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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인식 Sep 19. 2021

[사우디 이야기 66] 환경 시장

사우디 이야기 (66)

1991년 걸프전 때 쿠웨이트 유전이 파괴되어 쿠웨이트부터 사우디 주베일에 이르는 해안이 온통 원유로 오염되었다. 당시 보도된 원유를 뒤집어쓴 바닷새 사진으로 오염 참상이 널리 알려지면서 세계적으로 환경파괴에 대한 경각심을 높아졌다. 전쟁이 끝난 후 유엔에서는 전쟁을 일으킨 이라크에 원유오염에 대한 책임을 물었으며, 그때 이라크에서 지불한 보상금을 피해국인 쿠웨이트와 사우디에 배정해 오염해안을 복원하도록 했다. 실제로 환경복원공사가 시작된 것이 2012년이었으니 전쟁이 일어나고 그로 인한 피해를 복구하기까지 무려 20년이나 걸린 것이다.


<쿠웨이트 유전 파괴로 유출된 원유를 뒤집어쓴 바닷새>
<유출된 원유가 굳어 형성된 아스팔트로 뒤덮인 해안>


본사에서 미군반환기지 유류오염 복원공사를 지휘한 경험이 있어서 사업을 맡기는 했지만 우선 규모부터 크게 차이가 났고 더구나 작업구간이 해안이라는 점에서 성공적으로 공사를 마칠 수 있을지 걱정스러웠다. 사업을 주관하는 사우디 환경부는 물론 사업관리단으로 참여한 세계 유수의 전문가들도 처음 해보는 일이어서 모두 우왕좌왕했다. 그래도 경험이 크게 도움이 되었던지 우리가 시공한 공구가 전체 20여개 공구 중 거의 유일하게 유엔이 설정한 목표를 달성했다. 여세를 몰아 후속사업을 준비했지만 장관이 급작스럽게 경질되면서 발주가 지연되기 시작했다. 그렇기는 해도 유엔에서 환경복원공사로 특정해 자금을 지급했기 때문에 다른 용도로 전용이 불가능했고, 그래서 언젠가 후속사업이 진행될 것으로 낙관했다. 그 후로 환경부가 농업수자원부와 합병되고 유엔 자금도 어디론가 이관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UN 환경복원공사 표지판>


그렇게 되자 눈길을 다른 곳으로 돌려야 했다. 큰 규모는 아니더라도 세계 최대의 유전이 있는 나라이니만큼 원유 누출로 오염된 곳이 많지 않을까 생각했다. 하지만 사우디 정부나 석유개발을 담당한 아람코 어디에서도 (긴급한 누출사고 처리를 빼고는) 환경복원사업을 계획한다는 이야기를 들어보지 못했다. 본사에서 근무할 때 유류오염 복원공사와 더불어 광해(광산피해) 복원공사도 함께 수행했다. 사우디는 산유국의 대명사로 불리지만 사실 지하자원도 엄청나고 개발 중인 광산도 무척 많다. 당연히 광해가 발생했을 것이지만, 사우디 정부나 광업공사(Ma'aden)에서 광해 복원사업을 계획한다는 이야기는 역시 들어보지 못했다. 몇 년 동안 이곳저곳 다리품을 팔다가 결국 복원공사에 대한 기대를 접었다.


현지법인의 발판으로 삼으려했던 환경복원사업에 대한 기대가 사그라지면서 2015년부터 본사의 또 다른 강점인 쓰레기소각장 사업으로 방향을 전환했다. 이를 위해 각 지방정부를 겨냥해 영업을 시작했다. 서부 지역인 타북ㆍ메디나ㆍ제다ㆍ지잔을 대상으로 쓰레기처리의 문제점을 설명하고 선진화 방안을 제안했다. 당시 이미 각 시청에 분리수거용 쓰레기통이 놓여있었다. 비록 시중에서는 볼 수 없는 것이었어도 그 정도라면 기대를 걸어도 되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때 그것이 어떻게 운영되는지도 살폈어야 했다. 당시에 분리수거용 쓰레기통이 있다는 것만으로 어느 정도 준비된 것으로 짐작했고, 그 때문에 그 후로 적지 않게 혼선을 겪었다. 요즘도 분리수거 쓰레기통은 그대로 놓여있다. 그런데 쓰레기통만 놓여 있지 거기에 쓰레기를 버리는 사람은 시청사를 꽤 여러 번 방문했는데도 아직까지 보지 못했다.


그러던 중에 월드뱅크에서 사우디 쓰레기 종합처리계획을 수립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때까지 월드뱅크는 자금조달 창구로만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자금조달과 관련한 각종 컨설팅을 전담하는 기구가 따로 있었다. 다른 경로를 통해 입수한 종합처리계획 중간 보고서를 꼼꼼히 살펴보고 책임자를 만났다. 사우디의 쓰레기처리 현황에 대한 판단이나 해법이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아서 쉽게 서로의 생각에 공감할 수 있었고, 덕분에 보고서 이면에 감춰져 있는 진솔한 의견을 들을 수 있었다.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현황을 우리보다 부정적으로 보고 있었다. 그래서 우리가 궁극적으로 목표하는 것보다 한두 단계 아래 수준의 해법이 현실적일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우리는 쓰레기 처리의 최종목표인 ‘제로 웨이스트(Zero Waste)’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사우디에서도 궁극적으로 소각장을 받아들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월드뱅크에서는 이제는 사우디도 환경의 중요성에 대해 공감하고 있기는 하지만 아직 그것을 위해 돈을 쓸 준비는 되어있지 않으며, 그래서 현재 운영되고 있는 비위생 매립장을 위생 매립장으로 개선하는 정도가 최선일 것으로 판단한다고 했다. (매립장 바닥에 침출수가 땅으로 스며들지 않도록 차단막을 깔고, 침출수를 한곳으로 모아 처리할 수 있도록 만든 것을 위생 매립장이라고 하고, 그런 시설 없이 쓰레기를 버리고 흙으로 덮는 걸 비위생 매립장이라고 한다. 사우디는 최근 10년간 신설ㆍ증설한 매립장 말고는 대부분 비위생 매립장이다.)


