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Book Review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인식 Sep 05. 2021

지구를 위한다는 착각

Apocalypse Never

마이클 셸런버거

노정태 옮김

부키

2021년 4월


지구온난화 이론에 대한 의아함


1997년 지구온난화 방지 당사국총회에서 교토의정서가 채택될 때만 해도 그것이 내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 가늠이 되지 않았다. 2005년 초에 발효되면서 비로소 발등의 불인 것을 깨닫게 되었고, 어떻게 하면 그것을 기회로 삼을 수 있을지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 사실 당시에는 지구온난화의 심각성은 물론 그것이 어떤 내용인지조차 제대로 알지 못했다. 의정서 내용을 검토하고 관련 자료를 찾아보는데 탄소배출을 줄일 수 있는 에너지원으로 원자력이 각광을 받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당시 원전사업이 한동안 주춤거려서 그 사업을 접고 새로운 시장을 찾아야 하는 게 아닐까 고민하고 있었는데, 이런 사실을 확인하고 나서 전열을 정비하고 힘이 되어줄 유력인사를 모셔왔다. 그것이 교토의정서의 영향이었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 후로 십 년 넘게 원전사업 매출이 증가일로를 걸었다.


다행히 흐름을 놓치지 않고 잘 따라가기는 했는데, 그러면서도 교토의정서와 지구온난화의 논리에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이 있었다. 당시에 지구온난화를 이렇게 정의했다.


“인류가 막대한 양의 화석연료를 사용하는 바람에 온실효과를 내는 이산화탄소 농도 증가로 지구 기온이 올라가 극지방은 물론 고산지대의 얼음과 만년설이 녹아 해수면이 상승해 섬나라와 해안 저지대가 온통 바닷물에 잠긴다. 기상 이변이 속출해 홍수와 가뭄이 빈발하며, 허리케인과 태풍이 강력해지고, 생태계가 파괴되며, 사막이 확대된다. 무수한 생물이 멸종되며, 농업 생산량이 줄고, 전염병이 창궐해, 인류의 종말적 위기가 다가온다.”


나는 지질학을 공부하면서 지구는 긴 시간 간격으로 한냉기와 온난기가 되풀이 되고 있으며, 지금은 소빙하기 사이의 간빙기에 해당한다고 배웠다. 그렇기 때문에 화석연료로 인해 기온이 올라간다고 해도 그것이 그런 지구의 사이클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을까 의문이 들었다. 게다가 지구는 복잡계(complexity system)의 대표적인 존재인데 단지 이산화탄소가 증가한다고 해서 지구온난화가 일어나며, 그렇기 때문에 이산화탄소만 줄이면 지구온난화를 막을 수 있다는 논리도 믿기 어려웠다.


당시 지구온난화가 이산화탄소 증가라고 단정적으로 설명하는 주장에 대해 오히려 그 반대라고 반박하는 논문을 본 일이 있다. 이산화탄소가 증가해 지구 온도가 올라간 것이 아니라 지구 온도가 올라가 이산화탄소 배출을 촉진했다는 논리였다. 그 주장에 따르면 해수의 이산화탄소 흡수량이 대기에 비해 50배나 높은데, 해수 온도가 올라감으로 인해 이산화탄소가 대기로 방출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니 지구온난화를 줄이기 위해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줄이자는 주장은 애초에 출발부터 잘못된 것이다. 워낙 오래 전 일이라 아쉽게도 그 논문을 찾을 수는 없었지만, 다행히 온도와 이산화탄소 농도를 대비한 그래프를 찾을 수 있었다. 아래 그림에서 보는 것처럼 온도 올라가는 게 먼저이고 이산화탄소 농도 증가가 뒤따라가고 있다.



