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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인식 Oct 08. 2021

베르디 <돈 카를로, Don Carlos>

베이스는 음역의 특성상 왕이나 제사장 혹은 영주 같은 역할을 많이 합니다. 그러다 보니 여러 사람과 어울려 서있는 경우보다는 혼자 떨어져 서있는 경우가 많고 체격도 큰 것이 더 어울립니다. 그래서인지 러브라인을 이루는 것도 그렇고 주인공인 경우도 매우 드뭅니다. (없는지는 잘 모르겠고 아무튼 저는 보지 못했습니다.) 아리아도 대체로 오페라 한 작품에 한 곡 정도이고 두 곡이 들어있는 경우도 별로 없습니다.


손꼽히는 베이스 아리아 중에 한 곡이 베르디 <돈 카를로>에 들어있습니다. 필리포 2세 국왕이 부른 <Ella giammai m'amo! 그녀는 결코 나를 사랑하지 않네>라는 아리아입니다. 그래서 많은 베이스들이 이 역할을 탐냅니다. 베이스 박영두는 2010년부터 유럽 오페라 무대에 서왔지만 아직까지 이 작품을 해보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기다리던 작품을 이번 2021-2022 시즌에 연주하게 되었습니다.


이 오페라를 베이스들이 손꼽는 이유가 또 있습니다. 베이스가 무려 세 인물이나 등장합니다. 필리포 2세와 종교재판장, 그리고 수도승이지요. 재미있는 건 한 베이스가 필리포 2세ㆍ종교재판장ㆍ수도승을 번갈아 맡는 경우가 많다는 겁니다. 페루초 플라레토는 1983년 메트로폴리탄에서 종교재판장을 맡았다가 1986년 카라얀이 지휘한 잘츠부르크 페스티벌부터 펠리페 2세를 맡기 시작했습니다. 1986년 같은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에서 종교재판장을 맡았던 마티 살미넨은 2013년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에서 펠리페 2세를 맡았지요. 루제로 라이몬디는 세 역할을 모두 맡기도 했습니다. 베이스 박영두도 이 작품에서 필리포 2세와 종교재판장으로 출연합니다. 1인 2역은 아니고 필리포 2세와 종교재판장으로 번갈아 출연하지요.


대체로 베르디 오페라는 주역들이 아리아와 중창을 고루 부를 수 있도록 적절히 안배하고 있는데 <돈 카를로>만큼은 소프라노와 테너가 상당히 홀대를 받는 편입니다. 테너 역의 돈 카를로는 주인공인데도 불구하고 변변한 아리아 하나 없고 으레 나오는 ‘사랑의 이중창’은 그다지 존재감이 없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대표적인 아리아마저 바리톤인 로드리고에게 몰려있어 테너는 힘은 힘대로 들면서 주목받을 포인트가 없다고 하는군요.


이 작품은 프랑스어로 발표되었다가 다시 이탈리아어로 번역되는 등 개정을 반복했습니다. 그래서 5막으로 이뤄진 파리 초연 판본, 4막으로 구성된 밀라노 판본, 5막으로 구성된 모데나 판본 이렇게 세 가지가 존재합니다. 그 중 4막 밀라노 판본이 널리 연주되는 편인데, 이번에 베이스 박영두가 출연하는 작품도 4막 밀라노 판본입니다.


○ 비스바덴 극장, 필리포 2세와 종교재판장 역 (출연 예정)

