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2월

by 박인식

작은 선행 (2020.12.02)


조카 내외가 신혼 때 보증을 부탁하러 온 일이 있었다. 보증은 서지 않는 사람이라는 걸 알았을 텐데 얼마나 급하면 찾아왔을까 싶었다. 아마 몇 달치 월급쯤 되는 금액이었을 것이다. 결코 작은 금액은 아니었지만 그 아이들이 갚지 못하면 내가 대신 갚겠다는 생각으로 두말하지 않고 보증을 섰다. 그리고는 그 일을 잊었다.


간혹 조카사위가 우리 이야기를 하더라는 말을 들었다. 정말 막막했을 때 큰 힘이 되었다고 했다. 당면했던 문제를 해결했던 것도 그랬고 어려운 부탁을 외면하지 않고 선뜻 들어줘서 정말 위로가 되었다고 했다. 그래서인지 어쩌다 만나면 내게 유독 깍듯했다.


오래전부터 먹는 약이 있다. 한국 다녀온 지도 오래되었고 조만간 가기도 어려워 이곳에서 약을 구해야 하는데 어찌된 일인지 이곳 약국에는 없었다. 조카사위가 약품유통 쪽에서 일하고 있어 구해달라고 부탁했다. 다음날 구해놨다고 연락이 와서 아내가 돈을 보내마고 했더니 펄쩍 뛰더란다. 그러면서 다른 건 몰라도 앞으로 내 약만큼은 자기가 책임지겠다고 하더란다. 한국에 돌아가면 약을 부탁할 일이 생기기야 하겠나만, 그렇게 말해주니 무척 고마웠다.


여느 날처럼 아침에 감사할 일을 헤아리는데 이 생각이 났다. 신혼 때 입은 작은 도움을 며느리를 맞을 만큼 나이든 지금까지 기억하는 그가 고마웠고, 그들이 필요할 때 도울 수 있는 마음을 허락하신 것이 감사했다. 작은 선행이었는데 큰 보답으로 돌려받았다.



나라를 위한 기도 (2020.12.02)


생각지 않았던 재난으로 많은 이들이 이루 헤아릴 수 없는 고통을 겪고 있습니다. 인생으로 고생하며 근심하게 하는 것이 본심이 아니라고 말씀하셨으니 이 재난이 하나님께서 내리신 것이 아닌 줄 믿습니다. 생각해보니 지금 우리가 겪는 미증유의 재난은 우리 욕심이 빚어낸, 자연과 화목하지 못했던 우리 삶의 결과가 빚어낸 것이었습니다. 이제 우리에게 지혜를 허락하시고 용기를 허락하셔서 지금까지 우리가 가졌던 욕심을 버리고 자연과 화목한 삶으로 돌아가게 하옵소서. 그리고 이 재난을 극복할 길을 보여주시고 열어주셔서 이 재난을 통해 얻은 교훈을 헛되이 낭비하지 않게 도와주옵소서. 그러기 위해 무엇보다 먼저 이 백성들의 마음을 하나로 묶어주옵소서. 간절한 마음으로 구합니다.



차별 (2020.12.02)


함께 교회학교에서 일했던 자매가 대학 졸업할 때 우리 회사에 지원하기를 권했다. 수년간 함께 지내면서 능력과 성실함을 익히 지켜봤기 때문이었다. 공대를 졸업한 그 자매는 전체 평점이 4.0이 넘었고 B학점을 찾아볼 수 없었다. 자격증도 하나둘이 아니었다. 그런데 입사기준을 살펴보니 모든 항목을 만점 받아도 서류심사조차 통과할 수 없었다. 형제 많은 집이어서 스스로 학비를 해결해야 했고 그래서 4년 장학금을 선택하느라 대학을 낮춰갈 수밖에 없었는데, 그만 그것이 발목을 잡은 것이다.


서류심사 배점 중에 출신학교가 40점인가 했는데 거기서 30점 넘게 손해를 보았다. 서류심사 커트라인이 70점이었으니 응시 기회조차 얻지 못한 것이다. 괜히 마음만 다치게 한 것 같아 그 자매 보기 얼마나 민망했는지 모른다. 정작 당사자는 아무렇지도 않았는데. 아무렇지도 않기야 했겠나, 그걸 현실로 받아들이기까지 마음고생은 얼마나 컸을까.


