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2월

by 박인식

물러섬 (2021.02.02)


새해를 맞으면서 제대로 나이 들어가고 싶어 매사에 한 발 물러서리라 다짐했다. 그동안 앞장 선 것은 책임을 피하지 않겠다는 생각 때문이었는데, 책임은 한 발 물러서서도 질 수 있는 일이 아닌가. 그러니 그것이 나이든 사람에게만 필요한 덕목이 아닌 것을 진즉에 깨달았어야 했다.



지각 (2021.02.02)


정의당 국회의원 수행비서의 면직 때문에 소란스럽다. 양쪽 주장이 다르고 그에 대한 의견도 갈라졌지만 양쪽 모두 지각은 면직 사유가 되지 않는다는 데 대체로 이의가 없는 것으로 보인다. 직장인으로서 출근시간을 지키는 건 의무이다. 물론 피치 못할 사정으로 지각할 수는 있다. 하지만 반복되는 지각이 면직 사유가 되지 않는다는 생각은 매우 놀랍다. 사회는 약속을 바탕으로 움직이는데, 가장 기본적인 약속을 지키지 않는 사람과 어떻게 함께 일할 수 있다는 것인지 모르겠다.



절약 (2021.02.03)


졸업하고 연구소에 들어가니 월급이 14만 원이었다. 연구소 월급이 사기업만큼 될 것으로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너무 박했다. 출근하면서 아내에게 하루 천 원씩 용돈을 받았다. 그때는 담배까지 피웠으니 빠듯하기 짝이 없었다. 어느 날 살 게 생겨서 그 빠듯한 용돈을 모으기 시작했다. 그렇게 해서 3천 원쯤 모았을 때였는데 점심 먹다 그만 목에 가시가 걸렸다. 애쓰다 결국 이비인후과에 가서 그렇게 아껴 모았던 그 돈을 들여 가시를 빼냈다. 돌아오는데 어찌나 억울하던지. 저녁 때 그것 때문에 속상해하니 아내가 모으는 건 모으는 거고 나가는 건 나가는 거라고 위로하더라.


얼마 전에 어이없는 실수로 적지 않은 돈을 날렸다. 내 부주의 탓이었지만 한 푼이라도 아끼려는 아내 볼 면목이 없어 며칠 쳐져있으니 아내가 괜찮다고 그러지 말란다. 예나 지금이나 가장 체면이 말이 아니다.



교회 (2021.02.06)


모든 선교를 멈춥시다. 존경받는 이웃으로 삽시다. 그리고 무엇이 당신을 그렇게 살도록 만들었느냐고 물을 때까지 기다립시다. 그렇지 않고는 교회가 살아날 수 없고, 살아날 필요도 없습니다.



낭비 (2021.02.08)


가난하게 자랐지만 다행히 돈에 한이 맺히지는 않았고 대신 평생 낭비가 무서운 줄 알고 살았다. 혹시 돈을 낭비하지 않으려다 관계를 낭비하고 그래서 인생을 낭비한 것은 아닌가 모르겠다.



기도 (2021.02.08)


누군가를 위해 기도한다는 것은 잠시 그를 기억하고 하나님께 도우심을 구하는데 그치는 게 아니다. 그의 삶을 이해하고 지지하고 격려하며, 그의 필요를 살펴서 그것을 채우는 것까지 힘써야 비로소 그를 위해 기도했다고 할 수 있겠다. 이 모든 일은 사랑 없이는 감당할 수 없는 일이니 결국 기도는 사랑인 모양이다.



시험에 들지 않도록 (2021.02.08)


유진 피터슨은 <메시지 성경>에서 주기도문의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고”를 “Keep us safe from ourselves”로 쓰고 있다.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는 것이 우리 자신이라는 말이 아니냐. 뜻이 훨씬 선명하게 다가온다. 읽기를 잘했다.



관계 (2021.02.12)


리어카를 끌어본 적이 있나? 짐을 과하게 실으면 내리막길에서 자칫 리어카에 핸들을 뺏기게 되지. 내가 리어카를 끌고 가야하는데 내가 리어카에 휘둘린다는 말이야. 그저 휘둘리기만 하면 다행이지만, 어디 그런가. 결국은 어딘가에 쳐 박혀야 끝이 난단 말이지. 리어카에 핸들을 뺏기지 않으려면 내 힘으로 이기지 못할 만큼 짐을 늘려서는 안 돼. 그걸 잊으면 짐 망가지고 사람 다치고 그러는 거지.


사람과 맺는 관계도 그래. 과하면 서로 망가지는 거지. 감당할 만큼 관계를 맺되 거리나 깊이 모두 절제할 수 있어야 관계가 아름답고 오래 유지될 수 있는 게 아닐까.