    [2022년] 3/20, 3/24, 3/27, 4/8, 4/13, 4/17, 6/2, 6/5, 6/18


등장인물


○ 필리포 2세; 스페인 국왕. 베이스

○ 돈 카를로; 스페인 황태자. 테너

○ 엘리자베타; 프랑스 왕녀이자 카를로의 약혼녀. 소프라노

○ 로드리고; 포사의 후작이자 카를로의 절친한 친구. 바리톤

○ 종교재판장; 베이스

○ 에볼리; 스페인 공녀. 메조소프라노

○ 수도승; 선왕 카를 5세의 비슷한 용모와 목소리를 가진 정체불명의 승려. 베이스

○ 천상의 소리; 목소리. 소프라노

○ 티발트; 엘리자베트의 시종. 소프라노


줄거리


제1막 1장; 산쥬스토 수도원


성당 안쪽에 있는 선왕 카를로 5세의 묘 앞에서는 수도승들이 기도를 올리는데 돈 카를로가 등장해 마음의 평화를 간구하는 아리아 <Io la vidi>를 부릅니다. 이때 친구 로드리고가 플랑드르 전쟁에서 막 돌아오지요. 로드리고는 왕비이자 계모가 되어 버린 엘리자베타를 아직도 사랑하고 있다고 고백하는 돈 카를로에게 억압으로 고통 받는 플랑드르 백성을 도우라고 충고합니다. 돈 카를로는 로드리고의 권유를 따라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겠다는 결의를 다지고 두 사람은 목숨을 함께할 것을 맹세하는 이중창 <Dio, che nell'alma infondere>을 부릅니다. 이때 수행원을 거느린 국왕과 함께 왕비가 등장합니다. 돈 카를로는 왕비를 보고 마음이 흔들리지만 로드리고와 함께 반항하듯 자유를 외치며 퇴장하고 국왕과 왕비가 선왕의 묘지 앞에 기도를 드리며 막이 내립니다.


돈 카를로와 로드리고 <Dio, che nell'alma infondere>

https://www.youtube.com/watch?v=yNPxYQbBuDI


제1막 2장; 산쥬스토 수도원 안뜰


왕비가 돌아오기를 기다리던 시녀들이 무료함을 달래려고 에볼리 공녀에게 노래를 청하자, 그녀는 베일의 아리아 <Nei giardin del bello Saracin>를 부릅니다. 이어서 왕비가 나타나고 로드리고가 알현을 요청합니다. 로드리고는 프랑스에 있는 왕비의 어머니에게서 받은 편지를 전하면서 돈 카를로가 조용히 만나기를 청한 편지도 함께 전합니다. 로드리고는 불안해하는 왕비에게 <Carlo, ch'e sol il nonstroamore>를 부르며 카를로가 플랑드르의 총독으로 임명될 수 있도록 국왕을 설득해달라고 부탁합니다. 왕비가 시녀들을 물리고 로드리고가 에볼리를 데리고 나가자 돈 카를로가 나타납니다. 왕비에게 자기를 플랑드르에 갈 수 있도록 부왕에게 말해 달라고 부탁하던 돈 카를로는 그녀를 향한 사랑을 고백하고 왕비를 껴안으려 하지만 왕비를 그를 꾸짖습니다. 절망한 돈 카를로는 자신의 운명을 저주하며 뛰쳐나가고 그런 그의 뒷모습을 지켜보면서 내심 그를 사랑하는 왕비는 흐느껴 울지요. 수도원 안에서 나온 국왕은 왕비가 이야기를 꺼내기도 전에 왕비가 혼자 있도록 놔뒀다며 수행하던 알렘베르크 백작부인의 책임을 물어 내일 아침 프랑스로 돌아가라고 명령합니다. 왕비는 흐느껴 우는 백작부인에게 아끼던 반지를 빼어주며 <Non pianger, mia compagna>를 불러 그녀를 위로합니다.


국왕이 로드리고를 불러 그가 세운 공을 칭찬하며 원하는 것을 말하라고 하자 로드리고는 플랑드르의 참상을 말하며 자비를 베풀 것을 부탁하는 <O Signor, di Fiandra arrivo>를 부릅니다. 하지만 국왕은 평화는 피로써 얻는 것이라며 소신을 굽히지 않습니다. 국왕은 직언하는 그를 신뢰하면서도 그의 이상주의를 경계합니다. 그러면서 종교재판장을 조심하라고 충고하고 왕비와 왕자의 관계가 수상한 것 같으니 그들을 감시하라고 명령합니다.


