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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인식 Sep 17. 2021

10년 후 세계사, 두 번째 미래

불평등과 차별을 넘어서

구정은 이지선

추수밭

2021년 7월


몇 달이면 끝날 줄 알았던 코로나가 해를 넘기더니 이젠 퇴치는 불가능하고 그저 동무 삼아 살아야한다는 말까지 나온다. 출입이 자유롭지 않으니 여러 모로 불편한데, 누구에게는 그저 불편한 일이 다른 누구에게는 생계 걱정을 넘어 생존을 염려하는 일이 되었다. 코로나로 대면 활동이 제한되면서 각종 배달업이 호황을 누리고 플랫폼이라는 낯선 이름이 산업이 등장했다. 그 과정에서 삶의 주체가 되어야 할 사람이 도구에 불과한 존재로 전락해가고 노동의 대가는 시간이 갈수록, 플랫폼 산업이 호황을 누릴수록 줄어들고 있다. 플랫폼 산업은 인공지능을 기반으로 하는 알고리즘으로 운영되는데, 학습의 결과물이라는 인공지능은 사람의 긍정적인 행위 뿐 아니라 부정적인 행위까지 학습하다 보니 사회적 약자에게 가해지는 차별이 되풀이되고 심화되어 간다. 결국 지금의 시대 상황을 대표하는 전염병ㆍ플랫폼 산업ㆍ인공지능은 빈곤과 그로 인해 발생하는 차별의 악순환을 심화시키는 기재가 된 것이다.


이 책은 이와 같은 시대 상황이 가지고 있는 문제가 무엇인지, 왜 그런 결과가 생겨났는지 살핀다. 그리고 그것을 바탕으로 멀지 않은 장래에 우리가 어떤 갈등에 처하게 될지 고민해보고 그 갈등을 해소하거나 최소화하기 위해 어떤 고민을 해야 할지 화두를 던지고자 한다.


나는 최근 심화되는 불평등과 차별이 사회의 존속 자체를 위협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다 보니 모든 논의를 그 관점에서 바라보고 있고, 특히 그런 부정적인 요소들이 임계점을 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사회 구성원 모두가 감당해야 할 몫이 무엇인지 하는 것에 관심을 두고 있다. 그래서 저자는 이 책에서 위의 세 가지 주제 말고도 다양한 주제를 다루고 있음에도 내 시선은 오로지 불평등과 차별에 쏠렸다.


코로나 바이러스


“누구나 감염될 수 있다는 점에서 바이러스는 평등하다. 하지만 특정 계층ㆍ인종ㆍ지역의 사람들에게 더 가혹하다는 것을 코로나를 겪으며 모두가 지켜봤다. 뉴욕시 보건부에 따르면 주민의 30%가 빈곤층인 지역에서는 인구 10만 명 당 232명이 사망했지만 빈곤층이 10% 미만인 지역에서는 100명에도 이르지 않았다. 사망률이 444명으로 가장 높은 브루클린 인근 스타렛시티의 주민은 흑인 40%, 라틴ㆍ히스패닉 25%였다. 반면 백인들이 주로 사는 고급 주택가인 그래머시파크는 사망자가 가장 적었다. 이 과정에서 <백인=고소득층=고연봉=고급주택>, <유색인종=저소득층=저임금=임대주택>이라는 등식이 생겨났다. 흑인이나 히스패닉이 더 취약한 것은 ‘인종’ 때문이 아니라 ‘인종에 따른 사회경제적 격차’ 때문이다.”


“코로나19 발병률과 입원률이 백인보다 흑인ㆍ히스패닉ㆍ아메리카 원주민에게서 최소 2.5배에서 4배 정도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소수 인종인 경우 사회경제적으로 취약한 경우가 많고 주거나 근무환경도 방역에 취약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켜켜이 쌓인 인종차별정책, 주택 교통과 같은 인프라, 경제활동과 교육의 기회, 건강관리, 대기의 질과 같은 ‘사회적 불평등’이 코로나의 ‘인종적 불평등’으로 귀결됐다. 우리나라에서도 소득이 낮을수록 코로나로 인한 사망위험이 높아진다는 보고가 나왔다. 소득수준 최하위 의료급여수급자의 사망위험이 건강보험료 상위 20%에 해당하는 직장가입자보다 2.8배 높았다. 의료급여 수급자는 기초 건강상태가 나쁘기 때문이다.”