물론 그것이 내 전문분야가 아니니 내 해석이 잘못된 것일 수 있다. 하지만 앞서 언급한 이유로 이산화탄소 증가로 지구온난화가 촉진되었다는 주장은 지금까지도 동의가 되지 않는다. 교토의정서 때문에 원전사업에 다시 집중해 좋은 성과를 거두어가고 있던 어느 해인가 이산화탄소가 지구온난화의 원인이라는 주장이 원전업계에서 비롯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일이 있었다. 발전과정에서 이산화탄소를 배출하지 않는 그린에너지라는 이미지를 앞세우기 위한 큰 그림이었다는 것이다. 그것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지금도 모른다. 다만 환경을 앞세우는 각종 행동이 이권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는 작금의 상황을 보면 그럴지도 모르겠다.


정치가 되어버린 지구온난화


이제는 지구온난화가 전 세계적인 관심사가 되었다. 자연재해에 대해 인류가 연합해 대응해야 할 논의의 장이 정치색을 입고 사생결단의 장이 되었다. 나는 그것이 단순이 견해차이나 이론의 충돌로 여겨지지 않는다. 논의의 목표가 자연재해 극복에 맞춰져 있다면 의견이 달라도 얼마든 합의에 이를 여지가 있고, 자기주장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해서 그것을 패배로 여길 이유도 없다. 그러나 현실은 생사를 건 투쟁이 되었다. 그것을 이권이 아닌 어떤 것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전력에너지만 해도 그렇다. 지구온난화가 단지 이산화탄소 배출량의 문제라면 원자력에너지와 재생에너지가 충돌을 일으켜야 할 이유가 없다. 그런데 한쪽에서는 원자력에너지는 지구온난화에 방해가 되고 재생에너지만이 해결책이라고 주장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그것을 무지와 음모로 몰아붙인다. 그러다 보니 지구온난화가 원자력에너지와 재생에너지의 대결처럼 되어버렸다. 공교롭게도 서로가 서로를 비난하는 모양도 꼭 같다. 서로가 이권을 위해 행동한다고 비난하고, ‘팩트 체크’라는 방식을 동원해 상대의 논리를 부정하며, 서로에게 유리한 팩트만 선별적으로 사용하는 ‘체리 피킹’ 방식의 주장이라고 비난하는 것도 똑같다.


저자인 마이클 셸런버거는 이 책 전반을 통해 환경론자들이 자기주장을 정당화하고 관철시키기 위해 팩트를 과장하고 왜곡한다며 비판한다. 중요한 맥락을 함부로 생략하거나 분명하게 말하지 않음으로서 대중의 인식을 호도한다는 것이다. 예컨대 “지난 수십 년 동안 자연재해로 인한 사망피해가 급격히 줄어들었다는 사실을 말하지 않는다. 인류는 계속 변화한 환경에 적응해나갈 것이며 따라서 그 피해는 더 줄어들 것이라는 사실 역시 말하지 않는다.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는 화재의 발생 빈도와 피해를 좌우하는 가장 큰 요인은 기후변화가 아니다. 그보다는 사람들이 숲 가까운 곳에 사는 것, 그리고 나무를 연료로 쓰는 것이 훨씬 더 큰 영향을 미친다. 식량생산량은 기후변화가 아니라 비료, 농기계, 관개시설에 좌우된다는 사실 역시 그들은 침묵으로 감추고 있다.”고 말한다.


저자인 마이클 셀런버거를 비난하는 사람들은 “이 책은 ‘팩트 체크’ 형식으로 쓰였다. ‘종말론적 환경주의자들은 이렇게 말하는데 알고 보면 그게 아니다’라는 논법이다. ‘팩트 체크’가 필요하다. 또렷한 정치색. 과학과 정치를 뒤섞는 태도. 그러나 그가 비판하는 환경종말론 못지않게 너무나 단순한 그의 주장에는 수많은 오류가 있다. 당연히 지난해 미국에서 원서가 나오자마자 가디언이나 LA타임스 같은 신문에 비판이 실렸다. 기본적으로 자신의 입장과 맞는 데이터만 골라 제시하는 ‘체리 피킹’이라는 것이다.” 마이클 셀런버거가 이들을 비난하는 것과 글자 하나 다르지 않은 논리로 비난하는 것이다.


