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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인식 Dec 05. 2021

중동 라이벌리즘

다섯 가지 대결구도로 읽는 중동

이세형

북저널리즘

2020년 12월 14일


2019년 가을 리야드 한국대사관 행사에서 동아일보 카이로 특파원이던 저자를 만났다. 그의 기사를 늘 읽고 있었으니 반갑기는 했지만 행사장에서 오래 붙들고 이야기할 수는 없는 상황이어서 인사만 나눴다. 중동 발 기사 대부분이 사실 보도에 치우친 가운데 저자가 쓴 분석 위주의 기사는 눈길을 끌기에 충분했다. 기회가 닿아서 며칠 전에 동아일보사 근처에서 저자를 만났다. 멀리서 왔다는 이유만으로 점심도 얻어먹고 이 책도 선물 받았다.


저자는 이 책을 한국 언론사 중에 중동 특파원을 둔 곳이 너무 적다는 지적으로부터 시작한다. 저자를 만났을 때 왜 사우디에 한국 특파원이 없는지 묻는 것으로 대화를 시작했는데 저자도 같은 아쉬움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이것뿐 아니라 대화를 나누며 여러 면에서 중동을 바라보는 시각이 닮아있음을 느꼈다. 무엇보다 걸프협력기구(GCC) 회원국 사이의 역학관계에 대한 시각은 차이를 느낄 수 없을 정도였다.


대결구도로 읽는 중동


<다섯 가지 대결구도로 읽는 진짜 중동>이라는 부제가 나타내는 것처럼 저자는 중동 정세를 1) 사우디와 이란, 2)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3) 아랍에미리트와 카타르, 4) 미국과 러시아, 5) 터키와 중국의 대결 구도로 읽는다. 중동에서 오래 살고는 있지만 행동반경이 사우디에 국한되었고 전쟁ㆍ자원ㆍ종교ㆍ정치ㆍ인권ㆍ통상 등 중동의 다양한 이슈 중에 한정된 부분만 경험한 내게는 그 중 사우디와 이란, 그리고 아랍에미리트와 카타르의 대결이 흥미로워 보였다.


저자는 사우디와 이란의 대결을 지역 패권 경쟁으로 읽는다. 두 나라의 정치 체제ㆍ이슬람 종파적 특징ㆍ외교 전략이 갈등을 피하기 어려운 구조라는 것이다. 카타르와 아랍에미리트의 대결은 중동의 대표적 소프트파워 국가 혹은 허브 국가가 되기 위한 경쟁으로 읽는다. 경제적으로나 정치적으로 작지만 강한 나라, 영향력 있는 나라가 되기 위해 치열하게 경쟁한다는 것이다. 평소에 내가 가져온 생각, 하지만 구체적으로 정리되지 않은 파편을 저자는 간결하고 선명하게 설명하고 있어 읽어가면서 연신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아마 현지에서 살아본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공감대가 바탕에 깔려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사우디와 이란


저자가 지적한 대로 중동의 모든 문제는 사우디와 이란의 대결로 귀결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나는 무엇 때문에 그렇게 맹렬하게 대결해야 하는지 구체적으로 아는 바가 없다. 그저 이슬람 수니파와 시아파의 대결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미국의 핵심 동맹국인 사우디와 대표적인 반미 국가인 이란의 대결은 불가피한 것이 아닐까 짐작할 따름이다. 그러면서도 그 원인이 무엇인지는 생각해보지 않았다.


저자가 서술한 바와 같이 사우디와 이란은 지하자원, 종교적 상징성, 지정학적 위치 같은 측면에서도 가장 돋보이는 대국이다. 이슬람의 수니파와 시아파는 이슬람의 창시자인 무함마드의 사후에 누가 권력을 계승할 것이냐를 놓고 갈등을 벌이고 있다. 현재 무슬림의 85~90%를 차지하는 수니파의 종주국은 사우디이고, 이란은 시아파의 종주국이다. 하지만 양국의 대결구도는 단순히 종파간의 대립으로 보기에는 너무도 치열하다. 이에 대해 저자는 다음과 같은 해석을 내놓는다.


