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디 이야기 (61)
얼마 전에 사우디에 취업하려는 분의 가족이 리야드에서 살려면 돈이 얼마나 드는지 묻는 질문이 올라온 일이 있었다. 급여는 이야기가 된 것 같고, 그래서 그 급여를 받고 가는 것이 맞는지 판단해보려고 한다는 것이었다. 올린 글로 봐서는 생활물가를 물어본 것이지 싶었다. 하지만 리야드에서는 주택비와 교육비가 생활비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높기 때문에 생활비만 따지는 건 의미가 없다고 생각해서 생활물가와 함께 주택비와 교육비까지 설명하는 답글을 달았다. 다음날 보니 그 글이 삭제되고 없었다. 답글을 쓰면서 예상하지 않았던 비용에 놀라지 않을까 싶었는데, 혹시 당황했던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다 그런 건 아니겠지만 외국에 취업할 생각을 하는 건 좀 더 나은 대우를 기대하기 때문이 아닐까. 급여도 그렇고 자녀 교육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급여가 낫다는 이유만으로 자녀의 교육 여건이 형편없는 곳에 취업한다는 건 한국인의 정서로는 생각하기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사우디에 취업해 오는 이들이 올리는 질문 중에 학교에 대한 궁금증이 가장 많다. 요즘은 한국 학부모들이 지출하는 사교육비가 엄청나다고 한다. (자식은 사교육을 시켜보지 않았고, 손녀가 무상교육 받는 나라에 살아서 한국 사교육비가 어느 수준인지 거의 알지 못한다.) 그래서 한국 사교육비 정도면 이곳 교육비를 감당할 수 있지 않을까 싶고, 사실이 그럴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주택비는 우리로서는 짐작할 수 없을 만큼 높다. 물론 학비나 주택비도 천차만별이고, 회사에 따라 이를 별도로 지불하기도 하고 급여에 포함된 것으로 치기도 하니 조건을 잘 살펴봐야 생각지 않았던 지출로 인한 낭패를 막을 수 있겠다. 교육비, 주택비, 생활비 수준은 다음과 같다.
특별한 경우가 아니고서는 사우디 대학을 지원하는 일이 없으니 초중고 교육비만 살펴보겠다. 이곳 학교는 사우디학교와 국제학교로 나뉜다. 사우디학교는 아랍어로 교육하며 영어는 외국어로 가르친다. 국제학교는 이와 반대로 영어로 교육하고 아랍어를 외국어로 가르친다. 리야드에는 한국 교육부에서 설립한 초등교육과정의 한국학교가 있다. 국제학교는 영미계 학교와 아랍계 학교로 나뉜다.
리야드의 대표적인 영미계 학교는 아메리칸 스쿨과 브리티시 스쿨이 있다. 아메리칸 스쿨의 경우 입학금이 1천만 원, 1년 등록금은 유치원 과정이 1천5백만 원, 초중고등학교 과정이 3천만 원 선이다. 브리티시 스쿨도 이와 별로 다르지 않다. 아랍계 (딱히 아랍계라기보다는 영미계 학교를 제외한) 국제학교는 이에 비해 학비가 훨씬 적다. 학교별로 편차가 크기는 하지만 1년 등록금이 대체로 유치원 과정은 2~3백만 원, 초중고등학교 과정은 5~7백만 원 정도이다. 한국학교의 경우 교육부에서 예산을 지원하기 때문에 등록금이 연 120만 원 수준에 지나지 않는다. 그렇다고 한국학교의 커리큘럼이 다른 국제학교에 뒤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요즘에는 분위기가 상당히 바뀌기는 했어도 미비한 대중교통과 사회적 제약 때문에 여성이 집 밖에 나서는 건 여전히 어렵다. 그래서 이런 분위기에 익숙하지 않은 외국인들은 컴파운드라는 울타리로 둘러싼 주거단지를 선호한다. (컴파운드 안쪽은 복장이나 행동에 아무런 제약이 없는 우리나라 여느 아파트 단지와 다르지 않다.) 컴파운드에는 빌라(단독주택)도 있고 아파트(공동주택)도 있다. 규모에 따라 다르기는 하지만 대체로 부대시설이 갖추고 있다. 수영장이나 체육시설(Gym)은 기본이고 레스토랑ㆍ카페ㆍ슈퍼마켓ㆍ세탁소를 갖춘 곳도 많다. 요즘에는 가구나 가전을 제공하지 않는 곳도 생겨나기는 하는데, 기본적으로 컴파운드는 모든 가구와 가전을 제공하고 관리도 해준다. 그 대신 가격이 어마어마하다. 빌라는 보통 복층인데 3-침실의 경우 년 임대료가 6천만 원 정도이다. 비싼 곳은 9천만 원을 넘기도 한다. 아파트는 원룸 2~3천만 원, 2-침실이 3~4천만 원 정도 한다.
사실 컴파운드라고 해도 울타리로 외부와 분리되어 있다는 것과 부대시설이 있다는 것 말고 집 자체는 일반 주택과 큰 차이가 없다. 3-침실의 경우 빌라는 4~50평대, 아파트는 3~40평대 정도가 일반적이다. 하지만 일반주택은 컴파운드보다 훨씬 싸다. 4~50평대 빌라는 2~3천만 원, 3~40평대 아파트는 1~2천만 원 정도 한다. (컴파운드가 일반주택의 3~4배 정도라고 보면 된다.) 우리나라야 월세로 사는 경우가 많지 않아서 그렇지만, 사실 30평대의 일반 아파트가 월 100만 원 정도라면 어지간한 나라 수도의 집값으로는 그다지 높은 편이 아니지 않을까 한다.
