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1월

by 박인식

멋진 일 (2020.11.01)


낙심한 이들을 일으켜 세우고, 북돋우고, 돕는 일. 참으로 멋지지 않은가. 감당하자면 돈이 만만치 않게 들 텐데, 돈 없이도 할 수 있는 길은 없을까?



기도 (2020.11.02)


삶의 목적은 걸어가는 방향이지 도달해야할 지점이 아니다. 때로 길에서 벗어났지만 방향을 놓치지는 않았다. 그것을 가능하게 한 것은 일과 시작하기 전에 드린 기도였다.



호칭 (2020.11.02)


아버지가 다른 분에게 가장 예의를 갖춰 부른 호칭이 ‘선생’이었다. 나도 그렇다. 그런 호칭을 받을만한 자리에 이른 적은 없지만, 누군가 나를 그렇게 불러준다면 정말 고맙겠다. ‘박씨’라고 불러줘도 반갑겠다. 아버지가 허물없이 여기시는 분을 그렇게 불렀던 것처럼.



교회 (2020.11.02)


혐오를 정당화하고 교회를 사유화하는 인간들로 가득 찬 교회라면 무너지는 것이 옳다.



지병 (2020.11.04)


간혹 일어서지 못할 정도로 심한 어지럼증을 겪는다. 한두 해에 한 번씩 그런 일이 있는데, 이번에는 꽤 오랫동안 괜찮았다. 아침에 눈을 떴을 때 온몸에 진땀이 나는 게 이상하다 싶더니 자리에서 일어날 수가 없었다. 비상약을 챙겨먹고 잠시 앉아있었다. 택시를 탈까 생각도 했다. 어지간히 가라앉은 것 같아 출근하면서도 운전할 때 여간 조심하지 않았다.


사는 동안 내 힘으로 걷겠다는 생각으로 꽤 오랫동안 열심히 운동해오고 있다. 그런데도 이런 일이 생기면 속수무책으로 가라앉기만 기다릴 수밖에 없다. 내가 열심히 운동하고 몸을 잘 관리한다고 되는 일이 아니라는 말이다.



경계 (2020.11.08)


체중을 줄이고 나서 거기 맞춰 옷 치수를 줄였다. 그러면서 이전에 조금 넉넉하게 입던 것과 달리 꼭 맞게 입기 시작했다. 체중관리는 줄이는 것보다 지키는 게 더 어렵다고 하니 그렇게 해서라도 긴장을 풀지 않으려고 한 것이다. 그래서 조금만 체중이 늘어도 곧 불편해지지만 그냥 불편한 대로 지낸다.


은퇴를 하고 나면 긴장할 일이 없으니 아무리 각오를 다진다고 해도 생활이 흐트러질 것이다. 치수를 몸에 꼭 맞도록 해서 체중이 느는 걸 경계하듯, 생활이 조금만 흐트러져도 이를 깨달을 수 있는 뭔가를 만들어놓아야 하지 않을까 싶다.



하나님의 뜻 (2020.11.09)


오랫동안 기도하며 묻고 또 묻고 깊이 묵상하는 가운데 내린 결정이라고 해서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보장이 없더라.



가치 있는 삶 (2020.11.09)


하루를 가치 있게 사는 것은 하루를 가치 있게 살겠다고 마음먹는 것이다. 하루를 가치 있게 살겠다고 마음먹은 사람이 빗나간들 하루 동안 얼마나 빗나가겠나. 어른이 되는 것도 이와 다르지 않다. 어른이 되겠다고 마음먹은 사람이 아이처럼 살 수야 없는 일 아닌가.



정치 (2020.11.09)


미국 대선을 계기로 ‘사람들을 편 갈라 서로 반목하게 만들고 부끄러운 일을 하고도 부끄러워할 줄 모르는 정치’가 종식되기를 기대한다.



트럼프주의 (2020.11.10)


이번 미국 대선은 바이든이 승리한 것이라기보다는 트럼프와 트럼프주의가 패배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다행스럽다. 놀라운 것은 미국 유권자의 절반에 가까운 사람들이 아직도 그를 지지한다는 것이다. 누군가 그 지지의 바탕에는 “그는 솔직하게 말해요(He speaks his mind)”라는 생각이 깔려있다고 했다던데, 걱정스럽게도 그것이 사실일 것으로 보인다.


누구라고 마음에 있는 생각을 속 시원히 뱉어내고 싶지 않을 것이며 뱉어낸 그대로 행동하고 싶지 않을까. 그렇게 해서는 공동체가 유지될 수 없고 그 결과는 결국 자신에게 고통으로 돌아올 것을 아니까 절제하고 사는 것이 아닌가. 하지만 그것이 표심을 자극하는데 효과적인 전략이라는 것이 드러난 이상 그런 시도는 끊임없이 되풀이 되지 않겠나. 내 나라 남의 나라 할 것 없이 선거 때마다 이렇게 몸살을 알아야 하는 것인가 싶어 걱정스럽다.