“사우디는 국왕이 다스리는 왕정국가인 반면 이란은 다른 나라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형태의 ‘이슬람 신정 공화정’ 체제를 갖추고 있다. 종교지도자가 최고지도자로서 대통령 후보와 주요 각료를 결정하는 독특한 정치시스템이다. 중요한 건 최고지도자의 승인을 거쳐야 하지만 어쨌든 선거를 통해 대통령과 국회의원을 뽑는 경쟁이 존재한다는 점이다. 이란은 부패하고 무능한 왕정을 종교지도자가 직접 몰아낸 경험이 있다. 왕정국가인 사우디가 바다 건너에 위치한 이란을 의식할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이와 같이 이란의 팔레비 왕조가 혁명세력에게 무너지는 모습에 두려움을 느낀 사우디는 왕정ㆍ수니파ㆍ산유국이라는 공통점을 가진 국가를 모아 GCC라는 합동 방어선을 구축한다. 사우디와 이란 사이의 갈등이 최악의 상황에 이르면 이란은 어떻게든 사우디 동부에 대한 영향력을 행사하려고 나설 것이다. 사우디 동부의 시아파가 대대적으로 시위에 나서 반정부 구호를 외치고 섭씨 50도에 육박하는 심한 더위가 지속되는 여름에 이란이 발사한 미사일이 사우디 동부의 담수화시설과 발전소를 공격하는 것은 사우디로서는 상상하기에도 끔찍한 상황일 것이다.”


이 설명으로 사우디가 이란을 극도로 경계하는 이유는 선명해졌다. 하지만 손바닥도 마주쳐야 소리가 나는 법이니 사우디가 이란을 극도로 경계한다고 해도 그런 사우디를 이란이 상대할 이유가 없다면 대결은 성립할 수 없는 일이다. 따라서 이 부분을 읽다보면 자연스럽게 왜 이란 역시 사우디를 대결의 상대로 여기는지에 대한 질문으로 이어진다. 그에 대해 저자는 다음과 같은 의견을 피력한다.


“이란이 사우디를 의식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결국 미국 때문이다. 미국은 사우디와 더불어 이란을 주적으로 여기는 또 다른 중동국가인 이스라엘의 핵심 동맹이기도 하다. 따라서 미국이 분명한 안전보장을 해주기 전까지는 이란이 사우디 등에 대한 지역 영향력 확대 전략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말하자면 미국이 더 이상 이란을 주적으로 여기고 압박을 가하지 못하도록 미국의 동맹국인 사우디와 이스라엘을 압박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란을 견제하기 위해 사우디가 이스라엘과 관계개선에 나서는 것은 자연스러운 결과이다. 다만 팔레스타인을 핍박하는 이스라엘에 대한 자국민이나 아랍권 전반의 여론을 감안할 때 사우디가 직접 나서기는 부담스러우니 아랍에미리트와 바레인을 앞세운 것이다. 그렇기는 해도 저자는 사우디가 이란과 군사적으로 충돌하는 것은 최대한 피할 것으로 판단한다. 이란과 충돌이 벌어질 경우 동부의 원유ㆍ담수화 시설이 큰 피해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봉쇄와 전쟁에 익숙한 이란 국민들과 달리 사우디 국민들은 위기상황을 제대로 경험해 본 적이 없는데, 이란과 군사적 충돌이 자국 땅에서 벌어지고 국민들의 피해가 커진다면 궁극적으로 불만이 사우디 왕실과 정부를 향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그 근거의 하나로 실제로 이란이 배후로 추정되는 아람코 원유 생산시설 공격에 대해 사우디가 강하게 반발하면서 강경 대응을 시사했지만 실제로는 아무런 반격이 없었다는 사실을 예로 들고 있다.