제2막 1장; 왕비의 정원


정원에서 몰래 만나자는 편지를 받아든 돈 카를로는 그것을 왕비가 보낸 것으로 생각하고 기다립니다. 베일을 쓴 여인이 나타나자 그녀를 껴안으며 변함없는 사랑을 고백하는 <Sei tu, bell'adorata>를 부르지요. 하지만 그 여인이 왕비가 아니라 에볼리인 것을 알고 당황해합니다. 에볼리는 돌아서는 돈 카를로에게 국왕이 은밀히 그에 대한 이야기를 하더라고 귀띔합니다. 고마워하면서도 오늘밤은 상대를 착각한 것 같다는 돈 카를로의 말에 에볼리는 그가 왕비를 사랑한다는 것을 눈치 채고 <Al mio furor sfuggite invano>를 부르며 국왕에게 알리겠다고 협박합니다. 이때 로드리고가 나타나 그녀의 결심을 돌려 사태를 무마하려고 노력하지만 그녀의 의지를 꺾지 못하고 급기야 칼을 꺼내 그녀를 살해하려고 합니다. 여기서 죽이려는 로드리고와 만류하는 돈 카를로, 복수를 다짐하는 에볼리가 3중창 <Trema perte, falso figlio>를 부릅니다. 에볼리가 퇴장하자 로드리고는 돈 카를로에게 그가 가지고 있는 밀서를 자기에게 맡기라고 말합니다. 돈 카를로는 잠시 주저하다가 그와의 우정을 다짐하며 모든 서류를 그에게 건네줍니다.


제2막 2장; 아토차 대성당 앞의 광장


이교도를 처형하는 날 백성들이 모여 합창으로 왕을 찬양하고 한 무리의 수도승들이 죄수를 인솔해 나옵니다. 왕비와 귀족들이 성당 앞에서 서있고 뒤이어 수도승들의 환호를 받으며 성당에서 나온 국왕은 이교도와 싸우겠다고 맹세하는 아리아를 부른 뒤 처형을 선고합니다. 그때 돈 카를로가 플랑드르 사절단을 이끌고 나타나 고통 받는 플랑드르 백성에게 자비를 베풀어 달라며 무릎을 꿇습니다. 국왕은 그들을 반역의 백성이라며 물리치고 자신을 플랑드르의 총독으로 임명해 달라고 요청하는 돈 카를로를 꾸짖습니다. 그러자 돈 카를로는 칼을 뽑아들고 플랑드르를 구하겠다고 맹세합니다. 격노한 국왕이 칼을 뺏으라고 명령하지만 아무도 나서지 않자 직접 칼을 빼앗으려고 나서는데 로드리고가 이를 가로막고 돈 카를로에게 칼을 달라고 합니다. 돈 카를로는 로드리고에서 순순히 칼을 넘겨줍니다. 국왕은 아들을 가두라 명령하고 즉석에서 로드리고에게 공작 작위를 수여합니다. 화형대에는 불이 당겨지고, 사람들이 구경 하러 화형대 앞으로 몰려들고, 먼동이 터오자 그들은 구원을 받았다는 천상의 소리가 울려 퍼집니다.


제3막 1장; 국왕의 서재


국왕이 애정 없는 결혼생활과 아들에게 배신당한 자기 처지를 한탄하며 <Ella giammai m'amo!>를 부른 후 종교재판장을 불러 아들 문제를 상의합니다. 종교재판장은 국왕에게 돈 카를로에게 사형을 선고한 뒤 국왕의 권한으로 그를 사면해도 상관하지 않겠지만 로드리고는 진짜 이단자이니 사형시켜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국왕이 이를 거부하자 종교재판장은 격노해 <Non piu, Frate>를 부른 뒤 수도원으로 돌아가 버립니다. 국왕은 제단 앞에서는 왕권도 무력하다는 것에 절망합니다. 이때 왕비가 뛰어 들어와 보석상자를 도둑맞았다면서 그것을 찾아 달라고 하지요. 이미 보석상자를 가지고 있던 국왕은 그것을 내보이면서 직접 열라고 명령합니다. 왕비가 거부하자 국왕이 보석상자를 부숴 그 안에 들어있던 돈 카를로 초상화를 꺼내 보입니다. 국왕이 정조를 의심하자 왕비는 돈 카를로와 예전에 약혼한 사이였다는 것을 상기시키며 결코 자기의 몸을 더럽혀지지 않았다고 호소하는 <Io I'oso, si>를 부릅니다. 국왕이 왕비를 비난하고 왕비는 실신하고 에볼리와 로드리고가 달려오지요. 의식을 회복한 왕비는 이국땅의 외로움을 탄식하고, 에볼리는 왕비를 걱정하고, 로드리고는 국왕을 비난하지만 결국 자신이 희생을 감내할 것을 깨닫고, 국왕은 자신의 헛된 의심을 반성하는 4중창을 부릅니다. 국왕이 로드리고를 데리고 나가자 왕비와 둘만 남은 에볼리는 돈 카를로를 너무 사랑한 나머지 질투심에서 자기가 보석상자를 훔쳤고, 아울러 국왕과 불륜을 저질렀다고 고백하지요. 왕비가 에볼리에게 스페인을 떠나던지 수녀원으로 들어가라고 하자 수녀원으로 가기로 결심한 그녀는 떠나기 전에 마지막으로 돈 카를로를 돕기로 다짐하며 <O don fatale>를 부릅니다.


