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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인식 Oct 01. 2021

[사우디 이야기 70] 법인 설립ㆍ운영

사우디 이야기 (70)

부임해서 합작법인을 설립하는데 명칭이 유한책임회사(Limited Liability Company)였다. 주식회사에 익숙한 내게는 낯선 형태가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주식회사가 출자한 금액만큼만 책임지는 유한회사의 일종이라는 정도는 이해하고 있어서 큰 차이는 없을 것으로 짐작했고, 실제 운영방식도 주식회사와 거의 다르지 않았다.


우리 합작법인은 외국투자기업에 해당되어 투자청(SAGIA, 2020.02 투자부로 승격)의 승인을 얻어야 했다. 투자청 면허를 얻은 후 상무부에 사업자등록(CR, Commercial Registration)을 마치고 은행계좌를 개설했다. 우리와 같은 외국투자기업은 물론 사우디기업도 외국근로자 채용이 일반화 되어 있기 때문에 이들의 취업비자를 확보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우리도 사업자등록을 마치고 노동부에 법인 설립에 따른 블록비자(block visa)를 신청했고, 법인대표를 포함해 모두 5매를 발급받았다.


블록비자는 취업비자의 발급 근거가 되며 국적ㆍ직종ㆍ직급이 명시되어 있다. 각 기업이 노동부에 신청서를 제출하면 심사를 거쳐 발급한다. 예전에는 법인을 설립하면 심사 없이 5매를 제공하다가 이후 3매로 줄었고, 지금은 심사를 거쳐 발급하는데 대부분 이전만큼 발급받기도 어렵다. 기업에서 사업(business)을 확장하거나 사업(project)을 수주해도 그에 필요한 외국근로자를 데려오기 위해 노동부에 블록비자를 신청할 수 있다.


사업을 수주했을 경우 발주처에서 노동부에 블록비자 수량을 명시한 협조요청공문을 보낸다. 노동부에서는 이를 심사해 블록비자 수량을 결정하는데, 일률적으로 말하기는 어렵지만 꽤 오랫동안 신청한 수량의 50%만 받아도 성공이라고 생각했다. (우리가 UN 해안오염복원사업을 수행할 때 300매 가까이 신청해 100% 발급받았다. 당시로서는 매우 예외적인 경우였다.) 한 번은 교민 한 분이 공장을 증설해 이에 필요한 블록비자를 신청했는데 겨우 10% 남짓 받기도 했다. 최근 몇 년간 이를 신청해보지 않아 요즘 상황은 잘 모른다.


사우디에서 사업자로 활동하기 위해 설립하는 현지법인은 앞서 언급한 유한책임회사 외에 주식회사ㆍ지사ㆍ연락사무소와 같은 형태가 있다. 주식회사는 유한책임회사보다 설립 여건이 까다롭기는 해도 유한책임회사가 사우디 투자자가 최소한 지분의 25%를 보유해야 하는데 비해 주식회사는 외국투자자가 지분 100%를 보유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다. 2017년 외국인투자법이 개정되면서 유한책임회사도 외국인투자자가 지분 100%를 보유할 수 있게 되어 이런 차이가 없어졌다. 한국기업의 사우디 현지법인 중에 주식회사 형태인 경우는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외국기업이 투자자가 되기 위한 조건은 그리 까다롭지 않다. 모기업이 사우디 증권시장이나 국제 증권시장에 상장되어 있거나, 2년 매출이 200억 원 이상이거나, 총자산이 300억 원 이상이거나, 1년 순이익이 150억 원 이상이거나, 해외에 지사가 3곳 이상 있거나, 종업원이 1만 명 이상일 경우 현지법인의 지분을 100% 보유할 수 있다. 현지법인의 지분 일부만 보유할 경우는 이런 조건마저 필요하지 않다. 외국기업이 지분에 참여할 경우 최소자본금은 유한책임회사 50만 리얄(1억5천만 원), 제조업 100만 리얄(3억 원)이며, 서비스업은 최소자본금 규정이 없다.


사우디 정부는 부가가치가 높거나 고용유발효과가 큰 자동차ㆍ금속가공ㆍ건설자재ㆍ포장재ㆍ전자클러스터ㆍ태양광과 같은 6대 산업에 외국기업의 투자를 장려하고 있다. 사우디에는 개인 소득세가 없고 사우디기업의 경우 종교세(Zakat) 2.5%만 부과하지만 외국기업에는 법인세 20%를 부과하고 있다. 현지법인이 외국기업에게 발주할 경우 발주금액의 5%를 원천징수하는데, 이는 계약금액의 25%가 이익금이라고 가정하고 거기에 법인세 20%를 적용한 것이다. 외국기업이 사우디 제조업에 투자할 경우 단독투자냐 합작투자냐 따지지 않고 투자금액의 50%까지 장기 저리로 융자해준다. 제조업으로 대도시 인근에 개발된 산업도시(Industrial City)에 입주할 경우 부지ㆍ전력/수도요금 등에 특별혜택을 받고 사우디 근로자를 채용할 경우 교육비의 50%, 연봉의 50%에 상응하는 세금공제혜택도 받는다. 사우디 근로자 5인 이상을 기술직이나 관리직으로 1년 이상 고용할 경우 추가 공제도 해준다. 개인적으로는 ‘사우디 근로자 채용에 따른 공제’를 ‘혜택’이라고 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외국기업 투자촉진을 위해 혜택을 주는 분야가 있는 반면에 외국기업 투자가 금지되는 분야도 있다. 원유 탐사ㆍ개발ㆍ생산, 군사장비, 보안, 성지순례ㆍ여행, 인쇄ㆍ출판, 육상운송, 시청각ㆍ미디어서비스, 어업 등이 이에 해당한다. 사우디 정부에서는 실업률을 낮추기 위해 외국인 취업을 금지하는 직종을 계속 추가해가고 있지만, 외국기업 투자금지 분야는 계속 줄여나가고 있어 위의 투자금지 분야에 들어있는 업종도 점차 투자가 허용될 것으로 보인다.


