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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인식 Aug 22. 2021

[사우디 이야기 60] 장기 숙박

사우디 이야기 (60)

부임 첫날 파트너 회사에서 예약해놓은 호텔에 들었다. 마땅한 숙소를 찾을 때까지 보름 정도 머물렀다. 리야드에 오랫동안 살고 계신 선배께서 게스트하우스를 소개해주셨지만 내키지 않아 사무실 근처에 있는 비즈니스호텔로 숙소를 옮겼다. 비즈니스호텔이라 해도 숙박비가 만만치 않으니 숙소로 삼기엔 부담이 컸고 식사를 해결하기도 어려워 어차피 게스트하우스로 옮기기는 해야 했다. 그렇다고 다른 곳도 별반 차이가 없어 차일피일 미뤘다. 2009년 부임 당시만 해도 리야드에는 게스트하우스가 서너 곳을 넘지 않았다. 말이 게스트하우스이지 모습은 하숙집과 다를 게 없었다. 주재원들은 가족과 함께 살았고 출장 오는 사람들은 호텔에 머물렀으니 게스트하우스 수요도 그다지 없었고, 그러다 보니 그저 빈 방에 하숙 치는 규모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몇 달 그렇게 지내면서 모든 것이 불편했다. 퇴근하고 숙소에 돌아와 다음 날 출근할 때까지 말 한 마디 건넬 사람이 없다는 것도 생각보다 훨씬 고단한 일이었다. 호텔에서 바쁘게 일하는 사람들을 세워놓고 수다를 떨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저녁도 혼자서 먹어야 하고, 한국 방송 프로그램 하나 보려면 밤새도록 파일을 받아야 했다. 그러니 다음날 출근할 때까지 입을 꼭 닫고 살 수밖에 없었다. 저녁을 먹는 것도 그랬다. 메뉴라는 것이 두세 사람이 가서 음식 두세 개 시켜놓고 나눠먹게 되어 있는 것이어서 혼자 먹을 수 있는 음식은 패스트푸드가 거의 유일했다. 마침 숙소 옆에 한국 음식점이 있기는 했어도 한국 음식이 아니라 ‘한국식’ 음식이다 보니 차라리 패스트푸드가 나았다.


그렇게 지쳐갈 때쯤 사람 만나러 들렀던 게스트하우스가 너무 마음에 들어 그날로 숙소를 옮겼다. 무엇보다 집안에 들어서니 거실 맞은편 벽이 온통 창문이어서 어찌나 환하고 밝던지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렇게 옮긴 게스트하우스에서 아내가 이사 올 때까지 한 해 넘게 살았다. 아마 그 때를 전후로 게스트하우스들이 자기 일을 하면서 남은 방으로 하숙을 치는 부업에서 전문적인 숙박업으로 바뀌지 않았나 싶다. 그 후로 몇 년간 객실이 적은 곳은 열 개 정도부터 많은 곳은 수십 개에 이르는 게스트하우스가 우후죽순처럼 들어섰다.


물론 그렇게 된 데는 장기 숙박 수요가 급증한 것이 큰 원인이었다. 건설사만 보더라도 지금은 리야드에 상주하는 업체가 채 열 손가락을 채우기 어려운데, 2010년대 초반에는 중소기업을 포함해 스무 업체가 훨씬 넘었다. 지사나 상사도 다르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공항 픽업 서비스는 기본이었고, 숙소가 깔끔하고, 퇴근하고 와서 편히 쉴 수 있도록 프라이버시를 보장하고, 생활하는데 불편하지 않도록 각종 서비스가 제공되기 시작했다. 고급스러워진 것이다.


객실마다 화장실이 있고, 객실 냉장고는 늘 간식으로 채워놓고, 빨래는 매일 세탁해 다음날 (속옷까지도) 다림질까지 마친 상태로 돌려주고, 운동기구도 마련해 놓고, 인터넷은 물론 인터넷 전화를 갖춰놔서 언제든 한국과 부담 없이 통화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거실도 널찍해서 식사를 마치고 나서 함께 모여 한국 드라마도 보고 수다도 떨 수 있었다. 조금 지나 거의 모든 게스트하우스가 그렇게 바뀌었지만, 내가 게스트하우스에서 지내던 당시에는 그렇게 갖춰놓은 곳이 그 집 하나뿐이었다. 그래서 출장 오기 전에 예약하는 건 당연한 일이 되었고 방이 없으면 호텔에 묵으면서 방이 나기를 기다리기도 했다.


그 당시 한국식당이 있기는 했지만 음식은 국적불명이었고 그렇다고 해먹기도 마땅치 않으니 가족 없이 혼자 지내야 하는 사람들은 음식으로 인한 고충이 이만저만 아니었다. 다행히 시내에 있는 게스트하우스에서 점심 손님을 받아 그런 어려움을 덜 수 있었다. 그런 집들도 저녁까지 파는 경우는 드물어서 저녁 식사를 하려면 미리 부탁을 해야 했다.


내가 묵던 게스트하우스는 따로 식사 손님을 받지 않았지만 식사 때 투숙객에게 손님이 찾아오면 그냥 보내는 법이 없었다. 물론 식사비는 받지 않았다. 다른 집들도 그랬다. (요즘도 식사 손님을 받는 경우 말고는 투숙객을 찾아오는 손님들에게는 식사비를 받지 않는 모양이다.) 금액으로 따지면 큰 것이 아니지만 손님을 맞은 입장에서는 무척 고마운 일이었다. 한 때는 게스트하우스 숫자가 급격하게 늘어 리야드에만 스무 곳 넘기도 했다. 자연히 경쟁이 치열해져 한 달에 두어 번 양고기 바비큐 같은 특식을 내기도 하고, 투숙객들에게 외식을 제공하기도 하고, 마당에 골프 연습시설을 만드는 것은 물론 한국에서 한창 유행한 실내골프장을 들여놓은 집도 있었다.


