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면서 시비와 선악을 분별하는 일이 흑백을 분별하는 것처럼 선명하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 일이 없기야 할까마는 대부분은 회색 어디쯤이니 이를 분별할 때마다 매번 난감하다. 세월이 흐른다고 나아지는 것 같지도 않고. 그저 조심하고 또 조심할 수밖에.
한 해 전에 교회 안에 작은 소란이 있었고, 그 때문에 가까이 지내던 손위 교우 몇 분과 소원해졌다. 오해를 풀 사이도 없이 코로나 때문에 교회에 모이지 못하게 되면서 그분들과 화해할 기회를 놓쳤다. 코로나 백신 접종을 신청하면서 손위 교우들께서 신청하는 게 쉽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핑계 김에 전화를 드렸더니 그렇지 않아도 신청이 제대로 되지 않는다고 하셨다. 이때다 싶어 찾아뵙고 예약 날짜까지 잡아드렸다. 만나면 서먹할 줄 알았는데 반갑기만 하더라.
자식 내외가 교회의 화목을 아우르는 가정이라는 칭찬을 들었다는 소식을 듣고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그러면서 정작 우리 내외는 교우들과 화목을 이루지 못하고 있어 몹시 부끄러웠다. 백신 덕분에 연초에 무거운 짐 하나를 덜었다.
감사할 일은 생기는 것이 아니라 발견하는 것이다. 그러니 감사할 일이 생기기를 기다릴 게 아니라 애써 찾아야 한다. 찾지 않으면 감사할 일인 줄도 모르고 지나가게 되는데, 감사할 일을 두고도 알아차리지 못하면 너무 억울하지 않은가?
올해 들어서면서부터 이웃의 고통에 공감하고, 낙심한 이웃을 격려하며, 도움이 필요한 이웃에게 손을 내밀 수 있기를 기도하고 있다. 생각해보니 이웃의 어려움을 보면 팔 걷어붙이고 나서기를 망설이지 않는 아내로부터 받은 영향이 아닌가 싶다.
엊저녁 뭔가 찾을 게 있어 책상을 뒤지다 보니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물건이 서랍마다 가득했다. 옛날에 어른들이 물건을 버리지 못하고 곳곳마다 쟁여놓은 걸 보고 흉을 봤는데, 이제는 내가 흉보던 그런 어른이 되었다. 나중에 다시 찾게 되면 어쩔까 싶어 몇 개만 버리고 말았는데 생각해보니 그게 미련이더라. 오늘 다 털어버려야겠다. 물건뿐 아니라 되지도 않는 일에 걸었던 미련도 함께, 과감하게.
아내에게 늘 고마워하면서도 소소한 지적 하나 때로는 푸념 하나 넉넉하게 받아들이지 못하고 꼭 얼굴을 그 표시를 드러낸다. 나이는 어디로 먹는지.
누군가를 위해 기도한다면서 그가 어떻게 지내고 무슨 생각을 하는지도 모른다면 중언부언하는 기도밖에 더 되겠나. 그가 하는 일, 가지고 있는 생각에 관심을 둔다면 하나님께서 나를 도구로 삼으셔서 그 기도에 응답하실 수도 있을 것이고.
몇 년째 회복될 수 없는 병을 앓고 있는 분을 위해 기도하고 있다. 처음에는 고통을 덜어주시기를 기도했고 고통 때문에 평안을 잃지 않기를 기도했다. 이제는 호흡마저 자력으로 하기 어렵다는 소식에 차라리 그 생명을 거두어가시기를 기도했다. 어느 날 문득 희망마저 없는 오랜 고통의 시간이 그분이나 가족들에게 고통스럽기만 한 것은 아닐 수도 있다는 데 생각이 미쳤다. 그래서 다시 그분과 그분의 가족에게 흔들리지 않는 평안을 허락하시기를 기도했다. 기도한다고 고통이 덜어지는 건 아니겠지만 평안을 잃지 않을 힘은 허락하시지 않겠나.
거절은 짧고 분명해야 한다. 할 수 없는 일이거나 하고 싶지 않은 일인데 거절하는 것을 야박하게 여겨 망설이다 보면 오히려 상대를 더 언짢게 만들 수 있다. 거절하지 못해 내키지 않는 일을 하게 되면 내가 힘들고 그러다가 중간에 그만두면 상대와 내가 모두 언짢아지니 오히려 처음에 조금 야박하게 구느니만 못하다.
