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Book Review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인식 Oct 12. 2021

판결과 정의

자유와 책임

김영란

창비

초판 2009년 9월

전자책 2019년 9월


살펴보니 법률과 관련된 책을 서른 권 가까이 가지고 있었다. 법률 자체에 관심이 있거나 법률을 알아야 할 일이 있어서는 아니었고, 아마 법률을 논리로 이해했던 모양이다. 기준과 해석과 적용으로 이어지는, 그래서 해석하는 사람 적용하는 사람마다 결과가 다르지만 모두 나름대로 논리를 갖추고 있는 것이 법률에 관심을 가지게 된 이유가 아니었을까 싶다. 그 중에 김영란 전 대법관이 쓴 <판결을 다시 생각한다>가 아주 인상 깊었다. 존엄하게 죽을 권리와 생명을 보호할 의무가 부딪쳤던 김 할머니 사건, 성소수자의 기본권과 사회 통념의 한계가 부딪쳤던 성전환자 성별정정 사건, 환경의 가치와 대규모 국책사업의 가치가 부딪쳤던 천성산 사건, 그리고 종교의 자유를 어디까지 보장해야 하느냐는 질문을 던졌던 양심적 병역거부 사건이 특히 눈길을 끌었다. 전문적인 용어를 사용하지 않고 일반 독자의 눈높이에 맞춰 쓴 책이어서 사건의 쟁점을 쉽게 이해할 수 있었고, 그래서 각 사건이 지닌 사회적 의미를 이해하고 그에 대한 나름의 견해를 세울 수 있었다.


<판결과 정의>는 2009년 9월 초판이 발간되었고 꼭 십 년이 지난 2019년 9월 전자책이 발간되었다. 본문에 초판 발행 이후의 사건이 다수 포함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상당한 개정이 이루어진 것으로 보인다. 이 책에는 세월이 흐르고 가치기준이 바뀌면서 법원의 판결 역시 달라진 사례가 상당수 들어있는데, 그것이 대법관의 구성원이 달라졌기 때문인지 대법관 개개인의 기준이 달라졌기 때문인지는 설명하지 않는다. 개정판 서문에서 혹시 그런 걸 짐작할만한 실마리가 있지 않을까 살펴봤지만 그런 내용은 물론 이 책을 어떤 내용에 대해 어떤 관점에서 개정했는지에 대한 설명조차 찾을 수 없어 상당히 아쉬웠다. 저자는 앞으로도 적어도 일이십 년은 책을 쓸 시간이 있어 보인다. 언젠가 대법관의 개인적 성향이나 판결 기준이 변화한 사례와 그 배경을 분석한 책을 발간했으면 좋겠다.


<판결과 정의>를 읽은 건 일반 독자의 눈높이에 맞춰 쓴 <판결을 다시 생각한다> 때문이었다. 하지만 전작과는 달리 <판결과 정의>는 일반 독자가 따라가기에는 내용이 복잡했고 전후관계를 연결하는 것도 쉽지 않아 저자가 무엇을 말하고 싶은 것인지 쉽게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래서 관심이 있었던 몇몇 주제는 반복해 읽어야 했다. 가부장제의 문제는 남녀차별의 관점에서가 아니라 사회의 위계질서 형성의 관점에서 보아야 한다는 저자의 설명과 ‘효율적 계약 파기 이론’이나 ‘자기 책임의 원칙’과 관련한 판결에 대한 저자의 지적에 특히 관심을 가지게 되었는데, 그것은 아마 내 개인적인 경험이나 평소의 지론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저자는 “가부장제란 가장이 가족 성원에 대해 강력한 권한을 가지고 가족을 지배 통솔하는 가족형태였기 때문에 대가족 중심의 농경사회에서 황제를 중심으로 국가가 운영되는 제정시대로 오면서 가장의 권한은 점차 제한을 받게 되었다”고 설명한다. 또한 “농경사회에서 가부장제가 널리 자리 잡았던 것은 효율성이라는 가치 때문”이었다고 설명한다. 이는 “야생에서 먹을거리를 구했던 수렵채집시기와는 달리 자연에서 여러 자원을 얻어야 하는 농경사회에서는 엄중한 계층을 통해 평화가 유지되는 환경이 무엇보다 중요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가부장제가 당시를 살아가는 가장 효율적인 체제였기 때문이라는 것이니 그것이 효율을 발휘하지 못한다면 가부장제가 해체되는 것이 자연스럽고, 그렇다면 지금 우리가 처해있는 상황이 문제가 아니라 오히려 자연스러운 일이라는 말로 들린다. 지금의 우리 사회는 가부장 문화를 남녀평등의 문제로 이해하고 접근하는 것과 달리 저자는 “가부장 문화를 일반적인 계층화의 문제가 아닌 단순히 남녀 간의 계층화 문제로만 여겨서는 양성평등을 실현하기 어렵다”고 말한다. “가부장 질서를 논하면서 한 사회의 위계질서 형성이라는 틀을 함께 논하지 않는다면 가부장제의 본질을 제대로 보지 못하는 것이고, 그렇게 해서는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길을 막아버린다”는 말이다. 저자의 주장이 적절한 것이라면 최근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페미니즘-반페미니즘 논쟁은 출발부터 잘못된 것이 아닐 수 없다.


