, 무역보험공사는 보증을 제공하거나 사업이 계획대로 이행되지 않을 경우 입을 수 있는 피해를 만회하기 위한 보험을 제공하는 것이다.


우리도 투자사업을 염두에 두고 있어 두 기관에 자금을 지원받을 수 있는 방법을 물은 일이 있다. project financing이야 사업을 기반으로 하는 것이니 무엇보다 추진하는 사업의 안정성과 수익성이 중요하다는 설명을 들었고 절차에 대해서도 안내를 받았다. 대규모 자금이 투입되는 일이니 절차가 까다로운 건 당연한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요하면 자금을 조달할 수 있는 길이 있다는 것을 확인한 것만으로도 합작 파트너에게 생색을 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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