하지만 셸런버거는 기후 변화 자체를 부정하지는 않는다. 화석연료 연소 과정에서 배출되는 온실가스가 그 원인이라는 사실도 인정한다. 다만 기후 변화의 위험성이 과장돼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의 원제가 ‘종말은 오지 않는다’(Apocalypse Never)이다.


환경주의자들이 말하지 않는 것


저자는 환경주의자들이 지구온난화의 문제를 강조하기 위해 지구온난화가 진행됨에도 불구하고 사회의 발전으로 인해 모든 지표가 개선되어 가고 있다는 사실을 말하지 않는다고 비판한다.


“기후의 악영향은 이전에 비해 대폭 감소했다. 10년 자연재해 사망자 수는 1920년대에 정점을 찍은 후 92%나 줄었다. 1920년대에 자연재해로 목숨을 잃은 사람은 540만 명이었던 반면 2010년대는 40만 명에 불과하다. 이 기간 동안 세계 인구는 거의 4배로 폭증했다. 기상이변으로 피해를 입는 정도는 지난 수십 년간 급격히 줄었다. 부유한 나라나 가난한 나라에서 모두 발견되는 현상이다. 학술지 <Global Environmental Change> 2019년 판에 따르면 지난 40여 년간 기상이상으로 인한 사망과 경제피해는 80-90% 감소했다. 1901년부터 2010년까지 해수면은 19cm 상승했다. 기후변화정부간협의체는 2100년까지 최대 83cm 높아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네덜란드는 국토 1/3이 해수면보다 낮지만 부유한 국가를 이루었다. 해수면보다 7미터나 낮은 곳도 있다. 오늘날 환경을 개선하는 능력은 과거에 비해 전례 없이 높아졌다.”


지구온난화의 결과라고 주장하는 산불은 인간 활동으로 일어난 결과이고 기후변화로 인한 영향은 그에 훨씬 못 미치거나 거의 의미가 없을 정도라고 설명한다.


“미국지질조사소에 소속된 과학자는 캘리포니아 화재가 기후와 관련되어 일어난 경우는 단 한 해도 없었다고 밝혔다. 미국 전역의 37개 지역을 대상으로 모델링한 결과 산불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인간 활동이고, 그 영향은 기후변화로 인한 영향을 능가하거나 무의미하게 만들 정도로 강력하다. 화재의 빈도와 심각도에 영향을 미친다고 통계적으로 확인된 유일한 지표는 인근에 거주하는 인구수와 개발 진행 정도였다. 유럽인들이 북미에 도착하기 전 시에라네바다 산맥 숲에서는 10-20년 주기로 산불이 났다. 그때마다 숲에서 쌓여있는 나무들이 타버렸다. 하지만 지난 100여 년에 걸쳐 미국 정부에서 불을 일찍 끄는 바람에 연료가 될 수 있는 나무들이 축적되었고 화재 위험도 그만큼 높아졌다.”


사회의 발전은 기상재해를 촉진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환경을 파괴로부터 보호한다고 설명한다.


“환경을 지키고 싶다면 자연물을 사용하지 말아야 하고 자연물 사용을 피하려면 인공물로 대체해야 한다. 우리는 본능적으로 천연재료를 인공재료보다 자연친화적이라고 여긴다. 하지만 인류는 인공재료로 바다거북과 코끼리를 멸종에서 구했다. 등유가 보급되면서 미국의 조명용 액체연료 시장은 고래 기름을 등유로 대체했고 그 결과 고래들은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이후 고래 기름으로 마가린을 만드는 방법을 찾아내면서 고래 수요가 대폭 늘어났다. 하지만 화학자들이 팜유를 이용해 만드는데 성공함으로서 이를 대체했고 다시 고래의 목숨을 구한 것이다. 고래를 구한 것은 국제조약이 아니라 등유였고 식물성 기름이었다. 농업 생산성이 높아질수록 야생의 영역은 넓어진다. 세계적으로 보면 삼림회복 속도가 삼림파괴 속도를 따라잡고 있다. 1961년 이래 농경지 총면적은 6% 늘어났지만 전체 식량 생산량은 300% 증가했다. 2000년 이후 목초지가 4.5% 줄어들었는데 그 후 17년간 소고기 생산량은 19% 우유 생산량은 38% 늘었다. 기계화 영농을 가축을 덜 쓰다 보니 가축에게 먹여야 할 곡물을 기르지 않아도 되었다. 그렇게 절약한 땅이 미국 전체 농경지의 1/4에 이른다. 관개시설을 개선함으로서 농업 생산물 당 물 사용량이 줄어들고 있다. 농업생산성이 높아질수록 강과 바다로 흘러들어 가는 질소폐기물의 양은 줄어든다. 농업생산성 증가로 토양 유실이 줄어든다.”