사회 초년병일 때 동굴공사 현장에서 몇 년 일했다. 동굴은 늘 물이 흘러넘치기 때문에 감전사고 위험이 매우 높아 곳곳에 누전차단기를 설치한다. 그런데도 내가 일하는 동안 감전사고가 숱하게 일어났고 사망으로 이어진 경우도 있었다. 의아해서 알아보니 누전차단기를 꺼놓는 경우가 많았다. 곳곳에서 누전이 일어나는데 그럴 때마다 전기가 차단되면 공사를 진행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이는 단순한 안전 불감증으로 여길 문제가 아니었다. 공사 중단으로 보는 손해보다 감전사고 보상금이 싸다는 이야기가 공공연히 나돌았으니 말이다.


저자는 미국 법경제학자들 사이에서 널리 지지를 받는 ‘효율적 계약 파기 이론’을 들어 가습기 살균제 문제를 설명한다. ‘효율적 계약 파기 이론’은 계약 당사자는 효용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행위를 판단한다는 것으로, 약속을 어기는 편이 더 이득이 될 경우 효용성 기준에 따라 약속을 어기는 것이 정당화된다는 이론이다. 예컨대 부동산을 팔기로 계약을 했는데 값이 많이 오른다면 위약금을 주고라도 파기하고 다른 사람에게 팔려고 할 것이고, 위약금 조항이 있는 이상 이를 문제 삼을 수 없다는 말이다. 하지만 그것을 사려고 한 사람은 위약금을 받는다한들 같은 조건의 부동산을 찾는 게 불가능할 것이기 때문에 그는 ‘효율적 계약 파기 이론’의 희생자가 될 뿐이다. 가습기 살균제 문제도 마찬가지이다. 시판하기 전에 복잡하고 비용이 많이 드는 실험을 거치는 것보다 문제가 된 이후 배상하는 것이 경제적으로 유리하다면 제조업체로서는 그렇게 하는 것이 효율적일 수 있다. 그러나 피해자에게는 마치 오래 전에 내가 현장에서 겪었던 것처럼 생명이 달린 일이기도 하다. 내가 직접 겪어본 일이라 저자는 이를 어떻게 바로잡아야 한다고 생각하는지 궁금했다. 아쉽게도 그에 대한 저자의 뚜렷한 견해를 찾을 수 없었다.


