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4월

by 박인식

영상전화 (2021.04.01)


저녁마다 영상전화로 아이들을 보는 게 여간 큰 즐거움이 아니다. 둘째는 태어났을 때 보고 여태 못 봐서 우리가 전화기 속에 사는 줄 아는 모양이다. 며칠 전에 제 아빠가 밖에서 영상전화를 걸었는데 할머니 할아버지는 어디 있냐고 묻더란다. 아빠가 우리가 사는 전화기 속으로 들어갔다고 생각했던가 보다. 그나저나 언제가 되어야 이 전화기 속에서 벗어나 아이들 눈앞에 나타날 수 있을까 모르겠다.



코로나 판데믹 (2021.04.05)


혜인 아범이 속해있는 비스바덴 오페라극장에서 4월에 무대에 올릴 예정이던 오페라가 모두 취소되었다. 그래도 혜인 아범은 극장에 소속되어 있으니 무대에 서지 못하는 갈증은 있을망정 생활을 걱정할 일은 없지만 객원으로 무대에 서던 한국 성악가들은 한 해 넘게 무대가 없어져 대부분 한국으로 돌아갔다. 한국은 사정이 그보다도 더 어려우니 택배로 대리기사로 일하는 모양이다. 책임져야할 가정이 있는 가장으로서 선택의 여지가 없었을 것이다.


이런 비상시국에 무슨 오페라고 무대공연이냐고 하겠지만 거기에 종사하는 사람들에게는 가족의 생계가 걸린 일이다. 어디 그것뿐이겠나. 관광도 그렇고 노년의 버킷리스트로 꼽히는 크루즈 역시 마찬가지가 아닐까. 대형 크루즈에는 직원만 수천 명이 된다는데. 어려운 상황이니 모든 걸 절제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다가 문득 여기에 생각이 미치니 그게 옳은가 싶기도 하다.



기억력 (2021.04.05)


1989년 4월 강원도 동해 국회의원 보궐선거 때 일이다. 당시 동해공업단지 조성사업 때문에 출장지인 북평 어느 여관에서 한 달 넘게 묵고 있었다. 민주당 선거유세 지원하러 내려온 김영삼 총재 일행이 같은 여관에 묵었는데 일행 중에 한 해 전에 있었던 5공 청문회에서 주목을 받았던 노무현 의원도 있었다. 당시만 해도 정치인이라고 하면 모두 안하무인이었고 그때 여관에 묵었던 이들도 다르지 않았다. 화장실 쓰겠다고 내 방에 노크도 없이 들어와서 뭐라고 했더니 오히려 아래위를 훑어보고 나가는 인간도 있었다.


하지만 노무현 의원은 달랐다. 허름한 국방색 잠바를 입었고 어디가 아픈지 얼굴은 푸석푸석했다. 다른 이들과 달리 여관에서 허드렛일을 하는 아주머니께도 다정하게 이야기하는 모습이 인상 깊다 못해 감동적이었다. 5공 청문회로 이미 인기가 높을 대로 높아진 사람이었는데. 아무튼 30년도 넘은 일인데도 여관 복도에서 마주친 노무현 의원의 모습은 아직도 생생하다. 입은 옷, 신었던 신발, 병색 있어 보이던 얼굴까지. 지금이라도 그리라면 그릴 수 있다.


내곡동 생태탕집 주인 아들이 오세훈 당시 시장이 자기 가게에 다녀갔던 모습을 세세하게 기억하는 게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들 한다. 그런데 내 보기엔 그럴 수 있다. 변두리 허름한 생태탕집에 서울시장이 다녀간 건 누군가에게는 내가 지방 여관 복도에서 노무현 의원을 만난 것만큼 인상적인 일일 수 있으니 말이다.


모양 빠지는 일에 나까지 나서 옳고 그른 걸 가리겠다는 말이 아니다. 선거란 것이 워낙 최악을 피해 차악을 선택하는지 이미 오래 되었지만, 이번 선거는 그 중 최악으로 보인다. 거기에 생태탕집 논란이 화룡점정이 된 꼴이다. 그렇기는 해도 생태탕집 아들 기억을 조작이라고 단정 짓는 건 지나치다. 그냥 그렇다는 말이다. 이는 기억력에 관한 것이니 시비는 사절!