이에 덧붙여 저자는 사우디나 아랍에미리트가 이스라엘과 관계를 개선하려는 데에는 미국에서 무기를 자유롭게 구매하려는 의도가 깔려있다고 말한다. 미국은 그동안 사우디와 아랍에미리트 같은 친미 아랍 국가들에게도 이스라엘에 대한 적대적인 군사 도발이 이루어질 수 있다는 이유로 핵심 공격무기를 판매하지 않았다. 따라서 이스라엘과 수교하고 평화협정까지 맺음으로서 이런 장벽을 뛰어 넘겠다는 것이다.


아랍에미리트와 카타르


사우디 현지법인에 부임하던 2009년 두바이는 국가부도를 선언했다. 두바이는 국가부도를 선언하기 두 시간 전에 아부다비로부터 200억 달러 차관을 받았는데, 국가부도를 선언하기 전에 아부다비와 충분한 협의가 있었을 것이고 아부다비는 두바이로부터 그에 상응하는 약속을 받아냈을 것이라는 게 중론이었다. 마침 준공을 앞둔 버즈두바이 빌딩이 브루즈칼리파라는 이름으로 바뀌었는데 모두들 충성맹세의 증표가 아니겠는가 생각했다. 당시 시중에서는 두바이의 활약을 고깝게 여기던 아부다비가 두바이에게 이슬람의 가치로 회귀할 것을 요구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두바이가 이슬람으로 회귀하기보다는 아부다비가 오히려 두바이의 영향을 받아 개방을 가속할 것이라고 생각했고, 십여 년이 지난 지금 아부다비 역시 두바이 못지않게 모든 면에서 개방과 변혁이 급속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하지만 이런 와중에도 카타르에 대해서는 거의 아는 것이 없었다. 관련된 일이 없었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관심을 끌만한 이렇다 할 이슈가 없었다. 물론 2010년 카다르가 ‘2022 월드컵’을 유치하면서 세계의 관심을 끌었으나 당시로서는 개최지 선정과 관련한 뇌물 스캔들로 인해 오히려 카타르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팽배했다. 개인적으로는 2007년 왕비가 주도하는 카타르 재단의 대대적인 지원을 바탕으로 세워진 ‘카타르 필’이 유럽 유수의 오케스트라에 뒤지지 않는 오케스트라가 되겠다는 목표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는 소식 정도나 기억할 수 있을 뿐이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한국을 오가는 교민들이 도하에서 환승하는 경우가 늘어나는가 싶더니 자타 공히 허브 공항으로 자리 잡게 되었고, 한국 산업계에도 큰손으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그러던 중에 2017년 6월 사우디가 아랍에미리트ㆍ바레인과 함께 카타르에 단교를 선언하는 일이 일어났다. 자신들이 주적으로 여기는 이란과 관계를 개선시켜 나가는 카타르에 대한 제재에 나선 것이다. 사태 초기에는 카타르가 언제 손을 드느냐에 관심이 집중됐다. 하지만 카타르는 오히려 이란ㆍ터키의 협조를 받아 이를 극복해냈고 일약 강소국으로 등장하게 된 것이다. 저자가 이 당시 도하에 있는 ‘아랍조사정책연구원(Arab Center for Research and Policy Studies)’에 방문 연구원으로 있었으니 아마 그 모든 과정을 누구보다 생생하게 기억할 것이다. 저자는 이에 이어서 카이로 특파원으로 있는 동안 경험한 것을 바탕으로 아랍에미리트와 카타르의 대결을 풀어내고 있다.


저자는 아랍에미리트와 카타르가 지향하는 목표와 이에 따른 걸음걸이가 선명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고 설명한다.