머뭇거리지 말라 (2020.11.11)


전진하기로 했으면 어떤 난관이 와도 헤쳐 나가고 포기하기로 했으면 다시 되돌아보지 말아야 하는데, 전진하기로 하고도 난관이 닥칠 때마다 머뭇거리고 포기하기로 하고도 미련 때문에 주춤거린다. 그러고도 어떻게 여기까지 왔나 모르겠다.



문제의 크기 (2020.11.12)


문제의 크기는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 것인가에 달린 것이 아니라 그것이 얼마나 내 곁에 가까이 있는지에 달린 모양이다. 가까이 있어 크게 느꼈던 문제를 풀고 나서 보니 그것 때문에 더 큰 은혜에 감사하는 것을 잊고 살았다.



기쁨 (2020.11.13)


샤워하고 나서 물기를 닦다가 갑자기 어지러워서 서있을 수가 없었다. 바닥에 주저앉아 아내를 불렀다. 온몸에 진땀이 나고 일어설 수가 없는데 아이들에게서 영상통화 오는 소리가 들렸다. 그 와중에도 아이들 보겠다고 물기를 닦은 둥 마는 둥 하고 서둘러 옷을 입었다. 언니 학교 갈 때 따라 갔다 왔다며 재롱떠는 작은 아이를 보고나니 정신이 좀 들었다. 그나저나 아내는 내가 꾀병 부리는 걸로 알았겠다.



40주년 (2020.11.16)


아내를 만나 부부가 되어 사십 년을 살았다. 지난 사십 년 어느 하루인들 소중하지 않은 날이 있었을까 마는, 그래도 사십 년 세월이 쌓아올린 오늘이 그 중 으뜸이 아닐까 한다.



감사 (2020.11.19)


지금 내가 이 글을 쓰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감사할 일 아닌가?



생명 (2020.11.19)


생사의 기로에 서있는 몇 분을 위해 기도하고 있다. 끝내 이겨내고 일어서기를 구하지만, 회복을 기대하기도 어렵고 회복한다 해도 고통을 벗어나기 어려운 분을 살려주십사 구하는 것이 옳은가 싶을 때가 많다. 마음 같아서는 차라리 고통에서 벗어나도록 생명을 거두어주시기를 구하고 싶기도 하다. 사람으로서 하나님께 구할 바가 아니기는 하지만.



나라를 위한 기도 (2020.11.19)


누구를 떨어뜨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누구를 뽑기 위해 한 표를 행사할 수 있도록 간섭하여 주옵소서.



나이가 든다는 것은 (2020.11.20)


교우 한 가정이 아버님께서 확진판정을 받으셔서 부랴부랴 한국으로 떠났다. 자가격리로 보름가까이 묶여 있어야 하는데도 서둘러 떠날 만큼 상태가 좋지 않다고 하셔서 모두가 걱정하고 있다. 예전 같았으면 내가 그런 일을 겪으면 어떤 마음일까 생각했을 텐데 지금은 내 자식이 그런 일을 겪으면 어떤 마음일까 싶은 생각이 들고, 그래서 자식 걱정시키지 않기 위해서라도 더 각별히 조심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별 (2020.11.22)


코로나가 오기 전까지는 매해 거르지 않고 아이들에게 다녀왔다. 헤어질 땐 언제나 섭섭했지만 그래도 다시 만날 날을 기약하는 것으로 섭섭함을 달랬다. 지난 연말에 아이들에게 가는 걸 잠깐 미뤘는데 코로나에 발이 묶여 그만 두 해 넘게 아이들을 못 보고 있다.


아버님께서 확진판정을 받으셔서 부랴부랴 한국으로 떠났던 교우가 오늘내일을 넘기기 어려우실 것 같다는 글을 올렸다. 아버님을 만나 뵙고 돌아올 수 있기를 기도했는데 그 소식을 들으니 마음이 무겁다. 지난번에 아버님을 뵙고 돌아올 때 그것이 마지막일 수 있을 거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을 텐데, 한국까지 가서 임종도 못하게 되었으니 그 마음이 얼마나 아플까.


그러고 보니 이제 아이들과 헤어질 때 그것이 마지막일 수도 있겠구나.



종이신문 (2020.11.22)


심심하면 한 번씩 빼먹던 종이신문이 더 이상 배달되지가 않는다. 몇 번을 채근하다 이젠 기대를 접었다.

