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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인식 Oct 05. 2021

성서의 형성

기록과 편집 사이

존 바턴

강성윤 옮김

비아

초판 2021년 8월


지질학을 공부하고 그것을 평생의 업으로 삼고 살았으니 소위 창조과학자라는 이들이 내세우는 ‘젊은 지구론’이라던가 ‘지구 6천 년 설’ 같은 허황한 주장에 휩쓸릴 일이 없었다. 다만 그런 과정에서 성경을 문자로만 여기는 것이 신앙을 넘어 일상을 왜곡시킬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 코로나 확산 방지를 위해 정부가 비대면 예배를 요구하자 이것을 교회 탄압으로 여기며 정부와 전면전을 선포하는 일부 기독교 지도자들의 행태를 보면서는 신앙이 화해와 공존의 도구가 아니라 오히려 남을 해치는 무기가 될 수 있음을 깨달았다. 그래서 창조과학자들이 내세우는 주장에는 별로 반응을 하지 않았던 과거와는 달리 그들을 향해 ‘예수의 가르침을 도외시한 성경 문자주의에 얽매인 우둔한 처사’라고 날을 세웠다. 그렇기는 했어도 그런 비판적인 생각을 뒷받침할 만큼 예배에 대해 성경에 대해 아는 게 없었다. 다행히 얼마 전 최주훈 목사께서 쓴 <예배란 무엇인가>를 읽으며 “예배란 고정된 형식일 수 없다”는 구절에 힘을 얻었다.


작년 이맘때 쯤 역사학자가 쓴 <역사적 예수>라는 책을 읽었다. 신약성경이 형성된 과정을 따라가면서 예수가 역사적 존재인지 논증하는 매우 독특한 책이었다. 저자인 김기흥 교수는 복음서가 단일 저자에 의해 단숨에 기록된 것이 아니라 각각의 신앙공동체에서 오랜 시간에 걸쳐 만들어진 것이라고 주장했다. 나는 그동안 성경은 40여명의 저자가 1,500여년에 걸쳐 기록된 것이라고 알아왔다. 물론 이에 대해 의문이 없었던 건 아니다. 그렇게 보기엔 분량이 엄청났고 서로 충돌하는 내용이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만들어졌다는 말씀으로 그 모순을 해결해 오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김기흥 교수의 주장을 대하면서 당황스럽다기보다는 오히려 흥미로웠고, 성경이 역사서가 아니라 신앙고백서라는 그의 주장은 오히려 내 관심을 사로잡았다. 이후 관련 자료를 찾아보면서 이러한 김기흥 교수의 주장이 성서학자들의 공통된 의견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 관심이 오늘 <성서의 형성>을 읽게 된 계기가 되었다.


저자인 존 바턴은 구약성경 중에도 바울서신과 같은 의미의 저자가 있다고 말할 수 있는 책이 일부 있지만 구약성경 대부분 ‘기록’했다가 보다는 ‘편집’한 것에 가까울 것이라고 말한다. 성경의 각 책이 만들어질 당시에는 ‘편집’을 ‘기록’으로 여겼는데, 그것은 ‘편집이 유일한 기록 방식’이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저자는 그 예로서 ‘다윗의 시편’이나 ‘솔로몬의 잠언’은 ‘다윗이 쓴 시’나 ‘솔로몬이 남긴 잠언’이라기보다는 ‘다윗이 보유한 시편’과 ‘솔로몬이 보유한 잠언’이라는 의미에 가깝다고 말한다. 사실 그건 성경 저자가 40여명이라고 가르치던 사람들도 인정하는 내용이었다.


저자는 이 책에서 성경의 각 책이 어떻게 만들어졌으며, 어떤 과정을 거쳐 경전으로 대접받게 되었고, 끝내는 정경이 되었는지 설명하고 있다. 손바닥 안에 들어오는 작은 크기에 채 2백 쪽도 되지 않는 책인데다가 그 과정을 일목요연하게 설명하고 있어 단숨에 읽었다. 그동안 알고 있었던 내용과 상당히 다른 내용이었는데도 반감이나 의문이 일기보다는 오히려 그동안 성경을 읽으면서 막연히 가져왔던 여러 질문이 풀리는 느낌이 들었다. 특히 성경의 각 책이 더 이상 편집되거나 교정되지 않은 시점(완성)까지 어떤 과정을 거쳤는지 관심을 갖게 되었다. 이에 대해 저자가 주장하는 바는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성경 여러 책 중 특정 시점에 저자가 단독으로 기록한 것은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창세기를 비롯한 성경의 많은 책들은 서로 다른 시기에 만들어진 내용을 담고 있다. 일종의 스크랩북이나 선집인 셈이다. 책에 담긴 내용이 서로 충돌하는 부분이 존재한다는 점을 통해 쉽게 이를 알 수 있다. 학자들은 대체로 창세기나 출애굽기 같은 구약성경의 많은 책들이 ‘여러 시기에 여러 곳에서 만든 자료로 이루어진 복합물’이라는 고전적인 이론을 지지한다. 물론 모든 학자가 이에 동의하는 건 아니지만 ‘오경이 한 번에 처음부터 끝까지 기록되지 않았으며 복합물이고 여러 편집 단계를 거쳤다’는데 거의 모든 학자들이 동의한다.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 같은 의미의 저자는 없고 다만 일정한 의도를 가지고 일련의 자료를 결합한 편집자가 있을 뿐이라는 말이다. 유대인들에게 오경은 다른 무엇보다도 유대인으로서 올바른 삶을 살도록 지침을 주는 책이었으므로 랍비나 율법학자들처럼 유대인의 삶을 규율하는 임무를 맡은 사람들이 그 역할을 맡았을 것이다. 따라서 작성 시기를 판단해 성경의 각 책을 연대순으로 배열하는 일은 어려울 뿐 아니라 의미 없는 일이다.”


