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3월

by 박인식

남은 날 (2021.03.02)


예전에는 만날 사람은 살아있으면 만나겠지 생각했다. 오늘 문득 그러기에는 남은 날이 많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공감 (2021.03.04)


타인의 고통에 공감한다는 것은 그가 겪고 있는 고통이 무엇인지 이해하고, 그 고통을 내 고통으로 여기고, 그 고통을 벗어나기 위한 그의 노력을 지지하는 것이다. 그가 겪는 고통이 어떤 것이고 얼마만한 것인지 아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인데 하물며 그의 고통을 내 고통으로 여기고 고통을 벗어나기 위한 그의 노력을 지지한다는 건 얼마나 어려운 일이겠냐. 그러니 타인의 고통에 공감한다는 말은 쉽게 입 밖에 낼 말이 아니다.



고통 (2021.03.04)


바트 어만의 <고통, 인간의 문제인가 신의 문제인가>를 읽었다. 읽고 난 느낌을 정리해 나누는 중에 누군가 <Shadowlands>라는 영화를 추천했다. 금세기 최고의 기독교 변증가로 손꼽히는 C. S. 루이스의 실화를 영화화한 것으로 1993년에 제작되었다. 아내가 골수암으로 죽어가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겪은 고통을 담담하게 풀어내는 마지막 장면이 이 영화의 백미였는데 여기서 그는 이렇게 고백한다.


“고통은 그저 고통일 뿐이다. Suffering is just a suffering after all.”


고통에 대해 생각하다 보니 고통이란 징계도 아니고, 훈련의 도구일 수도 없으며, 섭리를 이루기 위한 것은 더욱 아니라는데 생각이 미쳤다. 그러다가 어렴풋하게 결국 고통은 그저 고통에 지나지 않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이 고백을 들으니 어렴풋하던 생각이 선명해졌다.



이웃을 생각함 (2021.03.09)


아버지는 평생 바쁘게 사셨다. 은퇴할 때까지 월급쟁이로 사셨으니 바쁘게 지낸다고 수입이 더 많아지는 것도 아니었는데 늘 남의 일에 나서느라 그러셨다. 그런 아버지를 보고 어머니는 늘 돈 안 되는 일로 바쁘다고 뭐라 하셨지만 딱히 못마땅해 하신 건 아니었다.


이곳에서는 본사에서와 달리 업무시간에만 일하다 보니 시간이 많이 남는다. 그래도 늘 무언가로 바쁘다. 바쁘기는 한데 그것이 돈이 안 되기는 아버지와 다를 바 없다. 아버지처럼 직접 남을 돕느라 바쁜 건 아니지만, 나 역시 이런저런 오지랖 넓은 짓을 하느라 그렇다. 다행히 아내도 그것가지고 크게 타박하지는 않는다. 자식은 한 술 더 뜬다. 내외가 똑같이 그런다.



사랑 (2021.03.15)


결혼을 앞둔 두 젊은이를 위해 기도하면서 그들이 각자가 가진 꿈과 가능성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존재 자체를 사랑하기를, 그래서 그 가정이 어떤 어려움에도 흔들리지 않고 견고하게 세워지기를 구했다.



불확실성 (2021.03.16)


주식시장에서는 악재보다는 불확실성을 더 불리한 것으로 여긴다고 한다. 이제나저제나 하고 걱정했던 일이 불거졌다. 언제 불거질까 걱정하고 불거지면 어떻게 대처해야 하나 생각했던 데서 이제 걱정하는 일은 덜었으니 대처방법을 생각하는 일에만 몰두하면 된다. 불확실성은 제거된 것이니, 그것도 감사.



양심 (2021.03.17)


퇴근하고 나서 아이들과 영상 통화하는 것이 큰 즐거움이다. 아이들이 하루가 다르게 자라는 모습을 보니 기쁘고 대견하지만, 두 해 넘게 보지 못해서 얼마나 컸을지 가늠이 되지 않는다. 이제나저제나 길이 열리기만 기다리고 있다. 과연 올해가 가기 전에 아이들을 만날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래도 차마 길을 열어달라고 기도는 못하겠다. 고통을 겪는 이웃이 하나둘이 아닌데 너무 한가한 기도가 될 듯해서 말이다.



신문 (2021.03.17)


종이신문은 무엇보다 기사가 게재된 지면과 배치된 위치, 제목 크기만으로도 기사의 경중과 편집자의 의도를 한 눈에 읽을 수 있어 필요한 기사를 쉽게 골라 읽을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물론 속보성이야 온라인 신문을 따라갈 수는 없다. 온라인 신문에서도 나름 중요한 뉴스는 위에 배치하고 제목도 큼직하게 달아놓아 기사를 경중을 가려놓기는 하지만, 그런 면에서는 효율성이 종이신문에 미치지 못하고 기사도 일일이 열어봐야 해서 영 더디다. 물론 검색이 가능하고 텍스트를 이용할 수 있는 온라인 신문의 이점은 이런 불리한 점을 덮고도 남는다.