어차피 온라인 신문을 보고 있어서 없어도 크게 불편하지 않을 줄 알았는데, 막상 종이신문을 보지 못하니 이곳에서 뭐가 중요하게 다루어지고 있는지 선뜻 감이 오질 않는다. 그러고 보니 어느 지면에 얼마나 크게 실렸는지 하는 것만으로 얻을 수 있는 정보가 상당했다. 온라인 신문은 전체를 보기 어려운데다가, 정작 궁금한 기사는 찾기 어렵고 신문사에서 강조하는 기사만 눈에 들어오도록 되어 있어서 내가 지금 상황을 제대로 읽고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신문배달을 다시 부탁해봐야겠는데, 한 부 넣자고 다시 우리 단지까지 오려는지 모르겠다.



위로 (2020.11.23)


고등학교에서 두 해나 짝을 했고 대학에서도 같은 과에서 공부한 친구가 있다. 결혼할 때 함도 내가 지고 가고 신부에게 굳이 노래를 시킨 것도 나였다. 그 짓궂은 성화에 신부는 판소리 춘향가 중 떠난 서방님을 절절하게 그리워하는 한 대목을 불러 모두를 숙연하게 만들기도 했다. 그런 친구가 상당히 진행된 상태에서 발견된 암을 치료하느라 몹시 고생을 하고 있다. 자주 연락하는 것도 부담이 될까 싶어 마음으로만 응원하다가 어제 모처럼 통화했다. 늘 긍정적이고 씩씩한 사람이 어제는 체념하는 듯한 말을 해서 가슴이 철렁했다.


스스로 죽음을 잘 받아들이겠다고 늘 다짐하고, 또 그런 의지를 잃지 않도록 지켜주시기를 매일 기도한다. 그런데 친구가 이런 상황이 되니 그가 이 고비를 잘 이겨내기만을 기도하게 된다. 왜 나와 남에 대한 생각이 다른 것일까? 혹시 죽음을 잘 받아들이기를 기도했던 것이 본심과 거리가 먼 것은 아닐까? 설령 본심이었을지라도 막상 그 상황이 되면 그렇게 달라질 수 있는 건 아닐까?


최근에 가족을 떠나보낸 이들이 부쩍 많아졌고 생사의 기로에 서있는 이웃도 하나둘이 아니다. 언제나 세상을 떠나는 사람들은 있고 생사의 기로에 서있는 사람들은 있었을 텐데, 왜 부쩍 그런 사람들이 많게 느껴지는 것일까? 어제 오늘 부쩍 날씨가 쌀쌀해졌다. 쌀쌀해진 날씨가 마음마저 서늘하게 만드는 것인지, 마음이 서늘해져 날씨가 더 쌀쌀하게 느껴지는 건지 모르겠다. 항암제 때문에 매일 고통스러워하는 친구, 어제 사랑하는 아버지를 잃은 교우 가정에 하나님의 깊은 위로가 함께 하시기를 빈다.



속내 (2020.11.25)


어려운 일이 닥쳤을 때 그 일에 함몰되어서는 헤어 나오기 어려웠다. 오히려 그간 내게 베풀어주신 은혜를 기억하며 감사하고 그 어려움 또한 잘 이겨낼 수 있도록 은혜를 허락하실 것이라고 확신하는 과정에서 이를 극복할 수 있었다. 그러다 보니 그 어려움으로 인한 고통은 한 번도 입 밖에 내지 못하고 속으로 삭여야 했다. 오늘 문득 그것이 성숙한 자세일지는 몰라도 정직한 건 아닐 수 있다는데 생각이 미쳤다. 그래서 다 쏟아내고 나니 속은 시원하다.



감사 (2020.11.26)


하루에 다섯 가지씩 감사할 일을 찾아 적어보라는 설교를 듣고 어제부터 일과 시작하기 전에 그렇게 하고 있다. 어디에 적을까 궁리하다가 그것이 일과의 시작이 되도록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업무노트에 적기로 했다. 적어 놓고 찬찬히 살피다 보니 감사할 일 어느 하나도 없어서는 안 될 일이었다. 오늘 감사한 일 중에 ‘이웃의 고통에 민감해진 것’이 있는데, 만약 그렇지 않았다면 나는 이미 괴물이 되어있지 않았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등골이 서늘해졌다.