그때 그 자매에 대한 내 평가는 옳았다. 지금 견실한 중견기업에서 탁월한 성과를 보여 이미 관리자급에 올랐다. 임원이 눈앞이겠다고 축하하는 내게 그럴 일 없다고 손을 내젓기는 했지만, 지금까지 그 회사에서 그의 능력을 제대로 평가해왔으니 조만간 좋은 소식을 들으리라 기대한다.


차별은 조직의 생존을 위협한다는 홍성수 교수의 글을 읽고 문득 그 자매가 생각났다. 나만 해도 옛사람이어서 대학의 우열은 감안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에는 선뜻 동의하지 못한다. 하지만 유능한 인재를 놓쳐 아쉬워하게 되면서 그때부터 차별에 대한 문제의식을 조금씩 갖게 되었다. 그런 생각이 나 하나만은 아니어서 이후로 심사기준이 점차 개선되었고, 적어도 출신학교 때문에 응시 기회조차 갖지 못하는 일은 더 이상 일어나지 않았다. 이제는 상시채용이 중심이 되면서 개인의 역량을 깊이 있게 평가할 수 있게 되었으니 그 문제는 대체로 해소되지 않았을까 싶다. 물론 머릿속에 자리 잡고 있는 편견이 그리 쉽게 지워지기야 하겠나만.


당시 출신학교 배점 차이가 컸던 것도 문제였지만, 어느 한 대학은 배점 40점 만점에 득점이 45점이었던 웃지 못 할 기준도 있었다. 믿거나 말거나.



왜 미워하는가? (2020.12.03)


국민으로서 나라를 위해 기도하는 게 당연한 일이지만, 아침에 기도할 때마다 울화가 주체할 수 없을 만큼 치밀어 한참씩 호흡을 가다듬어야 한다.


문득 내가 그들을 왜 미워하는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정의롭지 않기 때문이라고 자답은 했는데, 내가 말하는 정의가 무엇인지는 대답하지 못했다. 내게 정의를 판단할 역량은 있는지, 정의와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아왔으면서 정의를 운운하는 게 말이 되는 일인지 하는 물음에도 대답하지 못했다. 어쩌면 내 생각과 달라서 미워하면서 그것을 정의롭지 않기 때문이라고 포장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은퇴 설계 (2020.12.04)


주차할 때 자리가 보이면 바로 주차하는 사람도 있고, 어떻게 해서든 가까운 쪽으로 주차하려고 굳이 안쪽으로 들어가는 사람도 있다. 나는 전자에 가깝다. 덜 걸으려고 모험하느라 신경 쓰는 것보다는 얼른 털고 다음 일에 집중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멀찌감치 차를 세우고 들어갔는데 코앞에 빈곳이 보이면 아쉽기는 하지만, 그래도 그게 편하다.


주말에 모처럼 아내와 차 한 잔 하다가 은퇴하고 어떻게 살림을 꾸려갈까 하는데 화제가 미쳤다. 이미 주택연금을 이용하기로 결정한 터이라 오늘은 언제 시작해야 연금을 더 받을 수 있을까 이야기를 나눴다. 오래 살다보니 생각도 닮아 가는지 쉽게 결론 내렸다. 지금 당장 시작해도 우리가 필요한 만큼은 될 것이니 좀 더 받겠다고 모험을 하지는 말자고 했다. 아, 오해는 마시라. ‘필요한 금액’은 생계를 걱정하지 않을 정도이고, 그것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혹시 기회가 생겨서 손녀들 용돈 줄 정도 벌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을 것이고.



선물의 크기 (2020.12.04)


선물의 크기는 주는 사람이 아니라 받는 사람이 결정하는 모양이다. 작은 선행을 큰 선물로 여긴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그런 생각이 든다.



긍휼 (2020.12.06)


낮은 자리에 있는 작은 자, 약한 자를 긍휼히 여기는 것이 예수 정신이라고 한다. 그럴 리 없다. 예수께 낮은 자리ㆍ작은 자ㆍ약한 자와 같은 구분이 있을 리 없으니 말이다. 그리고 예수 이외에 누가 긍휼을 말할 수 있다는 말인가. 우리는 그의 긍휼을 입어야 할 존재에 지나지 않는데. 우리가 할 수 있고 해야 할 일은 그저 모든 이들과 화목을 이루는 것일 뿐.