“예언서는 예언자의 제자들이 그의 발언을 외우고 있다가 구두로든 문자로든 자신들의 제자들에게 전달한 것을 기록한 것으로 본다. 이러한 전달과정에서 많은 부분이 변형되었거나 유실되었을 수 있다. 예언서를 살펴보면 예언자 본인이 말했을 것 같지 않은 구절이 여럿 있다. 시대와 일치하지 않는 발언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예언자의 말을 편집한 가장 극단적인 경우가 이사야서이다. 이사야는 기원전 8세기에 활동했다. 하지만 이사야서에는 유대인들이 느부갓네살에게 포로가 되어 바빌론으로 갔다가 귀향을 허락받고 예루살렘 성전을 재건한 기원전 6세기 내용을 매우 많이 담고 있다. 그래서 19세기말 이래 학자들은 포로기의 역경을 다룬 이사야 40-55장을 ‘제2이사야’, 귀향과 재건 이후 덧붙여진 56-66장을 ‘제3이사야’라고 부른다. 게다가 1-39장에서도 실제 이사야가 활동하던 시대보다 한참 뒤를 암시하는 구절이 많이 등장한다. 결론적으로 이사야서는 여러 예언을 모은 복잡한 선집이며, 이 가운데 일부는 진짜 이사야의 것이지만 나머지는 후대에 저술되었다. 이사야서를 작성하는 작업은 기록보다는 편집에 가깝다. 그렇지만 편집자들은 단순한 선집이 되지 않도록 자료를 배열하고 논평을 삽입하는 방식으로 독특한 생각을 보탰다.”


“구약성경에는 바울서신과 같은 의미의 저자가 있다고 말할 수 있는 책이 몇 권 있다. 이 책은 저자 한 사람이 한 가지 주제를 가지고 자유롭게 쓴 것이다. 상상 속 인물에 관한 짧은 이야기인 룻기와 요나는 편집 흔적이 거의 없다. 이 책들은 일정한 의도를 가지고 쓴 허구적 작품으로 바빌론 유수 한참 뒤에 쓰인 것으로 보인다. 전도서는 ‘코헬렛(전도자)’의 저작이라고 말하고 있는데, 사실인 것으로 보인다. 욥기는 서막과 결말의 산문(1-2장, 42:7-17)과 운문으로 된 나머지 대화(3:1-42:6)가 서로 다른 저자의 작품인 것으로 보이지만 대화 자체는 한 명의 창의적인 저자에게서 나온 창작물이다.”


“학자들은 요한복음이 공관복음과 다르다는 데 의견이 일치한다. 공관복음은 서로 공유하는 내용이 많지만 다른 점도 꽤 많다. 현시점에서는 공관복음으로 묶인 세 복음서가 서로 영향을 주고받았으며 지금은 유실된 예수의 발언 모음을 함께 사용했다는 가설이 가장 유력하다. 대다수 학자들은 마가복음이 가장 먼저 만들어졌고,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은 마가복음과 함께 이른바 Q문서라고 부르는 예수의 발언 모음을 이용했다고 판단한다. 이런 과정을 종합하면 복음서는 일련의 수집-선별-편집 과정을 거쳐 예수께서 세상을 떠난 뒤 30~40년 지나서야 완성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복음서 저자(또는 편집자)들은 기록된 문서가 아니라 구전된 기억에 의존해 복음서를 만든 것으로 보인다. 양식비평(form criticism)을 받아들인 신약학파는 주로 예배를 통해 구전이 이루어졌을 것으로 판단한다. 처음에는 예수를 알았던 이들이 나중에는 이 사람들을 알았던 이들이 매주 예배를 위해 모인 사람들에게 예수에 대한 이야기를 상세히 전했을 것이며, 처음에는 예수께서 무엇을 말했는지에 초점이 맞춰졌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기독교 공동체 안에서 일어나는 문제와 이에 대한 공동체의 입장이 이야기에 담겼다고 판단한다는 것이다.”