지사는 모기업에서 100% 출자하고 따라서 모든 책임이 모기업에 있다는 점을 제외하고는 유한책임회사와 동일하다. 현지법인이 없는 외국기업이 정부발주 사업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임시법인으로 등록한다. 임시법인면허(TCR, Temporary CR)는 사업이 종료되면 함께 종료되는데, 사업의 사후관리를 위해 필요할 경우 연락사무소를 운영할 수 있다. 자사 상품을 구매한 고객이나 에이전트를 위해 서비스를 제공할 경우에도 연락사무소의 일종인 기술서비스 사무소를 운영할 수 있다. 연락사무소는 이윤 창출을 목적으로 운영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자본이 필요하지 않고, 자본이 없으니 이에 따른 투자인센티브도 당연히 없고, 법인세 부과 대상도 아니다.


법인을 운영하려면 각종 인허가서류의 유효기간이 지나지 않도록 관리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아울러 사우디제이션(Saudization)이라는 내국인 취업비율을 지켜야 한다. 사기업 간의 계약은 조정의 여지가 있지만 정부가 공기업과 계약할 때 유효기간이 경과한 인허가서류가 하나라도 있으면 발주처가 계약을 거부할 수 있다. 공교롭게 갱신과정에 있는 인허가서류가 있다면 만료된 인허가서류를 제출하고 추후 보완하는 정도까지는 발주처에서 양해해준다. 하지만 이전과 달리 요즘은 인허가서류 갱신이 모두 온라인으로 이루어져서 대부분 즉시 갱신 가능하기 때문에 이런 변명이 통하기 어려워졌다.


법인이 기본적으로 갖추어야 할 인허가서류는 투자허가서(투자부), 사업자등록증(상무부), 부가가치세사업자 신고서(국세청), 납세확인서(국세청), 상공회의소 회원증(Chamber of Commerce), 사회연금 가입확인서(GOSI), 사우디제이션 확인서, 사무실등록증(시청)이 있다. 인허가서류의 우열을 가릴 수는 없지만 이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사업자등록증이다. 다른 서류의 갱신이 다 끝나야 비로소 사업자등록증을 갱신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업자등록증이 갱신되지 않으면 법인의 금융거래가 동결된다. 또한 회사에 소속된 직원들의 거주허가증(Iqama)을 갱신할 수 없으며, 거주허가증이 만료되면 개인의 금융거래 역시 동결된다. 금융거래가 동결된다는 건 겪어보지 않으면 얼마나 불편한지 짐작도 못한다. 요즘은 카드 지불이 대세여서 현금을 내면 잔돈이 없는 경우도 많고, 온라인 구매나 배달주문은 카드로만 결제가 되고, 공과금도 모바일이나 온라인뱅킹으로 납부하는데 그 모든 것이 불가능해진다는 것이다. 게다가 직원이나 가족의 출국이 불가능해진다. (거주비자로 체류하는 모든 외국인은 외국을 여행할 때 출입국비자를 별도로 받아야 한다.)


예전에는 모든 인허가서류 유효기간이 1년이었다. 몇 년 전부터 투자허가서, 사업자등록증, 상공회의소 회원증은 유효기간이 3년으로 늘었다. 그것만 해도 짐을 얼마나 많이 던 것인지 모른다. 합작법인의 파트너가 우리 외에도 합작법인 몇 개를 더 운영했던 때가 있었는데, 법인 별로 인허가서류 별로 유효기간이 모두 달라서 일 년 내내 그것만 챙기는 직원이 필요할 정도였다. 외국인의 거주허가증은 아직도 유효기간이 1년이다. 거주허가증의 유효기간이 어느 정도 남지 않으면 출입국비자를 발급해주지 않고 따라서 이를 갱신할 때는 반드시 사우디로 돌아와야 하니 제약이 여간 심한 게 아니다. 아마 거주허가증 유효기간을 3년 정도로 늘리면 사우디 정부가 외국근로자의 마음을 단번에 사로잡을 수 있을 것이다. 사로잡아서 뭐에 쓰겠냐고 할 사람들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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