남편 (2020.12.07)


언젠가 뭔가 바쁘게 하고 있는데 아내가 와서 친구 이야기를 했다. 그만 했으면 좋겠는데 자꾸 계속하길래 “왜 내가 그 이야기를 듣고 있어야 하냐”고 한 마디 했더니 그만 분위기가 싸늘해졌다. 나도 말해놓고 아차 싶기는 했다. 그 후로 아내가 가끔 “저 사람이 내 남편이 맞나 싶은 생각이 들 때다 있다”고 한다. 아마도 그때 일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닌가 싶다. 나에 대한 아내의 평가는 보나마나 낙제점을 넘기 어려울 것이다.



사우디 이야기 (2020.12.07)


십 년 넘게 사우디에 살다보니 이것저것 경험한 것이 적지 않다. 보잘 것 없지만, 누군가 내 길을 따라 걸을 사람이 있다면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얼마 전부터 그동안 경험한 것을 하나씩 정리하고 있다. 혹시나 잘못된 내용이 있으면 없느니만 못하게 될 것이어서 내용 하나 숫자 하나 일일이 확인한다. 그래도 쓰고 나서도 자잘하게 고친 게 꽤 많다.


살면서 겪은 경험을 정리한다고 시작했는데, 쓰다 보니 일하면서 얻은 전문적인 내용도 들어가게 되었다. 대중이 관심을 가질 내용은 아니지만 한두 사람에게라도 필요하다면 그것으로 충분히 의미가 있겠다. 처음 와서 막막할 때 여러 곳에서 정보를 얻은 신세를 갚는 일이 되었으면 좋기도 하겠고. 쉰 개쯤 되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그것보다 넘어갈 것 같다. 잘 마무리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나라를 위한 기도 (2020.12.07)


언제인가부터 나라를 걱정한다는 이유로 정쟁에 관심을 너무 많이 두고 있다. 나라를 걱정하는 게 국민으로 마땅한 도리이기는 하지만 시간도 많이 빼앗기고 무엇보다 마음이 너무나 어지럽다. 사실 그것이 나라를 걱정하는 옳은 방법인지도 모르겠고, 나라를 걱정한다는 게 격에 맞지 않는 일이 아니었나 싶기도 하다. 앞으로는 그 시선을 힘들게 살아가는 이웃에게로 좁혀볼까 한다.



동력 (2020.12.08)


일을 시키는 것보다 일을 직접 하는 게 편하고 즐거웠다. 그래서 일을 시켜야할 상황에서도 뭔가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놓지 않으려고 했다. 그것이 이 나이까지 현직에 머물 수 있는 동력이 아니었을까 한다.



감사 (2020.12.08)


내가 감사하는 일이 누군가를 절망하게 만든 이유라면 그것도 감사하는 게 옳은가?



위로 (2020.12.08)


아내에게 오래 전에 혼자가 된 친구가 있다. 손녀가 수술을 받고 아직 치료 중이라 요즘은 도와주느라 딸네 집에서 지낸다. 그렇지 않아도 감염이 될까 조심해야 하는데 코로나까지 겹쳐 집안이 온통 비상이라고 한다.


며칠 전에 함께 어울려 지내던 친구 하나가 남편을 떠나보냈다. 누구보다 그 슬픔을 잘 이해하지만, 그래서 누구보다 먼저 찾아가서 위로하고 싶지만 손녀 때문에 갈 생각을 하지 못했다고 했다. 뜻밖에도 발인 날 딸이 엄마한테 걱정 말고 다녀오라고 등을 떠밀더란다. 누구보다 엄마가 가서 위로해 줘야 하지 않느냐고 하면서. 못 올 줄 알았던 이를 맞은 친구는 크게 위로를 받았다면서 남편 곁에서 함께 아파하면서 비로소 먼저 남편을 떠나보낸 친구의 고통을 이해할 수 있었다고 했단다.