과장 때 노조가 처음 생겼다. 그 전까지는 노조는 생산직에 한정된 조직이었지만 당시 열렸던 서울올림픽 분위기에 힘입어 사무직까지 노조가 생기는 것을 용인하게 되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노조를 세우고 임금협상을 시작했을 때 가장 문제가 된 것이 ‘통상임금’의 범위였다. 상여금이 통상임금을 기준으로 지급되기 때문이었다. (퇴직금까지는 생각하기에는 너무 어릴 때였다.) 당시만 해도 급여 명세에 수당이 적게는 서너 개 많게는 열 개 가까이 되었다. 당시 직원들의 관심은 ‘내 손에 들어오는 총액’에 있었지 명목이 어떻게 되든지 누구도 개의치 않았다. 명목은 그것을 확보하는 계산식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니 계산식을 적용하는데 착오가 생겼더라도 당초 합의한 ‘손에 들어오는 총액’만 변하지 않는다면 명목을 바로잡는 건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저자는 “임금협상에서 정기상여금은 통상임금에 해당하지 않는 것으로 오인해 이를 통상임금에서 제외하기로 동의한 근로자 측이 추후 오인을 이유로 합의를 파기하고 추가 지급을 요청한 것은 신의성실원칙에 위배되므로 이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대법원의 결정에 “법질서에 역행하는 결과를 초래하며 또한 노사합의를 빌미로 근로기준법을 무력화할 수 있다”는 이유로 부정적인 견해를 표명하고 있다. 법질서를 유지하고 근로기준법의 취지를 살린다는 측면에서 그의 지적이 옳을 수는 있다. 하지만 임금협상의 당사자였던 사람으로서 나는 어차피 급여 인상은 내 손에 얼마나 들어오느냐를 기준으로 삼는 것이기 때문에 근로자 측이 합의한 것은 그 금액을 확보했기 때문이라고 판단할 수 있고, 따라서 오인했다는 이유로 합의를 파기하고 차액을 추가 지급하라는 요구를 인정하지 않은 대법원의 판결이 더 합리적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자유에는 책임이 따른다는 걸 평생의 지론으로 여기고 있다. 그런 이유로 내 선택과 상관없이 결과가 발생하는 일은 가급적 하지 않았다. 증권이 그 중 하나이다. 가끔 증권에 투자했다가 예기치 못한 상황으로 피해를 입은 이들이 그 책임을 증권사나 정부에 돌리는 경우가 있다. 그럴 때 증권사나 정부가 피해 보상에 나서는 것이 몹시 못마땅하다. 자유를 누리고 책임을 지지 않겠다는 것으로 들리기 때문이다.


2008년 금융위기 때 일어난 KIKO 통화옵션 사태가 그렇다. 대법원에서는 ‘자기 책임의 원칙’에 따라 금융기관이 기업에 금융파생상품을 팔 때 위험성을 충분히 고지했는지 기업에 적합하지 않은 상품을 판 것은 아닌지 판단할 뿐 그로 인해 발생한 손해에 대해 금융기관의 책임을 묻지 않았다. “기업이 기대할 수 있는 이익과 부담하게 될 위험을 스스로 판단해 선택한 것이라면 금융기관에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저자는 ‘자유방임주의’란 국가의 개입을 최소화함으로서 개인에게 자유와 책임을 부여하는 것이지만, 금융기관과 같이 우월적 지위에 있는 쪽에 권력을 부여하는 수단으로 전락할 가능성은 없는지 우려한다. 금융기관은 대기업이라면 모를까 일반기업에 대해서는 우월적 지위를 차지하고 있는 게 사실이고, 그렇기 때문에 기업을 보호해야 한다는 저자의 주장은 잘못된 것이 없다. 하지만 그것이 정확하지 않은 정보로부터의 기업을 보호하는 것이어야지 정확하게 이해한 상태에서 스스로 선택한 것에 대한 손해까지 확장되어서는 안 될 일이다. 그러니 이 경우 법원에서 가릴 것은 금융기관이 고객에게 위험성을 제대로 알려주었는가 하는데 한정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온라인서점 읽기 목록에 저자의 책 <열린 법 이야기>와 <헌법 이야기>를 올려놓았다. 이어 읽을 생각이었는데 이 책을 읽고 나니 손을 대기가 망설여진다. <판결을 다시 생각한다> 같은 책이었으면 좋겠는데.



매거진의 이전글 논리는 나의 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