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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인식 Aug 13. 2021

[사우디 이야기 59] 한인사회

사우디 이야기 (59)

코로나로 한국행 특별기가 마련되었을 때 대사관에서 3천 명 남짓한 교민 중에서 9백 명이 떠났다고 발표한 일이 있었다. 급한 상황이 정리가 되면서 그 중에서 많은 이들이 다시 돌아왔고, 또 여느 때처럼 부임하고 이임하는 이들이 생기면서 코로나 이전의 숫자를 회복한 것으로 보인다.


사우디는 생활권이 크게 동부ㆍ중부ㆍ서부로 나뉜다. 교민들은 동부지역은 담맘ㆍ알코바와 주베일, 중부지역은 리야드, 서부지역은 제다ㆍ킹압둘라경제도시에 주로 거주한다. 대사관에서는 중부에 1천2백 명, 동부에 1천 명, 서부에 8백 명 정도 거주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한인회도 이 세 곳을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다.


교민들은 크게 7-80년대에 파견으로 또는 취업으로 왔다가 계속 거주하는 교민과 이후에 지사나 현장에 파견 나온 교민으로 나뉜다. 몇 년 전부터 사우디 기관이나 기업에 직접 채용되어 오는 교민이 생겼지만 아직은 그 숫자가 많지 않다. 내가 부임한 2009년에만 해도 7-80년대에 오신 분들이 교민의 대다수를 구성하고 있었다. 이제는 고령으로 많이 귀국하시고 남은 분들은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내 주변만 해도 올해 벌써 몇 가정이 귀국했고 귀국을 준비하는 가정도 몇 있다.


오래 거주한 교민들은 이곳을 삶의 터전으로 여기다 보니 서로 힘을 합쳐야 했고, 그래서 한인회의 결속력도 상당했다고 한다. 80년대에는 한국학교 학생이 2백 명까지 이른 적도 있었고 한인회도 여러 기업이 상당히 적극적으로 참여했다고 들었다. 하지만 임기를 마치면 돌아가야 할 주재원이나 현장 근무자는 잠깐 머무는 곳으로 여겨서인지 한인회에 대한 관심이나 열의를 찾아보기 어려운 게 사실이다. 그러다 보니 해가 갈수록 한인회 행사에 참여하는 인원이나 열기도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더구나 작년과 올해는 코로나 여파로 모이는 것 자체가 불가능해져서 한인회 활동이 더 위축되었다.


그렇다고 코로나가 부정적인 영향만 끼친 것은 아니다. 작년 특별기가 편성되었을 때로 기억하는데, 교민끼리 긴밀히 연락을 취해야 할 상황이 이어지는 가운데 리야드 한인회에서 카톡방을 만들어 상황을 실시간으로 공유할 수 있게 했다. 여러 사람이 모이다 보면 별 일이 다 일어날 수 있었는데도 한인회장께서 취지를 해치지 않도록 올리는 글을 ‘정보’로 한정한데다가 동참한 교민들 또한 취지에 공감해 서로 경계하고 독려하는 가운데 이제는 교민들의 정보 교환 창구로서 자리를 잡았다. 오늘 아침에 확인해 보니 330명이 넘었다. 330명이라고는 하지만 대체로 한 가정에 한 사람만 들어와 있는 걸 감안하면 1천2백 명 남짓한 리야드 교민 대다수가 이에 연결되어 있는 게 아닐까 한다.


리야드 한인회는 대체로 명절에 행사를 갖는다. 한국학교에 모여 체육행사를 하고 끝나고 나면 강당에 모여 함께 식사를 나누며 노래자랑도 한다. 잔치는 음식이 풍성해야 맛이 있지 않은가. 그래서 체육행사 하는 동안 교회 세 곳과 천주교 공소 교인들이 좌판을 벌여놓고 음식을 팔기도 한다. 한쪽에서는 경기하느라 시끌시끌하고 다른 한 쪽에서는 좌판 앞에 모여 음식을 나누느라 웃음꽃이 떠나지 않는다. 행사의 말미는 언제나 행운권 추첨이 장식한다. 선물은 교민들이 기증한 것인데 그렇다고 해서 결코 만만한 것이 아니다. 가장 인기 있는 것은 역시 한국행 왕복항공권. 대형 TV에 에어컨부터 소소한 선물까지. 덕분에 행사 끝나고 나서도 한동안 화제가 풍성해진다.


젊은 교민 가정은 대부분 주재원 가족들이고, 그러다 보니 주재원 모임도 활발하다. 리야드에는 상사 주재원들이 모이는 ‘지상사협의회’와 건설사 주재원들이 모이는 ‘건설사협의회’가 있다. 물론 친목을 위한 임의단체이어서 가입 조건이 까다롭지 않다. 모임 구성원과 조금 동떨어진 일을 하고 있더라도 희망하면 어렵지 않게 동참할 수 있다.


2009년 처음 부임하고 나서 어디서부터 시작을 해야 할지 막막했다. 코트라를 통해 대사관에 건교관께서 근무하고 있는 걸 알았고, 건교관께서 건설사협의회에 동참하기를 권하셨다. 건설사협의회는 80년대에 상당히 활발하게 활동했는데 90년대 이후 사우디의 건설공사 발주 물량이 줄어들면서 한동안 명맥이 끊어져 있었다. 그러다가 건설사 지사장 몇 분이 의기투합해 다시 모이기 시작했고, 그렇게 재건된 협의회 첫 모임이 내가 부임할 무렵에 있었다고 했다.