화목을 일구는 사람이라는 게 가장 큰 칭찬인 줄 알고 그렇게 살려고 애는 쓴다. 그렇기는 해도 모든 이들과 화목하게 지내는 게 내게는 가능한 일이 아니다. 그런데 모든 사람과 화목하게 지내야 하는 게 당연한 일일까?
세상을 살아가는데 지켜야할 선(線)이라는 게 있다.
낯선 곳에 살다 보니 이웃이 얼마나 소중한지 모른다. 그래서 이웃들과 함께 식사를 나누며 수다 떨 수 있는 자리가 언제나 반갑다. 오랫동안 근무하다 떠나시는 분이 있어 송별의 자리를 만들고 그날이 오기만 기다렸다. 이제 오늘이면 손님이 오시게 생겼는데 엊저녁에 퇴근하고 돌아오니 단지 안에 확진자가 생겼다며 몇 가지 유의사항을 담은 안내문이 와있었다. 스포츠강습을 포함한 행사를 두 주 동안 금지하고 확진의 계기가 된 지난 주말 아랍인 행사에 참가한 사람은 자가 격리하라는 내용이었다.
단지 안에 한인은 우리뿐이니 다른 집하고 왕래도 없는 터이어서 우리에게 해당되는 내용이 없고 관리사무소에 찾아가 직접 확인까지 했지만, 오늘 오시라고 한 손님들은 마음 내켜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잠시 망설였다. 며칠 전부터 아내가 장을 보고 음식도 다 준비해놨는데 자리를 미루기도 파하기도 쉽지 않은 일이었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기다렸던 일이 무산되는 아쉬움도 있었고. 아내는 그래도 알려드려야 하지 않겠냐고 했다. 그게 옳겠다 싶어 마음을 비우고 전후사정을 알려드렸다. 행간에 아쉬움을 잔뜩 담은 채.
모두들 흔쾌히 오신단다. 오케이! 이제 해만 떨어지면 된다.
오랫동안 누군가를 위해 기도하다 보면 나와 그가 하나가 되는 신기한 일이 일어난다. 마치 내가 그인 것처럼 함께 아프고 함께 기쁘다. 그러고 보면 누군가를 위해 기도하는 것은 누군가를 이해하고 그의 삶을 경험해 내 삶의 폭을 넓히는 유익이 있다.
매일 아침 감사할 일 다섯 가지를 적는 게 쉽지는 않다. 애써 찾아도 다 채우지 못하는 날도 있는데, 그런 채로 묵상을 하다 보면 그것을 채울만한 일이 늘 떠오르고 때로는 넘치기도 한다. 그래서 다섯 가지를 채우지 못하면 안타깝기보다는 무엇을 더 깨닫게 될까 오히려 기대된다.
밤새 한 번 깨지도 않고 깊게 잠들었다. 아침 커피도 향기롭고, 출근길에 보이는 한겨울 아침 하늘은 또 얼마나 투명하고 아름답던지. 뭐 좋은 일이 생기려고 이러나 생각했다가 곧 마음을 고쳐먹었다. 이것이면 됐지. 더 바라면 욕심이지.
약속에 늦는 사람을 매우 싫어한다. 그러면서도 매번 끝까지 기다린다. 없는 걱정도 사서 한다는 말을 들을 만큼 걱정이 많다. 그렇다고 걱정 때문에 맞서야하는 일을 피한 적이 없고 걱정한 일이 일어났다고 해서 포기한 적도 없다. 뭔가 새로 시작하는 것에 매우 신중하다. 하지만 시작한 일을 도중에 그만 둔 기억이 없다.
어렸을 때 아버지가 내게 용두사미라고 나무라셨는데, 그것이 평생 족쇄가 되었던 모양이다. 지금 이런 내 모습을 보셨다면 뭐라고 하셨을까? 그러고 보니 돌아가신지 오래 되었는데도 내 삶은 아직도 아버지를 기억하는가 보다. 나는 자식에게 어떤 아버지로 기억되고 있을까?
