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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인식 Aug 14. 2021

로기완을 만났다

인간에 대한 이해와 연민

조해진

창비

종이책 2011년 4월

전자책 2013년 3월


주말 오후 낮잠에서 깨어 이 책을 붙든 후 네 시간 만에 마지막 장을 덮었다. 조해진이 2019년 발표한 <단순한 진심>을 읽고 한동안 멀리 했던 우리 소설을 읽어보겠다고 마음먹을 만큼 그의 소설은 흡인력이 있었는데, 역시 그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두 작품은 모두 사람에 대한 연민이 바탕을 이루고 있다. 그런데 연민이라는 감정을 한가한 이들의 사치쯤으로 여기고 살아온 내가 그 소설에 끌린 것이다. 내가 나이든 탓인지 저자의 흡인력이 상당했던 것인지. 어쩌면 둘 다였을지 모르겠다.


<단순한 진심>은 입양아로 자란 주인공 나나가 한국에서 혈육을 찾기 위해 기억을 더듬어 가는 과정을, <로기완을 만났다>는 주인공 김 작가가 탈북한 젊은이인 로기완의 흔적을 찾아가는 과정을 뒤따라가고 있다. <단순한 진심>에서 그 과정에 끼어든 또 하나의 입양이 병치되고 있는 것처럼 <로기완을 만났다>에서는 그가 도망치듯 브뤼셀로 떠나오게 된 ‘윤주의 수술’과 브뤼셀에서 숙소를 내준 ‘박 선생 아내의 안락사’가 병치되고 있다. 그리고 앞서 말했듯 인간에 대한 깊은 이해와 연민이 그 바탕을 이루고 있다. 결국 작가는 내 고통과 누군가의 고통을 병치시킴으로서 내 고통으로부터 타인에 대한 이해와 연민을 이끌어 내고 있다. 그래서 작가는 “로에게 대사관이 (난민 신청을 도와줄 수 있었음에도 끝내 도와줄 수 없다고) 그랬던 것처럼 나에게는 윤주가 희망과 절망이 결합된 대상이었다.”고 말한다.


스무 살에 어머니와 북한을 탈출한 로는 중국에서 어머니를 교통사고로 잃고도 불법체류자라는 신분 때문에 시신조차 확인하지 못한다. 주변에서 어머니의 시신을 팔아 마련해준 돈으로 브로커를 따라 브뤼셀에 떨어진 로에게는 방수포에 꼭꼭 싸서 품에 넣어놓은 650유로가 전부였다. 작가는 로가 한국대사관에서 난민 신청을 거절당하고 났을 때 모습을 김 작가의 입을 빌려 “그는 형편없이 수척해져 있었고 눈빛은 자학적인 살의로 번뜩였다. 자신에게는 고통마저 사치라고 여기며 한 순간의 상실감도 허락하지 않기 위해 날 서린 감각으로만 스스로를 몰아갔을 그 지독한 시간을 나는 인내라는 단어로 밖에는 표현할 수 없었다.”고 말한다. 이어서 로가 우여곡절 끝에 난민 인정을 받고 구세군 보호기관에서 머물면서 그 인내를 어떻게 승화시켜 나갔는지 이렇게 이야기한다.


“로는 계단을 쓸라고 하면 계단 사이사이의 먼지와 계단참의 창틀까지 닦았고, 저녁 설거지를 시키면 선반과 서랍 속 식기들까지 다 꺼내 완벽하게 씻은 후에야 식당 문을 닫았다. 대걸레를 쥐어주며 복도를 청소하라고 하면 복도뿐 아니라 난민들이 묵는 방과 사무실, 숙직실까지 윤이 나도록 걸레질을 했다. 로가 청소도구를 들고 한 번 지나가면 가전제품의 묵은 때까지 말끔하게 지워졌으며 그의 손길이 닿은 세탁물에서는 말 그대로 광채가 났다. 시설 역사상 그토록 성실한 사람이 없었고 언어를 배울 대도 그런 성실함이 그대로 발휘되어 로는 누구보다 빨리 프랑스어를 터득했다.”


