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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인식 Sep 01. 2021

[사우디 이야기 62] 중동

사우디 이야기 (62)

사우디아라비아는 중동 국가이고, 아랍 국가이며, 이슬람 국가이다. 이렇게 말하면 그게 그거 아니냐고 되물을지 모른다. 중동이라고 하면 아랍 무슬림들이 사는 사막쯤으로 여기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란은 이슬람국가이기는 하지만 페르시아계로서 페르시아어를 사용하며, 이스라엘은 유대교를 믿고 이스라엘어를 사용한다. 레바논은 국민의 1/3 이상이 기독교인이고, 마론파 기독교에서 대통령과 참모총장을 정교회에서 국회부의장과 부총리를 맡으며, 성경에서 ‘레바논 백향목’이 아름다운 나무의 상징으로 표현되는 것처럼 울창한 숲을 자랑하기도 한다.


사실 ‘중동’이란 철저하게 유럽의 시각에서 생겨난 말이다. 유럽을 중심으로 동쪽에 있는 나라들을 가까운 곳에서부터 근동(Near East), 중동(Middle East), 극동(Far East)으로 부르는 것이다. 극동은 한국ㆍ중국ㆍ일본 3국으로 혼동의 여지가 없는데 반해 근동과 중동은 쓰는 사람마다 범위가 다르다.


‘중동’은 처음에는 페르시아만(Persian Gulf. 아랍국가들은 Arabian Gulf 혹은 The Gulf로 부른다)에 연해 있는 이란ㆍ이라크ㆍ쿠웨이트ㆍ사우디아라비아ㆍ바레인ㆍ카타르ㆍ아랍에미리트ㆍ오만을 부르는 이름이었다. 그러다가 범위가 차츰 늘어나 동쪽으로는 아프가니스탄ㆍ파키스탄, 서쪽으로는 이집트를 비롯한 북아프리카, 북쪽으로는 지중해 동쪽의 터키ㆍ레반트 지역까지 확장되었다. 이 중에서 지중해 연안국가인 레반트 지역을 별도로 구분해 ‘근동’으로 부르는 경우도 보이지만, 대체로 ‘중동’과 ‘근동’을 구분 없이 쓰고 있다.


구글 이미지로 올라와 있는 지도를 비교해보면 ‘중동’을 페르시아만과 지중해 연안국으로 한정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일부 북아프리카 마그레브 지역까지 포함해 ‘대중동’으로 분류하는 경우도 보인다. 마그레브까지 포함된 지역을 MENA(Middle East and North Africa)라고도 부른다. (리야드에 MENA라는 간판이 많이 보여 처음에는 무슨 뜻인가 했다.) 브리태니커사전은 아프가니스탄을 포함하고 있고 어느 지도는 파키스탄을 포함하기도 하지만, 빈도로 보면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을 ‘중동’으로 분류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그런데도 요즘 아프가니스탄 사태를 거의 모든 언론이 ‘중동문제’로 분류하고 있다. 아프가니스탄이 중동 끄트머리에 있기는 하지만 사회적으로나 종교적으로 중동과 더욱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이렇게 사람마다 정의가 다를 만큼 ‘중동’은 한 마디로 정의하기 어려운 곳이다.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는 '중동'>
<브리태니커사전에 올라온 '중동'. 아프리카 리비아ㆍ수단, 중앙아시아 아프가니스탄 포함>


<MENA(Middle East and North Africa) 지역>


‘레반트’는 일출을 뜻하는데, 아마 지중해를 중심으로 해가 뜨는 쪽이라서 그렇게 이름을 붙인 것이 아닌가 싶다. 그래서 지중해 동쪽 연안인 키프로스ㆍ시리아ㆍ레바논ㆍ이스라엘ㆍ요르단ㆍ팔레스타인을 ‘레반트’라고 부른다. 이 중 이스라엘을 제외하고는 모두 아랍 국가이자 이슬람 국가이다. 그 이스라엘 때문에 이 이름만 들으면 포연이 자욱한 느낌이 든다. 물론 이 지역의 분쟁이 오직 이스라엘 때문인 것만은 아니다. 이슬람 수니파와 시아파의 대립도 이슬람과 유대교의 대립에 못지않다.


<Levant 지역>


‘마그레브’는 해가 지는 쪽을 말한다. 이슬람에서 해가 넘어갈 때 드리는 저녁기도를 ‘마그레브’라고 한다. 지중해에 연해 있는 아프리카 북쪽의 모리타니와ㆍ모로코ㆍ알제리ㆍ튀니지ㆍ리비아가 이에 해당한다. 유럽에서 보자면 지중해 건너 남쪽 지역인데 서쪽을 뜻하는 이름을 붙였고, 아랍어에서 비롯된 이름이고, 북아프리카 중에서 이집트가 빠진 걸 보면 아마 이집트의 관점에서 붙여진 이름이 아닐까 싶다.