“카타르는 인구 277만 명 중 자국민이 30만 명에 불과하다. 아랍에미리트는 인구 950만 명 중 자국민이 약 114만 명이다. 아랍에미리트는 물류ㆍ무역ㆍ교통ㆍ금융ㆍ해외기업 유치를 앞세웠다. 중동의 경제 중심지를 지향하는 것이다. 반면 카타르는 미디어ㆍ문화예술ㆍ스포츠ㆍ교육을 전략 분야로 육성하고 있다. 여기에 카타르는 자국에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과 팔레스타인 하마스 같은 무장 정파들이 대외 사무소를 설치할 수 있게 했다. 상대적으로 외교ㆍ지식산업 중심지를 지향하는 모양새다.”


그리고 그 배경을 이렇게 설명한다.


“카타르는 페르시아만의 세계 최대 해상 천연가스전인 카타르령 North Dome와 이란령 South Pars를 이란과 함께 쓰는 사이다. 현실적으로 자국 경제의 핵심인 천연가스를 안정적으로 확보하려면 이란과 사이좋게 지내야만 하는 운명인 것이다. 알자지라 방송은 카타르 정부에 대한 뉴스는 거의 다루지 않으면서 다른 아랍권 나라 정부와 사회문제에 대해선 강하게 비판한다. 당연히 사우디와 아랍에미리트를 중심으로 한 주변국은 이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부패하고 독재 성향인 지도층에 대한 저항을 강조하는 무슬림 형제단은 왕실ㆍ특정인물ㆍ군부가 권력을 독점하는 경우가 많은 중동 정치권에서는 눈엣가시다. 아랍에미리트를 포함한 사우디ㆍ이집트ㆍ바레인 같은 나라들은 무슬림 형제단을 테러단체로 취급한다. 카타르는 무슬림 형제단의 근본주의적 과격한 성향에 대한 우려는 가지고 있지만 이들이 어쨌든 정상적인 혹은 협력이 필요한 단체로 본다. 카타르는 2014년 3월 이집트 출신으로 사우디ㆍ아랍에미리트ㆍ이집트 등에서 위험인물로 여겨지는 유수프 알카라다위의 망명을 허용했다. 사우디와 아랍에미리트는 카타르의 무슬림 형제단에 대한 지원을 전체의 안정을 해칠 수 있는 위험한 시도로 봤다. 1971년 아랍에미리트가 처음 구성될 때 카타르가 연방에 들어가려고 하다가 최종적으로 탈퇴하기로 결정하면서부터 양국은 감정이 안 좋다. 아랍에미리트로서는 자국의 가장 큰 안보위협세력인 이란에 우호적이고 자신들이 먼저 진행하고 있는 중동의 소프트파워 국가와 허브 국가 전략을 벤치마킹해 자신들과 경쟁하는 카타르가 얄미울 수밖에 없다.”


저자는 카타르 일부 인사들이 사우디가 카타르와 단교를 주도한 것은 노회한 무함마드 빈 자이드 아부다비 왕세제가 부추긴 것이라고 주장한다고 전한다. 아부다비 왕세제는 사우디 실세 중의 실세로 통하는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와 매우 가까운 사이이며 사우디 왕세자가 연장자인 아랍에미리트 왕세제로부터 국정운영ㆍ개혁ㆍ개방 등과 관련해 많은 이야기를 듣는 것을 정설로 여긴다는 것이다.


저자가 이 책을 쓴 2020년 말까지만 해도 카타르 사태는 좀처럼 풀릴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바로 다음 달인 2021년 1월 카타르 타밈 국왕이 GCC 정상회담에 참석하기 위해 사우디를 방문하는 것으로 단교 사태는 막을 내렸다. 얼마 지나 이 과정에서 사우디가 아랍에미리트와 사전 협의가 없었다는 것이 밝혀졌고 그 밖의 이런 저런 일이 겹치면서 사우디와 아랍에미리트의 관계가 급속히 냉각된 것으로 알려졌다. 코로나로 인해 아랍에미리트-사우디 항공로가 순식간에 끊어진 것까지야 그렇다고 치지만, 이후 카타르와 국교가 복원되면서 카타르-사우디 항공로는 즉각 열렸음에도 아랍에미리트로 향하는 항공로는 좀처럼 열리지 않았다. 그래서 이번에 한국 휴가 올 때 낯선 도하에서 환승을 해야 했다. 이 역시 양국의 냉랭한 관계와 무관치 않다는 것이 중론이다.


