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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인식 Dec 25. 2021

벨리니 <노르마 Norma>

며칠 전에 우연히 소프라노 에디타 그루베로바(Edita Gruberova) 기사를 읽다가 사망 일자가 지난 10월로 표시된 것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아직 그럴 나이는 아니다 싶어 찾아보니 워싱턴 포스트에 부고기사가 났는데 사고로 머리를 다쳐서 그렇게 되었다는군요. 얼마 전까지 무대에서 노래한 슬로바키아 출신의 전설적인 소프라노이기도 하지만 2015년 베이스 박영두가 비스바덴 오페라극장에서 그와 함께 벨리니 오페라 <노르마>를 공연한 일이 있어 그에 대한 기억이 남다릅니다. 그때 에디타 그루베로바와 함께 공연을 한다는 소식을 듣고 무척 놀랐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에디타 그루베로바는 이 작품에서 주인공인 노르마 역을 맡았고 베이스 박영두는 노르마의 아버지인 오로베소 역을 맡아 노래했습니다.


워싱턴 포스트 부고 기사

https://www.washingtonpost.com/local/obituaries/edita-gruberova-dead/2021/10/19/ed962daa-30d5-11ec-93e2-dba2c2c11851_story.html


오페라는 작품 자체보다도 마리아 칼라스가 부른 Casta Diva(정결한 여신)가 훨씬 유명하지요. 벨리니가 작곡해 1831년 초연이 이루어졌지만 한동안 잊혔다가 마리아 칼라스 때문에 다시 빛을 보게 되었다고 합니다. 저도 DVD를 사놓고도 몇몇 아리아만 찾아 들었지 전체를 본 일은 없습니다. 에디타 그루베로바가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듣고 베이스 박영두와 공연했던 이 작품을 다시 들여다보게 되었는데, 드라마적인 요소도 그렇고 아리아 하나하나가 아주 아름다워서 언제 전체를 감상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마리아 칼라스 때문에 이 작품이 다시 빛을 보게 되기도 했지만 테발디에 가려져 있던 칼라스가 이 작품을 계기로 최고의 디바에 오르게 되기도 했다는군요. 이후에 조안 서덜랜드나 몽세라 카바예 같은 세계적인 소프라노가 앞 다투어 출연하기도 해서 오늘날 벨리니 작품 가운데 가장 많이 공연되는 작품이 되었습니다.


○ 비스바덴 극장, 오로베소 역

   [2015년] 1/18, 1/21, 1/24, 1/27, 1/29, 2/5, 2/8, 5/19, 5/24, 5/29

   [2018년] 1/12, 1/20, 1/26, 2/1, 2/9



등장인물


○ 노르마; 여사제장, 오로베소의 딸. 소프라노

○ 아달지사; 젊은 여사제. 소프라노

○ 폴리오네; 갈리아(켈트) 지역의 로마 총독. 테너

○ 오로베소; 드루이드 족장. 베이스

○ 클로틸데; 노르마의 시녀이자 친구. 소프라노

○ 플라비오; 폴리오네의 참모이자 친구. 테너


줄거리


제1막. 드루이드 신전이 있는 참나무 숲


기원전 50년경 로마 통치를 받고 있는 갈리아(켈트) 지역. 로마 제국의 억압을 받고 있는 켈트족은 항쟁할 기회를 엿보지만 거사를 일으키자면 신으로부터 계시가 있어야 합니다. 한밤중에 켈트족 전사들이 신전이 있는 곳으로 엄숙하게 행렬을 지어 지나가고 행렬 맨 마지막에 오르베소가 따라갑니다. 제단 앞에 모인 켈트족 전사들은 그들의 신에게 로마 점령군을 몰아내게 해 달라고 간구하지요. 이어 제사를 드리기 위해 달이 뜨는지 보려고 언덕으로 올라갑니다. 모두가 떠난 자리에 폴리오네와 그의 친구이자 참모인 플라비오가 등장합니다. 폴리오네는 플라비오에게 몇 년 전 아름다운 노르마를 사랑하게 되었으며 두 아이까지 두었다는 말을 털어 놓습니다. 플라비오는 만일 이 사실이 알려지면 노르마가 대단히 난처한 입장에 처하게 될 것이라며 걱정합니다. 사실은 그도 노르마를 사모하고 있었지만 로마인과 켈트족이라는 관계 때문에 일찌감치 사랑을 포기했던 것입니다. 폴리오네는 플라비오가 노르마를 걱정하는 것에는 아랑곳없이 이제 더 이상 노르마를 사랑하지 않게 되었으며 대신 신전의 젊은 여사제인 아달지사를 사랑하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달이 떠오르자 켈트족 전사들이 신전으로 되돌아옵니다. 폴리오네와 플라비오는 급히 자리를 피하지요. 모두들 모이자 노르마가 여사제들을 거느리고 등장합니다. 노르마는 전사들에게 로마 정복자를 몰아낼 시기는 아직 오지 않았고, 로마의 운명은 신의 손에 달렸으며, 로마는 외부의 공격 때문이 아니라 내부의 쇠약함 때문에 멸망할 것이라고 선언합니다. 달이 떠올라 사방을 환하게 비치자 노르마는 의식을 시작합니다.


