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Book Review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인식 Sep 28. 2021

성서와 동성애

차별금지법을 향해

김진호

오월의 봄

2021년 1월


“나는 그간 수쿠크법을 막는 데 최선봉에 섰다. 동성애 반대 운동을 주도했으며, 종교인 과세를 전략적으로 대처했을 뿐 아니라 포괄적 차별금지법을 막는 최선두에 섰다.”


작년 어느 교단 총회장 취임사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긍휼에 힘입어 중생의 은혜를 누리고 있는 사람이 차별과 불법을 자행했다는 것을 오히려 자랑으로 여겨 듣기가 몹시 민망했다.


작년 6월 차별금지법이 발의되었다. 차별금지법이야 말로 예수 그리스도의 긍휼을 구현하는 법률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동안 수많은 좌절을 지켜봤으면서도 그에 굴하지 않고 다시 발의에 나선 국회의원이 있다는 소식에 적이 마음이 놓였다. 그러나 이 법안이 발의되었다는 소식과 동시에 보수 기독교계가 이를 저지하기 위해 전방위적으로 압박하고 나섰다는 소식을 들으면서 조만간 그 여파가 우리 교회에까지 밀려올 것을 예상했고, 그에 대한 내 생각을 정리할 필요가 있어서 작년 7월부터 두 달 동안 열두 번에 걸쳐 <차별금지법 살펴보기>라는 글을 썼다.


그 글에서 차별금지법이 신앙의 자유를 속박하는지(법적), 동성애가 타고난 성적지향인지 아니면 전환치료가 가능한 질병인지(의학적), 그리고 성경은 동성애를 죄로 여겨 금하고 있는 것이 사실인지(성서적) 살펴보고자 했다. 가지고 있는 법적ㆍ의학적ㆍ성서적인 지식이라는 것이 상식 수준을 넘지 못하는 나로서는 매우 무모한 일이기는 했다. 그래도 앞으로 교회 안에서 이 문제가 불거질 경우 피할 수 없는 처지였기 때문에 그 무모한 일에 덤벼들 수밖에 없었다.


법적ㆍ의학적 질문에 대한 자료는 생각 밖으로 정리된 것이 많고 그에 비해 내가 아는 것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쉽게 객관화시킬 수 있었다. 이와는 달리 그리스도인으로서 성서에 대한 나름의 판단이 자꾸 개입되다 보니 성서적 관점에서 발표된 자료를 정리하는 것이 오히려 혼란스러웠다. 관련된 책이 여러 권 출간되었지만 전자책으로 발간된 것이 드물어 책 몇 권과 발표된 자료에 의존해야 했다. 그런 상황이어서 이 책에 대한 기대가 컸다.


성경이 동성애를 금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근거로 삼는 사건은 창세기 19장의 두 천사가 소돔에 있는 롯을 찾아갔다가 소돔 사람들이 ‘상관’하겠다고 롯에게 두 천사를 내놓으라고 요구한 사건과 사사기 19장의 레위 사람이 집을 나간 첩을 찾아 돌아오는 도중 여부스에서 묵을 때 동네 불량배들이 ‘관계’하겠다고 레위 사람을 내놓으라고 요구한 사건을 들 수 있다. 그리고 레위기 18장의 시내산에서 받은 율법, 로마서 1장의 사도바울이 열거하는 ‘우상숭배 결과로 일어나는 죄악목록’, 고린도전서 6장의 사도바울이 열거하는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는 자’의 유형, 디모데전서 1장의 사도바울이 교훈하는 중에 언급한 금지해야 할 행동 목록에 동성애가 분명하게 들어있다고 말한다.


저자는 각 본문이 뜻하는 바가 무엇인지 살펴보는 여느 학자들과는 달리 성경이 기록된 시대 전반에 걸친 상황과 역사적 배경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예컨대 “부족동맹 이스라엘 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성경은 여호수아ㆍ사사기ㆍ사무엘ㆍ룻기 등으로 이들은 모두 기원전 11-13세기 팔레스타인 특히 중부 고지대에 살던 부족의 이야기를 다루는데, 그때는 문헌이 존재하지 않던 선사시대이므로 성경에 기록된 이야기는 각 부족 사이에서 구술로 전해졌다가 수 백 년이 지난 기원전 9-7세기에 기록된 것으로 추정되며, 따라서 이를 해석하기 위해서는 당시의 시선으로 재해석해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레위기 20장의 배경이 되는 당시 지중해와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는 동성애가 흔히 있는 일이었고 심지어 남성 동성애는 권장되는 이상적인 사랑이었으며, 그렇기 때문에 남자와 남자가 동침하는 것을 사형에 해당하는 죄로 규정한 본문은 동성애를 반대하는 텍스트라기보다는 다른 데 목적을 둔 텍스트일 가능성이 훨씬 더 높다고 봐야한다고 말한다.