저녁 식탁에서 아내에게 그 이야기를 듣는데 내가 고마웠다. 손녀가 수술 받을 때부터, 친구 남편이 병상에 들었을 때부터 아내와 함께 기도하고 있어서 더욱 그렇게 느껴졌을 것이다. 그나저나 손녀가 요즘 많이 컸다는데 주말쯤 영상통화나 한 번 하자고 해야겠다.



어른 (2020.12.09)


아침 묵상 시간에 많은 걸 깨닫는다. 그런데 깨닫기만 하고 실천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그래서야 어른이라 할 수 있겠나.



위로 (2020.12.09)


올 한 해 많은 이들이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연말이 되면서 오히려 거리두기가 강화돼 만회할 마지막 기회마저 놓친 이들의 고통이 가중되고 있다. 하나님께서 이들을 찾아가 위로해주시기를 기도하지만, 그것이 인생에 대한 근본적인 위로일지언정 당장 호구지책이 필요한 그들에게는 허망한 수사로 들리지 않을까 싶은 생각마저 든다. 모두가 무엇보다 먼저 이 문제에 집중해주기를 기대한다.



숙제 (2020.12.10)


우리는 매 순간 숙제를 안고 살아간다. 숙제야 워낙 부담스러운 것이지만 매번 고통스러운 건 아니고 때로는 즐겁고, 그래서 기다려지는 것도 있다. 나이가 들어가니 숙제가 점점 줄어든다. 숙제가 줄어드니 편하기는 한데, 숙제 마치고 난 후의 홀가분함을 느낄 일 또한 줄어들어 아쉽다. 이러다 보면 숙제가 주는 부담감마저 그리워지는 날도 오겠다.



은혜 (2020.12.10)


심은 대로 거두었다고 내 것이 아니다. 세상에 심기만 하고 거두지 못한 채 사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거둔 것을 감사하게 여기고, 거두게 하신 이의 뜻을 따라 나누는 것이 옳다.



끊어내기 (2020.12.13)


살다보면 뭔가 끊어야할 일이 생긴다. 끊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끊기 어렵다는 반증인데, 해보니 생각을 바꾸지 않고 행동을 바꾸는 건 불가능하더라. 그러니 뭔가 끊으려면 머릿속에서 관심을 들어내는 것이 먼저가 되어야 하겠다.


정치에 관심을 두는 것이 나라를 걱정하는 사람으로서 할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거기에 너무 많은 시간을 쏟았다. 그걸 깨닫고 나서 그 시간을 줄이려 했지만, 그런 생각이 들 때 잠깐 효과가 있었을 뿐 다시 원상태로 돌아갔다. 어느 날 나라를 걱정할 일이 정치 말고도 많다는 데 생각이 미쳤고, 그리로 관심을 돌리고 나니 자연스럽게 그 늪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그렇게 한 주일을 보냈다. 아직은 잘 유지하고 있다.



무위 (2020.12.14)


뭔가 해서 보탬이 될 수 있지만, 아무 것도 하지 않아서 보탬이 되는 일도 적지 않다. 나이가 드니 하지 않고 나서지 않는 게 보탬이 되는 일이 훨씬 많구나.



서평 (2020.12.14)


배운 것은 잊기 쉬워도 가르친 것은 좀처럼 잊히지 않는다. 책 읽는 것도 그렇다. 책 읽으면서 메모를 하거나 읽고 나서 독후감이라도 쓰면 기억에 오래 남는다. 그런 면에서 서평 쓰는 건 권할 만한 일이다. 서평을 쓰자면 저자의 행적이나 평소의 생각도 살펴야 하고 책과 관련된 내용도 함께 살피게 되니 자연히 기억에 깊게 각인될 수밖에 없다. 그 진미를 남보다 늦게 깨닫기는 했지만, 서평을 쓰기 시작한 건 두고두고 칭찬 받을 만하겠다.