시선 (2021.04.06)


어머니 암 수술을 앞두고 처음 서원기도를 했다. 어머니를 살려주시면 내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외면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그러고 나서 서울 거리에 거지가 그렇게 많은 줄 비로소 알게 되었다. 수술이 잘 끝나고 어머니께서 일상을 회복한 후에 아주 자연스럽게 그 약속을 잊었다.


몇 년 전에 하나님께서 시선을 두시는 곳에 내 시선을 두겠다고 기도한 일이 있다. 한 해가 넘도록 코로나로 수많은 이웃이 고통을 겪고 있고, 그리스도인으로 마땅히 해야 할 바대로 아침마다 하나님을 향해 그 이웃을 고통에서 구해주시기를 구하고 있다. 생각해보니 하나님께서는 당신을 향한 내 시선이 마뜩치 않으셨을 것이다. 하나님의 시선은 고통당한 이웃을 향해 있었을 것이니 말이다.



세월 (2021.04.07)


5년 동안 암 투병 하던 친구 하나가 오늘 별이 되었다. 기력 회복을 위해 잠깐 항암치료를 쉬고 있는 친구 하나는 어제 축령산 휴양림을 다녀왔노라며 봄꽃 사진을 보냈다. 나도 되돌릴 수 없는 고장이 하나씩 생기기 시작한다. 그러고 보니 세월이 많이 흘렀다.



정의 (2021.04.08)


이번 선거는 정의를 내세운 불의한 자들에게 큰 경고가 되었을 것이다. 이것을 정의를 내세우지만 않으면 불의해도 용납하겠다는 것으로 착각할까 걱정스럽다.



걱정 (2021.04.11)


걱정거리가 한둘이 아니지만 걱정해도 소용없는 일이어서 그냥 잊고 산다. 어쨌든 마음은 편하다.



만년필 (2021.04.12)


컴퓨터로 글을 쓰는 큰 이점 중 하나가 쉽게 고칠 수 있고 고친 흔적이 남지 않는다는 겁니다. 그것이 필기구로 글을 쓰는 단점이기도 하지요. 컴퓨터가 업무 도구가 된 이후로 필기구로 글을 쓸 일이 점점 줄어들었습니다. 기껏해야 글을 쓰는 일은 업무일지나 메모 정도였습니다.


저는 한자세대입니다. 책도 그렇고 신문도 온통 한자였습니다. 국민학교 다닐 때부터 신문 사설 읽는 연습을 시켰습니다. 대학 졸업논문도 4백자 원고지에 토씨만 빼고 모두 한자로 썼습니다. 그런데 컴퓨터로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한자 쓸 일이 없어지더군요. 안 쓰다 보니 못 쓰게 되고, 글씨도 점점 엉망이 되어가고. 그래서 마음먹고 만년필로 쓰기 시작했습니다.


이런저런 만년필을 쓰다가 현지법인에 부임하면서 계약서 서명용으로 마음먹고 하나를 장만했습니다. 서명할 때 사진에 찍힐 모습까지 그려가면서 말입니다. 생각 밖으로 서명할 기회가 빨리 찾아오지도 않았고, 막상 서명할 일이 생겼을 때는 전산서명으로 바뀌어서 끝내 그 만년필로 서명 한 번 해보지 못했습니다. 그렇기는 해도 덕분에 다시 필기를 시작했습니다.


이 만년필에 익숙해져서 그런지 이 만년필 자체가 그런지 잘 모르겠습니다만, 아무튼 필기구에 방해받는다는 느낌이 없어 좋습니다. 원하는 대로 글이 써지거든요. 다른 필기구는 생각했던 대로 잘 써지지가 않는데 말입니다. 십 년 넘게 쓰면서 길들인 것도 이유가 아닐까 싶습니다.


Montblanc Meisterstück 146



이웃을 돕는 일 (2021.04.12)


이웃에게 닥친 상황을 이해하고, 그가 겪는 고통에 공감하며, 고통을 벗어나기 위한 그의 노력을 지지할 뿐 아니라, 그가 낙심했을 때 격려하고, 그에 필요한 지원을 아끼지 않아야 온전히 이웃을 도왔다고 할 수 있겠다.



논란 (2021.04.19)


온라인에서 논란이 되는 글은 아예 비방하기로 작정한 ‘의도적 오독’ 때문인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은 오해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글쓴이 치고 그걸 원하는 사람은 없을 텐데. 그렇다면 글의 주제를 좁히고 좀 더 정제된 글을 쓰도록 노력하는 건 어떨까.