불법사찰 (2020.11.26)


상대를 설득하기 위해서는 내 방식이 아니라 상대의 방식으로 말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상대의 방식이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나는 법이나 재판에 대해서 아는 게 없다. 그저 재판은 원고와 피고가 판사를 설득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할 뿐이다. 그러니 형사소송의 경우 검사는 원고로서, 변호사는 피고의 대리인으로서 판사를 설득하기 위해 법이 정한 테두리 안에서 판사의 방식을 알아내고 그에 맞춰 설득할 방법을 찾아내려 할 것이다. 나는 평생 그런 방식으로 일해 왔다. 그런데 상대를 설득하기 위한 최적의 방법을 찾아내기 위해 공개된 정보를 수집하는 게 옳지 않다고 하니 당황스럽다.


물론 비공개 정보를 불법하게 수집하거나 공개된 정보라고 해도 그것으로 상대를 부당하게 공격하는 건 옳지 않은 일이고, 그건 내가 말하는 바가 아니다.



입맛 (2020.11.26)


얼마 전부터 맛있는 피자를 하나 먹고 싶었다. 유명하다는 피자집에서 몇 번 사다 먹었는데 영 기대했던 맛이 아니었다. 또 다른 집에서 사와도 마찬가지였다. 오늘 교회 다녀오는 길에 굳이 아내를 끌고 피자 먹으러 갔다. 평소에 무척 맛있게 먹던 집이었는데 먹고 나서 괜히 왔다 싶었다. 피자 맛이 달라진 게 아니라 내 입맛이 달라진 모양이다. 어른들께서 나이 들면 맛있는 게 없다고 하시더라만, 정말 그런 모양이다. 그런데 순댓국도 그럴까?



경고 (2020.11.29)


커피를 사발로 마셔도 잠만 잘 자던 사람이었는데 요즘은 오후쯤 커피를 마셔도 제때 잠들지도 못하고 깊이 자지도 못한다. 커피 때문에 잠 못 잔다는 말이 내 이야기가 될 줄은 몰랐다. 어느 목사님께서 오십견을 앓으면서 나이가 들었다는 걸 새삼 깨닫고 자세를 고쳐 잡았다고 하셨는데, 음식을 먹어도 맛이 없고 오후에 커피 한 잔 마셨다고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하면서도 그걸 나이 들었으니 자세를 고치라는 신호로 알아듣지 못했다. 자세를 고칠 때까지 신호는 계속될 텐데, 다음번에는 어떤 신호가 오려나.



기억 (2020.11.30)


요즘 자기 나이를 나타낼만한 사건을 소셜미디어에 올리는 바람이 부는 모양이다. 짧지 않은 세월을 살았으니 기억할 것이 많은 게 당연한 일이지만, 그래도 기억을 되살리며 웃음 지을 일이 새록새록 떠오르는 걸 보니 지난 시간이 고단하기만 한 건 아니었던 모양이다. 그것도 감사.



가치 있는 일 (2020.11.30)


아침에 일어나면 먼저 감사할 일을 헤아리는 것으로 기도를 시작한다. 이어서 오늘 하루도 가치 있게 살기를 기도한다. 감사할 일을 헤아리다 보면 어지간한 근심은 떨쳐버릴 수 있고 새롭게 하루를 시작할 힘을 얻는다. 그러고 보면 감사할 일을 헤아리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하는 것보다 가치 있는 일이 어디 있겠나 싶다. 결국 감사로 하루를 시작하면 감사도 하고 가치 있게 살기도 하는 것이니 일거양득이 아닐 수 없겠다.



생명 (2020.11.30)


언젠가 귀국하는 분이 있어 가깝게 지내던 몇몇 가족을 초대한 일이 있었다. 그 중 한 분이 한 아름 되는 꽃다발을 가지고 오셔서 무척 반가웠고, 꽤 오래도록 현관 백자항아리에 꽂아놓고 들며나며 냄새도 맡고 즐거워했다. 뜻밖이라 하겠지만 선물 중엔 꽃을 최고로 여긴다. 그래서 꽃 선물 받을 때도 즐겁고, 줄 때는 더욱 즐겁다.


그래도 집에 화분 들여놓을 생각은 하지 않는다. 이곳으로 이사 오면서 벤저민 화분을 하나 들여놓고 몇 년 공들이다 죽였고, 몇 년 전에 부임하신 목사님께 선물하는 김에 함께 들여놓은 화분은 아직 살아있기는 하지만 그 사이 몇 번이나 고비를 넘겼는지 모른다. 그것도 생명인데 맡았으면 책임을 져야 할 일 아닌가. 남들은 그냥 놔둬도 잘만 크던데 왜 우리 집에서는 그렇게 시들시들한지도 모르겠고 그렇다고 각별히 신경을 쓸 성격도 아니니, 그저 책임질 일을 만들지 않겠다는 생각으로 남의 집 꽃나무만 넘보고 다닌다. 하지만 꽃이야 이미 꺾인 것이니 시드는 게 내 책임도 아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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