장담 (2020.12.14)


지난 4월 사우디 보건부장관이 감염자가 20만 명에 이를 것이라고 발표한 걸 보면서 모두들 위기를 너무 과장한다고 생각했다. 감염자가 추정치를 넘어 30만 명에 이르게 되면서 한국에 있는 사람들이 부러웠다. 어제 한국의 신규 감염자가 기어코 천 명을 넘었다. 사우디는 9월 들어서면서 천 명 밑으로 떨어져 계속 줄어들다가 최근 열흘 넘게 100명대를 유지하고 있다. 잠깐 만난 지사장 한 분이 어제 한국에서 가족이 돌아왔다고 해서 다행이라며 축하해줬다. 그런 날이 올 줄은 몰랐는데. 한동안 감염의 온상으로 지탄을 받았던 대구가 이번엔 감염 청정지역으로 화제에 올랐다. 그러고 보니 세상에 장담할 수 있는 일이 아무 것도 없다.



어른 (2020.12.15)


자기 자신에게 한 약속을 지킬 수 있으면 어른이라 할 수 있겠다.



모순 (2020.12.17)


아침 출근길에 중대재해처벌법에 대한 방송을 들었다. 고통 받는 이웃을 위해 기도한다면서 정작 그들을 위한 법이 논의되고 있는 것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러면서 어떻게 이웃을 생각한다는 건지 모르겠다. 출근하고 나서 어머니 전화를 받았다. 궁금해서 전화했다고 하시지만 무심한 자식에 대한 섭섭함이 그대로 전해졌다. 어머니께도 무심한 자식인 주제에 고통 받는 이웃을 걱정한다니, 내가 봐도 말 같지 않다. 여느 때처럼 일과 시작하기 전에 감사할 일 다섯 가지를 적는데 하나를 채우지 못했다. 그러다 생각이 여기에 미쳐 마지막 하나를 ‘모순된 자신을 깨닫게 하신 것’으로 채웠다. 민망한 일이다.



평안을 구함 (2020.12.21)


상황은 달라진 것이 없는데 어느 날은 구름 위를 걷고 어느 날은 시궁창에 처박힌다. 결국 인생만사 마음먹기 달렸다는 말이다. 그런데 그 마음이 어디 내 뜻대로 먹어지는가. 노력해도 좀처럼 나아질 길이 없으니 평안한 마음을 허락하십사 구할 수밖에.



포기 (2020.12.21)


어렸을 때는 일을 하고 싶은 일과 하기 싫은 일로 나눈다. 사회에 나오면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로 나누기를 요구한다. 그렇게 부대끼다 보면 결국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로 나눌 수밖에 없음을 깨닫게 된다. 포기가 삶의 한 방편인 것을 배워간다는 말이다.



감사할 일 찾기 (2020.12.22)


업무수첩에 감사할 일 다섯 가지를 적는 것으로 하루 일과를 시작한다. 감사할 일이 어디 다섯 가지 뿐일까만, 매일 새롭게 다섯 가지를 적는다는 게 생각만큼 쉽지는 않다. 그렇기는 해도 억지로라도 감사할 일을 찾다보면 잊고 있었던 일, 미처 깨닫지 못했던 일을 찾게 되고 그 깨달음 또한 감사할 일이 된다.


오늘은 두어 가지 적고 나서 꽉 막혔다. 입버릇처럼 감사하는 일을 적을까 생각하기도 했지만 더 찾아보기로 했다. 산해진미가 널렸는데 매일 먹는 반찬만 챙겨먹는 어리석은 사람은 없을 테니 말이다.



묵상 (2020.12.22)


지금까지는 아침 묵상을 의무로 여겼다. 오늘 아침 비로소 묵상이 가져다주는 평안함을 온전히 깨달았다. 더 이상 의무가 아니니 이제는 누릴 일만 남았다.



다짐 (2020.12.23)


아침마다 오늘 하루를 가치 있게 보내겠다고 다짐한다. 그 결과 매일 매일의 삶이 더 가치 있어졌는지는 모르겠지만 삶을 대하는 태도, 사람을 대하는 태도, 문제를 대하는 태도가 조금씩 너그러워지는 것 같기는 하다.



선대(善待) (2020.12.23)


국민으로 국가를 걱정하는 것이 옳다. 그리고 그 걱정은 구체적인 행동으로 이어질 때 비로소 의미를 갖는다.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일은 이웃을 선대(善待)하는 일 뿐이니 그 일에 힘쓰려 한다. 비록 사소한 일이기는 하지만 그것으로 세상이 조금씩 나아지기를 기대한다.