요즘은 예전에 비해 갈 곳도 볼 것도 많아졌다. 그래서 예전에 비해 문화비나 외식비 씀씀이가 많이 커졌다. 그런 비용이야 취향에 따라 천차만별일 것이니 일률적으로 말하기 어렵다. 그런 비용을 제외한 생활물가는 대체로 한국보다 낮다. 생활물가는 공과금ㆍ교통비ㆍ의류ㆍ생필품ㆍ식품 정도로 보면 무난하겠다.
최근 들어 전기요금ㆍ수도요금이 대폭 인상되어 시민들의 불만이 매우 높아지기는 했지만 그래도 요금 자체는 비싼 편은 아니다. 나는 ‘3-침실 복층 빌라’에 사는데 한 달 전기요금이 겨울에 10만 원, 나머지 계절에는 20만 원 정도 나온다. 일반적으로 건평이 한국보다 넓고, 겨울에는 온전히 전기로 난방하고 나머지 계절에는 내내 에어컨을 켜야 하는 데도 한국 일반 가정의 전기요금과 별 차이가 없다. 수도 요금은 집세에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잘 모르겠지만 대체로 전기요금과 비슷하다고 한다. 통신요금은 한국보다 비싼 편이다. 핸드폰은 한 달 3~6만 원 정도, 인터넷은 50Mbps가 7~8만 원 정도이다.
리야드는 올 연말에 버스와 지하철 운행을 시작할 것으로 알려졌다. 그래서 곳곳에서 시운전 중인 지하철(대부분 지상철)과 버스가 눈에 띈다. 아직까지는 택시 말고는 대중교통이 없다는 말이다. 택시는 여성이 타고 다니기 위험하고 우버택시도 별로 다르지 않아 승용차가 거의 유일한 교통수단이다. 요 몇 년간 휘발유 값이 무려 네 배 인상되기는 했지만 아직도 리터에 650원 정도이니 한국의 절반에 지나지 않는다. 급격한 인상에 민심이 사나워져서 정부에서 당분간 인상하지 못하도록 아예 법으로 규정하였다.
생필품이나 의류는 사우디에서 직접 생산하는 게 그다지 많지 않고 있다고 해도 품질이 떨어진다. 거의 모든 생필품이나 의류를 수입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수입품의 품질도 좋고 품목도 다양하고 가격도 높지 않다. (이곳에 대중교통 없어 아내와 늘 함께 외출하는데, 그래서 한국에서 지낼 때 거의 모르던 생활물가를 이곳에서는 꿰고 다닌다.) 아마 최대로 잡아도 한국에서 지출하는 것 보다는 적을 것이다.
식품 같은 경우, 워낙 다양한 인종이 살다보니 품목 역시 여간 다양한 게 아니다. 채소ㆍ과일ㆍ유제품 같은 신선제품 대부분과 생선 중 절반 정도는 사우디에서 생산하고 육류나 가공식품은 수입품이 대부분이다. 특히 양념류는 생전 듣도 보도 못한 것이 빽빽하게 쌓여있다. 이슬람국가이다 보니 돼지고기나 술은 물론 그런 성분이 들어간 것조차 수입이 금지되어 있어 우리 입맛에 맞는 식품을 구하기 어렵기는 하다. 그런 특수한 경우를 빼고 나면 식품비는 한국보다 최소한 30% 정도는 낮을 것으로 생각한다. 소고기나 소갈비는 kg당 2만 원이면 먹을 만하고, 쌀(우리가 먹는 야포니카 품종) 5kg 한 포대에 1만 원, 채소나 과일은 품종도 다양하고 가격은 한국의 절반을 밑돈다. 가공식품이 한국보다 비싼 건 거의 보지 못했다.
이웃 분들도 생활비 씀씀이는 별로 다르지 않은데 식품ㆍ생필품ㆍ의류ㆍ교통비ㆍ공과금을 모두 합해서 대체로 어른 한 명에 월 50~60만 원 정도 계산하면 크게 차이나지 않는다. 어린이들은 그 절반 정도면 되지 않을까.
한국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집세를 내가며 컴파운드에 사는 건 회사가 집세를 부담하기 때문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나 같아도 집세를 회사에서 지불하는 게 아니라면 그렇게 비싼 값을 치르면서 컴파운드에 살 것 같지는 않다. 물론 모든 회사나 고용주가 다 그런 건 아니다. 사우디의 급여 체계는 본봉과 본봉의 25%를 주택수당으로 지급하는 것이 기본이고 회사가 주택을 제공하는 것도 가능하다. 아람코나 SABIC 같은 공기업에서는 자사 컴파운드를 제공하거나 회사가 지정한 컴파운드에 거주할 수 있도록 한다. 우리 회사는 임원은 주택을 제공하고 직원은 급여의 25%를 주택수당으로 지급한다.
하지만 교육비를 지급하는 회사는 그다지 많지 않다. 교육비를 지급한다고 해도 전액을 지불하는 경우는 드물고 일정액만 지불하는 경우가 많다. 다만 교육비는 자녀 4명까지 지급하기 때문에 학비 지급혜택을 받지 못하는 자녀는 거의 없다. 우리 회사는 교육비는 지급하지 않는다.
한국기업 지사의 경우는 예전에는 주택비와 교육비를 실비로 모두 지급했는데, 최근 몇 년 사이에 수주가 줄어들면서 혜택이 하나씩 축소되어가고 있다. 주택비가 줄 경우 대부분 그에 맞춰 집을 구하는데, 교육비가 준다고 학교를 바꾸는 경우는 보지 못했다. 적지 않은 돈을 보태가며 학교를 계속 보내는 걸 보면 한국 학부모들의 교육에 대한 열정을 새삼 깨닫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