원자력에너지와 재생에너지


쓰리마일 원전, 체르노빌 원전, 후쿠시마 원전의 사고가 이어지면서 원전은 세상에 존재해서는 안 되는 악이 되었다. 원전의 경제성은 그런 사고로 발생한 천문학적인 피해를 포함하지 않은 것이니 고려할 가치조차 없다고 말한다. 그런데 세계보건기구를 비롯한 공신력 있는 국제기구에서 발표한 바에 따르면 어디서도 원전 반대론자들이 주장하는 피해가 발생한 사실이 없다.


“1986년 일어난 체르노빌 원전사고와 관련해서 유엔은 2065년까지 1만6천 명의 방사능 피해자가 나올 것으로 예상했다. 2017년 유엔은 이를 5천 명으로 변경했다. 지금까지 실제로 보고된 공중보건피해는 갑상선암 발병 사례 2천 건이 전부이다. 갑상선암 사망률은 1%에 불과하다 따라서 평균 수명을 80세로 본다면 유엔의 발표를 따른다고 해도 갑상선암으로 사망한 경우는 50건에서 160건 사이가 될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은 치료만 제대로 하면 사망률이 워낙 낮기 때문에 갑상선암을 별로 겁내지 않는다. 세계보건기구 발표에 따르면 체르노빌 사고로 우크라이나와 벨라루스 주민들은 자연 방사능보다 미세하게 높은 수준의 방사능에 노출되었다. 그로 인한 암 사망 기대치는 0.6% 높아진 것으로 보인다. 후쿠시마 원전사고 지역의 주민 8천 명을 3년간 관찰한 결과 이들은 방사능에 건강의 영향을 받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2017년 어느 날 갑자기 정부에서 선언한 탈원전 정책은 이와 같은 팩트 위에 세워진 것이 아니라 환경론자들의 일방적인 주장과 과장과 허위 위에 세워진 것이었다. 문제는 거기서 그치지 않는다. 원자력에너지의 대안으로 간헐성이라는 극복하기에는 너무나 비싼 대가를 치러야 하는 재생에너지를 제시했다는 것이다.


나는 그동안 같은 발전량을 확보하기 위해 투입되는 원가의 차원에서만 원자력에너지와 재생에너지를 비교해왔다. 내 계산에 따르면 일어나지도 않을 ‘천문학적인 피해’라는 거품을 걷어내고 나면 재생에너지는 결코 원자력에너지의 경쟁이 되지 못한다. 하지만 재생에너지는 그 정도와는 비교할 수 없는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는 것을 뒤늦게 알게 되었다. 바로 에너지 저장과 그리드의 문제였다. 그에 대해 저자는 이렇게 설명한다.


“미국 전력망에 연결되어 있는 모든 집과 사무실, 공장을 4시간 유지하기 위해서 에너지 저장시설을 지으려면 8,940억 달러가 필요하다. 독일의 경우 풍력이 전체 전력의 20%를 차지할 때 전력망(그리드) 유지비용은 60%가 늘어나고 전체 전력의 40%를 차지할 때 전력망 유지비용은 100%가 늘어난다. 풍력 발전소는 상대적으로 외진 곳에 건설되기 때문에 전력망에 연결하기 위해 송전선을 더 가설해야 한다. 인간이 통제할 수 없는 자연현상에 따라 발전량이 오르내릴 때 그것을 안정시키기 위해 추가 설비와 인력이 필요하다. 기후와 에너지 과학자 집단의 연구에 따르면 미국이 태양광과 풍력으로 전환할 때 대륙 단위의 기상 현상과 계절 변화를 고려할 경우 에너지 저장시설 설치와 운영비용으로 23조 달러 이상이 필요할 것이라고 한다. 참고로 2019년 미국의 GDP는 22조 달러이다.”