Casta Diva (정결한 여신)

마리아 칼라스 https://www.youtube.com/watch?v=s-TwMfgaDC8

안나 네트렙코 https://www.youtube.com/watch?v=2tzp_PrN8nk

(Casta Diva는 뭐니 뭐니 해도 마리아 칼라스이지만 안나 네트렙코도 들을 만합니다.)


의식이 끝날 때쯤 노르마는 언제 항쟁을 시작하는 것이 좋을지 그때 가서 신의 계시를 전해주겠다고 말하지만 사실 노르마는 폴리오네 때문에 전쟁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랍니다. 켈트족 전사들과 사제들은 제일 먼저 교만하고 포악한 폴리오네 총독을 죽여야 한다고 외칩니다.


모두 떠나고 제단 앞이 텅 비자 아달지사가 나타나 제단 앞에 엎드려 자기를 사악한 사랑의 굴레에서 벗어나게 해달라고 기도합니다. 이어 폴리오네가 등장해 아달지사에게 아무 생각도 하지 말고 자기와 함께 로마로 도망가자고 설득합니다. 처음에는 펄쩍 뛰며 거절하던 아달지사는 폴리오네의 끈질긴 설득에 그가 가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함께 가겠다고 약속합니다.


Vieni in Roma (가자, 로마로)

https://www.youtube.com/watch?v=cXnfgPM-s7I


폴리오네는 아달지사에게 내일 밤 같은 시간에 만나 멀리 도망가자고 말하고 두 사람이 열정적인 사랑의 듀엣을 부르는 가운데 막이 내립니다.


제2막. 숲속 노르마의 집


노르마는 자기 아이들의 아버지인 폴리오네가 로마로 돌아가게 되어 몹시 걱정합니다. 폴리오네가 아이들은 물론 자기까지 버리고 로마로 돌아갈 것 같은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노르마는 두 사람의 비밀이 언젠가는 탄로 날 것이고, 그러면 신을 거역하고 켈트족을 배신한 것에 대한 무서운 징벌이 따를 것이라고 걱정하지요. 그때 누군가 들어오는 소리가 들리자 노르마는 유모에게 아이들을 데리고 피해있으라고 합니다. 아달지사가 폴리오네를 사랑하는 것이 여사제로서의 서약을 위반 동족을 배반하는 일이지만 끝내 그를 선택하기로 결심하고 떠나기 전에 노르마에게 알리기 위해 찾아온 것입니다. 노르마와 폴리오네의 관계를 알지 못하는 아달지사는 노르마에게 자기가 어떤 로마 군인을 사랑하여 함께 먼 곳으로 오늘밤 함께 도망가기로 했다는 사실을 고백하며 용서를 구합니다. 노르마는 자기도 한때 그와 같은 번민 속에 빠져 있었지만 결국 사랑을 택했고 그래서 지금까지 행복했다며 아달지사에게 용기를 가지라고 격려합니다.

Ah, si, fa vore e abbraccia (아, 용기를 가져라! 울지 말고)


https://www.youtube.com/watch?v=JIrkBrsKF00


노르마는 아달지사를 측은하게 생각해 그를 도와주기로 결심합니다. 아달지사의 여사제 서약을 풀어주고 뒷일은 감당할 것이니 걱정하지 말고 사랑을 따라 떠나라고 하지요. 그리고 아달지사에게 누구를 사랑하느냐고 묻습니다. 바로 그때 폴리오네가 아달지사를 만나기 위해 나타나고 아달지사는 바로 저 사람이라고 대답합니다. 무서운 침묵의 시간이 흐른 후 노르마는 폴리오네에 대한 참을 수 없는 증오심으로 아달지사에게 “저 사람은 자기 아내와 아이들을 속였을 뿐만 아니라 또 다른 젊은 켈트 여인까지 속였다”고 절규합니다. 사태를 알아차린 아달지사는 충격을 받고 노르마에게 더 이상 폴리오네를 사랑하지 않겠다고 말합니다. 폴리오네는 아달지사에게 제발 자기를 버리지 말아 달라고 애걸하고 아달지사는 폴리오네의 손을 뿌리치며 노르마의 품안으로 뛰어 듭니다. 노르마는 폴리오네에게 내 눈앞에서 사라지라고 소리칩니다.