온라인 파티 (2020.12.24)


혜인이는 한 달 내내 성탄절 오기만 기다렸습니다. 친가 외가 모두 첫 손주이다 보니 선물 갯수가 꽤 되지요. 아빠 엄마 친구들에게도 이런저런 선물을 받은 모양입니다. 이번에는 영상통화하면서 선물을 같이 열어보기로 했습니다. 내친 김에 저희도 깊이 아껴뒀던 와인을 꺼내고 안주도 몇 가지 만들어 온라인 성탄 파티를 준비했지요. 코로나로 길이 끊겨있어서 궁여지책으로 생각해낸 건데 왜 진작 그런 생각을 못 했나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그 생각에 날아갈듯 퇴근했습니다.


음식 다 준비해놓고 이제나 저제나 전화오기만 기다리는데 혜인 엄마가 갑자기 손님이 오셨다며 가시고 난 다음 전화하겠다는 문자를 보냈습니다. 한 시간이 지나고 두 시간이 지나도 소식이 없었습니다. 조금 더 기다리다가 혜인이를 불렀지요. 손님이 들을까 계단에 앉아서 전화를 받는데 아주 애가 타는 모습이었습니다. 왜 안 그랬겠습니까. 오늘이 오기만 기다렸고 아침에 일어나서는 저녁이 되기만 기다렸는데, 갑자기 손님이 오셔서 가실 생각을 하지 않으니 말입니다. 15분만 더 있으면 오신지 다섯 시간이 된다고 말하는데 어찌나 안타깝던 지요. 제가 다 원망스럽더라구요.


손님이 가시고 난 다음 전화가 왔습니다. 우리는 기다리다 먼저 저녁을 먹었고, 혜인네는 저녁 준비를 하지도 못한 채로 선물부터 열었습니다. 처음으로 해보려했던 온라인 파티의 꿈은 그렇게 날아갔습니다. 전화를 끊고 났는데 눈치 없는 손님에게 부아가 나더군요. 우리야 그렇다 치고 오직 그 시간만 기다리던 혜인이가 얼마나 속상했을까 싶어서 말이지요.


그런데 이상하지요? 자식이 그럴 때는 그런가보다 했는데 손녀가 그러니 마음이 아프더란 말이지요. 아픈 정도가 아니라 막 쓰렸습니다. 못된 사람들 같은이라구. 눈치가 없으면 염치라도 있어야지...



믿음 (2020.12.27)


평생 나를 지키시고 인도하신 분께서 앞으로도 같은 은혜를 허락하실 것이라고 믿는 것은 매우 합리적이다. 그러나 때로는 그 합리적인 생각에 의심이 들기도 한다. 오늘 아침, 그렇게 끊임없이 의심하는데도 불구하고 한결같이 지키시고 인도하신 은혜를 다시 깨달았다.



새해기도 (2020.12.27)


첫째, 매일 다섯 가지를 감사할 것

둘째, 매일 가치 있는 삶을 추구할 것

셋째, 이웃의 고통에 공감하고, 낙심한 이웃을 격려하며, 도움이 필요한 이웃에게 손을 내밀 것

넷째, 아름답게 나이 들어가기를 애쓰고, 매사에 한 발 물러설 것

다섯째, 삶을 잘 마무리할 것



은퇴 (2020.12.31)


올해 가장 잘한 일이 연초에 교회 모든 자리에서 물러난 것이 아닌가 한다. 교회의 정년이 일흔이기는 하지만, 끝맺음이 아름답지 못했던 선배들을 보며 정년을 당겨 물러나는 것이 부덕의 소치를 줄일 수 있는 길이라고 생각해왔다. 막상 물러나려고 하니 공교롭게 교회에 작은 소란이 있었고, 그래서 그런 결정이 무책임한 것일 수 있다는 생각이 잠깐 들기는 했다. 하지만 내가 남아서 뭔가 역할을 해보겠다는 것도 교만한 일이겠다는데 생각이 미쳤다.


한 해의 끝날, 지난 한 해를 돌아보니 교회의 리더십은 오히려 더 튼튼해졌다. 이로써 하나님 교회는 하나님께서 지키신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깨닫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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