그렇게 절박하게 자기의 인내를 승화시켜나가던 로는 난민의 지위조차 얻지 못한 라이카를 만나 비로소 어디로 가야할지 몰라 한없이 걷기만 했던 추운 겨울에서 벗어난다. 로는 브뤼셀에서 불법체류자로 쫓기는 라이카를 영국으로 보내고 자기도 따라 간다. 이 상황을 김 작가는 “그에게 영국행은 어렵게 얻은 난민지위를 포기한다는 의미였고, 누릴 수 있는 여러 사회적 혜택과 정착민으로서 안정감을 저버린 채 또 다시 불법체류자가 되겠다는, 그토록 불안한 삶까지 감수하겠다는 희생을 뜻하는 것이었다. 로는 이것을 다 알고 있음에도 떠났고 돌아오지 않았다. 로는 바로 저런 순간, 사랑하는 사람과 마음껏 체온을 나누는 그 순간의 충만함을 갖고 싶어 그 밖의 모든 것을 포기했을 것”이라고 말한다. 로의 이런 선택은 어머니의 시신을 팔아 마련한 돈으로 사지에서 벗어나 우여곡절 끝에 찾은 안정감도 자기와 연민을 함께 나눌 수 있는 그 누군가 없다면 아무 의미가 없다는 선언이었다는 것이다.


로의 흔적을 찾기 위해 브뤼셀에 온 김 작가에게 숙소를 내준 박 선생은 은퇴하기 전 의사로 일하는 동안 교통사고로 목 아래가 마비된 건장한 젊은이가 스스로 목숨을 끊고자 했지만 약을 달라는 그의 요구를 거절한다. 하지만 3년 후 승용차에 불을 질러 자살한 그 젊은이가 몸무게가 반으로 줄어있었다는 사실을 알고 의사로서 회의에 빠진다. 결과적으로 그 환자에게서 약물로 편히 죽을 수 있는 기회를 박탈한 대신 3년 동안 극한의 고통을 겪게 했다는 자책 때문이었다. 그러나, 아니 그래서 박 선생은 간암말기 환자였던 아내의 자살을 돕는다. 김 작가는 그 순간을 이렇게 그려낸다.


“떨리는 손길로 술에 약을 타고, 영원한 이별 앞에서 짧은 키스를 나누고, 침실 문을 닫고 나와 거실 소파에 앉은 채 두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시계 초침소리가 그 선택이 옳은 것이었는지 묻는 물음으로 들렸다. 마침내 다시 침실 문을 열었을 때 사랑하는 이의 한 생애가 끝난 것을 뼈가 끊어지는 상실감으로 바라보아야 했다. 그리고 길고 길게 흐느낌이 이어졌다.”


말이 좋아 안락사지 자살을 돕는 것, 말하자면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일 수 있는 이 행동이 이 작품에서는 아내, 더 넓게는 사람에 대한 연민에서 비롯된 것으로 그려지고 있다. 이에 대해 생각이 엇갈릴 수 있다. 하지만 이미 안락사가 남의 일이 아니게 된 나이를 사는 내 눈에는 안락사를 도운 박 선생의 선택이 사랑하는 이에 대한 연민에서 비롯된, 사랑하는 사람을 위한 최고의 선물이었다는 작가의 해석에 온전히 동의한다.


오십 년 친구가 말기암 환자로 매우 힘든 싸움을 벌이고 있다. 이미 모든 치료를 중단했고, 그래서 전화할 때마다 목소리가 힘을 잃어가는 게 역력하다. 아침에 기도할 때마다 늘 그를 떠올리지만 무엇을 구해야할지 막막하다. 결과가 너무나 자명한데 기적을 구하는 것이 과연 합당한 일인가 망설이느라 제대로 기도하지도 못한다. 그런 내게 박 선생의 입을 빌려 작가가 내뱉은 한 마디가 아프게 마음을 찌른다.


“나는 기적을 믿소. 알다시피 ... 기적은 대체로 일어나지 않소.”


작가는 작품의 얼개로 만들어 놓은 ‘주인공이 브뤼셀로 떠나게 만든 열일곱 윤주의 수술’ 위에서 이야기를 이끌어간다. 하지만 나는 그것보다, 심지어는 주인공인 로기완보다, 젊은이의 안락사를 거절해 그가 오히려 3년 이라는 세월을 끔찍한 고통 속에서 지내도록 밀어 넣었다는 자책감 때문에 회의하는, 그 회의가 아내의 안락사를 돕도록 이끌었던 박 선생에게 더 눈길이 끌렸다. 그래서 그가 주인공인 김 작가와 헤어지는 공항에서 이렇게 말을 건넨 마음을 이해하겠다.


“때로는 미안한 마음만으로도 한 생애는 잘 마무리됩니다.”


정말 그렇다.


이 소설은 무려 십 년 전인 2011년 발표된 것이다. 그때 이미 작가의 잠재력, 아니 역량이 증명되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작가가 받은 2013년 신동엽 문학상, 2016년 이효석 문학상과 무영 문학상, 2017년 통영 문학상은 그 사실을 확인하는 것 이상은 아닐 것이다. 나는 뒤늦게 그걸 알았다. 그의 활동을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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