“복음서 저자들은 단순히 편집자 이상이었을 가능성도 유념해야 한다. 저자들이 복음서를 창작한 것이 아니고 기록이든 구전자료든 원 자료를 가지고 있었다는 건 많은 학자들이 인정한다. 동시에 저자들이 복음서를 작성하며 부분적으로 의견을 보탰다고 보고 있다. 그래서 각 복음서마다 저자의 고유한 흔적이 남아있다. 누가복음에서는 예수는 모세 율법에 구애받지 않으며 가난한 이들과 사회에서 소외된 이들에게 깊은 관심을 보인다. 마태복음에서는 율법의 엄중함을 강조하며 교회 내부 문제에 많은 관심을 보인다. 이러한 차이가 생긴 것은 각 복음서 저자가 자신이 속한 교회라는 조건에서 서로 다른 문제와 마주해 서로 다른 의제를 가지고 독자들에게 그 위험을 경고해야 했기 때문이다.”


“마가복음은 로마 교회와 관련이 있으며, 마태복음은 시리아에서, 누가복음은 소아시아(터키)에서, 요한복음은 에베소에서 기록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서로 다르고 종종 일관성이 없는 네 증언을 복음서로 인정한 것은 이들 중 어느 것에도 절대적인 권위를 부여하지 않는다는 것을 뜻한다. 복음서가 더 이상 편집되지 않고 고정된 시점은 마가복음은 예루살렘이 로마에 함락 당한 서기 70년 이전,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은 그보다 10년 뒤, 요한복음은 1세기 말엽일 것이라고 대다수의 신약학자가 입을 모은다. 그러나 자료가 처음 문자화된 시점은, 다시 말해 복음서가 작성되기 시작한 것은 그보다 훨씬 이른 시기일 것이고, 어떤 부분은 거의 예수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도 있다.”


“서신서는 학자들이 대체로 데살로니가전후서, 고린도전후서, 갈라디아서, 로마서, 빌립보서, 골로새서, 빌레몬서, 에베소서, 디모데전후서, 디도서 순서로 기록되었다고 본다. 대다수의 학자들은 목회서신, 즉 디모데전후서와 디도서가 바울의 이름과 권위를 내세우지만 실제로는 바울이 세운 교회 중 2세대 지도자 중의 하나일 것으로 본다. 일부 학자들은 에베소서와 골로새서 역시 진본인지 의심한다. 바울이 실제로 쓴 편지들은 늦어도 서기 60년 이전에 만들어졌다면 바울의 이름을 내세운 제2 바울서신은 1세기 후반, 심지어 2세기에 나온 것으로 추정된다. 이들에게 바울은 교회의 설립자일 뿐 아니라 교회의 형태와 질서를 만든 사람이다. 따라서 당시 교회 지도자들은 그들이 옹호해야 했던 어떤 생각을 바울서신이라는 이름으로 만든 것이다. 실제로 이 서신에는 2세기 저자들에게 전형적으로 나타나지만 정작 바울에게서는 뚜렷하게 찾아볼 수 없는 생각이 담겨있다.”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구약에 속한 거의 모든 책을 경전으로 인정했고 서기 3세기에 대다수 그리스도인들은 신약에 속한 거의 모든 책을 경전으로 받아들였다. 그러나 구약과 같은 무게의 경전으로 보지는 않았다. 복음서를 그와 동등한 경전으로 여겼다면 마르키온이 누가복음을 자유롭게 개정할 생각을 하지 못했을 것이고, 누가 역시 마가복음을 자유롭게 개정할 생각을 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와 같은 저자의 주장을 하나로 정리하자면 성경의 각 책은 구전으로 내려오다가 어느 시점에 편집되었으며 그 과정에서 편집자의 견해가 반영되거나 당시 공동체가 겪고 있는 상황에 대한 공동체의 견해가 담겼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편집자의 견해가 반영되거나 공동체의 견해가 담긴 당시의 상황을 이해하지 않고서는 성경을 바르게 해석할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이번에 코로나 사태를 겪으면서 일부 목회자들의 게으르고 무지한 성경해석이 시대의 사표가 되어야 할 교회를 지탄의 대상으로 전락시켰다는 게 드러났다. 나는 오히려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비대면 예배 요청을 종교탄압으로 포장한 일부 목회자들의 주장의 바탕에 빈약하기 이를 데 없는 성경 해석이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 계기가 되었을 것이니 말이다.


모처럼 흡족한 마음으로 책을 덮을 수 있었다. 다만,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만들어졌다는 말씀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가, 저자인 존 바턴의 주장과 어떻게 연결시킬 수 있을까 하는 것이 풀어야 할 숙제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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