플랫폼 노동


“일자리가 아닌 일감을 중심으로 필요에 따라 계약을 맺고 움직이는 경제모델은 플랫폼이 일거리와 노동자를 연결시켜주는데, 이러한 노동의 형태는 대가가 정해져 있지 않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들은 모두 알고리즘을 이용해 작업을 지시하고 임금을 결정한다. 그러다 보니 노동자들은 알고리즘에 의해 끊임없이 업무를 조종당하고 평가받으며 다른 노동자들과의 경쟁에 내몰린다. 알고리즘은 최적의 작업계획을 찾아내 매 순간 능력을 100% 쏟아내도록 구축되어 있다. 하지만 작업상황이 늘 최적의 상태일 수 없고, 더구나 사람이 매일 기계처럼 그렇게 일할 수는 없는 일이다. 결국 최적의 관리방안을 찾아낸다는 이 시스템이 추구하는 목적은 최대 이윤으로 모아진다. 플랫폼 기업은 이 궁극의 목적을 좇아 알고리즘을 끊임없이 업그레이드한다. 알고리즘이 진화한다는 것은 노동자들에게는 매번 상황이 바뀌고 매번 임금이 깎인다는 의미가 된다.”


“플랫폼 기업과 노동자 사이에 힘의 균형이 깨져있다. 책임은 피하고 위험은 떠넘기면서 기업은 이윤을 취하는 반면 노동자는 주문별로 쪼개진 노동의 조각들을 주워 모아야 한다. 2020년 9월 아마존 창고 150곳의 최근 4년간 사고 기록을 보면 작업을 기계화한 후 노동자들이 중상을 입은 산업재해가 59% 늘었다. 노동자일 때와 소비자일 때 사람들의 관점은 180도 바뀐다. 택배에 대한 조사 결과 배송의 관건은 역시나 속도였지만 빨리 배송 받기 위해 추가비용을 내겠다는 답변은 적었다. 더 빨리 배달해야만 하는 업체들로서는 착취를 피할 수 없는 구조이다.”


인공지능


“인공지능이 노동자들을 창의적인 일이 아닌 저임금 단순노동으로 밀어낼 것이다. 특히 교육수준이나 임금수준이 낮은 사람과 여성에게 더 큰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높다. 지금 사회에서 혜택을 덜 받고 덜 누린 사람들이 가까운 미래에 더 빨리 밀려날 것이다. 전문가라고해서 마음을 놓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실제로 의사ㆍ변호사ㆍ기자ㆍ주식거래인의 일에 이미 인공지능이 도입되기 시작했다.”


“인공지능을 가진 로봇이 인간을 관리 감독하는 일도 얼마든지 생길 수 있다. 알고리즘이 바로 그것이다. 택배기사 라이더들의 노동 가운데 상당 부분은 스마트폰에 깔린 프로그램의 통제를 받는다. 인공지능이 발전하면서 사람들은 알고리즘에 더 매이게 된다. 고용 평가 보상 등 과거에 윗사람들이 했던 일이 점차 인공지능에 넘어가고 있다.”


“인공지능을 학습하는 가운데 차별과 편견이 입력될 수 있다. 2016년 미국 독립저널리즘 매체는 인공지능이 백인 수감자보다 흑인 수감자의 재범 위험성을 높게 평가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고 보도했다. 2019년 11월 중국 정부가 알고리즘을 이용해 신장 위구르 주민들을 분류하는 사실이 폭로되었다.”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플랫폼 산업은 알고리즘 기반 위에서 운영된다. 알고리즘도 사람이 만드는 것이지만 워낙 기술적인 요소이다 보니 설명을 들어도 이해하기 어렵다. 노동착취에 가까운 시스템을 만들어놓고도 알고리즘이라는 이름 뒤에 숨어버린다. 그래서 노동착취가 분명한데도 누구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을지조차 불분명하다. 저자는 뉴욕대학교 AI나우연구소 2019년 보고서를 인용해 “앞으로 노동자가 싸워야 할 주된 대상은 몽둥이를 든 용역업체 직원이나 회사 간부가 아니라 알고리즘이라는 형체 없는 존재가 될 수도 있다. 앞으로는 노동자가 착취적인 인공지능에 이의를 제기할 수 있어야 하고 노조가 이를 돕는 역할을 맡아야 한다.”고 말한다.