그것뿐 아니다. 에너지 저장시설의 한계를 극복한다고 해도 에너지를 저장했다가 다시 전기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상당한 손실과 비용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에너지 저장시설의 저장시간은 기껏해야 몇 분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신재생에너지는 며칠이나 몇 주씩 에너지를 저장해야 한다. 에너지는 형태를 변환할 때 손실을 감수할 수밖에 없다. 전기를 이용해 댐에 물을 퍼 올릴 때, 배터리에 전기를 저장할 때, 수소가스로 만들 때, 그리고 그렇게 저장한 에너지를 다시 전기로 만들 때 막대한 물리적 경제적 비용이 들어간다.”


에너지 저장시설을 빼고 발전소 자체를 건설할 때 투입한 에너지와 그 발전소에서 생산하는 에너지를 비교해보면 재생에너지가 얼마나 비효율적인 전원인가 쉽게 알 수 있다.


“한 연구에 따르면 독일의 경우 원자력발전소는 건설할 때 투입된 에너지의 75배, 수력발전 댐은 35배를 생산한다. 태양광은 1.6배, 풍력은 3.9배, 바이오매스는 3.5배를 생산한다.”


물론 경제성이 전부는 아니다. 계란은 한 바구니에 담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 원자력에너지가 청정에너지이고 경제적인 에너지라고 해도 거기에 너무 많이 의존하면 그것이 잘못되었을 때 만회하기 어렵다. 모든 것이 전기에너지에 연결되어 있는 지금의 상황을 감안한다면 만회하기 어려운 정도가 아니라 돌이킬 수 없는 혼돈의 상황을 맞을 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에너지 정책을 세우는데 ‘에너지 믹스’라는 개념은 선택의 여지가 없는 일이다. 각각의 장점으로 다른 전원의 약점을 보완하고, 한쪽이 멈췄을 때 어떤 상황에서든 즉각 대체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원자력에너지와 재생에너지를 선악의 개념으로 접근하는 정부의 정책은 얼마나 잘못된 것인가.


입에 쓴 약


이 책을 읽는 동안 속이 다 시원했다. 그동안 가져왔던 의구심이 잘못된 것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으며, 환경론자와 재생에너지를 신봉하는 이들의 주장이 가진 오류를 선명하게 지적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물론 읽어가면서 무리한 부분이 눈에 띄기도 했고 동의되지 않는 부분도 보였다. 하지만 이 정도면 반대쪽에 서있는 사람들이 반박하기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에 대한 기사를 검색해봤다. 이 책의 취지에 공감하는 만큼, 그 정도 강도로 비난하는 글이 도처에 널렸다. 앞서 말한 것처럼 동일한 방식으로 서로를 비난하고 있었다. 억지스럽고 근거도 제시하지 않은 반론이 없는 건 아니었지만 때로 매우 합리적인 반론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래서 팩트를 기반으로 하는 토론을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불가능할 것이다. 객관적이 되기에는 이미 너무 멀리 와버렸기 때문일 것이다. 지금 상황에서 상대의 주장 중 어느 하나라도 인정하는 건 굴복을 뜻하는 것이 되어버렸으니 말이다.


나는 40년 넘게 원전산업에 몸을 담아왔다. 그러나 원전이 최선의 선택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자연과학을 공부했고 지금도 환경사업이 내 주요한 업무 중 하나이다. 인간은 지혜로워서 결코 멸망에 이르도록 스스로를 내버려 두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다. 그러면서도 환경에 대한 우리의 의식이 좀 더 깊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과 이 책에 대한 비판의 글을 함께 읽은 것은 내게 큰 의미가 있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법의 이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