건설사협의회는 임의단체이니 정관이 따로 정해져 있는 것도 아니고 회장도 연말에 박수로 추대하곤 했다. 한창 많을 때는 회원사가 20여개 가까이 되었고, 지금은 그 반 정도로 줄어들었다. 2010년대 초반에 연 100억 달러를 넘었던 수주액이 지금은 30억 달러 조차 달성하기 어렵게 된 사정이 반영된 것이 아닌가 한다. 모임은 회원사의 회비로 운영된다. 동부지역에도 동일한 건설사협의회가 있다. 동부지역에는 분야가 같아서 우리 건설사끼리 경쟁을 하는 경우도 생기지만, 다행히 리야드에는 분야가 각기 달라서 그런 어색한 경우는 생기지 않았다. 한 달에 한 번 모이기는 하지만 특별한 주제를 놓고 의논하는 경우보다는 그저 시장이나 발주처 동향 정도를 나누는 일이 많다.


사실 건설사협의회의 진가는 모임 자체보다는 모임을 통해 구축되는 네트워크 자체가 아닐까 싶다. 이곳에서 십 년 넘게 일하면서 여러 나라 사람들을 만났지만 한국인만큼 정보 공유나 협조가 잘 이루어지는 경우는 거의 보지 못했다. 사우디에는 인도ㆍ인도네시아ㆍ파키스탄ㆍ필리핀 교민이 모두 백만 명을 넘는다. 이들이 없는 분야가 없다는 말이다. 우리 회사 동료들도 마찬가지다. 간혹 정보나 자료가 필요할 때 동료들에게 자국 네트워크를 통해 얻어 보라고 부탁해보기도 했지만 제대로 도움을 받았던 기억이 없다. 우리는 그저 연락처만 알아도 스스럼없이 전화해서 묻기도 하고 필요하면 도움도 받는데 말이다. 나로서는 그들의 그런 모습을 지금도 이해하지 못한다. 물론 그들 눈에는 어렵지 않게 도움을 얻어오는 내가 신기하게 보였을 것이다. 자신이 미국인인 걸 그렇게 내세우는 다른 동료 역시 신통치 않기는 마찬가지이다. (미국인은 미국인이라는 이유로 어떤 상대든 쉽게 접근할 수 있어 덕을 본 일은 종종 있기는 하다. 국력이 깡패라는 말이다. 하지만 자국민 네트워크의 끈끈함은 우리와 비교할 바가 못 된다.)


지사와 상사 주재원의 모임인 지상사협의회도 건설사협의회와 같은 형태로 운영된다. 다만 건설사협의회는 주재원이 모이는데 반해 지상사협의회는 가족까지 동반하는 경우가 많고, 그러다 보니 분기에 한 번 정도 모이는 것으로 알고 있다. 친목도모에 더 무게를 둔 것이 아닌가 싶다. 앞에서도 말한 것처럼 모임에서 뭘 의논하고 어떤 정보를 교환하느냐 하는 것보다는 네트워크를 탄탄히 만드는 게 모임 취지에 더 맞는 것이니 그것 역시 의미가 있겠다.


대사관에서는 기업인들을 대상으로 상반기와 하반기에 각각 경제협의회를 개최한다. 사우디 정부 인사나 전문가를 초청해 발주동향이나 시장현황에 대한 특강을 듣고, 애로사항을 함께 나누고, 함께 식사하는 것으로 마무리한다. 주로 중부지역과 동부지역에 거주하는 지상사협의회와 건설사협의회 구성원들이 참석하지만, 그 밖에도 사우디 정부기구나 공기업에 근무하는 교민, 한인회 임원, 대학에 재직 중인 교수들께서도 동참한다. 이 역시 교민 상호 간의 네트워크 뿐 아니라 초청한 사우디 인사들과의 네트워크를 구축해나가는데 큰 도움이 된다. 이와 별도로 제다 총영사관에서 서부지역에 거주하는 기업인들을 대상으로 경제협의회를 개최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한인사회는 세계 어디를 가나 교회가 있게 마련인데 이곳이라고 예외가 아니다. 그렇기는 하지만 공식적으로는 이슬람 이외의 종교를 허락하지 않는 곳이어서 구성원 모두가 극도로 말을 아끼고, 그래서 온라인에서는 좀처럼 이에 대한 정보를 얻기 어렵다. 이글에서도 이에 대한 언급을 삼가려 한다.


리야드에 거주하는 교민 중 단일 직종으로는 아마 간호사가 가장 많지 않을까 싶다. 별로 눈에 띄지 않으니 뜻밖이라고 여길 분도 많겠다. 백여 명 가까이 되지 않을까 짐작하는데, 그 중 많은 분들이 외국인 이용이 제한되는 국공립 병원에 근무하고 있어 한국 교민들과 마주칠 기회가 없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병원에서 증상을 설명하는 건 우리말로도 쉽지 않은 일이다. 그걸 영어로 설명하자니 병원 갈 때마다 신경이 쓰인다. 전문성이나 친절하기가 뛰어난 우리 간호사들을 병원에서 만날 수 있다면 큰 도움이 될 텐데, 그러지 못해 늘 아쉽다. 한 번은 한국 의사에게 치과 치료를 받은 일이 있었는데, 얼마나 마음이 편안했는지 모른다.


이전에는 주말마다 축구를 즐기는 동호회가 있었다. 요즘은 통 모인다는 이야기를 듣지 못했는데, 코로나 때문이 아닐까 싶다. 이밖에도 거주단지ㆍ자녀 학교ㆍ교회에 따라 자그마한 커뮤니티가 몇 개 있다. 교민이 많은 편은 아니지만, 개인적으로는 취미나 관심사별로 모이는 커뮤니티가 좀 더 활성화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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