Vaune, si, mi, lascia, indegno (가라, 떠나라, 형편없는 인간아!)

https://www.youtube.com/watch?v=iNXoDc2yGNU


제3막. 노르마의 침실


노르마는 단검을 꺼내 들고 곤히 잠들어 있는 아이들을 바라봅니다. 아이들을 죽이고 자기도 함께 죽을 생각인 것이지요. 하지만 노르마는 자기가 낳은 아이들을 차마 칼로 찌르지 못하고 아달지사를 불러 아이들을 아버지인 폴리오네에게 데려다 주라고 당부합니다. 아달지사는 노르마가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는 것을 알고 제발 그러지 말라고 애원합니다. 노르마가 여사제장의 명령이라고 말하자 아달지사는 명령을 따르겠다며 이제는 더 이상 사랑하지 않게 된 폴리오네를 만나러 가겠다고 대답합니다. 폴리오네가 노르마에게 다시 돌아오도록 설득할 마음이었던 것입니다. 이런 아달지사의 마음을 안 노르마는 아달지사를 폴리오네에게 보내지 않겠다고 마음을 바꾸지만 아달지사가 간곡히 요청하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승낙합니다.


Mira o Norma (보라, 오 노르마)

https://www.youtube.com/watch?v=Yx3EGkIIJlY

(이 오페라에서 Casta Diva에 필적할만한 아리아입니다.)


제4막. 드루이드 신전


로마군과 전투를 앞둔 켈트족 전사들 앞에 오로베소가 나타납니다. 오로베소는 현재 총독인 폴리오네가 로마로 곧 돌아가게 되었으며 새로 부임하는 총독은 폴리오네보다 더 잔혹한 인물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신의 계시가 있을 때까지 자중하고 있을 것을 당부합니다.


노르마가 폴리오네에게 간 아달지사를 초조하게 기다립니다. 폴리오네를 설득하러 간 아달지사의 노력은 수포로 돌아가고 오히려 폴리오네에게 잡혀서 강제로 로마로 끌려 갈 뻔 했지만 가까스로 도망하여 신전으로 도망해 옵니다. 이 말을 들은 노르마는 절망과 분노로 신전 안에 걸려 있는 커다란 방패를 세 번 울립니다. 모든 켈트족 전사들과 사제들이 모이자 노르마는 이들에게 “이제 때가 되었으니 로마군을 치라!”고 선언합니다. 이에 전사들은 로마에 대한 복수를 다짐합니다.


Guerra! le Galliche selve! (압박자에게 전쟁을)

https://www.youtube.com/watch?v=L0ttV3hCJe4


이때 오로베소가 전사들 앞에 나와 “큰일을 앞두고 우리의 신에게 인신제사를 지내자”고 말합니다. 이 말을 들은 노르마는 무슨 생각에서인지 제물이 곧 준비될 것이니 전사들은 어서 나가 로마군을 무찌르라고 명령합니다.


갑자기 밖에 소란해지고 켈트족 전사들이 폴리오네를 결박하여 끌고 들어옵니다. 아달지사를 찾으러 신전까지 쫓아온 폴리오네를 잡아 온 것입니다. 폴리오네를 본 노르마는 칼을 높이 치켜들고 폴리오네를 죽여 제물로 삼으려 하지만 차마 내리치지 못합니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잠시 신전에서 나가 있으라고 명령합니다. 사람들이 물러가자 노르마는 폴리오네에게 다시는 아달지사를 찾지 않겠다고 약속하면 살려 보내겠다고 합니다.


In mia man alfin tu sei (결국 당신은 나의 손에 달렸다)

https://www.youtube.com/watch?v=tCccNsdsHOw

https://www.youtube.com/watch?v=HqTlqb8WtIY


하지만 폴리오네는 거절하지요. 그러면서 자기가 미워서 두 아이를 죽이려고 했다면 아이들 대신 자기를 죽이라고 말합니다. 노르마가 아달지사를 신에게 바치겠다고 말하자 폴리오네는 또 다시 자기를 죽이라고 소리칩니다. 분노한 노르마는 사람들을 들어오게 하고 신에게 바칠 제물로 젊은 여사제를 택했다고 선언합니다. 노르마는 여사제의 서약을 어기고 로마군과 내통해 사랑을 나누었으니 마땅히 죽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사람들은 분노해 그가 누구인지 밝히라고 요구하자 노르마는 자기가 바로 그 사악한 여사제라고 대답합니다. 그리고 노르마는 폴리오네를 바라보며 자기는 아직도 그를 사랑하고 있으며 무덤 속에서라도 계속 사랑하겠다고 말하지요. 폴리오네는 그제야 비로소 자기 눈이 떠져 아달지사에 미혹되었던 감정은 사라지고 노르마에 대한 사랑이 다시 소생했다고 말합니다. 오로베소를 비롯한 사제들과 켈트족 전사들은 놀라움에 말을 잊습니다. 누군가 노르마에게 “지금까지 말한 것은 그저 정신없이 내뱉은 허황된 것”이라고 말해 달라고 요청하지만 노르마는 자기야말로 용서받을 수 없는 사악한 죄인이라고 말하면서 아버지인 오로베소에게 아이들을 부탁한 후 폴리오네와 손잡고 제물을 태우기 위해 불을 붙여 놓은 곳으로 발길을 옮깁니다. 사제들이 무거운 합창으로 노르마에게 작별을 고하며 막이 내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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