이웃의 고통에 공감하기 위해서는 이웃의 고통에 민감해야 하며, 이웃의 고통을 전체가 아닌 개인으로 이해해야 한다.
새해에 쉰이 되었다는 한 논설위원의 칼럼을 읽었다. 논설위원이라면 원로급 언론인 정도 되어야 감당할 자리로 알았는데 채 쉰이 되지 않은 이가 논설위원일 수 있다니 몹시 낯설다. 게다가 그가 연재하는 칼럼이 노년을 주제로 한 것이어서 더욱 그렇다. 혹시나 하고 찾아보니 나도 그맘때 인생을 반추하는 듯한 글을 써놓은 게 몇 개 있었다. 지금 보면 치기어린 글인데 쓸 때는 자못 진지하고 심각했던 모양이다. 그러니 쉰은 인생을 반추할 나이가 아니라는 말은 못하겠다.
백세수 누리는 것이 드물지 않고 재수 없으면 백이십을 산단다. 그러니 예전에 나이 별로 붙여 놨던 별칭도 조금씩 뒤로 미루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사십 불혹은 모르겠지만 오십 지천명은 너무 이르고, 육십 이순은 택도 없다. 칠십 지천명에 팔십 이순이면 어떨까? 물론 내 기준이니 시비는 사절한다.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일을 일단 하기로 마음먹었다가 못하게 되면 몹시 언짢다. 하기로 마음먹었다고 해서 그 일이 갑자기 중요해질 이유도 없고 어차피 안 해도 그만인 일이었다고 생각하면 언짢을 일도 없는데 말이다. 뭔가 결정만 하고 나면 그 결정을 합리화할 이유를 자동으로 만들어내는 회로가 머릿속 어딘가 있는 모양이다.
그리스도인은 이웃과 화목을 이루며 살아가는 것을 삶의 으뜸가는 덕목으로 여기고 사는 사람이다. 그렇게 살다보면 이웃의 즐거움에 함께 기뻐하고 이웃의 고통에 함께 아파하게 된다. 이웃의 고통에 함께 아파하는 건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 가운데 나타나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는 말이다.
준공한 사업의 공사비를 받지 못해 기나긴 소송을 벌이고 있다. 최근에 있었던 법원의 실사과정에서 증빙 일부를 찾지 못했다. 공사비의 1%에도 훨씬 미치지 못하는 작은 분량이었다. 재무팀에서 다른 사업의 증빙으로라도 채워 넣자는 의견을 냈다. 정당한 성과를 인정받지 못한 억울함을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었지만 옳은 일이 아니니 망설이지 않고 그 자리에서 거절했다.
어제 마지막 실사 과정에서 회계사가 증빙 하나하나를 확인하자고 나섰다. 설마 했던 일이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등에 식은땀이 흘렀다. 편법으로 해결하려고 했다면 성실하게 수행한 우리의 모든 노력이 부정당했을 것이었기 때문이다. 내 결정이 융통성 없다고 불만스러워 했던 직원들에게 이 경험이 교훈이 되었으면 좋겠다.
가치 있게 산다는 게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닐 것이다. 그저 매일 매일의 삶을 반추하는 일을 거르지 않는다면 가능하지 않을까 한다.
불의를 질타하는 일에 망설임이 없었던 장혜영 의원도 자기가 당한 성추행을 발설하기까지 사흘을 망설여야했다는 말이냐.
잘못한 것은 깨닫는 즉시 바로잡는 것이 문제를 최소화하는 길이다. 그렇지 않고 망설이다 보면 문제가 커지고, 커져버린 문제 때문에 바로잡는 것이 어려워지고, 결국 문제가 터지고 나서야 바로잡지 못한 것을 후회한다.
며칠 전 판단착오로 잘못된 결정을 내렸다. 엊저녁 그것을 깨닫고 잠시 망설였지만 그러다 문제를 키운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었던 게 생각나 즉시 바로잡았다. 소를 몇 번이나 잃고서 이제야 외양간을 고친 셈인데, 고치고 나니 아쉽게도 이젠 지킬 소가 없다.
“사람은 어울려 살도록 지어졌으니 이웃과 화목을 이루어야한다”는 말에 이의를 달 사람이 많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데도 세상에는 불화가 넘친다. 이웃이란 주어지는 것인데 혹시 내가 이웃을 고를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