향나무 (2021.02.12)


교회는 가지가 부러지고 밑동까지 생채기를 입었으나 아직 뿌리까지 상하지는 않았다. 향나무는 평소에도 은은하게 향을 풍기지만 생채기가 나면 오히려 그 향이 진동한단다. 그러니 교회가 향기를 내뿜는 나무라면, 아직 뿌리가 살아남아 있다면, 가지가 부러지고 밑동까지 생채기 입은 지금이야말로 향기를 내뿜어야 할 때가 아닌가. 분발을 기대한다.



과유불급 (2021.02.15)


지금까지 살아온 내 모습은 늘 기대하는 바에 미치지 못했고, 그래서 그것을 깨달을 때마다 마음이 무거웠다.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모습에 실망하는 건 자연스럽다. 하지만 사람이란 게 워낙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존재 아니냐. 그러니 좀 더 낫게 살려고 애쓰면 됐지 그 무게에 짓눌려가며 살 필요까지는 없었는데.



응답 (2021.02.17)


혜인 아범이 늦게 유학 나온 교회 청년 커플에게 성악 레슨을 해주고 있는데 둘 다 형편이 어려워 한 번에 만 원 남짓 받는다. 안 받으면 미안해서 못 올까 싶어 그랬단다. 혜인 어멈은 그들이 레슨 받으러 오면 밥을 먹여서 보낸다.


유학 나와 바로 결혼식을 올리려 했는데 코로나 때문에 미뤄졌고 그렇다고 식을 올리러 한국에 가는 것도 부담이 되어 일단 혼인신고만 하고 살림을 합치기로 했다. 혜인 아범이 그러지 말고 우리 집에서 목사님 모시고 결혼예배를 드리자고 권했다. 본인들도 마다하지 않아 목사님께 상의 드리는 중에 이 일이 교회에 알려져 교회에서 결혼식을 올리게 되었다. 주정부에서 허용한 소수만 참석하고 청년부에서 온라인으로 중계하기로 해서 한국에 계신 양가 부모께서도 결혼식을 지켜보실 수 있게 되었다. 청년부에서 여러 가지 축하 프로그램도 만들고 결혼식에서는 혜인 아범이 축가를 부르기로 했다.


올해 들어서면서 이웃의 고통에 공감하고, 낙심한 이웃을 격려하고, 도움이 필요한 이웃에게 손길을 내밀 수 있기를 기도하고 있다. 오늘 아침 그 기도한 것이 자식을 통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을 깨닫게 되면서 무한히 기뻤다. 혜인 아범에게 결혼식 링크를 보내달라고 해야겠다. 자식의 삶을 통해 기도에 응답하시는 하나님을 다시 한 번 확인하고 아울러 함께 그 젊은 내외를 축하할 수 있도록.



고통 (2021.02.23)


내가 내 잘못으로 고통 받는 것을 하나님께서 내리시는 징벌로 이해하는 게 맞는가?



가치 있는 삶 (2021.02.24)


올해 시작하면서 하루하루를 가치 있게 살자고 다짐했는데 그것 때문에 내 모습이 적지 않게 바뀌었다. 매일 아침 다짐을 되새기다 보니 어제 어떻게 살았는지 돌아보고 오늘 구체적으로 뭘 해야 그렇게 살 수 있을지 생각하게 되었다. 그렇다고 하루아침에 삶이 가치 있게 바뀌기야 했을까마는, 아침마다 다짐을 되새기는 것으로 적어도 쓸데없는 일에 시간 낭비하는 건 줄어들었다.



글쓰기 (2021.02.25)


어떤 문제가 생겼을 때 머릿속에서 생각이 엉켜 갈피를 잡기 어려우면 글로 써보는 것이 크게 도움이 된다. 머릿속에서야 여러 생각이 동시에 일어나지만 그것을 글로 쓰자면 어쨌든 생각을 하나로 줄을 세워야 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또한 생각을 시각화하는 일이기도 해서 문제를 한 눈에 볼 수 있고, 볼 수 있으니 관리가 가능해진다.



글쓰기 (2021.02.28)


떠오른 생각을 그대로 쓸 만한 글재주가 없으니 쓰기 전에 머릿속으로 몇 번을 써보고 쓰고 나서도 수없이 고친다. 사실관계가 잘못되면 글이 힘을 잃게 되니 글을 쓰기 전에 사실관계를 확인하는데도 상당한 시간을 쏟는다. 하지만 그렇게 공들여 쓴 글을 읽는 사람은 정작 몇 되지 않는다. 그런데도 계속 쓰는 건 그래도 글이 조금씩 나아지기도 하고, 생각의 폭이며 깊이가 조금씩 확장되기 때문이다.



전지전능 (2021.02.28)


하나님은 전지전능(全知全能)한 분이다. 모든 것을 다 알고 모든 것을 다 이루실 수 있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고통당할 때 그 고통을 다 아시고 또한 해결해주실 수 있으니 이보다 큰 위로가 없다. 하지만 동시에 내 추한 모습도 모두 아신다는 것이니 한편으로는 섬뜩한 경고로 들리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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