아무도 귀 기울이지 않는 글을 쓰는 나 같은 소시민도 글을 써놓고 혹시 오해의 여지는 없을지 누군가에게 상처를 입히지나 않을지 몇 번씩 살핀다. 그러고도 올리기 전에 올려야할지 말아야할지 다시 생각한다. 하지만 논란이 되는 글은 그런 흔적이 별로 보이지 않는다.


남이 오해하건 말건 비난하건 말건 구애받지 않고 자기 뜻을 밝히고 싶다면 그렇게 하고 그걸 감당하면 된다. 하지만 오해와 비난을 견디지 못하겠다면 자기 뜻을 밝히되 오해와 비난의 빌미를 주지 않도록 글감을 고르고 글을 다듬어야 하는 게 아닐까 한다.



하루를 가치 있게 사는 일 (2021.04.21)


기도는 삶을 바꾼다. 그러니 하루를 가치 있게 살려거든 기도로 일과를 시작하라.



RIP (2021.04.21)


하루하루 육신이 꺼져가는 걸 지켜볼 수밖에 없는 분을 위해 기도하고 있다. 몸을 움직이지 못하는지는 이미 오래되었고, 말을 하지 못하게 되었고, 요즘은 자력으로 호흡하는 것도 쉽지 않다는 소식을 들었다. 오늘 아침도 그분을 위해 기도하다가 애도의 표현인 Rest In Peace가 어떤 의미인지 새삼 깨닫게 되었다.



나이 들어가기 (2021.04.25)


아름답게 나이 들어가기를 꿈꾼다. 그래서 매사에 한 발 물러서려고 애쓴다.



결혼을 위한 기도 (2021.04.25)


결혼할 나이가 되어가는 조카들이 여럿 있다. 그들이 먼저 좋은 배필이 되도록 애쓰고 아울러 좋은 배필을 선택할 수 있는 안목을 기를 수 있었으면 좋겠다. 하지만 사랑은 교통사고처럼 불현듯 찾아오는 것이라는데 그런 안목이 무슨 소용이 있을까 싶기도 하다. 그저 좋은 사람과 부딪치기를 기대할 수밖에.



유머 (2021.04.26)


스스로 유머에 그리 둔한 편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유머를 사용할 때와 하지 말아야 할 때를 구분해야 하고 하더라도 상황이나 격에 맞아야한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학문의 자리에서 허물없는 사이에서나 통할 수 있는 유머를 대할 때, 시사 프로그램에서 난데없는 드립을 대할 때 아슬아슬하게 줄 타는 듯한 느낌이 든다. 그게 대세라면 얼른 익숙해져야 할 텐데 아직은 민망해서 나도 모르게 외면하게 된다. 애는 쓰고 있다마는 시간이 지날수록 괴리가 커지는 걸 보니 이제 매사에 입을 닫아야 하려나 보다.



새 날 (2021.04.27)


매일 새로운 날을 맞아 새롭게 시작할 수 있다는 것도 참 감사한 일 아니냐.



오히려 감사 (2021.04.28)


매일 아침 감사할 일 다섯 가지를 적는 것으로 일과를 시작한다. 오늘은 거꾸로 힘들고 걱정되는 일을 헤아려봤다. 적어놓고 들여다보니 오히려 그동안 무척 많은 걸 누리고 살았구나 싶다.



기업하기 좋은 나라 (2021.04.28)


부가가치세를 5%에서 15%로 올리는 일은 국가 경제의 근간을 흔드는 일이다. 그런데 담세 당사자인 국민과 기업에게 일언반구도 없이 작년 5월 11일 부가가치세 인상을 발표하고 7월 1일 전격적으로 시행에 들어갔다. 그리고 오늘, 부가가치세 인상은 임시 조치였으며 앞으로 몇 년 안에 이를 10%나 5%로 내리겠다고 발표했다. 이것이 스스로 ‘선도적인 business friendly 국가’라는 사우디아라비아 정부의 실체이다.



기도는 물음 (2021.04.29)


미당이 젊은 날 자기를 키운 건 팔 할이 바람이라고 했는데 내 존재의 원동력이었던 기도는 팔 할이 물음이었다. 기도하면서 수없이 묻고 또 물었다. 물음 가운데 답이 있기도 했고, 답이 주어지기도 했고, 때로는 아무 답이 없어 오히려 답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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