쓰레기 처리에 예산을 투입할 계획이 없다는 것은 우리도 알고 있었고, 그래서 민간투자 방식으로 소각장을 건설하고 지방정부에서 사용료를 지불하는 모델을 제안할 계획이었다. 사용료 회수가 가능하다면 투자하겠다는 의사도 확인해 놨다. 하지만 월드뱅크에서는 그것도 가능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그들은 지금 사우디 상황을 ‘부풀대로 부풀어 올라 뭔가 닿기만 하면 터져버릴 풍선’으로 비유했다. 그렇지 않아도 수입은 나아지는 것 없이 부가가치세에 휘발유 값이며 전기요금ㆍ수도요금도 인상되어 불만이 팽배해 있는데 거기에 생각조차 해보지 않은 쓰레기 처리비마저 부과된다면 풍선은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터져버릴 것이라는 말이었다. 그래서 그런 상황을 잘 아는 정부가 결코 그런 제안에 동의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몇 달 전, 주택단지를 개발하는 공기업에서 쓰레기 처리계획을 세우는데 필요한 타당성평가 요청을 받았다. 사우디에 주택난이 심각하다고는 해도 주택시장이 그리 활발한 상황이 아니어서 주택 분양이 녹녹치 않은데, 그래서 차별화된 주택 브랜드를 만들어 리야드에서 성공시키고 이 모델을 전국으로 확산시킬 계획이라고 했다. 그 구체적인 계획으로 주택단지 개념을 도입해 분양 후에도 전체적으로 관리하고, 하수처리장도 지하에 건설하고, 쓰레기도 매립이 아닌 소각으로 처리하겠다는 것이었다.


주택단지에 좋은 부대시설을 설치하는 것으로 끝나는 일이면 그에 해당하는 공사비를 분양가에 반영하면 된다. 하지만 쓰레기 소각장은 운영비도 적지 않아서 그 비용을 어떻게 충당할지 잘 모르겠다. 우리나라처럼 관리사무소가 있어서 관리비를 받는 시스템이라면 모르겠는데, 아직 사우디에 분양하고 나서 관리비를 받는 주택단지가 있다는 이야기는 듣지 못했다. 이들이 계획하는 주택단지가 고급형이니 좋은 서비스를 받고 그만큼 비용을 부담하는 구조가 통할 수도 있겠다. 그렇다면 일부 경우에 한해 소각장이 받아들여질 여지도 있어 보인다.


하지만 사우디 전체로 본다면 소각장 건설비와 운영비를 부담할 여력이 있는 지방정부가 있을까 싶고, 그렇다고 그걸 일반 시민들에게 전가시키겠다는 것도 비현실적으로 보인다. 사우디는 면적이 215만km2으로 남한의 21배가 넘고 인구는 3천5백 만으로 남한의 2/3에 지나지 않는다. 인구밀도로 보면 남한이 사우디의 30배가 넘는다. 사방이 비어있는 땅인데, 그래서 쓰레기 묻을 곳이 사방에 널려 있다고 생각할 텐데, 그런 시민들에게 쓰레기를 묻지 않고 소각해야 하니 처리비를 내라고 하면 과연 얼마나 거기에 동의할 것인가?


비록 수년 간 쓰레기 소각장 사업을 도모해오고 있기는 하지만 수년 내 사업이 가시화되기는 어려워 보인다. 물론 시범적으로 몇 곳에서 추진될 수는 있겠다. 그러나 본격적으로 쓰레기 소각이 이루어지는 시기는 빨라도 십 년은 걸릴 것으로 생각한다. 나라면 차라리 그 비용으로 인구 밀집지역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제대로 된 위생 매립장을 건설하고 그로 인해 쓰레기 운반거리가 늘어나는 문제를 해결하는데 집중하겠다. (쓰레기 처리비는 쓰레기 운반거리에 가장 크게 좌우된다. 그러니 모든 쓰레기차가 매립장까지 가는 게 아니라 도심 곳곳에 중간 집하장을 만들어 그곳까지 운반하고, 거기서부터는 대형트럭으로 매립장까지 운반하는 게 효율적이다. 대체로 대형트럭이 일반 쓰레기차 4대 분량을 운반한다.) 생각해보니 월드뱅크에서 생각한 궁극적인 목표가 그 정도였다.


환경관련 산업이라면 크게 생활쓰레기를 비롯한 산업폐기물ㆍ유해폐기물ㆍ의료폐기물을 처리하는 일과 오염된 환경을 복원하는 일을 들 수 있다. 아직 갈 길이 멀기는 하지만 이 중 산업폐기물ㆍ유해폐기물ㆍ의료폐기물 처리체계는 어느 정도 갖춰져 있다. 생활쓰레기 처리는 매립방식을 벗어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아직 운영 중이거나 이미 폐쇄된 비위생 매립장은 침출수로 인한 토양ㆍ지하수 오염 가능성이 매우 높은데 (실제로 우리가 수행한 용역에서 이런 추정을 확인하였다) 지금까지 접촉한 지방정부의 사고방식으로 볼 때 복원 대신 폐쇄 쪽으로 가닥을 잡을 것으로 보인다. 물론 그런 식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


환경산업에는 이밖에도 대기ㆍ소음ㆍ진동과 같은 분야가 있는데 우리 사업 영역 밖이어서 그에 대해서는 알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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