현재로서는 그게 가장 현실적인 방법일지 모른다. 가능하다면 좀 더 많은 전문가들이 이를 위해 발 벗고 나서면 좋겠다. 하지만 그것보다는 플랫폼 산업이 사용하는 알고리즘의 노동착취성향이나 비인간성을 겨냥해 이를 무력화시킬 수 있는 또 다른 알고리즘을 제공하는 산업을 만들어내는 건 어떨까? 아니 만들어내지 않아도 그런 산업이 곧 나타날 것 같지 않은가?


플랫폼 기업의 문제는 이미 당면한 사회문제가 되었다.


“2019년 미국 캘리포니아 주 의회에서 플랫폼 노동자를 독립계약자로 규정하는 것을 제한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기준을 충족할 경우 플랫폼 기업에 고용된 노동자로 보아야 한다는 취지였다. 2018년 뉴욕, 2020년 시애틀에서 플랫폼 노동자의 최저임금을 보장하는 법안이 통과되었다. 2020년 스페인 음식배달기사가 자영업자가 아니라 노동자라고 판결했다.”


“우리나라에서도 2019년에는 대리기사도 노동조합법상 근로자라는 법원 판단이 나왔고 이듬해 고용노동부가 전국대리운전노조에 설립신고필증을 내주면서 대리운전 기사들도 단체교섭이 가능해졌다. 서울북부지방노동청은 2019년 음식배달원들이 사업자가아니라 노동자라고 인정했다. (법적지위는 아직 개인사업자에 머물러 있다.) 2020년 대규모 플랫폼 기업들과 배달노동자 7만5천여 명이 플랫폼 노동자 권익보장에 관한 협약을 맺었다.”


제재하는 법을 만들었다고 기업이 맥없이 당할 것도 아니고 뭔가 우회로를 만들어내겠지만, 그래도 플랫폼 노동으로 희생되는 노동자의 권리에 대해 국제적으로 인식이 개선되고 대안의 필요성이 대두되니 만큼 앞으로 개선을 기대해볼만 하겠다. 그래서 매우 고무적이다. 그런데 그것이 세계적으로 심화되고 있는 불평등과 차별을 얼마나 개선시킬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것은 제도와 틀만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니 말이다. 아직도 우리 주변 곳곳에 불평등 뿐 아니라 차별과 혐오가 도사리고 있다. 제도와 틀이 도움이 되겠지만, 그것 이상의 변화가 필요한 것이 아닐까?


10년 후 세계사; 두 번째 미래는?


저자는 서문에서 우리가 당면한 현실을 살펴서 변화의 방향을 짐작해보고 그 소용돌이 속에서 어떤 문제가 불거지고 어떤 기회가 찾아올지, 누가 이 흐름에서 밀려날 것인지, 그 아픔을 줄이기 위해서 어떤 준비를 해야 할지 생각해보려고 한다고 말한다. 그래서 당면한 현실을 정성적ㆍ정량적으로 들여다본다. 그것을 위해 1부에서 노동의 변화에 대해서, 2부에서 인간의 오만함이 저지르는 문제에 대해서, 3부에서 이주와 격차에 대해서 살펴본다. 그리고 문제와 원인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하고 있다.


그렇기는 한데 어떤 문제가 불거질지, 어떤 기회가 찾아올지, 누가 이 흐름에서 밀려날지 선명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물론 내가 못 읽은 것일 수 있다. 독자의 몫으로 남겨놓은 것일 수도 있고.


저자는 늘 숫자와 논리에 익숙한 이과생인 내가 읽기 편하게 글을 쓴다. 덕분에 무거운 주제를 지루하지 않게 살펴볼 수 있었다. 때로 대강 훑어만 보는 책도 있는데 이 책은 한 쪽도 빼놓지 않고 모두 읽었다.


저자는 기상이변의 예로 “사우디아라비아에서 눈을 보는 일은 흔치 않다. 소셜미디어에 눈 구경을 즐거워하는 타부크 사람들의 모습이 올라왔다”고 들었는데, 타부크는 고산지대여서 겨울이면 늘 눈이 온다. 매년 일어나는 일이어서 기상이변의 결과도 아니고 “흔치 않다”도 아니다. 오해는 마시라. 한 쪽도 빼지 않고 다 읽었다는 증표로 표시한 것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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