<Maghreb 지역>


결국 ‘중동’은 아랍계, 페르시아계(이란), 유대계(이스라엘), 투르크계(터키)와 같은 다양한 인종과 문화가 어우러진 한 마디로 정의할 수 없는 지역이다.


아랍 국가는 아랍어를 사용하는 국가를 말하며 인구는 3억 명을 헤아린다. 1945년 사우디아라비아와 이집트를 비롯한 7개국이 아랍연맹(Arab League)을 창설하였으며 1993년 코모로가 가입하여 회원국이 22개국이 되었다. 아프리카 마다가스카르 옆에 있는 섬나라 코모도를 제외하고는 모두 MENA에 위치하고 있다. 아프리카의 에리트레아와 차드도 자국어와 함께 아랍어를 공용어로 사용하지만 아랍연맹에 가입하지는 않았다. 참고로 이슬람에서는 예배 때 반드시 아랍어로 꾸란을 낭송하도록 되어 있어 이슬람 국가에서 아랍어가 널리 사용된다.


종교적 폐쇄성으로 인해 이슬람 국가 대부분은 법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다른 종교를 용인하지 않는다. 그래서 아프가니스탄ㆍ이란ㆍ터키ㆍ예멘ㆍ알제리ㆍ모로코의 무슬림(이슬람 신자)이 인구의 99%를 차지하고 있으며, 이어서 사우디아라비아ㆍ수단ㆍ파키스탄ㆍ우즈베키스탄ㆍ이라크ㆍ이집트ㆍ방글라데시ㆍ인도네시아가 90%를 넘는다(World Population Review). 이슬람 협력기구(OIC, Organization of Islamic Cooperation)에 57개국이 가입하고 있으며 무슬림은 19억 명으로 알려져 있다.


<무슬림 분포>


아랍 국가의 국민 대부분이 무슬림이기는 하지만 아랍 무슬림(3억 명)은 전체 무슬림(19억 명)의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무슬림의 대부분은 중앙아시아ㆍ아프리카 중북부ㆍ인도말레이 지역에 산다. 그러니 ‘이슬람=아랍인의 종교’라는 등식은 ‘기독교=서양인의 종교’라는 것만큼이나 잘못된 것이다. 터키(투르크계)와 이란(페르시아계)이 ‘중동’에 있는 건 맞지만 아랍인이 아니고, 팔레스타인인은 사는 곳도 중동이고 언어ㆍ문화적으로도 아랍인으로 분류되지만 정작 자신들은 아랍인 정체성보다 팔레스타인인 정체성을 더 강조하며, 아프리카인이나 필리핀 민다나오 무슬림, 말레이시아ㆍ싱가포르ㆍ브루나이의 무슬림, 이슬람이 주류인 국가 중 가장 인구가 많은 인도네시아의 무슬림, 파키스탄ㆍ방글라데시ㆍ인도의 남아시아인 역시 아랍인이 아니다. 아프리카 국가 중에도 무슬림이 다수인 나라가 많다.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ㆍ알바니아는 유럽의 발칸 반도에 위치한다.


반대로 아랍인이 다 무슬림인 것도 아니다. 아랍인 중에 기독교인이 3천 만 명가량 있는 것으로 추산된다. 이집트에는 콥트교회가, 시리아에는 정교회와 아시리아 동방교회가, 레바논에는 마론파 교회와 정교회가 있다. 이들은 아랍어로 예배를 드리고 하나님을 알라로 부르며 기도한다. 가장 교세가 큰 콥트 교회의 경우 이집트 인구의 10%정도를 차지한다. 1억에 가까운 이집트 인구를 생각하면 얼마나 큰 규모인지 알 수 있다. 시리아도 군인의 상당수가 기독교인이며, 내전 이전에는 인구 2200만 중 400만 이상이 기독교인이었다.


그러니 1) 서두에 말한 것처럼 ‘중동=아랍=이슬람’ 등식은 성립하지 않으며, 2) 전체 무슬림 중 아랍인은 1/6에 불과하고 대다수는 중앙아시아ㆍ아프리카 중북부ㆍ인도말레이에 사는 비아랍인이며, 3) 중동 대국 중 하나로 꼽히는 이란은 페르시아어를 사용하는 비아랍인이며, 4) 아랍국가 중 이집트ㆍ레바논ㆍ시리아는 기독교를 공식적으로 받아들이고 기독교인도 3천 만 명을 헤아린다는 점을 기억한다면 중동을 이해하는 첫 발을 떼었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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