저자는 이러한 역사적 배경을 바탕으로 본문에 대한 해석상의 오류를 지적하고 있다. 그런데 그 내용이 너무 전문적이어서 많은 부분이 몇 번을 읽어도 제대로 이해하기 어려웠다. 그 중 비교적 설득력 있게 다가왔던 설명 몇 가지는 다음과 같다.


동성애가 성경에서 금하는 죄라고 주장하는 이들은 창세기 19장에서 롯의 집을 방문한 천사를 내놓으라고 하는 소돔 사람이나 사사기 19장에서 여부스에 유숙한 레위 사람을 내놓으라고 하는 동네 불량배들이 동성애자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저자는 “남자를 내놓으라고 행패를 부리는 동네 사람이나 불량배가 동성애자들이라면 그들에게 남자 대신 여자를 내주겠다는 것이 어떻게 협상안일 수 있는가? 남성 동성애자들이 여성을 집단적으로 성폭행했다 게 가능한 일인가?” 묻는 것으로 가볍게 그들의 주장을 기각한다.


또한 로마서 1:26-27에서 성관계로 번역되는 ‘크레시스’는 상대를 마음대로 사용한다는 뜻이 들어있기 때문에 일방적이고 폭력적인 상황을 나타내는 표현이며, ‘그들의 여자들’과 ‘그 남자들’은 남녀 권력자를 가리키기 때문에 바울이 이들을 비판한 핵심은 동성애가 아니라 상대와 대등한 관계가 아닌 ‘끌려온 노예나 빈민 또는 서민층의 남자나 여자를 성적으로 농락’한 것이라고 설명한다. 말하자면 이 텍스트는 ‘권력형 성폭력’을 비판하는 것이지 결코 동성애를 정죄하는 것이 아니라고 설명한다.


저자는 보수 기독교계에서 내세우는 주장과는 달리 교인 개개인은 차별금지법이나 동성애에 대해 그렇게 부정적이지 않았다는 아래와 같은 고무적인 소식도 들려준다. 또한 짐작했던 대로 보수 기독교 지도자들이 동성애 반대의 기치를 내세운 것은 정말 성경이 그렇게 말씀하고 있다고 믿어서라기보다는, 이전에 도구로 사용했던 반공주의가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은 상황에서 기독교의 확대와 교인의 결집을 이끌어 내기 위한 정치적인 수단이었다고 설명한다.


“성소수자 차별을 인권문제로 보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개신교 신자 40%는 인권문제라고 응답했고 30%는 인권문제가 아니라고 대답했다. 다른 종교나 비종교인에 비해서 그렇다고 응답한 사람이 적지만 그래도 인권문제가아니라고 대답한 사람보다 10%나 더 많다는 건 놀라운 일이다. 반동성애의 견고한 아성처럼 보이는 개신교 중에서도 동성애를 인권의 문제로 보는 사람이 더 많다는 건 매우 고무적일 뿐 아니라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다. 교인들의 성향에 민감한 후발 대형교회는 이런 차이를 어떤 형태로든 목회에 반영하고 있다. 성소수자에 대해 강한 보수적 성향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공공연한 차별 발언은 자제한다.”


“한국사회가 성소수자에 대해 이토록 거부감이 강한 것은 개신교가 부정적 편견에 깊이 개입해왔음을 부정할 수 없다. 개신교인이 전체 인구의 20%에도 미치지 못하지만 파워엘리트로 좁혀보면 무려 40%를 넘는다. 개신교가 사회적 의견을 형성하는 데 매우 강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개신교가 성소수자 반대에 그렇게 목소리를 높이고 있음에도 그들이 개신교의 다수인 것은 아니다. 인터뷰 해보면 담임목사들의 반동성애적 강성 발언은 오히려 역효과를 일으키기도 한다. 인터뷰한 교인들은 평소 동성애에 무관심하지만 막연한 거부감을 갖고 있었는데, 목사들의 빈약하기 이를 데 없는 설교를 들으면서 오히려 동성애를 반대할 근거가 빈약한 것이 아닌가 의혹이 생겼다고 했다.”


이 책을 통해 성경이 기록되고 정경으로 만들어져 가는 과정과 그 당시의 사회적 배경을 살펴보니 본문의 특정한 부분을 끄집어 내 동성애를 반대하는 구절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그렇게 주장하고 싶은 이들이 자신들의 프레임을 본문에 덮어씌운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저자의 지적에 수긍이 갔다. 그렇다면 그들은 자기주장을 정당화하기 위해 성경의 의미를 왜곡했다는 것 아닌가? 그 주장을 이끄는 학자들도 있는 것을 보면 모르고 한 일도 아닐 것인데. 이런 행위야 말로 성령을 훼방하는 일이 아닐까 싶다.



매거진의 이전글 예배란 무엇인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