필리포 2세 국왕 <Ella giammai m'amo!>

https://www.youtube.com/watch?v=ZLlpoR_qMDs


제3막 2장; 돈 카를로가 수감된 감옥


로드리고가 감옥에 갇힌 돈 카를로를 찾아옵니다. 플랑드르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기로 결심한 로드리고는 모든 죄가 자기에게 있는 것으로 꾸몄다고 돈 카를로에게 말하지요. 그리고 이미 돈 카를로의 무죄를 탄원하는 편지를 써서 국왕에게 보냈다며 뒷일을 왕자에게 맡기고 죽기를 작정하는 <Per me giunto e il supremo>를 부릅니다. 그때 종교재판장의 사주를 받은 병사가 몰래 숨어 들어와 로드리고에게 총을 쏩니다. 로드리고는 로드리고에게 왕비가 내일 밤 산쥬스토 수도원에서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 말하고 마지막으로 플랑드르의 구세주가 되어 달라는 말을 남기며 숨집니다. 로드리고의 시신을 껴안고 우는 돈 카를로 앞에 국왕이 신하들을 거느리고 나타나 그의 칼을 돌려주며 아들을 용서합니다. 국왕이 돈 카를로를 껴안으려 하자 그는 피로 물 들은 옷을 보이며 로드리고가 죽었다고 소리칩니다. 국왕은 로드리고의 시신 앞에서 탄식합니다. 그때 백성들이 왕자를 석방시키라며 몰려옵니다. 국왕은 왕자를 내세워 그들을 진정시키려 하지만 소용이 없습니다. 돈 카를로는 에볼리의 도움으로 몸을 피하고 종교재판장이 나타나 소동을 잠재웁니다. 모두들 국왕을 칭송하고 하늘에 자비를 구하며 합창하는 가운데 막이 내립니다.


로드리고 <Per me giunto e il supremo>

https://www.youtube.com/watch?v=PTW-rQBB5cI


제4막; 산쥬스토 수도원


카를로 5세의 무덤 앞에서 돈 카를로를 기다리던 왕비는 추억과 운명을 야속해하며 <Tu che vanita conosceti del mondo>를 부릅니다. 돈 카를로가 나타나자 왕비는 두 사람의 사랑을 플랑드르에서 고통 받는 민중을 구제하는 일로 승화시켜달라고 부탁하고 돈 카를로도 그녀에 대한 사랑으로 플랑드르 해방을 위해 목숨을 바칠 것을 맹세하는 2중창 <Addio per sempre>을 부르면서 서로에게 영원한 작별을 고하지요. 그 광경을 숨어서 지켜보던 국왕과 종교재판장과 신하들이 이어서 등장합니다. 국왕은 병사들에게 두 사람을 체포하라고 명령하고 종교재판장은 두 사람의 재판을 준비하라고 명령합니다. 돈 카를로가 칼을 뽑아 들고 그들에게 저항하는데 갑자기 카를로 5세의 무덤이 열리고 수도승 차림을 한 그의 망령이 나타나서 돈 카를로를 무덤 속으로 데리고 들어갑니다. 왕비는 쓰러지고 사람들이 모두 놀라는 가운데 오페라의 막이내립니다.


엘리자베타 왕비 <Tu che vanita conosceti del mondo>

https://www.youtube.com/watch?v=l7AOCu1If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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