내가 게스트하우스에 묵을 때 하루 숙박비가 100달러였다. 처음 숙박비 이야기를 들었을 땐 믿을 수가 없었다. 당시 한 달에 3천 달러면 신입사원 월급보다도 많았으니 말이다. 물론 시설이 조금 뒤쳐진 경우 한 달에 2천 달러 정액으로 받는 곳도 있기는 했지만, 그 역시 하숙비로는 상상하기 어려운 금액이었다. 부임 초기에 출장이 잦았는데 출장 간다고 방을 비울 수도 없는 일이어서 결국 숙박비를 이중으로 지급하는 모양이 되었다. 호텔에서는 어쩔 수 없이 짐을 다 꾸려서 프런트에 맡기고 출장을 다녀왔지만, 다행히 게스트하우스에서는 그 정도는 양해를 해줘 이중으로 숙박비를 신청하는 일은 면할 수 있었다.


그렇게 게스트하우스가 늘어나다 보니 호텔을 통째로 빌려서 한국인을 대상으로 숙식을 제공하는 경우도 생겼다. 어느 곳은 지하에 찜질방까지 마련해 놓았는데 채 이용해볼 새도 없이 문을 닫았다. 한인 게스트하우스가 그렇게 많기는 해도 대부분 리야드ㆍ제다ㆍ담맘ㆍ주베일 범위를 벗어나지 않는다. 언젠가 얀부에 출장 갔을 때 한인 게스트하우스에 묵은 일이 있었다. 어느 작은 건설사에서 공사를 수주해 직원 기숙사 용도로 건물을 빌렸다가 계약이 깨지는 통에 어쩔 수 없이 게스트하우스로 운영을 한다고 했다. 한 해 쯤 뒤에 출장 갔을 때는 이미 철수하고 없었다.


주베일 인근에 현장이 있을 때 지연된 공정을 만회하기 위해 두어 달 현장에 머물러야 했다. 대중교통도 없는 리야드에 아내만 혼자 남겨둘 수 없어서 함께 지낼 곳을 찾았다. 침실 하나와 거실ㆍ주방ㆍ화장실에 기본적인 취사도구를 갖춰놓은 레지던스호텔이었다. 그곳에 머물다 보니 곳곳에 그런 숙소가 상당히 다양한 수준으로 운영되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우리나라에는 콘도형 숙소가 관광지에나 찾을 수 있는데 비해 사우디에는 이런 숙소가 오히려 숙박만 하는 호텔보다 많은 것이 아닌가 싶다. 호텔이야 온라인으로 예약도 가능하고 눈에도 잘 띄어서 그렇지, 이런 레지던스호텔 형태의 숙소는 찾아보면 곳곳에 수도 없이 많다.


리야드의 경우 침실 두 개짜리 레지던스호텔을 하루 60달러 내외, 한 달로는 1~2천 달러 정도에 구할 수 있다. 숙박비 60달러가 그리 비싼 건 아니지만 한 달로 따지면 그것도 작은 돈이 아니다. 게다가 직접 식사를 준비하는 것도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니다. 하지만 게스트하우스가 한 달에 최소한 3천 달러(요즘은 3천6백 달러를 받는 곳도 있다고 한다)이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고려해볼만한 대안이 아닐까 한다. 요즘은 일반 슈퍼마켓에도 한국식품이 다양하게 들어오고 있고 교민이 운영하는 한국식품점에서는 반찬도 파니 예전에 비해서는 혼자 살기가 훨씬 수월해졌다. 한국식품점 말고도 반찬을 만들어 배달하는 교민들이 있다고도 한다. 게다가 예전과 달리 인터넷이 발달해 있어서 한국 TV도 종류별로 골라 볼 수 있고 한국과도 얼마든 무료로 영상통화까지 할 수 있게 되었으니, 예전에 퇴근해 숙소에 들어가면 벽만 바라보고 있어야 할 때와는 상황이 근본적으로 달라졌다. 결국 게스트하우스의 효용도 그만큼 줄어들었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실제로도 예전 같으면 게스트하우스에 묵을 사람들이 이렇게 숙소를 구해 사는 경우가 상당히 늘었다. (쉽게 말할 건 아니지만 한 달 하숙비가 360~430만 원이라면 ‘황제하숙’ 논란이 일어날 만도 하지 않은가. 그래서 방을 얻어 자취를 한다고 해도 2백만 원이 훌쩍 넘는다.)


대중교통이 없는 곳이다 보니 아내가 장보러 갈 때 늘 같이 가야하고, 그래서 물가가 얼마나 올랐는지 매번 실감한다. 느낌으로는 십년 전에 비해서 생활물가는 두 배 이상 오른 것 같다. 그런 점을 감안한다면 지금 게스트하우스 하루 숙박비 120달러가 십 년 전 100달러에 미치지 못한다고 할 수 있지만, 그래도 그 자체는 엄청난 것이 아닐 수 없다. (다른 나라에 있는 게스트하우스도 별로 다르지 않다고 한다.) 점심 식대도 십 년 전에 10달러 정도 하던 것이 20-30달러가 되었다. 물론 수만리 떨어진 곳에서 한국 식재료로 한국음식을 만드는 걸 감안한다면 이런 불만(?)이 어쩌면 배부른 투정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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