고통 (2021.03.18)


아내가 암 진단을 받고 완치 판정을 받을 때까지 오 년 동안 살얼음판을 걸었다. 시도 때도 없이 두려움이 닥쳤고 기도하는 가운데 찾았던 마음의 평안은 한 때를 넘기지 못했다. 이미 오래 전 일이지만 그 기억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몸이 굳는다. 그러나 그 기억 때문에 이웃의 고통과 두려움을 내 고통과 두려움으로 여길 수 있게 되었다.



깨달음 (2021.03.21)


오랫동안 고단하게 지내면서 이웃의 고단함에 민감하게 되었다. 감사한 일이다. 고단한 시간을 보내는 동안 내 문제에 함몰되지 않고 이웃의 고단함에 눈뜨게 하셨으니 말이다.



물러섬 (2021.03.23)


청년부장으로 몇 년 지내다 보니 청년부에서 내 생각과 다른 결정이 내려질 때 조금씩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아마 청년부가 내 소관이라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그래서 담당 목사님께서 한 해 더 수고해달라고 부탁하셨을 때 이를 사양했다. 그래도 거듭 부탁하셔서 이런 속마음을 털어놓으니 그렇다면 물러나는 게 옳겠다고 하셨다. 자식도 삼 년째 청년부장으로 수고하고 있다. 자기 믿음으로 감당되지 않을 만큼 청년부가 성장하는데, 처음에는 감사한 마음이 들더니 시간이 흐르면서 자기 공처럼 느껴지더란다. 그래서 올해까지만 하고 그만둘 생각이라고 했다. 다행이다.



버림 (2021.03.28)


버리겠다고 마음먹고 또 버렸다고 생각했던 것이 스멀스멀 다시 살아난다. 한두 번이 아니다. 그래도 또 버린다. 다시 살아날망정 오늘 하루만큼은 확실히 버릴 수 있으니 말이다. 하루가 한 주가 되고 한 달이 되고 한 해가 되면 좋겠다. 우선 거기까지만 목표로 하자.



선거 (2021.03.28)


압승을 거두면 자기 잘나 그런 줄 알고 길길이 날뛸 것이고, 신승을 거두면 진 놈이 자기가 실질적 승자라고 헛소리할 것이니, 그저 신승을 면할 정도로만 끝났으면 좋겠다.



전화 (2021.03.30)


이곳 사람들은 오후나 저녁에 일하고 때로는 한밤중에도 일한다. 어제도 행정직원이 자정이 넘은 시간에 뭘 물어보겠다고 전화를 했다. 무례하고 불편한 꼴을 겪지 않으려면 전화를 꺼두고 자면 되지만 아흔 넘으신 어머니가 계시니 그러지도 못한다. 그래서 잠들었을 때 전화가 오면 늘 소스라쳐 놀란다.


어제는 참지 못하고 한 마디 했다. 그도 떠밀려 전화한 것이니 그 말은 그가 아니라 그렇게 시킨 사람에게 가야할 것이었다. 대답을 하면서도 애꿎은 사람에게 싫은 소리를 했구나 싶어 통화 말미에 사과했다. 펄쩍 뛰면서 오히려 자기가 미안하다고 했지만 그 사람이 무슨 잘못이 있겠나. 조금만 참았으면 좋았을 것을.



이웃 (2021.03.30)


어찌 해서 내가 기억하고 기도하는 이웃은 모두 살만한 사람들뿐인가?



이영미 (2021.03.31)


오래 전에 페이스북에서 만나 이웃이 된 분이 있습니다. 출판물 디자인을 하는 분이었는데요, 그때는 이미 루게릭병이 어느 정도 진행되어서 외출이 불가능해진 상태였습니다. 그런 가운데 투병하면서 겪는 여러 상황과 그 상황을 맞닥뜨리면서 겪는 당혹감, 그리고 신앙인으로서 그 당혹감을 극복해가는 이야기를 페이스북에 올렸습니다. 글은 담담했지만, 저도 나이가 들다 보니 그 글 바닥에 깔린 고통이 눈에 들어오더군요. 같은 세대를 살아왔고 ‘뿌리 깊은 나무’라는 공통의 관심사가 있어서 댓글과 답글로, 때로는 메시지를 통해서 한 해 가까이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리고 그때부터 그분을 위해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병이 깊어지면서 페이스북에 올리는 글이 점점 줄어들었습니다. 그러다 2018년 8월 “마음이 달아나는 몸을 붙들지 못한다”는 글을 끝으로 더 이상 글이 올라오지 않았습니다. 이웃을 위해 기도하다보면 막연할 때가 많습니다. 더구나 일면식도 없고 소식도 끊어진 상태에서는 더욱 그렇지요. 그래서 같은 교회를 출석하시는 분께, 때로는 교구 담당 목사님께 무례를 무릅쓰고 소식을 여쭤보기도 했습니다.


오늘도 여느 때처럼 그분을 위해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페이스북을 열었는데 그간 투병하며 썼던 글을 책으로 냈다는 소식이 보였습니다. 얼마나 반갑고, 반갑다 못해 놀랍던 지요. 유명작가의 책이 아니니 전자책을 기대하기 어려울 것 같아 일단 종이책을 주문했습니다. 이제부터 누가 리야드로 오는 사람이 없는지 찾아야 하겠습니다.



차별금지법 (2021.03.31)


차별금지법을 찬성하지도 않을 사람들이 상대당 후보가 차별금지법 반대했다고 비난한다. 염치가 없어도 너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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