아부다비와 두바이


저자는 적지 않은 국내외 중동 전문가들이 GCC는 사실상 붕괴된 것으로 여긴다고 전한다. 저자에 따르면 인남식 국립외교원 교수도 “GCC는 중동에서 가장 응집력이 높고 동질적인 정치결사체이고 이 안에서도 사우디와 카타르는 부족 전통이나 이슬람 사상적으로 가장 유사했다”며 “카타르 단교 사태와 이로 인한 GCC의 분열은 국가이익이 부족과 종파로 인한 정치적 결속력보다 훨씬 우세하게 작용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고 짚었다. 나 역시 그동안 GCC가 내일 해체된다고 하더라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다고 이야기 해왔다. 그런데 이런 현상은 국가 간의 문제만 일으키는 것은 아니다. 저자는 아랍에미리트의 토후국인 아부다비와 두바이 또한 동일한 이유로 관계가 냉각되어 가고 있다고 전한다.


“통상적으로 석유 부국인 아부다비 국왕이 대통령을 맡고 금융ㆍ물류ㆍ관광 등이 핵심사업인 두바이 국왕이 부통령 겸 국무총리를 맡아왔다. 원유와 천연가스 판매를 통해 아부다비가 재정적으로나 정치적으로 가장 막강했지만 국제적 위상과 인지도는 한때 두바이가 더 높았다. 다양한 개발사업과 홍보로 중동의 중심지라는 이미지를 만들어 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두바이는 무리한 개발로 2009년 경제위기를 맞이한다. 사실상 부도 사태를 겪었다. 아부다비의 대규모 재정지원을 통해 위기를 간신히 이겨낼 수 있었다. 이 과정에서 두바이 국왕의 영향력이 크게 축소됐다. 실제로 최근 아랍에미리트가 추진한 외교안보 정책 상당수는 두바이의 이익에 오히려 해가 될 수 있다. 예멘 내전 개입ㆍ카타르와 단교ㆍ대 이란 강경대응ㆍ터키와 거리 두기는 두바이의 이해관계와 어긋난다. 아부다비와 달리 석유가 거의 나지 않는 두바이는 안정적인 지역 정세를 바탕으로 물류ㆍ관광ㆍ부동산ㆍ금융업 등에 의존하는 구조다. 반면 최근 아랍에미리트가 추진하는 정책 대부분은 지역 긴장을 고조시키는 것이다. 두바이로서는 답답해할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 사실상 두바이가 아부다비가 주도하는 정책에 거의 반대하지 못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두바이 국왕의 공격적인 두바이 브랜드 알리기를 불편하게 여겨온 아부다비 왕실이 두바이 견제에 나서고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아랍에미리트와 사우디의 최근 움직임은 아부다비가 독단적으로 결정한 결과라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비록 아랍에미리트라는 한 국기 아래 모여 있다고는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아부다비와 두바이는 다른 나라로 여기는 것이 맞는다고 생각하며 2009년 두바이 국가부도 이후 관계가 개선되기는 했어도 앙금은 그대로 남아 있을 것으로 생각해왔다. (가까이서 보고 들으며 가진 느낌이 그럴 뿐 구체적인 근거가 있는 것은 아니다.)


이스라엘에 대한 시각의 변화


기독교인으로 살아오다보니 성경의 배경이 된 이스라엘에 대해 호의적인 감정을 갖고 있었다. 그러다 언제부턴가 부정적인 시각으로 바뀌게 되었는데, 이는 아마 사우디에 살면서 아랍 언론의 보도를 자주 접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최근 중동의 역학관계가 출렁이면서 아랍 일부 국가들과 이스라엘의 관계가 조금씩 회복되고 있지만 아직도 ‘아랍 국가에 가장 큰 위협이 되는 나라’ 지표에서 이스라엘이 1위를 놓치지 않는 것이 사실이다. 책을 읽다가 이스라엘에 대한 내 시각이 바뀐 (나도 미처 정리하지 못한) 이유를 선명하게 언급한 부분을 발견했다. 저자가 만난 아랍계 전문가들의 음성이다.


“팔레스타인 사람들과 아랍인들은 이스라엘을 인조국가(artificial state)라고 부른다. 이란과 터키는 좋든 싫든 중동의 일부였다. 원래 거기 있었던 나라고 다양한 형태로 영향력을 행사해왔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1948년 전에 존재하지 않았다.”


“우리 몸에는 많은 장기가 있다. 그 중 하나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해보자. 기분이 안 좋고 화도 날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을 완전히 없애버린다거나 적대시할 수는 없다. 원래 몸에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원래 아예 없었던 세포, 가령 종양 덩어리 같은 게 어느 날 갑자기 생긴다고 해보자. 그 자리에 자꾸 염증이 생긴다면 당신은 그것을 없애려고 하지 않겠나? 이란ㆍ터키와 이스라엘의 차이는 바로 이런 것이다.”


시간 들여 읽기에 아깝지 않은 책


두어 달 후면 사우디에 부임한지 13년이 된다. 짧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중동에 대해 내놓을만한 식견을 갖춘 것은 아니다. 다만 현안에 대해 이런 저런 의견을 올린 것 때문에 감사하게도 중동 전문가들의 대화 상대가 되는 영광을 얻었다.


저자는 2018-2019년 카타르 아랍조사정책연구원의 방문연구원과 2019-2020년 동아일보 카이로 특파원을 지냈다. 결코 긴 시간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특유의 통찰력으로 상황을 잘 읽어냈다. 중동에 관한 책을 여러 권 읽어봤지만 이 책만큼 피부에 와 닿을 정도로 공감하며 읽은 책은 기억에 없다. 물론 절대 분량이 적은 것도 이유이기는 하겠다. 책을 읽는 내내 공감했고, 아마 내가 책을 썼다면 이런 방향이 되지 않았을까 상상하는 즐거움도 맛봤다. 물론 저자의 분석과 필력을 따라가기에는 한참 미치지 못하겠지만.


정리하다 보니 내용이 결코 적은 것이 아닌데 뜻밖에도 책은 아주 단출하다. B6 규격에 미주를 포함해도 채 170쪽에 지나지 않는다. 마음먹고 읽으면 두 시간을 넘기지 않겠다. 그만한 가치는 충분한 책이다. 일독을 권한다.


사족과 당부


저자는 사우디에서는 슈퍼마켓 계산원ㆍ상점 판매원ㆍ호텔 리셉션 직원과 같은 단순 서비스업에서 일하는 자국민들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고 언급한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그런 경우가 있고 시간이 흐르면서 조금씩 느는 것이 사실이기는 해도, 그렇다고 해서 쉽게 눈에 띌 정도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이 차이를 굳이 언급하는 것은 사우디 국민의 성향을 감안할 때 그런 정도에 이르기까지는 앞으로도 상당한 시간이 흘러야 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이 자리를 빌려 저자에게 한 가지 요청을 하고자 한다. 잠깐 취재 일선에서 떠나 있다고는 하지만 중동에 끊임없는 관심을 보이고 있고 관련 행사에 발표자로 참석하는 것으로 보아 중동에 대한 관심을 놓을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그렇다면 격변하는 이후 정세를 업데이트하는 것도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 중에서도 사우디와 아랍에미리트의 관계 변화, 더 나아가 GCC 해체에 대한 그의 견해까지 들어 있는 이의 후속작을 조만간 읽을 수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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